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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농, 생태농 꿈꾸는 농부 박래훈

“시간이 갈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이곳, 농촌은 보물상자입니다”

문화농, 생태농 꿈꾸는 농부 박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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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인생 한 번뿐인데….” 도시를 떠나 사는 TV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필요한 만큼
  • 농사지어 가족들과 나눠 먹고 남은 것은 내다 팔고, 거 괜찮겠다.” 다시 생각하니 괜한 공상에 시간만 낭비했다 싶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데 어떻게 먹고산담!” 농촌생활 10년째인 한
  • ‘귀농 선배’는 “농촌에 대한 애정만 확실하다면 만족스러운 귀농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농, 생태농 꿈꾸는 농부 박래훈
“주차 위반 딱지 붙을까 서둘러 일 보고 나오는 초조함, 주어진 시간 안에 성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남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중압감, 남 눈에 비친 자신의 초라함과 우월함, 그리고 사회에서 부여한 빛나는 계급장…. 긴장의 끈을 놓으십시오.”

귀농 농부는 텃밭을 일구는 도시인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농촌에서만 누릴 수 있는 미덕이 압축적으로 담긴 조언이다. 햇빛이 유난히 짱짱한 8월 어느 날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서 농부 박래훈(朴來薰·43)씨를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달팽이 그림과 ‘주연농원 농부 박래훈’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달팽이 이미지도, 농부라는 직함도 신선하다. 1999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귀농 10년차다.

“비봉면에서 태어나 100일째 되던 날 도시로 갔습니다. 무늬만 시골 출신인 셈이지요. 하지만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이곳 시골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삼형제가 온 텃밭을 헤집거나 곤충을 잡으며 쏘다녔지요.”

문화농, 생태농 꿈꾸는 농부 박래훈

근처 승마장에서 산책하는 주연(11)양과 태성(10)군. (좌) 박래훈씨가 틈틈이 쓰는 ‘농부일기’.(우)

귀농을 했거나 귀농을 꿈꾸는 이들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경우가 많다. 박씨 역시 그랬다. 서울에서 출판, 컴퓨터 회사를 다니며 결혼을 하고 삶의 터전을 꾸렸지만, 시골에 대한 향수는 결국 그를 고향 화성으로 불렀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데에는 아내 기성원씨의 힘이 컸다. 기씨가 귀농을 결심하던 때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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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3대가 함께하는 농촌생활은 어떨까. 한옥수(87), 기성원(43), 홍종숙(69)씨.(왼쪽부터)

“어느 날 남편이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는 게 정말 체질에 안 맞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고민 않고 ‘자기가 좋은 일 하고 살아야지’라고 답했어요. 남편은 꼼꼼하고 계획적이고 모든 일에 좌고우면하는 성격인 반면 저는 이거다 싶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에요. 귀농 얘기가 나왔으니 일단 ‘그거 괜찮겠다. 해보자’고 했지요.”

박씨는 귀농을 하려면 가족과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충분한 이해 없이 생활의 터전을 옮기면 나중에 갈등이 생기기 쉽다는 것. 아내의 동의로 박씨 부부는 귀농운동 프로그램을 몇 개 수강한 뒤 바로 고향 화성으로 내려갔다. 돼지우리를 부수고 비닐을 뜯어내고 밭을 정리했다. 가족이 살 집도 지었다. 약 1년 동안은 그렇게 서울로 화성으로 바쁘게 오갔다.

“언 땅에 삽질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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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설 기자 snow@donga.com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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