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가 주어진 조건이라면, 외교는 그 조건을 타개해나가는 수단이다.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중국의 눈에, 동북아의 최근 정세는 급변 그 자체다. 일본이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지극히 실용주의적인 외교를 채택해 성큼 가까워지고 있는 중국이 왜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이를 마다하고 있을까. 단순히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천명에 따른 반작용일까. 아니면 한국의 ‘외교능력’을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는 것일까. ‘실용주의 중국 외교’가 만들어가는 동북아 정세는 어떤 모양으로 변모할 것인가.
써놓고 보면 말은 참 간단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온갖 구설이 있었다. 중국 경계론, 중국 위협론, 중국 폄하론이 뒤섞여 있었다. 티베트 사태가 야기한 각국 정상들의 개막식 불참 움직임에서부터, 올림픽 전에 터져 나온 위구르 자치구의 무장투쟁, 인공강우를 해도 쉽게 개선되지 않은 베이징의 대기오염까지 악재(惡材)는 빈발했다.
그 때문일까. 중국은 올림픽을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대외관계에서는 지난 몇 년간 주변국에 최대한 몸을 낮추는 자세로 일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올림픽은 끝났다. 올림픽 이전의 중국과 이후의 중국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중국은 ‘모든 걸 참고 견뎌야 하는’ 올림픽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앞으로의 변화가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이유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8월1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인민대회당에 등장해 ‘올림픽 이후’를 이야기했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중국은 패권주의가 아니라 방어적 국방정책을 추구하고, 중국의 발전은 다른 국가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성장유지 경제정책을 포함해 물가억제 등 거시적 경제관리, 정치개혁, 행정관리 효율성 강화, 인민 권리 보호, 환경보호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언급했다. 이후 열린 올림픽 기간에 그는 70여 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바쁜 외교일정을 소화했다. ‘마음먹고 벌인 잔치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자세였다.
2008년 상황에서 중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혹은 어떤 평가를 받는가. 여전히 개발도상국일까, 아니면 질시 어린 폄하 아래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그 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혹은 어떤 나라가 되려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각각 찬찬히 살펴봐야 할 만큼 의미 있는 주제다. 그러나 때로는 한발 떨어져 ‘숲’을 보는 것이 이런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먼저 살펴볼 것은,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개선 무드다.
판을 읽는 키워드 ‘중일관계’
지난 5월 후진타오 주석은 일본을 방문했다. 이름하여 난춘지려(暖春之旅), 따뜻한 봄날의 여행이었고, 실제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자 애썼다. 왜 하필 일본이었을까. 좁은 소견으로 보자면 한·미·일의 남방 삼각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집권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한·미·일 동맹을 강조한 만큼, 중국의 움직임을 이와 관련해 해석하는 시각도 나올 법하다.
어쨌든 5월의 방문을 계기 삼아 중일 관계는 ‘전략적 호혜관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때 두 나라는 영유권 문제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설정 논의를 아예 유보하는가 하면,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공동의 이익 추구’가 서로의 실리에 부합한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7월에는 민관교류 사업이 이어져 30~50대 정치가와 공무원, 경영자, 문화예술인 등이 상호 방문하는 행사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다양한 수위의 대화를 통해 양국 간 연대를 강화하자는 협의가 이뤄졌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 문제다. 당초에는 7월 말 두 나라 역사학자들이 모여 만든 ‘중일역사공동연구회’가 보고서를 내기로 돼 있었는데, 올림픽을 앞두고 발표가 보류된 것이다. 난징(南京) 대학살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 올림픽을 앞둔 중국에서 반일감정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두 나라 모두 밀월(蜜月)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사 문제를 유보하면서까지 밀월을 추구하는 두 나라의 움직임은 갑작스러워 보인다. 2001년 10월에만 해도 주룽지(朱鎔基) 당시 중국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교과서 문제의 해결 없이 중일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도 “역사의 참된 모습을 가르침으로써 비로소 우호가 세대에 걸쳐 지속된다”고 지원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신사참배와 교과서 문제는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고, 2005년에는 극심한 외교분쟁으로 이어졌다. 우이(吳儀) 부총리가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하고 귀국해버리는가 하면,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문제를 거론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중국과 한국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의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던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갑자기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이 중국을 버릴 수 없는 이유
