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슬롯‧중복노선‧시스템… 풀어야 할 과제 산적

[Focus]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5-01-1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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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만에 아시아나항공 M&A 성공

    • 시장가치 다른 마일리지… 통합 비율 ‘촉각’

    • 공정위 “코로나 사태 대비 개악(改惡) 금지”

    • 3.5조 원 누적, 2026년까지 최대 소진 목표

    • 중복노선·슬롯 조정 불가피… 합병 시너지 반감 우려도

    아시아나항공 A350 항공기(위).  대한항공 B787-9 여객기.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A350 항공기(위). 대한항공 B787-9 여객기.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제 한진그룹이라는 지붕 아래 진정한 한 가족이 됐습니다. 긴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힘을 모아주신 양사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해 12월 16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그룹사 인트라넷에 글을 올려 이같이 밝혔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신주를 인수해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 지 나흘 만이었다. 조 회장의 격려와 감사, 앞으로의 당부가 담긴 이 글은 “친애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그룹사 임직원 여러분”으로 시작했다. 글 곳곳에 새 식구가 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다.

    4년 만에 ‘딜 클로징’… 2년 유예기간 진통 불가피

    2024년 12월 12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하며 기나긴 인수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2020년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의 ‘깜짝 발표’로 시작된 딜이 종결되기까지 4년이 넘게 걸렸다. 기간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대한항공은 해외 경쟁 당국으로부터 기업결합을 허가받기 위해 수많은 알짜 노선과 슬롯을 포기했고,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까지 결단했다.

    그 배경엔 조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딜이 예상보다 더 장기화했지만 조 회장은 한 번도 부정적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늘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쉽사리 승인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해외 경쟁 당국을 직접 만나 설득했고, 거듭된 논의 끝에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이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한 몸으로 거듭나게 된다. 2026년 말 세계 10위권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가 본격 출범하는 것. 하지만 이 과정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40년 가까이 별개였던, 심지어 경쟁 관계였던 두 항공사가 하나로 거듭나는 만큼 화학적 결합에 진통이 불가피할 거란 예상이다.

    조 회장도 이를 인식한 듯 앞선 인트라넷 게시 글을 통해 “달리 살아온 시간만큼 서로 맞춰가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하고 극복해야 할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가는 믿음직한 가족이자 동반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미 두 회사는 하나와 마찬가지”라며 “신속한 의사결정과 판단으로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데 주력하자”고도 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풀어가야 할 핵심 과제로 △항공 마일리지 통합 △노선-슬롯 조정 △기업문화 융합 △중복인력 재배치 등을 꼽는다. 합병 시너지 극대화 및 영업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들이다. 특히 마일리지 통합은 소비자의 권익과 직결돼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만큼,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챙겨야 하는 사안으로 여겨진다.

    1대 1 vs 1대 0.7… 마일리지 통합 비율에 쏠리는 눈

    2024년 8월 13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제39회 2024년 대한민국 경영자대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대한항공]

    2024년 8월 13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제39회 2024년 대한민국 경영자대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대한항공]

    항공 마일리지 제도는 대다수의 국내외 항공사가 운영하는 ‘상용(常用) 고객 우대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용 고객에게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고 누적 정도에 따라 보너스 항공권, 좌석 업그레이드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일종의 충성고객 확보책으로 볼 수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대부분 탑승 실적에 따른 자체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항공(스카이패스)과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클럽) 같은 대형항공사(FSC)는 물론 제주항공(리프레시포인트)이나 진에어(나비포인트) 등 저비용항공사(LCC)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관심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른 양사 마일리지 통합 비율에 쏠리고 있다. 두 항공사가 하나로 합쳐지는 만큼 마일리지 제도도 일원화되는데, 기존에 쌓여 있던 양사 마일리지의 가치가 동일하게 인정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를 두고 대한항공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마일리지 통합 비율은 기존 대한항공 고객과 아시아나항공 고객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FSC의 마일리지는 적립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항공기 운항 거리에 따라 적립되는 ‘탑승 마일리지’와 신용카드 사용 금액을 반영한 ‘제휴 마일리지’다. 일반적으로 운항 거리에 기반을 둔 탑승 마일리지는 두 항공사가 비슷하다. 예컨대 인천-뉴욕(편도) 노선을 일반석으로 이용할 경우 대한항공은 6879마일, 아시아나항공은 6880마일을 적립해 준다. 국내선 대표 노선인 김포-제주는 양사 모두 276마일이다. 마일리지 유효기간도 10년으로 동일하다.

    문제는 제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다. 통상적으로 대한항공은 이용 금액 1500원당 1마일을, 아시아나항공은 1000원당 1마일을 적립해 준다. 양사 마일리지를 등가(等價)로 봐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같은 시장가치를 반영하면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1일 때 아시아나항공은 0.7 정도로 보는 게 적절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기존 아시아나항공 고객의 마일리지도 대한항공과 똑같이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자칫 피합병법인에 대한 차별로 인식돼 통합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도 민생토론회에서 “단 1마일의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사실상 대한항공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한 바 있다.

