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2002 대선 노무현 캠프 회의록에 나타난 행정수도와 득표 전략

“충청에서 전체 판세 이끌어야. 행정수도 더 밀고 가라”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7-28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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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의총(2004. 6) “이전 논란은 정치적 호재… 국민과 연대하면 엄청난 시너지 이룰 것”
    • 한나라 이한구 의장 전격 발언 “이전지 수용 예산 4조6000억 전액 삭감할 것”…파국 예고
    • 유종필 前 노무현 특보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이 무조건 이기는 정치게임”
    2002 대선 노무현 캠프 회의록에 나타난 행정수도와 득표 전략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을 논의한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전체회의의 비공개회의 발언 녹취록.

    ‘수도이전 헌법소원 대리인단’은 7월12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로써 행정수도 이전 논란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게 됐다. 이 논란의 중심에 선 청와대-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서로 상대방을 향해 “정치적, 정략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것이다. 양측이 모두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가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내부 회의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이끌어왔는지 그 진상을 알고 싶어한다. 이와 관련, ‘신동아’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해찬 선대위 기획본부장 등 노무현 캠프의 핵심 인사들이 행정수도 이전을 득표 전략차원에서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수 차례에 걸친 ‘비공개 회의’ 녹취록을 입수했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어떤 프로세스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을 2007년 대선 등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사안과 연결시키고 있는지 추적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에선 수시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노무현 캠프의 핵심 인사들이 선거대책을 논의하고 사실상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회의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마이크를 사용해 발언한 내용은 모두 녹음이 됐고 당시 회의에 배석한 민주당 간부 당직자에 의해 그때그때 녹취문으로 작성됐다. ‘신동아’는 당시 작성된 전체회의 녹취문 등 관련자료들을 입수했다.

    녹취문에 따르면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핵심 인사들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유권자, 특히 충청지역 유권자들의 반응을 여론조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대선 전략을 수립했다. 노 캠프 인사들은 선거대책 회의 자리에서 “충청권이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충청에서 전체 판세를 이끌어야 한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므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더 부각시켜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2002년 10월28일 제3차 중앙선대위 전체회의에서 임채정 정책선거특별본부장은 여론조사 결과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지지도가 높고 다른 후보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임 본부장의 관련 발언 내용.



    “그동안 노무현 캠프는 정책개발에서 타당에 비해 비교적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대위 출범 이후 어젠더 세팅에서 행정수도 건설이라든가 재벌개혁 방안이라든가 7% 신(新) 성장론 등에 있어 다른 후보에 비해 차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행정수도 건설은 상당히 많은 관심과 또 여러 가지 참여의 폭까지 넓히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이 부분에 대한 지지도 상당히 높습니다.”

    같은 회의에서 이해찬 기획본부장은 지방 유권자의 호응을 얻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을 체계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호남 대립 극복보다는 중앙과 지방의 분권체계를 바로 정립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호응도가 높다”는 설명이었다. 다음은 이해찬 본부장의 말.

    “우리 후보가 지방분권화, 행정수도 이전 이런 것을 많이 주장하시는데 지역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가 서울에서 보는 것보다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비중이 큽니다. 그래서 지방분권화 정책이라든가 행정수도 이전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성안(成案)해서 밀고 나가면, 제가 보기에는 영호남 대립을 극복하자는 테마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중앙과 지방의 분권체계를 바로 정립하는 이런 쪽으로 가는 것이 대단히 지역에서 호응도가 높은 접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본부에 제가 나중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그런 부분들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盧 캠프, “수도이전 실제 되겠나”

    11월28일 12차 중앙선대위 전체회의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재론됐다. 당시 민주당 내에선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의 후보단일화가 이뤄진 뒤 정 대표의 지원유세를 이끌어내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 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조순형 선대위 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이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표일 하루 전 정몽준 대표가 후보단일화를 깨기 전까지 노무현 캠프 내부에선 정 대표에게 권력을 분할해 주는 문제와 관련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실제로 실천될지 여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조순형 위원장의 말이다.