외교는 결국 ‘숲과 나무’의 전쟁이다. ‘바람과 계절’이라는 변수에 따라 주변 형세가 어떻게 바뀌는지가 중요하다. 나무들은 변화하는 숲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으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때로는 싸운다. 궁금한 것은, 과연 중국과 일본의 급속한 밀월에 작용한 ‘바람과 계절’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한국과 중국의 최근 관계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이후 일관되게 강조한 한미동맹 복원과 한일관계 강화 움직임은 중국에 분명 새로운 환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는 중국에 두 가지 숙제를 던졌다. 우선은 한국 정부의 고식적인 외교 틀 짜기를 감안해 중국도 동북아의 새로운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 아니라 (외교관계의 개념상) 보다 상위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는 게 좋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최근의 중일관계 밀월과 한중 사이의 크고 작은 마찰은 이러한 판단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현상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있었던 외교적 결례 등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이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규정한 이상, 중국은 한국을 더 이상 동북아 외교의 중심변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인식이 그렇다면 현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6월 일본의 PHP종합연구소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향후 5년 내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이 ‘지역사회 전략’ 부서를 개설해 대(對) 중국 전략 연구 및 중일 근대사 연구 등을 진행해야 하며, 중국의 자본과 관광객을 끌어들여 일본경제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지하다시피 1972년 이후 일본의 중국 연구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일본의 전략가들은 고이즈미 정권 당시 야스쿠니 참배를 계기로 중일관계가 경색됨에 따라 양측 모두 손실을 입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소 호가미 도시야(津上俊哉) 연구원의 경우 “중국은 단순히 염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본 기업이 실력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일본 측 전문가들 모두 중국과의 호혜적 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추세인 것이다.
물론 중일관계의 밀월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략적인 각축은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5년 중일관계가 엉망이었을 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아소 다로 당시 일본 외상에게 이에 대한 염려를 전했는데, 이때 아소 외상은 “지난 1500년간 계속 사이가 나빴으니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6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구)에서 대만의 롄허(聯合)호가 일본 가고시마 해상보위부 소속 순시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으로 촉발된 반일 시위를 최근 중국 공안이 허락해준 일을 들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바오댜오(保釣·댜오위다오 보존운동)’ 연합회 회원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현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지만,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은 것이다. 더욱이 분명한 것은 2008년 현재의 중국과 일본은 상호협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두 나라의 상호 의존성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이라면 가까운 장래에 양국 간에 물리적인 충돌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의 흐름은 1972년 다나카 총리의 방문으로 중국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재개한 뒤 정확히 10년 만에 중국이 이른바 ‘중일관계의 3원칙’을 제시했던 시기와 흡사하게 느껴진다. 이때의 3원칙이란 평화우호, 평등호혜, 장기 안정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이런 종류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외교를 구사한다. 독도 문제로 한일 간에 드잡이질이 벌어졌던 최근 상황에서도 중국은 한일 양국을 모두 배려하는 중립을 견지했다.
2006년 상처 넘어서는 북중관계
이제 눈을 돌려 북한을 보자. 일본은 올림픽 이후 중국이 대북 접근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은 미국 역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중국의 원칙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에도 ‘제3국 간의 문제’와 ‘당사자 문제’는 의미가 다르다. 독도 문제가 전자라면 북한 문제는 후자다.
2008년 5월 일본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와세다대에서 탁구를 치고 있다. ‘핑퐁외교’를 의식한 듯한 이날 후 주석의 행보는 최근 중일관계 밀월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2005년 말 이른바 ‘8대 접근방침’이라는 이름의 ‘중조일치(中朝一致)’ 프로그램을 입안해 그에 따라 북·중관계를 유지해나가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2006년 초 양국은 극심한 정보전쟁을 치르며 알력에 휩싸이게 된다. 그해 7월에 미사일 발사, 10월에 핵실험이 이어졌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중국은 예의 ‘건설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10월말 6자회담이 재개됐다. 중국 입장에서 6자회담이라는 다자 테이블은 올림픽을 위한 일종의 안전망이다. 이 테이블이 깨지는 것은 중국에도 최악의 상황이다.
이후 상황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베이징올림픽이 흔들리는 고비마다 중국을 지지했고, 6자회담이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와중에도 평양은 끊임없이 중국을 고려했다. 그리고 이제 올림픽이 끝났다. 중국이 북한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정책을 구사할지 앞으로의 향방이 비교적 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타이밍이 왔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짚어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9월 중국 및 베트남 방문설이다. 이 방안은 현재로서는 성사 가능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는 것이 정설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여전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와 같은 6자회담 프로세스에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2006년 핵실험 와중에 중국 공산당이나 외교부 내에서 퍼졌던 북한에 대한 극심한 불신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시와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최소한 중국 지도부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다. 그리고 이런 시각을 강화해준 건 다름 아닌 한국 정부였다.
