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겸손, 인내, 흡인력 지닌 '내향적 감정형' 배신의 응어리, 과도한 '페르소나 동일시’ 해소해야

  • 김종석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mdjskim@naver.com

    입력2006-07-19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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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할 만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어머니가 사망하자 영부인 역할을 하며 정치수업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에게 소신과 배짱을 가르쳐줬다. 그러나 아버지 사망 이후, 박 전 대표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단련의 시간을 보낸 그는, 이제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려 한다. 그는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는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잔잔한 물이 깊듯 내향적 감정형 인물은 조용하지만, 사귀기가 힘들며 이해하기 어렵다. 통속적 가면 뒤에 숨어 있으며, 자주 애수에 잠긴다.”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으로 보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내향적 감정형’이다. 이 유형의 인물은 대체로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한다. 그러나 박근혜는 다르다. 연예인처럼 인기가 높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그의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박정희·육영수의 딸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박근혜 개인의 매력도 한몫한다. 품위 있고 우아한 자태, 그러면서도 서민에게 쉽게 다가가는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후 영부인 역할을 맡은 덕분에 갈등을 풀어내고, 안정감을 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런 모습은 내향적 감정형의 긍정적 측면이다.

    내향적 감정형은 인내심이 강하다. 박근혜가 쓴 ‘나의 어머니 육영수’란 책의 한 구절을 보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 엿새가 지나 제4회 영부인배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던 날. 저는 상장(喪章)을 달고 참석했습니다. 개회식순에 따라 대회를 창설하신 어머니를 애도하는 조가가 흘러나왔습니다. 분위기는 숙연했고, 누군가가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흐느낌이 번져 급기야 체육관 전체가 울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저까지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강한 인내심이 때론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화병’은 마음의 고통을 풀지 못하고 살다가 결국 신체적 증상으로 터져 나오는 질환이다. 누구나 적절하게 갈등과 긴장을 풀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풀지 못하면 고통은 침전물처럼 마음에 쌓인다. 문제는 잘 참다가 한번 화를 내면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된다는 점이다. 내향적 감정형은 화가 나면 거칠어진다.

    박근혜는 당 대표 시절 몇 차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2004년 12월초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국가보안법 상정 여부를 놓고 열린우리당으로부터 공세를 당할 때 박근혜에게 “더 이상 버티기 버겁다”고 호소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박근혜는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후 한나라당 사람들은 ‘박근혜가 화낼 땐 정말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내향적 감정형은 위기상황에 잘 대처한다. 1979년 10월27일 새벽 2시,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은 아버지 박정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박근혜를 급히 깨웠다. 충격적 사실을 전해들은 그는 오히려 “전방의 상황은 괜찮냐”고 물었다. 냉정을 잃지 않은 것이다.

    겸손하다는 점도 내향적 감정형의 장점이다. 박근혜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청와대에서 살았지만, 대통령의 딸이라고 교만해질까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육 여사는 “큰아이가 자기의 부주의와 잘못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항상 머리에 두고 모든 면에서 스스로 주의하며 노력하는 것이 고마울 뿐”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박근혜는 유세 도중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에게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사진 부탁을 들어줬다. 수행원들이 재촉하며 나중에 찍자고 해도 “나중에 기회가 없더라고요”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체질적 공주병?

    반면 내향적 감정형의 부정적인 측면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근혜는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그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내향적 감정형은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 좋고 싫은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냉담하며 배척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점 때문에 박근혜는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가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오해가 없었을 테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장애요인이다.

