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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재벌개혁 실험’ 1년 현주소

날개 단 사외이사, 발품 파는 회장님, 직원들은 관망중

SK ‘재벌개혁 실험’ 1년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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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재벌개혁 실험’ 1년 현주소

SK(주)는 사외이사들에게 개인 집무실을 제공했다. 집무실 개소식 광경(5월4일).

SK(주) 이사회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이사회를 보좌하기 위해 사무국을 신설하고, 이사회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산하 소위원회 격인 전문위원회를 둔 것. 국회로 말하면 각각 사무처와 상임위원회에 해당하는 기구인데, 이는 다른 기업에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이사회 직속기구인 사무국에선 사장실, 투자회사관리실, 법무팀 등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대규모 투자나 사업계획과 관련된 각종 경영정보를 사외이사들에게 제공하고 관련부서와 이사회 안건을 조율하는 등 이사회와 집행부의 연결고리 기능을 담당한다. 사내 조직이면서 사외이사를 보좌하는 애매한 성격 때문에 아직은 입지가 확고하지 못한 상태지만, 사무국장에 대한 인사고과를 이사회에 일임하는 등의 장치로 독립성을 확보해주려 하고 있다.

이사회 사무국장은 사장실 직속 CR(Corporate Relations)전략실장인 황규호 전무. CR전략실은 SK사태를 겪으면서 정보수집 및 분석, 인맥관리, 법무지원, 홍보 분야에서 취약성을 절감한 SK가 IR팀, 홍보팀, 법무팀 등을 한데 모아 만든 조직이다. 실장이 이사회 사무국장을 겸하고 있는 만큼 사무국을 측면 지원하는 것도 주요 임무다.

이사회에는 법적으로 요구되는 감사위원회와 인사위원회 외에도 투명경영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 전략위원회 등의 전문위원회를 둬 인사, 재무, 관계사간 거래 등의 회사 상황을 보고받고 심의하게 했다. 사외이사들은 대개 1인당 2개의 전문위원회에 소속돼 있고, 각 위원회 위원장은 사외이사가 맡는다.

그중에서도 감사위원회는 전원(3명) 사외이사로, 투명경영위원회는 3분의 2를 사외이사로 구성했다. 투명경영위원회는 경영 전반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수행하되 특히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된 관계사간 거래를 감시하는 데 역점을 둬 제2의 SK사태가 불거지지 않도록 했다.



SK(주)의 새 이사회도 이전의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좀처럼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는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사외이사들은 “웬만한 안건은 전문위원회를 거치며 충분히 다듬어진 후에 이사회에 회부되므로 가결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반대하느냐가 사외이사의 중립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것. 이사회에서 부결될 만한 안건은 전문위원회 선에서 퇴짜를 놓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최근 부결된 안건은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올라온 것이었다.

SK(주) 이사회는 매달 한 차례씩 정기 이사회를 갖는다. 여기에다 전문위원회 회의, 이사회를 앞두고 안건을 올린 부서에서 마련하는 사전설명회 등을 포함하면 평균 1주일에 한 번 꼴로 회의가 열린다. 어지간한 대기업 이사회가 두어 달에 한 번 형식적인 모임을 갖는 것과 비교하면 ‘상근’에 가깝다.

게다가 SK는 서울 서린동 본사에 사외이사들의 개인 집무실까지 마련해줘 사외이사들은 이래저래 회사에 자주 들러 보고도 받고 자료도 뒤적이게 돼 있다.

미국보다 강한 회계기준

SK(주) 사외이사들은 분식회계와 부당 내부거래 감시에 관한 한 직을 걸다시피 한 상황이다. 한 사외이사의 말이다.

“앞으로는 분식회계가 드러나면 사외이사들의 개인적인 평판과 커리어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특히 SK(주) 사외이사들에겐 날카로운 감시의 눈길이 쏠려 있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사기업이 아니라 중요 국가기관에 파견돼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기분이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분식회계를 못 막으면 사외이사들도 집단소송 대상이 된다. 그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만큼 소송에 대비해서라도 회계자료 등을 충실하게 관리했다는 흔적을 남겨놓아야 한다.”

이에 따라 SK(주) 이사회는 한국과 미국의 회계관련법을 검토, 양쪽에서 더 엄격한 기준을 취해 내부 감사규정을 만들 계획이다. 현재 검토중인 미국의 사베인-옥슬리법은 에너지 그룹 엔론이 분식회계로 무너진 것이 계기가 되어 입안·시행됐는데, 1930년대 이래 가장 강력한 회계부정 방지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 엄격한 감사규정을 시행하려면 기업 정관을 개정해 감사위원회의 위상을 크게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에선 감사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사회 내에 형식은 갖춰놓고 있지만 대개 내부 감사팀이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내부 감사팀은 일반 주주가 아니라 CEO를 위해 일하고 CEO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사내 조직이기 때문에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외부 감사기관인 회계법인도 피감사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처지라 100% 독립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또한 회계법인은 피감사 기업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오히려 주주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측면이 있다.

따라서 내부 감사팀과 외부 감사기관을 다 가동해도 ‘주주의 입장에서 CEO를 감시’하는 기능에는 구조적으로 구멍이 뚫릴 수 있다. 이 구멍을 메꿔줄 수 있는 것이 독립적인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다. 사외이사는 스톡옵션 보유가 가능하므로 주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도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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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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