문제는 한국의 ‘능력’이다
앞서 설명했듯 이명박 정부는 초창기부터 한미동맹 복원 및 강화를 공공연히 내걸었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기조는 과거 김영삼 정부가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천명하던 시기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물론 그 방향성은 정반대지만, 한국이 어떤 식으로든 지역 내 중국의 이해관계에 변화를 미칠 만한 파장을 던진 것은 분명했다. 중국은 이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고, (후 주석이 사석에서 한 것으로 알려진) “5년간 한국과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중국에 손해날 일이 있나”라는 발언으로 이어졌다.
겉보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쓰촨(四川) 지진 현장을 방문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이어졌으나 실제는 이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흔히 외교는 쇼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시의성과 적절성, 때로는 매우 속 깊은 진정성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진정한 대화 파트너로 대접받기 어려워진 난관에 봉착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중국의 대북정책은 상대적으로 힘을 얻었다. 특히 북미관계가 개선되는 조짐은 중국으로서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이 말하듯 미국은 “미중관계의 번영이 한미관계에도 좋고, 한미관계가 좋아야 미중관계도 좋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 ‘때깔 좋은’ 말이 언제나 진리는 아니다. 특정 국가 사이의 관계가 주부(主副) 상태에 놓이게 되면 하위에 있는 국가는 스스로에게 좋은 결과를 주도적으로 결정하기가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이 대중, 대미관계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관점에서 처리할 역량이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오히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복잡한 다자 틀 속에서 북미관계나 북일관계 같은 개별적 관계망을 엮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이를 한국과 비교해 판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심각한 것은 한국의 정책이 가까운 시일 안에 변화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한미관계의 경우 전략동맹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더욱 큰 재정적·군사적 책임을 한국에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한미동맹도 우려스러워진다”는 식이다. 또한 ‘경제 살리기’라는 주제에 다걸기를 하면서 외교보다 경제가 우선이라는 논리가 서울에서 대두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국가의 격(格)이 꼭 경제로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떤 이유에서든 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한국, 중국 외교의 변방으로 전락하나
중국 공산당 내의 정치분석가들 사이에서 최근 떠돈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이다. “한국이 앞으로 5년 내내 저런 기조를 유지한다면, (중국 내에서는) ‘한국을 고려한 정책’이란 말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겠다.” 바꾸어 말해 한국은 중국 외교의 변방에 놓이게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중국이 일본과의 영토·역사교과서 문제를 나름대로 풀어나가는 동안 한국은 일본과 충돌하고 있다. 계속돼온 한·미·일 ‘동맹’ 강조와는 양상이 다르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외교기조는 지극히 단순하다. 한·미·일 공조체제를 살리고, 한미동맹을 견실하게 만들어 그 틀 안에서 미일동맹을 본다. 그러나 중국은 순서상 미일동맹의 아래에 한미동맹이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강하다. 따지고 보면 한미 양국이 동맹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파기하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는 병립이 불가능하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꺼내 들었던 동북아 균형자론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야기시켰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7월 말부터 중국 수뇌부는 사회과학원 조선반도연구중심 등 한반도를 지켜봐온 많은 연구부서로부터 ‘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판단과 정책방향’에 관한 다양한 보고서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략적인 방향은 조금씩 나왔다. 중국의 신(新) 안보관에 따르면,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 변수’는 적(敵)의 범주에 가깝게 변해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대일, 대미관계를 강화하고, 대북관계에서도 더 가까운 친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역시 이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정부는 한국 변수를 특별히 주목하기보다는 ‘적절하게 무시하는’ 전략을 채택할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외교역량 수준이 이미 선명하게 판가름 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5월27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일 터져 나온 외교적 결례는 새삼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일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선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외신 브리핑을 통해 “한미군사동맹은 역사적인 산물이다. 시대가 변하고 동북아 각국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냉전 시기의 이른바 군사동맹으로는 역내(域內)에 닥친 안보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다 신정승 주중대사의 신임장이 대통령 방중 당일에 제정된 일, 중국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는 사실 등을 묶어 일부 신문은 ‘(중국의) 외교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술 더 떠 문제의 발언이 중국 정부의 공식 의견이라고 재차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이 “동북아 각국 상황이 바뀌었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또한 그에 맞추어 방향을 바꿔갈 것임을 예고한다. 그 전조(前兆)가 앞서 살펴본 중일관계의 개선인 것이다.