    사고기능이 잘 발달하지 못한 것이 단점이다. 사고는 미숙한 상태로 무의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환원적인’ 경향을 보인다. 환원적 사고란 ‘깎아내리는 생각’을 말한다. 이런 무의식적 사고를 지나치게 억압하면 외부세계로 투사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박근혜는 특히 배신자에 대해 극도의 피해의식을 느낀다. 이는 아버지가 심복에게 배신당하고, 죽임을 당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내향적 감정형의 단점 중엔 외향적 사고가 미숙해 시비를 잘 가리지 못하며,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박근혜에게선 이런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회창에게 잘못을 따지고 결국 탈당할 정도로 소신이 강하다. 아버지 박정희에게 정치를 배워 단점이 보완됐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다른 정치인은 이회창이 두려워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박근혜는 할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정치인은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사람이어서 자기보다 신분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박근혜는 대통령의 딸로 이미 퍼스트레이디까지 했기 때문에 그와 대등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박근혜는 남들 앞에 나서고 싶다”는 동료 정치인의 평가는 이런 데서 비롯됐다. 한나라당 전직 의원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박근혜가 정치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그는 집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맨 앞줄에 앉으려고 했다. 어떤 때는 의자를 끌고 가 이회창 옆에 앉았다. 이회창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체질적으로 공주병이구나 싶었다.”

    융은 정신기능을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로 구분했다. 이 중에 ‘사고-감정’은 합리적 기능, ‘감각-직관’은 비합리적 기능으로 나눴다. 사고형이나 감정형인 사람은 제2의 기능으로 감각이나 직관이 발달할 수 있다.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눈치가 빠르고 이해관계를 잘 파악해 현실 적응이 뛰어나다.

    감정형에 속하는 박근혜는 감각이 발달했을까.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박 대표는 상대방이 농담을 건네면 쉽게 알아듣고 그 높이에서 맞받아친다. 애드리브가 강하다”며 “이 때문에 그가 주재하는 회의나 모임은 늘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감각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감각적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2000년 9월초 추석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서울역 앞에서 국정파탄 규탄 대회를 개최했다. 박근혜가 인파를 헤치며 연단까지 50m를 걷는 동안 길 양편에서 환호하는 시민이 손을 내밀었다. 일순간 손으로 숲을 이뤘는데 박근혜는 바람처럼 숲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내민 손이 닿지 않으면 그는 미소 띤 눈길을 던져 마치 악수하는 것과 같은 교감을 나눴다. 여러 개의 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눈길과 미소로 시민을 감전시켰다.

    이처럼 박근혜는 대중을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 정치권과 언론계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정치가의 자질이 유전된다면 박근혜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그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지만 정치권에 들어간 뒤로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그에게 정치무대가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박근혜는 감각이 발달한 것 같지는 않다. 2004년 가을 박근혜가 삼성동 자택을 공개하고, 당직자와 소속의원, 출입기자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때 한 여성의원이 “그동안 박 대표를 가까이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서운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대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보통의 정치지도자라면 “내가 그랬나요? 미안합니다. 앞으론 자리를 자주 만들도록 하죠”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뜻밖에도 “내가 언제 안 만난 적이 있나요?”라고 반박했다.

    박근혜의 직관은 어떨까. 1981년 3월2일 일기에서 그는 “무뚝뚝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더 의리가 있고 인정이 많았고, 학식이 많아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자기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썼다.

    직관이 발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잠재적인 능력이나 재능을 파악하는 데 비상하다. 사람의 재능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등용하는 인사정책을 펼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직관이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2005년 1월 한나라당 당직 개편 때 박근혜는 친정(親政)체제를 강화해 당내에 냉소주의와 무기력증을 확산시켰다고 비판받았다. 사무총장에 김무성, 정책위의장에 박세일, 대표비서실장에 유승민을 기용하자 당내에서는 “김씨와 유씨는 지난 대선 실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오락가락, 우유부단한 태도

