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번영하려면… 미국식 경제 자유, 스웨덴식 복지
다시 꺼내 든 ‘부의 소득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잊어라
한국 경제는 체력 고갈 상태… 영양제 맞을 돈도 없을 것
부가가치세율은 올리고 재정 개혁으로 낭비 줄이고
기업지배구조 개선되면 상속세율 낮춰야
기업 밸류업? 탁상공론에 불과한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대통령은 각 부처 규제 개혁 점검회의부터 하라
지금의 위기를 ‘위장된 축복’으로 바꾸려면…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박해윤 기자]](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06/fb/678f06fb0afed2738276.jpg)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박해윤 기자]
그러나 2006년 현대차 로비 의혹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되고 142차례 재판을 받는 등 4년 넘게 곤욕을 치렀다. 두 건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공무원들이 절대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 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변양호 신드롬’이 탄생했다. 안 그래도 과묵하다는 평을 듣던 그가 세상을 향해 입을 닫아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깬 것은 그로부터 9년 뒤. ‘신동아’ 2015년 7월호에 ‘우리가 다시 번영하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면서다. 이 글에서 그는 ‘선진국 따라잡기’로 경제부흥을 이룬 한국이 어느 순간 번영의 길에서 이탈한 이유와 우리가 다시 번영의 길로 나아갈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대런 애쓰모글루(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제임스 A.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인용하면서 “국가의 성패는 그 국가의 경제·정치적인 제도가 착취적이냐, 포용적(창의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능력 있는 사람을 포용하고 그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나라는 번영하고, 그런 사람들을 착취하는 나라는 잘살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반시장적, 착취적 경제제도로 번영에서 이탈한 한국
하지만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직전 ‘매일경제’에 기고한 ‘포용적 제도로 가는 네 가지 정책 패키지’라는 칼럼에서 그는 단호하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 등이 칭찬한 우리의 경제 발전 모델은 이제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약자 지원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반시장적·착취적 경제 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약자 보호는 경제정책·제도가 아니라 사회안전망으로 하고, 시장경제 원칙은 복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 첫째,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둘째, 복지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 시장경제 원칙이 복원돼야 한다. 넷째, 상속세율을 대폭 낮추면서 가족 이익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이 네 가지를 패키지로 추진해야 하며 이것 외에 우리 경제가 다시 날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은 IMF 외환위기도 넘기고 눈부신 성장을 해왔지만 201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됐다.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나.
“1997~98년 외환위기 때 나는 국제금융과장으로서 해외 투자자들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다. 그들에게 ‘한국의 펀더멘털엔 문제가 없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대처하겠다’고 얘기해 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나는 세 가지만 강조했다. 첫째, 우리가 바뀐다.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관행도 개선할 거다. IMF(국제통화기금)와 같이 개혁 프로그램을 만든다.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 좋아질 여유가 더 많다. 둘째, 재정이 건전하다.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돈 쓰면서 해결할 수 있다. 셋째,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외국인 투자 규모가 굉장히 작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 우리는 충분히 흡수할 능력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만큼 위기를 잘 극복해 낼 위치에 있는 나라가 없다고 자신 있게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건 무엇인가.
“콘텐츠다. 미래 비전이 곧 콘텐츠인데 국가가 어떤 비전을 세우고 어떻게 거기에 이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하다는 말이다. 우리 경제가 중병에 걸렸다, 기저질환이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죄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을 말하나.
“나는 예전부터 ‘초역동적 복지국가’를 제안했다. 간단히 말해 미국 수준의 경제적 자유도를 높이면서 스웨덴 정도의 복지지출을 하는 나라로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복지지출(현재 GDP 대비 14.8%)과 국방비 지출(2.7%)의 합이 스웨덴 수준(25%)이 되도록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세금 증액, 사회안전망 구축, 시장경제 원칙 복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네 가지 정책 패키지’가 초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방법인가.
“사회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부가 나서서 게임의 룰을 어려운 사람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방식이다. 상환 능력이 부족한데 은행에 대출을 강요하거나 특정 분야에서 중소기업만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하거나,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대형 유통업에는 휴일에 문을 닫게 하거나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재난지원금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나눠주는 게 아니라면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면 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고, 그 세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선진국에서 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지난 대선 때부터 ‘부(負)의 소득세’를 제안해 왔다.”
사회안전망으로서 ‘부의 소득세’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금, 노인기초연금, 국민연금도 있는데 새로운 복지제도가 필요한가.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하면서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기초연금은 월 228만 원 버는 사람도 받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각종 공제제도까지 포함하면 이론적으론 월 430만 원 버는 사람도 기초연금을 받게 되므로 문제가 많은 복지 시스템이다. 선거 때마다 올려주다 보니 너무 관대해졌다. 근로장려금, 노인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전부 ‘부의 소득세’로 흡수해야 한다.”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기본소득, 공정소득, 안심소득 등을 들고나왔다. 모두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0년대에 제안한 ‘네거티브 인컴 택스(Negative Inocome Tax)’에 기초한 것인데 ‘부의 소득세’는 어떤 차이가 있나.