    “정몽준 대표의 전폭적인 협력을 얻는 것이 대선 승리에 아주 긴요하고 중대하다는 것은 저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권형 대통령제와 같은 헌법개정안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간 회담에서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분권형 대통령제가 뭡니까. 아주 간단히 얘기해서 노무현 후보가 어제도 대전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실천하겠다고 그랬습니다. 아니, 총리에게 내치(內治)를 완전히 관장하는 그런 개헌을 하겠다고 그러면서 어떻게 행정수도 이전을 대통령이 추진할 수 있습니까.”

    12월2일 13차 중앙선대위 전체회의에선 이해찬 기획본부장은 특히 충청권이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응도 좋으므로 충청권이 선거 전체적 판세를 끌어가는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선거 득표 전략 차원에서 비중이 더욱더 커진 것이다. 다음은 이해찬 본부장의 말이다.

    “이인제 의원이 탈당을 했고 정몽준 후보가 같이 공동 지원유세를 빨리 다닐 수 있도록 최대한 저희들이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정몽준 후보하고의 관계는 저희 협상팀에서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더 노력을 하겠습니다. 특히 충청권이 이번 선거에 매우 중요한 지역인데 비교적 지난 1주일 동안은 저희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비교적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이인제 의원이 탈당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충청도 쪽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전체적인 판세를 끌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12월9일 14차 중앙선대위 전체회의에서도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먹혀들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임채정 정책선거특별본부장은 “어제 오늘 뉴스에서 보셨겠습니다만 후보께서 대전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기자회견과 병역 단축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셨습니다. 모두 꽤 평가가 좋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16차 중앙선대위 전체회의는 대선을 승리로 이끈 뒤인 2002년 12월30일 열렸는데, 이 자리에선 “행정수도 이전은 아주 좋은 공약이었다”는 자체 평가가 나왔다. 정세균 국가비전21위원회 본부장의 말이다.

    “충청권 행정수도 문제와 관련해 이런저런 걱정도 많이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은 공약이었다, 이렇게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정수도 공약을 한나라당에서 집중적으로 공격을 할 때 정책위원회는 물론이지만 기획위원회나 미디어본부 또 전체 선대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의 6가지 대응책

    한나라당의 경우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속마음이 드러난 것은 2004년 6월21일 의원총회에서였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 가운데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중 일부 의견을 내부 대응방침으로 채택했다. 이날 김덕룡 원내대표 대신 박근혜 당대표가 직접 회의를 진행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의총에서 수렴된 한나라당 여론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다. 실제로 의총 발언 녹취록에 따르면 발언에 나선 27명의 의원 중 이전 찬성론을 편 의원은 충청 출신 홍문표 김영숙 의원, 수도권 김영선 의원 등 3명뿐이다. 나머지 24명은 사실상의 반대론을 폈다. 이는 행정수도 이전 관련 한나라당 행보를 읽는 데 있어 ‘기본적 문법’으로 삼아야 할 포인트다.

    이어 한나라당은 크게 6가지 전략적 대응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vs 한나라당의 1대1 정면대결 피하기, 노무현 vs 국민으로 전선 형성하기, 반대여론 확산 등 지공(遲功)작전, 행정수도 타당성 재검토 요구를 지공의 명분으로 삼기, 국민투표 요구 일단 철회, 이전 반대시 대안 모색이 그 골자다.