    다만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통합 비율이 1대 1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기존 대한항공 충성고객에 역차별로 작용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마일리지 항공권의 숫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고객들이 마일리지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받아 회원으로 합류하면 대한항공 고객들의 항공권 확보가 어려워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마일리지와 연계된 우수회원 제도에서도 혼란이 예상된다. 대한항공의 우수회원 제도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인 ‘모닝캄’은 5만 마일이 자격 기준이지만, 아시아나항공에서 같은 단계인 ‘아시아나클럽 골드’는 2만 마일이다. 아시아나 고객의 경우 마일리지 통합 비율에 따라 우수회원 자격 유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통합 비율에 대해 구체적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 컨설팅을 받은 후 6월까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전환 비율을 보고하고, 이후 추가적 협의를 거쳐 고객에게 최종 고지할 계획인 것으로만 알려졌다.

    공정위는 코로나 팬데믹 전인 2019년의 그것에 비해 불리하게 변경해선 안 된다고 못 박은 상황이다. 마일리지 개악(改惡)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것으로, 통합 방안 승인 이후엔 해당 내용이 새 기준이 된다. 향후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를 고치더라도 통합안보다 더 불리하게 변경할 순 없다.

    구태모 공정위 기업결합과장은 “마일리지 합병 비율은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가진 소비자와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소비자 사이에 유불리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전체 항공 소비자가 공통으로 적용받을 수 있는 내용이 불리하게 변경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일리지 총합 3.5조… 2026년까지 최대 소진 목표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마일리지와 관련해 동일한 회계 처리를 하고 있다. 고객이 항공권을 구입할 때 발생하는 매출 가운데 일부를 마일리지 몫으로 떼어 이연한 뒤, 추후 마일리지가 사용되는 시점에 수익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즉 재무제표상 이연 수익 규모만큼 마일리지가 누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연 수익은 회계상 부채로 인식돼 재무 훼손 원인이 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이연 수익은 2조5532억 원, 아시아나항공은 9814억 원으로 집계됐다. 양사를 합치면 3조5000억 원이 훌쩍 넘는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이연 수익은 2023년 말 2조7679억 원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올해 들어 감소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객 수요가 정상화하며 마일리지 항공권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이연 수익은 매 분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9631억 원이었으나 9개월 만에 2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마일리지가 사용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 갈수록 늘어나는 모양새다. 이는 항공권을 포함해 마일리지 사용처가 적다는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양사는 마일리지 사용처를 확대하며 적극적으로 소진을 독려하고 있다. 향후 통합 비율 확정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재무건전성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양사 모두 마일리지 제도를 분리 운영하는 2026년 말 전까지 최대한 사용처를 확대해 소비자 편의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항공권 구매 시 일부를 환급해 주거나 공제 마일리지를 할인해 주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보너스 항공권 선호도가 가장 높은 김포-제주 노선에 특별기도 띄웠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마일리지 좌석을 추가 공급하고 있으며, 마일리지 쇼핑몰의 품목 수도 늘리고 있다.

    노선·인력·조직문화 간극 좁히기도 관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중복노선 및 슬롯을 조정하는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앞서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유럽 4개 노선을 티웨이항공에 넘겼지만, 그 외에 독과점이 우려되는 중복노선에 대해 추가 시정 조치를 이행할 예정이다.

    특히 출발 시간이 유사한 노선에 대한 슬롯 조정을 통해 시간을 분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운항 시간 다변화로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라는 공정위와 국토교통부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앞서 공정위는 대한항공에 합병 후에도 기존 공급 좌석 수의 90% 이상을 유지하고, 운임 인상을 억제하되 서비스 질은 유지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합병 시너지가 반감될 우려가 있다. 합병을 위해 노선을 내주고 슬롯을 포기하면 ‘1 + 1 = 2’가 아닌 ‘1 + 1 < 2’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다만 이는 합병 직후에 한정되는 얘기로, 추후 ‘규모의 경제’ 실현에 따른 네트워크 강화 등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동종 기업합병에 따른 중복인력 발생을 비롯해 운영 체계와 시스템, 조직문화를 하나로 융합하는 작업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조종사 간 기수 정리는 풀어야 하는 숙제 가운데 하나다. 대한항공은 상반기 중 브랜드 리뉴얼에 따른 통합 기업이미지(CI) 발표와 기체 도색, 유니폼 디자인 변경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기존에 여러 차례 공언한 대로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거라고 재확인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향후 증가할 사업량에 따라 인력 소요(所要)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며 “일부 중복인력도 필요 부문으로 재배치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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