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대 국회 개원식 모습(아래) 위쪽 오른쪽부터 국회내 여성의원 건강관리실에서 러닝머신을 하는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열린우리당 장향숙의원.
정치권은 과반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이 국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초선의원과 여성의원의 말과 행동도 관심거리다.
의원들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개인이나 그룹, 정당차원에서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언론과 국민을 의식해 ‘오버’하는 의원도 없지 않았다.
개원 1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만 보면 이제 국회와 의원들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의원들이 저마다 국민에게 좀더 친근하고 탈(脫) 권위적으로 보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보니 17대 국회의원들이 본격적으로 국회에 입성한 5월25일부터 국회는 크고 작은 소동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국회의 ‘국(國)’자가 ‘혹(惑)’자 같다”
17대 국회의원들이 첫 등원한 지난 6월5일 아침. 국회 본관 입구 계단에서부터 본회의장 입구까지 레드 카펫이 깔렸다. 이 카펫을 밟은 이날의 주인공은 당연히 처음으로 국회의사당을 밟는 187명의 초선의원.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원 대다수가 사전에 준비해온 듯 ‘개혁’ ‘무거운 책임감’ ‘두려운 소명의식’ ‘민생국회’ 등등 의례적인 말로 답했다. 그러나 겉모습만큼은 역대 국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17대 국회의 생존수칙 1조1항은 ‘튀어야 산다’다. 초선의원 대부분이 기존 의원들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금색 도장의 국회의원 배지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이를 달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로 많은 의원이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배지를 포기했다. 국회가 존경받게 될 때 달겠다는 ‘각오’란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단체로 금배지 대신 당(黨) 배지를 달았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회의원 배지를 자세히 보면 나라 국(國)자가 ‘의혹스럽다’고 할 때의 혹(惑)자 같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원들마다 제각각 이유를 댔지만 대체로 ‘금배지’가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의원들이 첫 등원 때 선보인 옷차림도 국회의 관행을 한방에 깨어버린 파격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패션을 자랑한 의원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강 의원은 이날도 평시와 마찬가지로 턱수염에 잿빛 두루마기를 입었다. 그는 느린 속도로 국회 분수대를 지나 의사당까지 걸어서 왔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 의원은 “농민회에서 평소처럼 입으라고 해서…”라고 말했다. 같은 당 단병호 의원도 평상시처럼 짙은 감색 점퍼를 입고 등원했다.
고진화 의원은 젊은 세대의 튀는 패션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가벼운 스니커즈(굽이 없는 구두형 운동화)를 신고 밝은 색 스포츠 점퍼를 입고 나왔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청바지를 입고 나와 ‘생활정치’를 실천했고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과 강혜숙 의원은 개량 한복을 입고 맵시를 자랑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혜훈 의원은 분홍색 치마정장을, 전여옥 대변인은 보랏빛 상의에 검정바지를 입었다. 송영선·김애실 의원은 각각 분홍색 치마정장과 비둘기색 바지정장으로,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흰색 옷으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과거 여성 국회의원들이 짙은 색 치마정장 일색이었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변화의 바람은 의원들이 타고온 승용차에도 일었다. 검은색 고급승용차 행렬이 크게 줄었다. 많은 의원이 RV용 차량을 이용하거나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의 차를 타고 등원했다. 한나라당의 윤건영 의원은 직접 운전을 하고 국회에 출근,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왔다.
‘잘했어’ 소리에 버럭 화내
이와 관련된 일화 하나. 열린우리당 소속 한 초선 의원은 집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여의도역까지 온 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에 등원하기로 했다.
보좌관은 본관 계단에 서서 기자들에게 넌지시 “택시 타고 출근하는 의원도 있다”고 흘리면서 촬영과 취재를 유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의원이 초선이라 국회 관행을 잘 몰랐던 반면 택시기사는 ‘택시는 국회의원 차가 내리는 본관 계단까지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그래서 택시 기사가 ‘거긴 못 올라가요’라며 택시를 본관 계단에서 한참 떨어진 주차장에 세웠고 그 의원은 걸어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단체로 걸어오는 바람에 그 의원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등에 떠밀려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무튼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고 출퇴근하는 의원이 늘어나고 있어 이제 여의도에서 운전자석에 앉아 있거나 신호위반으로 스티커를 발부받는 의원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날 본회의장에서도 초선 의원들의 좌충우돌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잘했어’ 소동이다. 국회는 방한한 외국 원수나 외부인사가 아닐 경우 본회의장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는 관행이 있다. 그 대신 ‘잘했어, 잘했어’라는 말로 격려와 지지를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