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한국의 결혼식을 생각했다. 15분 만에 끝나는 결혼식, 식은 보지도 않고 밥만 먹고 자리를 뜨는 하객들을 생각하니, 온종일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그들의 축제 분위기가 새삼 부러웠다.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신랑 신부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겨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한국의 결혼문화 속에 존재하는 허례허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간소하고 실속 있게 준비하려고 해도 주변의 ‘말’들이 신랑 신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두 젊은이의 앞날을 축복한다는 결혼식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월급 2배짜리 약혼반지
사람들은 한국의 결혼문화를 문제 삼을 때마다 종종 서구의 결혼, 특히 미국의 결혼문화를 언급한다. 분명 미국의 결혼문화에는 우리가 배울 점들이 있다. 우선 양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낮다. 미국의 신혼부부는 월세를 내고 집을 빌려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당장 새집을 장만하거나 전세를 얻는 데 쓸 목돈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가 준비해야 하는 예물이나 예단도 없다. 그러니 양가의 기대치를 재고 따질 일도 없다. 또한 결혼적령기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경제적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나이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면서 결혼하는 경우도 적다. 한국의 상황이 이 정도만 돼도 결혼을 준비하면서 겪게 되는 골치 아픈 항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결혼식에서는 신부의 친구가 들러리를 맡고 일가 아이들이 꽃을 뿌린다.
일단, 통계를 통해 미국의 결혼식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살펴보자. 미국의 결혼 관련업계 시장조사기관인 웨딩리포트닷컴에 따르면 2007년 미국에서는 약 221만쌍이 결혼했으며 이 가운데 3분의 1은 재혼이다. 초혼의 평균 연령은 여성이 스물일곱, 남성은 스물아홉이다.
미국의 평균 결혼비용은 2만8732달러(한화 약 2900만원)다. 한국과 비교하면 그리 큰 액수가 아닐지 모른다. 참고로 한국의 결혼비용은 2007년 통계청 발표 기준으로 약 1억7000여만원. 이 중 집과 혼수를 장만하는데 드는 액수가 1억 4000만원을 차지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결혼비용은 결혼식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항목에 대한 것이다. 살림 장만에 드는 비용은 제외한 액수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피로연 식비. 결혼식 한 건당 평균 7600달러를 지출한다. 레스토랑 대여 및 장식, 웨이터 고용, 음료 제공에 드는 비용을 모두 합하면 1만달러를 훌쩍 넘는다.
다음은 약혼반지로, 미국의 신부들은 청혼을 받을 때 평균 4600달러짜리 반지를 받는다. 미국에서는 청혼하는 남성 월급의 2배 가격으로 약혼반지를 사는 것이 암묵적인 관례다. 대신 결혼반지는 그보다 훨씬 저렴한 것으로 한다. 신혼여행비는 평균 3700달러로 3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결혼에는 축의금이 없다. 따라서 축의금으로 결혼에 든 비용을 사후에 충당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결혼식 비용을 신부 아버지가 내는 것이 전통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결혼 당사자들이 직접 부담한다. 그러니 정말 가까운 사람만을 엄선해서 초대하고, 손님도 주로 신랑 신부의 부모보다는 결혼 당사자의 친구들이다.
미국에서는 축의금 대신 신랑 신부가 특정 상점에 자신들이 사고 싶은 물건의 목록을 만들어놓으면 하객들이 미리 가서 형편 되는 대로 값을 미리 치른다. 가격도 저렴한 것부터 고가까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