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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국무총리

변화구 다양한 소신 없는 순응주의가

고건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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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선거 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망설이는가. 때로는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이 기대에 못미처 후회한 적도 있는가. 선거 때 보여준 태도와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에 보여준 행보엔 차이가 많다. 이것이 대통령 잘못일까, 유권자 잘못일까. 둘 다일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만큼은 후회 없이 대통령을 뽑아보자는 취지로 대권주자 심리분석 시리즈를 마련했다. 방대한 자료와 기사 검색, 그리고 필자의 독특한 방법론이 동원된다. 정작 대권주자 자신도 모르는 내면 탐구, 그리고 이를 통한 리더십 예측.
고건 전 국무총리
고건(高建·68) 전 총리는 ‘내향적 감정형’으로 보인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내향적 감정형을 ‘잔잔한 물은 깊다’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카를 융의 심리학적 유형에 대해서는 기사 맨 뒤 상자기사 참조). 이런 사람은 인내심이 많고 포용력이 있으며 관용을 잘 베푼다. 도량이 큰 호인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고건이 내무부 지방국장이던 1975년 초봄,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서울 근교의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갔다. 그런데 부하직원 하나가 낚싯대를 크게 뒤로 젖히다가 그만 고 국장의 눈두덩을 꿰고 말았다. 직원은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며 고 국장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고 국장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어 낚싯줄을 자른 뒤 차분하게 낚싯바늘을 빼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낚시를 계속 했다. 직원에게는 한마디도 질책하지 않았다. 고 국장은 그날 이후에도 그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고 한다.

내향적 감정형은 좋고 싫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적으로 무관심하고 냉담하며 상대를 배척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고건이 젊었을 때 일이다. 지방 출장을 떠나 저녁에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자기 감정은 숨긴 채 아이들 안부만 물었다. 며칠을 그렇게 하다가 날짜에 맞춰 돌아왔다. 아내는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을 놀래주려고 벽지를 바꾸고 아이들과 자신의 머리 모양도 바꿨지만 고건은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고건의 속마음은 달랐다. 아내가 장난삼아 ‘한눈 팔지 마세요. -여편’이라고 아주 조그맣게 쓴 메모지를 속옷 사이에 몰래 넣어두었다. 무심해 보이기만 하던 고건은 그 메모 밑에다 ‘두 눈 다 팔았음. -남편’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국무총리 시절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에서도 고건은 이런 면모를 보였다. 야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유유자적하게 답변했다. 아들뻘 되는 한 의원이 “총리, 똑바로 들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조도 마찬가지였다. 내향적 감정형은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양보를 많이 해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고건은 수십년째 매일 아침 단골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머리손질도 목욕탕 안에 있는 이발소에서 한다. 그가 주로 이용하는 식당도 오래된 단골집이다. 고건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티를 내지 않는다. 회식자리에 가면 상석에 앉는 법이 없다. 사무관 때부터 지금까지 비서를 시켜 전화를 건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직접 전화를 건다. 목에 힘 준 적이 없다.”

전남 도시자 시절엔 야근하는 말단 직원들을 돌아가면서 대폿집으로 불러내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부하들이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넌지시 암시를 주고 부하들이 그것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추진하도록 유도하곤 했다.

“국무총리쯤 되는 사람이…”

강원도 부지사로 있던 1974년 8월, 홍성철 내무부 장관은 그를 내무부 지방국장에 중용한다. 홍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가끔씩 청와대로 들어와 브리핑하는 고건 새마을담당관을 눈여겨보았고, 그에 대한 인사 보고를 접했다. 당시 부처에서 올라온 고건에 대한 인사평은 ‘상사에게도 잘하지만 부하들과 융화도 잘한다. 아랫사람을 아끼고 남을 더 내세울 줄 안다’였다. 그를 상사로 모신 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향적 감정형의 단점은 외향적 사고가 미숙하다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잘 가리지 못하고 따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소신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조치 때 고건 정무수석비서관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과도기간을 단축해 정치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하며 계엄령의 시한을 명시하고 개각을 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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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mdjskim@naver.com
연재

2007년 대권주자 심리분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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