한국 정부의 ‘낡은’ 동북아 인식은 국내외에서 한결같이 비판받고 있다. 설화(舌禍)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북정책에 있어 이명박 대통령은 ‘동정과 시혜 차원에서만 사고하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애초의 비판에다 ‘생각 없이 돌출발언을 하는’ ‘20년 전 냉전식 사고의 표출에 익숙한’ 대통령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문제는 ‘무능외교’라는 식의 공격이 야당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행보와 발언은 북한 측 고위급 인사들이나 외교당국에도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이명박 정부의 외교력과 방향에 대해 즉각 냉소적인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TV에 등장하면 북측 인사들이 채널을 돌린다거나, 담배를 집어들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는 세간의 이야기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8월9일 알제리 대통령과 가진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발언을 보자.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구하고 있는 데 북한이 잘 따라오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발언을 접한 북측 인사 한 사람이 필자 앞에서 “자기 혼잣소리로 세상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폄하하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비난은 남측에 대한 불신, 그것도 관점이나 방향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심리적 접근’의 의미
굳이 베이징올림픽이라는 계기가 아니라고 해도 동북아에서 격변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6자회담의 국면 변화, 중일관계의 실용주의적 전환, 북중관계의 내밀한 회복 기미 등이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북러관계 역시 내년 국교 60주년을 맞아 매우 강력한 결속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 내의 모든 국가가 관계망을 강화하고 있는 와중에, 오로지 한국 주변에만 긴장이 고조되는 추세다. 한일 간에는 독도와 역사교과서 파동이 휩쓸고 지나갔고, 남북 간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터졌다. 4월1일 북측이 이 대통령을 ‘이명박 역도’라고 지칭한 이래 끊임없는 ‘강대강(强對强) 대립’ 양상이 이어져왔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렇듯 동북아 지역과 한국 주변의 분위기가 판이한 정세 속에서, 중국의 역할은 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점점 더 실용주의적인 균형외교의 양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내정불간섭, 자주독립, 상호의존이라는 중국 외교의 3원칙은 그 속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1953년 중인(中印) 회담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이른바 평화공존 5원칙(영토의 보전과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을 내놓은 바 있고, 1985년 후야오방(胡耀邦)의 8개 불변원칙, 1986년 자오쯔양(趙紫陽)의 독립자주 평화외교 10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이런 원칙들이 시대에 따라 변모하며 적용된 것이 바로 최근의 실용주의적인 균형외교 정책이다.
이러한 흐름이 단기적인 방편일 리 없다는 추측은, 중국이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매우 복잡하고 지난한 비공개 토론을 거친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국무원 외사판공실, 국무원 및 국무원 상무회의(외교부, 상무부)가 있고, 당 차원에서는 중앙외사영도소조, 중앙정치국 및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중앙서기처(대외연락부, 신화사), 중앙군사위원회가 토론에 참여한다.
외부적으로는 중국 외교부라는 집행기관만 눈에 보이지만,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외교부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당 중앙이 외교전략이나 방침, 정책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건의하거나, 당 중앙과 국무원의 지시를 따르는 등 제한된 범주 안에서 외교업무를 관장할 뿐이다. 최고 정책 결정은 국무원 상무위원회나 당 서기처가 담당하고, 외교문제가 국가 주요 사안이 될 경우에는 당 정치국에서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최종결정은 항상 당 중앙이 내린다.
이렇듯 복잡한 정책결정 과정으로 인해, 다른 나라가 중국 외교에 접근하려면 무엇보다 심리적인 측면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외형적인 경제 이해관계는 중국 외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하위 변수일 수 있다는 얘기다.
숲과 바람을 읽는 눈
지금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심리적 접근’이다. 올 한 해 중국의 눈에 비친 동북아는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한국의 새 정부가 보이는 모습이 중국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보면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의 정세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번져나갈 것이고, 중국은 이러한 조건을 ‘외교’라는 도구를 통해 풀어나가려 할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변화하는 북미관계를 지켜보며 중국은 뚜렷한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실리를 취하는 구도 싸움을 전개하려 할 것이다.
동북아 정세라는 ‘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만 시선을 집중하거나, 바람과 계절 등의 변수를 제대로 대입하지 못하는 경우, 외교관계는 삐걱거리거나 충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양자 혹은 다자 간 이합집산의 결과물인 정세(政勢)는 그 자체로 역사성과 현실성을 동반하는 키워드다. 중국이 철저한 실용외교의 길을 걷게 되는 2008년 동북아의 숲에서 한국은 어디쯤 위치하게 될 것인가.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숲 전체를 조망하고 바람과 계절의 변화를 읽는 날카로운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