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돈 못 주겠다’ 중단·연기 사모펀드 361곳
금융 당국, 라임·옵티머스 ‘안’ 잡았다
금융 감독기관 일원화해 관리·감독 집중해야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 피해자들이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해자 보호 및 책임자 처벌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김경율(51) 경제민주주의21 대표의 말이다. 그를 포함한 다수 전문가는 금융감독원(금감원), 금융위원회(금융위) 등 금융시장 감독기관이 금융시장 감독 업무에 소홀해 사모펀드 연쇄 부실 사태가 일어났다고 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습을 보니 진작 고칠 수 있는 외양간을 그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환매 중단 사태 이후 금감원이 사모펀드 전수조사에 나섰고 금융위는 사모펀드 관련 감독 규정을 공모펀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금융 당국의 감독이 소홀한 사이 제2, 제3의 라임과 옵티머스가 사모펀드 업계에 자리 잡았다. 금감원이 올해 8월 51개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를 조사한 결과 2011~2020년 사모펀드 환매 중단 및 연기는 총 361건이다. 모두 2018년 이후 발생했다. 2018년 10건, 지난해와 올해(8월 기준)는 각각 187건과 164건이다. 피해액 규모는 환매 중단 금액만 6조689억 원. 추가 중단 위험 금액은 7263억 원이다.
환매 중단은 사실상 파산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펀드 시장이 급반등하는 등 큰 변화가 없다면 다가올 만기에 (추가 중단 위험 채권이) 순차적으로 환매 중단이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규제 완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2015년 10월 25일 시행된 금융 당국의 개정 자본시장법이 화근이라는 의미다. 자본시장법 개정 때문에 당초 허가제이던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은 등록제가 됐다.
법조 및 금융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보다는 금융시장 감독기관의 실책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규제 완화와 동시에 금융위가 사모펀드 관련 관리·감독 규정을 강화해야 했으나 적기를 놓쳤다는 것.
금융 당국, 그야말로 사후약방문
라임과 옵티머스 두 사건 모두 투자자의 자금이 당초 약정한 곳과 다른 곳으로 흘러간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이들이 거액을 투자한 회사나 펀드에서 손실이 생기자 이를 메우기 위해 투자자의 자금을 유용했다. 라임은 투자한 해외무역펀드에서 전액 손실이 났으나 이를 숨기고 펀드를 팔아 투자금을 모았다. 옵티머스는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하겠다며 자금을 모았으나 실상은 장외기업의 사채를 사 모았다. 이들의 거짓말은 올해 들통났다. 라임은 2월, 옵티머스는 6월 펀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환매 중단액은 라임이 1조4651억 원, 옵티머스가 3042억 원이다. 옵티머스는 추가 중단 위험액도 2109억 원이나 있어 피해 규모가 5000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경율 대표는 “금융 당국이 라임과 옵티머스가 애초에 계획한 대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지만 파악했어도 사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5억 원이 넘는 주택 한 채를 구매해도 정부가 주택 구입 자금 출처 조사에 나선다. 탈세를 막기 위해서다. 금융 당국의 조사로도 수백, 수천억 원의 사모펀드 투자금이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적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옵티머스 사건 후 금융 당국은 사모펀드 전수조사에 나섰다. 전수조사에 따른 법안 개정이나 금융 감독 인력 충원은 없었다. 즉 사모펀드 부실 사태 이전에도 충분히 전수조사를 할 역량이 있었던 것이다.”
조사의 내용은 사모펀드 재무제표상 자산과 실제 보관 자산의 일치 여부 확인, 운용 중인 자산과 투자제안서·규약의 일치 여부, 운용 재산의 실재성 확인 등이다.
전수조사 외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와 금감원은 재발방지책도 내놨다. 금융감독 당국이 4월 발표한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총액 500억 원이 넘거나 300억~500억 원이면서 6개월 내 펀드를 추가 발행하는 사모펀드 운용사는 외부 감사를 받아야만 한다. 이는 공모펀드와 동일한 기준이다.
금융감독 정책·집행 이원화는 한국뿐
국회 입법조사처가 11월 13일 발표한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계 개편 필요성 및 입법과제’ 보고서. [입법조사처 제공 ]
이처럼 금융시장의 감독 규정을 고치거나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융감독정책 기능’이라 한다. 금융감독정책 기능은 금융위의 고유 권한이다. 단순화하면 금융위는 금융감독정책을 만들고 금감원은 금융위가 만든 금융감독정책에 따라 금융시장을 검사하고 제재한다. 문제는 규제를 줄이는 금융산업정책도 금융위가 담당한다는 점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라임, 옵티머스 등 부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계기로 금융시장 감독에 관한 기능을 금감원으로 전부 이전해 관리·감독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 금융위는 규제 완화 등 금융산업정책에 집중하고 금융감독정책 수립과 집행은 금감원이 담당하는 편이 낫다. 금융시장 감독 정책 수립과 집행을 각각 두 기관에 나눠 맡긴 곳은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금융 감독 업무 일원화해야
미국은 17곳의 금융 감독기관이 있었으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FSOC(금융안정감독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를 설치해 감독 업무를 일원화했다. 영국은 PRA(건전성감독청·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가 은행·보험·투자은행 감독을 맡고, FCA(금융행위감독청·Financial Conduct Authority)가 나머지 금융기관을 맡는다. 1999년 금감원이 생기기 전 은행감독원(은행), 증권감독원(증권사), 보험감독원(보험사), 신용관리기금(종합금융회사 및 상호신용금고) 등 4개 기관이 각각 금융산업을 나눠 감독한 것과 비슷한 형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국의 두 기관은 금융감독정책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일본은 금융청이 금융 감독 업무를 전담한다.금감원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금감원이 사모펀드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련 학계 및 전문가의 중론은 일원화된 금융감독기관의 독립 운영으로 좁혀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1월 13일 발표한 ‘우리나라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 및 입법과제’ 보고서를 통해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 분리를 통해 금융 관련 정책의 독립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 금융감독기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