    이를 뒷받침하는 의총 발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당 자체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호재로 삼아, 국민이 수도문제를 걱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호재로 삼아 국민과의 네트워킹을 강화해야 한다”(공성진 의원), “국민투표라는 전면전에서 질 경우 돌아나올 길이 없다”(원희룡 의원), “행정수도 이전은 백지화돼야 한다. 그러나 그냥 백지화는 옳지 않다. 적어도 충청권의 기대이익을 보상해주는 계획이 나와야 한다. 대학을 중부권으로 이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윤건영 의원). 특히 공 의원은 기자에게 “지공작전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으로 나라 전체가 시끄럽지만 아직은 ‘논란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부지 수용 예산처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초순부터 2006년 말까지 4조3000억원의 예산으로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인 충남 공주-연기 지역 2150만평을 모두 수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당장 내년에 토지수용 예산으로 1조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수용 예산은 올해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의 내년도 정부예산 심의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이 예산안 통과에 찬성할지 반대할지, 반대한다면 어느 수위까지 반대할 것인지가 관심사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로드 맵’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로드 맵과 실제로 돈이 투입되는 것은 전혀 다른 국면이다. 한나라당이 법안 통과에 이어 예산안까지 통과시켜준다면 향후 이전반대로 돌아설 입지는 크게 줄어든다. 반대로 행정수도 이전의 ‘기정사실화’는 그만큼 굳어진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정부의 내년도 전체 예산처리와 연계해 토지수용예산 전액 삭감을 요구하고 청와대가 이를 거부하게 되면 상황은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 다음은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과의 일문일답.

    2002 대선 노무현 캠프 회의록에 나타난 행정수도와 득표 전략

    2002년 12월23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선대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 동의 없이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 토지수용을 집행할 수 있습니까.

    “단위가 4조3000억원에 이르므로 국회 동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의 토지수용 예산을 올해 정기국회 때 국회에 제출할까요.

    “그렇게 하리라고 봅니다.”

    -그럴 경우 한나라당은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그 예산은 절대로 통과시켜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엔 알맹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 과밀현상이 해소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주택난, 교통난, 대기오염이 어떤 근거에서어느 정도 완화되는지, 수도 이전으로 인한 지역균형발전 효과는 각 지역별로 어느 정도 되는지 등에 대해 설명이 없습니다. 한나라당은 국회 내 특위 또는 국회사무처 산하 예산정책처 등 중립적 기관이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연구하면 그 결과를 보고 이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당성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D-Day는 2005년 4월

    상황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적’이 되어갈 것 같다. 우선 2004년 10월 재·보궐 선거가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선거 지역구는 많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표는 2005년 4월 재·보궐 선거다. 국회 20여석이 새 주인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특히 수도권에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구가 많을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열린우리당의 불안한 과반 의석이 이 시점에서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한나라당은 이 때까지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끌고 가려 할 공산이 크다. 즉 한나라당 지연전략의 일차적 D-Day는 2005년 4월 선거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 지형도가 달라지면 행정수도이전 특별법의 개정이 가능해지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여권도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전환점은 2006년 6월 지방선거다. 열린우리당이 서울시장 선거 한 곳만 잡게 되더라도 행정수도 이전은 확실한 명분을 얻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지방화 개혁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국 주도권을 열린우리당이 틀어쥘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불과 1년여 뒤 2007년 12월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소속 이명박 서울시장은 시장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열린우리당 강세지역. 행정수도 이전 논란으로 충청 진입이 어려워진 한나라당으로선 서울마저 잃으면 설 땅이 없다.

    수도 이전이 코앞에 닥쳤을 때 수도권 유권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에 대해선 검증된 바가 없다. 한나라당으로선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서 치러야 하는 2006년 6월 지방선거 수도권 선거 전략에서도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지필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상당수 한나라당 인사들은 “이미 충청을 내준 2004년 7월 시점에서, 순순히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사업에 협력한다면 향후 수도권까지 내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노무현 정부와 정면대결을 벌이지 않는 것일까. 다음은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의 설명이다.

    “언론이 ‘한나라당은 중요한 국정현안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지적했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양자택일하라는 얘기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우리로선 쉽지 않다. 한나라당은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했다. 총선을 앞두고 충청 표 때문에 제대로 검토도 않고 정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쉽게 찬성했듯 쉽게 반대하면 역풍이 크다.

