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점 상층문화는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으나, 유물 가운데 말방울 등 유목민이 사용한 것이 많았다. 하가점 하층문화에서는 유목민이 사용하는 청동기가 발굴되지 않았으나 상층문화에서는 유목민 특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주로 출토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온 해석이 정주(定住) 생활을 하던 하가점 하층문화인들이 유목 생활을 하는 하가점 상층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대 화하족과 고조선족의 경계였던 난하와 중국 기록에 나오는 조선성, 낙랑의 위치. 그리고 비파형 동검문화가 일어난 능하지역.
기후변화로 南下
홍산지역은 해발 600m의 고원 평지지만, 노노아호산과 발해만(바다)으로 둘러싸인 능하지역은 저지대 평지다. 따라서 농경이 가능해 이곳에 살던 청동기인들은 정주생활을 했다.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봉 일대에서 신석기문화가 대단히 오랫동안 꽃피었다는 것은 이곳이 고원이긴 하지만 농경을 하는 정주생활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농경을 했다는 것은 그 지역이 비가 적절히 내렸고 날씨 또한 그리 춥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서기전 1300년 무렵부터 유목민 문화가 등장하니 이는 큰 기후변화가 일어나 비가 적게 오고 추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상당수는 홍산문화의 변두리인 노노아호산 남쪽의 따뜻한 능하지역으로 이동해 발달한 정주 청동기문화인 ‘능하문하’를 일으키고, 적봉지역에 남은 세력은 초지에서도 생활이 가능한 유목문화로 들어갔다.…’
능하문화 지역은 윤내현 교수가 중국역사 자료 분석을 통해 고조선 지역이라고 밝힌 곳과 일치한다. 상당수 중국 사료는 능하 주변에 ‘조선’과 ‘낙랑’이라는 곳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윤 교수는 고조선과 한4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그곳에 있었기에 그러한 지명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 중국인의 조상인 화하족(華夏族)이 황하 중류에서 일으킨 황하문명이 황하 하류로 세력을 넓혀왔다. 그리하여 고조선족 문화와 화하족 문화는 황하 하류 북쪽에서 만나게 됐는데, 이때 두 세력이 경계선으로 삼았던 곳이 ‘난하(?河)’라는 강이라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지금의 능하지역은 한반도보다 강우량이 적다. 그러나 고대에는 많은 비가 내렸던 듯 난하 유역은 매우 넓다. 윤 교수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고조선족과 화하족이 큰 강인 난하를 경계로 삼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 교수의 제자이자 중국 길림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복기대 박사는 탐험가인지 고고학자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대담한 답사를 많이 하여,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 빗대 ‘복기애나 존스’로 불린다. ‘복기애나 존스’도 능하지역을 한국 상고사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곳이라고 강조한다.
이유는 이곳에서 황하 중류에서 출토되는 중국식 동검과는 다른 비파형동검과 다뉴세 문경 등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물은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때문에 ‘복기애나 존스’를 포함한 상당수 한국 학자와 일부 중국 학자들은 이를 능하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영향력이 만주와 한반도로 확장된 것으로 해석한다.
만주와 한반도는 전세계 고인돌의 50% 정도가 몰려 있는 ‘고인돌의 왕국’이다. 만주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크고 정교하지만 한반도 고인돌은 거칠고 작은 편이다. 그러나 하가점 하층문화와 능하문하 지역에서는 고인돌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인돌은 능하문화인들이 동진(東進)하기 전, 만주와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만든 것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