    지금부터는 내향적 감정형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예상해보자. 앞서 살펴봤듯이 내향적 감정형의 장점은 포용력이 있고 대인관계가 원만해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인사관리를 공정하게 하고,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박근혜는 당 대표의 역할을 ‘화합의 리더십’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직이 한 목소리를 내도록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 이를 위해 뒷바라지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박근혜는 체질적으로 상생과 화합을 바라는 사람”이라며 “지금처럼 극단적인 싸움판에 어울리는 리더십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근혜는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화합, 동서간의 화합, 남북간의 화합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한나라당 대표로서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믿지 못한다. 불신감은 박근혜의 훌륭한 장점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박근혜의 장점이다. 5월20일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중 테러를 당했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피습 직후에도 이렇다할 고통을 표현하지 않아 수행비서조차 큰 부상인 줄 몰랐다고 한다. 2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 나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내향적 감정형의 단점은 정치적 신념과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용해 결정을 내리려다 보니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박근혜는 ‘정치적 신념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내용은 별로 없으면서 이미지 정치만 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카리스마도 부족하다. 고려대 김호진 명예교수는 박근혜를 ‘여전사(女戰士)’로 봤지만, 박근혜는 본래 성격상 투사형이 될 수 없다. 박근혜 자신도 투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유부단한 태도도 문제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고, 국보법에서도 개정론과 대체론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이번에는 정치인 박근혜가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지 알아보자. 그 전에 심리학 용어, 페르소나(persona)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 페르소나는 특정 집단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특유의 사고방식, 가치관, 행동양식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을 지칭한 말로 지금은 사회적 역할, 도리, 본분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집단정신의 단면인데도 흔히 개성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개성이 아니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태도이며, 외부 세계에 적응하면서 생긴 콤플렉스다.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아(自我)는 자기도 모르게 집단정신에 동화된다. 심하면 자아는 내적인 정신세계와 맺은 관계를 상실한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존재조차 잊어버린다. 물론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거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일하는 것이 집단정신에 동화돼 나를 잃어버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각된 선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에선 무의식적 경향을 살펴봐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처럼 고통당한 사람도 없다”

    박근혜의 경우를 보자. 그는 맡은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한다.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가 됐지만, 충실히 수행했다. 한나라당 대표로서 2004년 총선과 올 5월의 지방선거 때 잠을 2~3시간밖에 못 자면서 지원 유세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손이 부어 파스를 붙이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윤여준 전 의원은 “박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살인적인 일정을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소화해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완전히 던진 것, 이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근혜는 지금까지 “목숨을 던지겠다”는 말을 행동으로 직접 보여줬다.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은 집단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자신을 맞춘 것인가, 아니면 자각된 선택인가.

    분석심리학에서는 외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집단정신에 함몰된 자아를 해방시켜 무의식의 세계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커다란 세계가 나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행위다. 합리적인 세계뿐 아니라 비합리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것만큼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서민에게 쉽게 다가가는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br>서울의 한 쪽방촌을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1979년부터 1997년까지 18년 동안 박근혜는 은둔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성찰했다.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에 처하면 신(神)을 찾게 된다. 분석심리학에서 신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신성한 힘’이라고 말한다. 융은 신성한 힘을 찾으려는 본능을 ‘종교적 본능’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가 일기장에서 “인간은 신의 존재를 거의 잊고 살다가 죽음, 병마, 자연의 위력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비로소 하늘을 깨닫게 되고 겸허해진다”거나 “하늘이 중심이 되고, 하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곳에서 펴시는 섭리 안에서 비로소 자신을 본다”고 쓴 것을 보면 세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세계를 탐구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집착은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사상에 심취해 인생을 새롭게 깨닫기는 했지만, 마음의 분노는 쉽게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1989년에 쓴 일기를 보면 “나를 괴롭혔던 사람을 만나면 그 옆에 같이 있기도 싫다”고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비극을 “기구하다”는 말로 대신하며, “나처럼 고통을 겪고 산 사람은 많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뜨겁고 찬 게 없는 사람

    박근혜는 깊은 내면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의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의식적인 자아가 깨져야 하는데, 자아가 너무 강했다. 불가(佛家)에선 스승이 수도하는 제자에게 모순적인 질문이나 행동, 그리고 불가해한 화두를 던진다. 이는 제자의 합리적, 지적인 태도를 깨뜨리고 무의식으로부터 답을 찾으라는 주문이다. 박근혜에게 이 같은 과정은 없던 것 같다.