    더구나 지금 당장 노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에 뛰어들면 국민적 합의도출이나 정책 검토의 기회가 사라진다. 한나라당이 속도 조절에 나서자 노 대통령은 이번엔 ‘대통령 vs 조선, 동아’의 대립으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페이스에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과하려면 배지 떼고 해야”

    수도이전은 국민적 합의도출과 충분한 정책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입장은 일견 납득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명분 뒤엔 복잡한 정치적 이해득실이 엿보여 순수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2002년 대선 이후 1년 반이 지난 시점까지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연구한 흔적은 없다. ‘보고서’ 하나 나온 것 없다.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안(案)이 발표되자 한나라당은 “지금부터라도 검증해보자”고 나섰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났지만 한나라당은 자체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반대로 국회 특위 구성이 안 되어 검증을 못한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이전이 무산됐을 경우 충청권 대책 등 대안이 있어야한다는 점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이를 마련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정당은 국가의 명운(命運)이 걸린 일에 대해선 정치적 이해 득실을 떠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고 대응해야 한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현재의 한나라당은 속마음은 숨긴 채 뒷짐지고 있다가 선거에서 ‘반사이익’만 누리겠다는 셈법 아니냐는 것이다.

    어차피 예산안 처리 시점에선 논란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한나라당이 원하지 않더라도 수개월 내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면 대립 상황이 닥칠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이때가 되면 한나라당은 또 어떤 명분을 내걸면서 숨을 자리를 찾을까. 정치권 일각에선 “만약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 카드를 먼저 던질 경우 한나라당은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조소도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은 기자에게 “청와대 양정철 국내언론비서관이 청와대 브리핑에서 ‘조선·동아는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주장한 것은 조금 오버였다. 표현상의 오버, 감정적인 오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위원장은 “행정수도 이전은 2005년 토지매입시작, 2006년 토지매입완료, 2007년 7월 착공, 2012년 입주시작 등 예정된 계획대로 반드시 진행된다. 열린우리당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졸속처리 사과’에 대한 생각은.

    “사과를 하려면 배지 떼고 해야지. 한나라당이 특별법 무효를 주장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된다.”

    -국회 차원에서 다시 따져보자는 한나라당 주장은 받아들일 용의가 있나.

    “꼬투리 잡으려고 그런 것 하자는 저의 아닌가. 비용만 부풀리고 가로막아서 타격 입히려는 것이다.”

    -국민투표 가능성은.

    “국민투표는 지나치다. 지역적으로 완전히 갈려 분열이 더욱 심화된다. 행정수도 이전이 정권의 이익을 위해 잔꾀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니까 지역구의 인천 시민들은 ‘차 안 막혀서 좋겠네’ 그러더라.”

    열린우리당은 내부적으로 국민투표까지 염두에 두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여론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선거기간이 되면 행정수도 이전을 선거에 활용하기 위한 대책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현재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행정수도 이전 반대 여론이 50%를 상회하면서 찬성 여론보다 10%포인트 높게 나오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이 정도 격차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도권엔 다른 이슈 던져라”

    다음은 열린우리당의 시각에서 바라 본 행정수도 이전과 선거와의 상관관계다. 열린우리당 고위 당직자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경기도 남부 평택, 오산, 여주, 이천에서 우리가 자체 여론조사를 한 바로는 이 지역에선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찬성이 더 많은 것으로 나온다. 행정수도가 충남으로 이전할 경우 경기 남부는 경제중심지인 서울과 행정중심지인 충남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어 양쪽의 혜택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작용하는 것 같다. 수도권 주민이 모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다고 보면 안 된다.