“부의 소득세는 소득이 없는 국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최저소득을 보장하되, 소득이 늘어나면 보조금이 줄어들도록 함으로써 저소득 계층에게만 세금의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00만 원을 기준으로 50% 세율을 적용하면, 한 푼도 못 버는 사람은 5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평소 50만 원을 버는 사람이라면 100만 원에서 부족한 50만 원의 50%인 25만 원을 보조금으로 받아서 총 75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65세 이상이 되면 보조금의 50%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월 75만 원이 된다. 부부 모두 소득이 없으면 월 150만 원의 생활비가 생긴다. 여기에 국민연금 60만~70만 원 정도 추가되면 노 부부는 월 270만~290만 원을 받는다.”
지급 기준을 가구별이 아니라 인(人)별로 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그렇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가장이 일을 해서 300만 원가량 벌지만 부인과 아이들이 한 푼도 벌지 못해서 3명이 각각 50만 원씩 보조금을 받으면 이 가구는 월 450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150만~2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면 세상을 좀 더 낙관적으로 보지 않겠나. 그래야 결혼도 하고 애도 낳는다. 반대로 가구별로 주겠다고 하면 가족이 해체되고 애도 안 낳는다.”
4년 전 김낙회·이석준·임종룡·최상목 등 전직 기재부 관료들과 함께 ‘경제정책 어젠다 2022’를 펴내면서 ‘부의 소득세’ 도입에 170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 당시 1인당 50만 원씩, 18세 미만은 30만 원으로 하면 170조 원이 든다고 분석했다. 대신 배우자공제, 자녀공제와 같은 각종 공제제도를 폐지하면서 약 70조원의 세원이 확보되어 약 100조원의 추가재원을 마련하면 시행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만약 18세 미만에 대해서도 50만원으로 한다면 약 30조원이 더 들어가는데 근로장려금이나 기초연금, 기초생보제도 등이 통합되면서 절약되는 부분도 상당히 있고 그사이 인구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약 115조 원 정도면 부의 소득세제 도입이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제도 개편 과정에서 기존에 받는 것보다 줄어드는 사람들을 한시적으로 ‘케어’ 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부가가치세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증세의 마지막 카드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 국민부담률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당장 올릴 수 있는 것은 부가가치세 세율이다. 우리의 부가세율은 10%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9%에 비하면 훨씬 낮다. 부가세율을 19% 수준으로만 높여도 연간 약 90조 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여기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줄일 수 있는 부분도 많다. 반드시 재정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
사회안전망의 하나인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민주당이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40%로 인하될 예정인 소득대체율을 43~44%까지 높이자고 제안했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과 저축 기능이 혼합돼 있다. 그러나 소득재분배 기능은 조세로 해결하고, 국민연금은 ‘좋은 저축 제도’로 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현재 상황에서 소득대체율을 1% 올리느냐 내리느냐는 의미가 없다. 지금의 국민연금은 자신이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것을 부담해야 하는데 부담할 사람은 없고 이런 식이면 2054~55년이면 고갈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좋은 저축 제도란 자기가 많이 내면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운용 수익에 따라 플러스 되는 것이다. 만약 운용 성과가 좋지 않다 해도 정부가 4% 정도 수익률을 보장해 주면 이것만큼 좋은 저축 수단이 없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더라도 반은 기업이 내주니까 자기는 반만 내고 4% 수익성을 보장받으니 현재의 DC형 퇴직연금 제도보다 더 좋은 저축 상품이 된다.”
네 가지 정책 패키지 중 세 번째 ‘시장경제 원칙 복원’ 문제로 가보자. 미국 수준의 경제적 자유도를 높인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고 경쟁을 하려면 경쟁국 기업들이 누리는 경제적 자유를 우리 기업도 누려야 한다. 말로만 규제 개혁이 아니라 일단 다 풀어야 한다. 도저히 풀 수 없다면 왜 못 푸는지 정부 부처가 반드시 소명해야 한다. 왜 한국에서는 ‘우버’가 안 되는지 소명하지 못하면 그냥 해주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몇 달 전부터 제4인터넷 전문은행을 위해 여러 컨소시엄이 움직이고 있는데 왜 꼭 한 군데만 인가를 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4개쯤 인가하면 큰일 날까. 공무원들이 나중에 무슨 특혜를 받고 해줬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그러는 모양인데, 일정 기준만 넘으면 ‘인가를 해주는 게 노멀(정상)이고 안 해주는 게 감사 대상’이 돼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할 일은 각 부처의 규제가 제대로 완화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회의를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원칙 회복을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했다.