    마음의 분노를 풀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믿었던 부하가 배신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아버지와 친했던 사람들마저 아버지를 비난했던 일이 그에게 마음의 고통을 주었던 것 같다. 박근혜는 이런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인생에 대해, 자신의 마음에 대해 바르고 긍정적인 자세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결국 인생에 대해 비관적이고 부정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참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삶을 제쳐놓고 오로지 국가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이 그 증거다. 자기실현의 과정이 있었다면 신념과 행동에 유연함과 자연스러움, 생명력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생활은 강박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는 ‘바른생활 소녀’라는 별명에서도 엿보인다. 이와 관련, 윤여준 전 의원은 “박근혜는 ‘실수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뜨겁고 찬 게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발전이 없다. 사람이란 완전할 수 없다. 완전을 향해 나아갈 뿐 완전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박근혜는 놀라울 정도로 초인적인 절제력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를 보는 또 다른 관점은 아버지 박정희의 그림자다. 박정희를 떼어낸 박근혜는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사무실과 삼성동 자택은 박정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품으로 가득하다. 그는 평소에는 부드럽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지만,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국가나 체제, 안보와 관련된 문제가 나오면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이렇듯 과민한 반응을 보일 때, 분석심리학에서는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한다. 콤플렉스는 건드리면 과민한 반응이 나오는 강렬한 응어리다. 박정희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부성(父性) 콤플렉스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유아기에 아버지와 문제가 있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정신병리적 개념이다. 박근혜는 유아기에 그런 문제가 없었고, 현실의 부적응이라고 볼 만한 현상도 없었다. 그는 박정희라는 개인에 대해 갖고 있는 콤플렉스인 것이다.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그는 아버지를 스승으로 생각하며 존경한다.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보통 아버지가 아니었다. 국가와 세계에 대한 안목을 키워줬다. 박정희가 산업현장을 방문하거나 국토시찰에 나설 때 그를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자주 전자공학의 중요성을 거론했기 때문에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승용차 안에서는 역사, 안보, 경제 발전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정희는 박근혜의 아버지이자 정치적 스승이었다.

    ‘승용차 대화’보다 더 중요한 게 ‘식탁 대화’였는데, 이는 부녀가 교감하는 주요한 통로였다. 아버지가 아침식사할 때 신문을 읽어줬고, 각종 현안에 대해 아버지의 생각을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박정희는 식사 중에 늘 나라 이야기를 했고, 미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제, 경제 문제 등을 화제에 올렸다. 그래서 박근혜의 가슴속엔 ‘국익 최우선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정계에 입문한 뒤, 그는 정치인들이 국익보다 소속 정당의 이익과 집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속상하고 한탄스러워 분노가 일었다”고 밝혔다.

    박근혜는 충효사상이 깊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충효사상을 강조해 국민 정신을 개조하는 ‘새마음 운동’을 펼쳤다. 1979년 AP통신 기자에게 그는 “조상들은 훌륭한 인간이 되려고 충효예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했으나, 사회의 공업화로 중요성이 감소됐다”며 “정신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충효사상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박근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박정희를 옹호할 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이 깊다. 육 여사가 사망한 뒤 박정희는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지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어느 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박정희는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근혜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네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려고 너를 뒀는가봐.”

    존경하는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을 더 깊게 했다. 더구나 아버지가 부하에게 살해됐기 때문에 한층 더 깊어졌을 것이다.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는 모성적 보호본능까지 작용했다.

    박근혜는 박정희에게 배운 학습효과 덕분에 내향적 감정형에게 나타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보완됐다. 박정희는 내향적 사고형이다. 개혁적 정책을 추진하고,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정책을 수행하며,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극복하는 것이 박정희 리더십의 요체다. 박근혜에게서도 이러한 리더십이 엿보인다. 박근혜는 “정계에 입문한 뒤 나도 모르게 이런 경우에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문제에 접근할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한나라당 개혁을 주장했을 때도 박근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견뎌냈다. 사학법 제정을 반대하며 장외투쟁을 했을 때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무모하다고 봤다. 그러나 박근혜는 끝까지 밀고 나갔다. 이는 뒤집어 얘기하면 박근혜가 아직 자신만의 리더십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그는 때로는 온건 합리적인 방식을 택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강경한 투쟁방식을 택한다.