    국민투표 등 야당과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거나 2007년 대선 등 선거 상황이 되면, 전격적으로 ‘서울 대책’이 나올 것이다. 서울 시민들은 집값 하락 등 재산권 피해를 우려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이전된 후 비는 대규모 청사를 일류 교육단지로 만드는 등의 구체적인 서울 발전계획을 내놓으면 서울의 여론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선거전략 차원에서 보면 충청권은 행정수도 단일 이슈가 절대적으로 먹혀드는 지역이다. 반면 수도권은 여러 이슈가 혼재되는 지역이다. 예를 들어 2002년 대선 때 수도권에선 행정수도 이전 이슈는 표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신 후보단일화 이슈, 이회창 후보 병풍 이슈가 더 크게 먹혀들었다. 현재 수도권에서 이전 반대 여론이 높지만 몇 가지 대형 선거 이슈가 뜨게 되면 수도권에서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선거에 영향을 주는 비중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호남은 반(反) 한나라당 정서가 행정수도 이전 찬성 여론과 결부되는 측면이 있다. 지리적으로도 충남과 가까운 전북에선 찬성 여론이 훨씬 높다. 반면 영남, 강원은 지금 ‘반노무현 정서’와 맞물려 이전 반대여론이 높지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선 중립적 입장인 지역이다. 행정수도가 서울에 있든, 충청에 있든 상대적으로 영향이 별로 없고 관심도 높지 않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선거 최대 쟁점이 되거나,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칠 경우 영남, 강원에선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유종필 전 대변인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공보특보로 활동했다. 유 전 대변인은 기자에게 “행정수도 이전을 정책 차원의 옳고 그름이 아닌, ‘정치게임’의 차원에서 보자. 그러면 이 게임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흥미진진하게 자신의 논리를 풀어갔다.

    “노 대통령의 마음은 내가 잘 안다고 자부한다. 노 대통령은 인천 토론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반대는 정권퇴진 운동’이라고 선언했다. 질문이 없었는데 말미에 꺼낸 말이다. 기자회견을 열어 정색으로 말할 수는 없고 약간의 우연을 가장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어 스스로 얘기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은유적 수사로 보면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정말 ‘행정수도 논란=대통령 진퇴를 건 대결’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 발언 이후 기다렸다는 듯 여권은 한나라당, 동아, 조선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행정수도 이전으로 국민투표를 하든, 주요 선거에서 행정수도 이전이 최대 쟁점이 되든 노 대통령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충청은 먹고 들어간다. 행정수도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진퇴 문제로 연결되면 호남에선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심리가 다시 발동하게 된다. 그럴 경우 우리 민주당은 또다시 설자리가 없어진다. 호남(출신)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 지지로 결속된다.

    행정수도를 이전하겠다는 쪽은 필사적으로 나오고, 지지자들의 투표율, 결속률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다소 관망적인 TV매체들도 행정수도 이전이 현 정권의 진퇴문제와 직결될 경우 태도를 바꿀 공산이 크다.

    반면 행정수도 이전 반대 진영은 구심점이 없고 상당히 분열적이고 참여도가 낮다. 한나라당은 ‘이전 반대’ 당론을 정하지 못해 반대 진영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없고, 정치 결사체도 아닌 신문사가 구심점이 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반대로 한나라당이 ‘이전 반대’의 전면에 나서면 당장 ‘탄핵정국’의 재판이 된다.

    노 대통령은 이미 행정수도 이전을 자신의 진퇴문제로 연결시켰다. 이러한 판세가 전개되도록 주사위를 던졌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수도권 반대여론이 높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어정쩡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든, 아니면 다른 전략으로 바꾸든 매우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게임’ 차원을 떠나 개인적 견해를 말하자면, 국민은 행정수도 이전을 막아야 한다. 서울에서 핵심 기능들을 쏙 빼서 조그만 허허벌판에다 옮겨다놓는 것이 국가적으로 무슨 이익인지 이해할 수 없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가 이전 이유라는데,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로 향후 수도권을 포함해 한국 전체가 인구 감소, 비(非)활동인구(노년층) 증가라는 위기 상황을 맞게된다. 수도권 과밀화는 자연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며 지금은 국가경쟁력 강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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