“해고를 할 수 없으니까 고용 자체를 안 한다. 일단 정규직이 되면 해고가 어려우니까 자기계발을 게을리한다. 그러니 비정규직이 800만 명이 넘고 저마다 로봇만 쓰려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평균 근속 기간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짧은 편이다. 희망퇴직이다 뭐다 해서 회사는 계속 내보낼 궁리만 한다. 고용불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경제운용의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경쟁 국가에서는 밤새며 개발하는데 우리는 밤을 새기는커녕 회사와 노조가 합의해서 근로시간을 연장하겠다고 해도 못 하게 막는 나라다. 이것이 얼마나 후진 시스템인지 알아야 한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1만30원으로 책정돼 최초로 1만 원 시대가 열렸다. 최저임금은 취약계층을 위한 필수 사회안전망 아닌가.
“국가가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이유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고 악덕 사용자를 벌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 사정에 맞게 책정하도록 맡겨도 된다.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임금은 계속 올리라고 하는 것은 경제의 기본을 흔드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최저임금제도가 그러하다. 특히 민주당 정부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니 하면서 전반적으로 임금 수준을 높이고자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은 정말 잘못된 정책이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얘기하면 진보 쪽 사람들은 ‘그거라도 안 올려주면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한다. 사회안전망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최저임금이라도 높여서 먹고살게는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정상인가. 이제 최저임금제도는 없애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역동적 경제를 만들려면 이런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하책인 이유
상속세율을 낮추는 대신 기업지배구조 정상화를 주장했다.
“대주주 가족 중심의 지배구조, 가족 이익 중심의 기업 운용을 고치기 위한 제안이다. 재벌 자녀라 해서 특별 채용하고 고속 승진하고 당연히 CEO 되는 것은 정말 아니다. 주식은 자녀에게 양도될 수 있지만 경영권은 그렇게 세습돼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상속세는 좀 낮춰주고 기업활동에 자유를 주면서 지배구조를 정상적으로 바꾸도록 ‘딜’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자칫 상속세만 낮추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이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에 있다고 보고 민주당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내놓자 찬반 양론이 거세다.
“하책이라고 생각한다. 야당의 상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자 정부는 대안으로 합병·분할 시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역시 하책이다. 예를 들어 기업 합병 비율이 1대 1이 맞는지 1대 0.59가 맞는지 사외이사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떤 결정을 하든지 나중에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게끔 제도를 만들어놓으면 사외이사들이 어떻게 하겠나. 아예 결정을 안 한다.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못하게 만드는 정말 나쁜 하책이다.”
‘기업 밸류업’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2024년 2월 윤석열 정부에서 도입한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다. 실효성이 있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만약 기업을 청산해서 찢어 팔면 1조 원을 받을 수 있는데 시가총액은 5000억 원밖에 안 된다고 하면 PBR이 0.5에 불과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처럼 PBR이 낮은 기업은 금융감독 차원에서 제재해야 한다. 예전에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을 규제하듯이 PBR이 너무 낮으면 대출이나 투자에 제한을 둬서 기업이 실질적으로 PBR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주 환원을 높이거나 지배구조를 개선하거나 기업이 알아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는 ‘룰’만 만들어주면 된다. 그래야 실효적인 밸류 프로그램이 된다. 지금 논의되는 상법 개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좀 더 실효적인 밸류업 방법을 제안하면 국내 증권 유관기관(증권업협회, 증권전산, 증권금융, 예탁원 등)이 수천억 원씩 여유 자금을 갖고 있는데 국내 주식은 하나도 안 산다. 지금도 조사해 보면 외국 주식을 사거나 채권을 다 바꿔놓았을 것이다. 자기들은 안 사면서 국내 주식이 안 올라간다고 볼멘소리만 한다. 제조업만 리쇼어링할 게 아니라 투자도 리쇼어링해야 한다. IMF 외환위기 때 전 국민이 금 모으기를 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바이 코리아’ 열풍을 다시 한 번 일으켜볼 때도 됐다. 지금 미국 주식은 너무 높고 우리는 너무 낮다.”
민주당이 최소 20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했다. 필요한가.
“한국 경제는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다. 영양제 한 방 맞는다고 회복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때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영양제를 살 돈도 없을 것이다. 20조 원 추경은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못할 경우 조금 높이기 위한 경기조절 정책이라고 봐야 하는데, 지금 수준에서는 효과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그나마 이 정부가 제대로 한 게 있다면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마저도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무리 야당이 요구해도 정부가 버텨야 한다.”
한국 경제의 시장주의적 재편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IMF 외환위기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 ‘위장된 축복’이었다. 변 고문도 그중 한 사람이다.
“오히려 이렇게 바닥을 쳤을 때 제대로 개혁을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이럴 때가 아니면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선거 시즌이 다가오면 차기 후보 가운데 한두 명은 이에 공감하는 이가 나오지 않겠나. 사회적 합의를 통한 초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만이 우리가 갈 길이고 살길이다.”
시스템을 개혁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너무 늦다는 게 어디 있겠나. 지금이라도 빨리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