    대통령은 마음에 응어리진 ‘한(恨)’이 있어선 안 된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박근혜는 사람에 대한 불신, 특히 배신에 대해 응어리진 감정이 너무 강하다. 박근혜는 배신에 대해 체질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1989년 박정희 10주년 추도식을 마친 뒤 박근혜는 이렇게 일기를 썼다.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지만 내 마음은 몹시 울적하다.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마음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침울한 생각뿐이다. 80년대는 다시 돌아보기도 싫다.”

    박근혜는 이러한 ‘한’ 때문에 정치지도자로서 친화력과 포용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싫은 소리를 귀담아듣지 못하고, 반대파를 잘 포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는 지도자로서 커다란 문제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박근혜의 냉정함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친하다고 생각했다가도 다시 벌어지는 거리감, 따뜻한 미소에 편안하다가도 불현듯 풍겨오는 무서움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이런 것은 그의 마음에 응어리진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염홍철 대전시장 후보를 지난 지방선거에서 철저히 응징한 것을 보면 박근혜의 배신에 대한 ‘한’은 심각해 보인다.

    박근혜의 문제점 중 하나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를 빗대 ‘100단어 공주’나 ‘수첩 공주’라는 별명을 붙였다. 기자들 사이에선 박근혜만큼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정치인은 없다고 한다. 한 기자는 “박근혜를 심층 인터뷰한 기사들을 읽으면 그가 각론(各論)에 취약하다는 점을 발견한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 인터뷰 기사를 읽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별 정책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내향적 감정형에서 가장 열등한 기능은 사고기능이다. 젊을 때 박근혜는 아버지를 통해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박근혜는 스스로 아버지를 통해 정치적 신념을 배웠다고 말했다. 박근혜에게 박정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그 후 새로운 정치적 신념을 배울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정치적 신념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1970년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존스는 “대통령은 청년기에 신념체계를 확립해 향후 국가를 이끌 통치이념을 형성한다”며 “성장기에 직면했던 문제를 극복한 데서 해답을 찾아내지만 대통령이 되면 어느덧 시대가 변해 대통령의 해답(통치이념)은 시대에 맞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수구적 이념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는 이유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도 박근혜의 이념적 편견을 비판한다. 실제로 박근혜는 이념 문제만 나오면 극단적인 태도를 보여 시대에 역행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박근혜는 자신의 홈페이지 명패를 ‘애국 애족’으로 달고, 콘텐츠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나라 사랑’이라고 답한다. 이런 점 때문에 박근혜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로서의 안목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방선거 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는 고건, 이명박을 제치고 인기율 1위를 굳히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로만 예상한다면 박근혜는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하다. 시대의 흐름도 박근혜에게 유리하다. 20세기 말부터 전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이 나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성 대통령이나 여성 총리가 어색하지 않다. 한국도 이미 여성 총리가 탄생했고,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신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특히 개혁적이고 이상적인 신념을 가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근혜는 공천권을 분권화하는 정치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현실적 여건은 어떤지 분석해야 한다. 능력도 없고 현실적 여건도 안 되는데 개혁을 추진하면 국민에게 고통만을 주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지 않은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만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갈등을 조정해 화합을 이루고, 공정한 인사관리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배신감이라는 한을 극복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해야 한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할 필요도 있다. 사람에게는 의식적인 세계보다 무의식적인 세계가 더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의식적인 생각이나 명분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욕구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산다. 정치인은 이런 성향이 더 두드러진다. 정치인에게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 세상에는 완벽하게 선하거나 완벽하게 악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악한 면이 있고, 악한 사람에게도 선한 면이 있는 법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金 鍾 碩

    ● 1954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 現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 논문 : ‘대통령의 성격유형과 리더십     스타일에 관한 연구’



    박근혜는 지나친 ‘페르소나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나 도리보다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외적인 현실에서 요구하는 역할에만 자신을 맞추다 보면 내면의 욕구는 희생된다. 정신적인 만족은 없어지고, 생각은 경직되어 생명력이 없어진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하는 것도 숙제다. 그러기 위해 지나친 충효 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통적 유교사상으로는 세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자식이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의 허물을 감싸기 위해 자식이 희생한다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자식은 부모의 잘못을 바로 보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한다.

    ※ 이 기사를 작성하는 데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 김아연 정보검색사가 다양한 자료를 검색,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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