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나를 몰라주나” 한탄도 잠시
- 대통령 관심사 안 손발 역할?
안봉근(49)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지난 1월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하듯 했다는 말이다. 안 비서관은 그 무렵 ‘정윤회 문건’ 사건의 여파로 청와대에서 보직 변경을 당했다. 그렇다. ‘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 지근거리의 2부속실 비서관으로 있다가 2부속실이 폐지되면서 홍보수석 밑의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옮겼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수백, 수천 배 멀어졌으니, 그가 상실감을 느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국정 운영에 광범위하게 개입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들을 청와대에서 퇴진시키는 대신 업무를 조정하는 선에서 여론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배석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제1부속실(정호성 비서관)과 제2부속실(안봉근 비서관)은 ‘부속실’로 통합해 정 비서관에게 맡겼다. 자리가 없어진 안 비서관은 홍보수석실 산하 국정홍보비서관실로 가게 됐다.
“경찰 인사 개입” vs “청렴·신중”
이런 조치에 대해 “문고리 3인 중 안봉근이 밀려났다”는 평가가 여권 안팎에서 나왔다. 안 비서관이 문고리 권력에서 멀어진 데는 뭔가 외부에선 모르는 사유가 있지 않겠냐는 구구한 해석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안 비서관에 대해 경찰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다음은 조 전 비서관의 얘기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올 경찰관 한 명을 검증하다 ‘부담(스럽다)’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와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은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기가 막힌 건 후임들을 모두 단수로 찍어 보냈다. 명단은 (민정)수석이 내게 줬지만 결국 (건넨 쪽은) 제2부속실 아니겠나. 당시 경찰 인사는 2부속실에서 다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때 조 전 비서관은 찍어서 내려온 사람들이 하자가 많아 민정수석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고, 인사는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이 때문에 안 비서관이 박 대통령에게서 멀어지게 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안 비서관은 국회에 있을 때도 내게 박 대통령과 상관없는 개인적 민원을 많이 했다. 그래도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보좌관을 시켜 다 들어줬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사실 안 비서관은 부속실 근무 시절 자신의 위상을 부풀려 주변에 얘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몇몇 국회의원을 두고 ‘나 때문에 배지 단 사람’이란 말도 하더라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런 소문이 퍼질 무렵 정윤회 문건 파문이 터지면서 안 비서관이 사실상 문책성 보직 변경을 당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그럴듯하다. 박 대통령이 3인방과 관련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며 정호성 비서관에게는 오히려 통합부속실을 이끌도록 힘을 실어준 반면, 안 비서관의 역할은 축소한 까닭 아니냐는 것이다. 청와대 주변에선 “안봉근이 사실상 실각됐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다른 여권 인사는 “안 비서관만큼 청렴한 사람도 드물다. 대통령과 가깝다는 여론을 의식해 그는 더욱 말을 삼가고 자세를 낮추는 것으로 안다. 문제가 될 만한 일엔 일절 가까이 하지 않는다. 정치권 사람들이 그를 잘 모르면서 문고리 권력이라는 선입견으로 그를 재단하는 면이 많다. 그로선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역할 저절로 커져
그런데 안 비서관이 국정홍보 업무를 맡은 지 1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여러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 최근 공세적인 국정홍보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안 비서관의 역할도 덩달아 커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11월 11일 청와대 사회보장위원회 회의에서 “정부는 ‘정책 반, 홍보 반’이라는 생각으로 정책을 효과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하면서 사안별로 잘된 홍보와 잘못된 홍보의 사례를 꼽았다고 한다. 평소에도 각 부처 공무원들에게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있듯 정책 추진과 그 정책에 대한 홍보를 50%씩 나눠서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 대통령이 정책홍보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은 이명박(MB) 정부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이란 말도 들린다. MB 정부 홍보 파트에서 근무한 한 인사는 필자에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금융위기 극복 같은 많은 일을 했지만,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해 업적 전체가 과소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도 임기 절반을 넘기는 시점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완수하고 노동개혁 등 4대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정 성과를 쌓아가고 있지만 국민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정부와 청와대의 홍보 라인에 힘이 실려야 한다. 담당 부서는 행정부에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국민소통실, 청와대에선 홍보수석실의 국정홍보비서관실이다. 안 비서관의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안봉근의 힘’과 관련해 더욱 주목되는 것은, “안 비서관이 정부 각 부처 장관의 평가에 관여하면서 영향력을 급회복했다”는 설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는 점이다. 청와대는 지난 4월부터 문체부를 통해 각 부처의 홍보 실적을 매달 평가해 순위가 적힌 성적표를 나눠준다고 한다. 이 평가와 관련해 문체부는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실과 상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관심 사안과 관련해 문체부가 같은 위치의 각 부처를 평가하면서 청와대에 보고해 검토를 받는 것은 청와대와 부처 간 업무 프로세스상 자연스러운 일로 비치기도 한다. 대통령이 홍보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상황에서 각 부처의 홍보 성적은 곧 각 부처 장관의 성적표로 인식되기 쉽다. ‘안봉근이 장관 성적을 매긴다’는 여권 일각의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부처 평가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심도 대단하다. ‘정책 반, 홍보 반’을 언급한 사회보장위원회 회의에선 “정책을 만드는 게 10이라면 제대로 되는지 점검하는 게 90”이란 의미로 ‘10대 90’ 원칙을 얘기했다고 한다. 정책 점검은 곧 그 정책을 추진한 부처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박 대통령 터전’ 달성으로?
박 대통령이 크게 신경 쓰는 정책홍보와 정책 점검의 청와대 실무책임자가 안 비서관인 만큼 그에게 힘이 실리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박 대통령이 ‘미래 권력’이던 의원 시절에 수행을 담당한 안 비서관의 권한은 꽤 컸다. 웬만한 중진 의원들은 박 대통령과 통화하려면 그의 손을 거쳐야 했다. 지금은 근접수행 임무를 정호성 비서관에게 내줬지만 또 다른 위치에서 박 대통령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안 비서관의 내년 4·13 총선 대구지역 출마설도 여전히 유효하다. 청와대는 민경욱 전 대변인 등이 출마를 위해 사퇴한 뒤 현직 참모의 추가 출마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한 이후 현직 참모 추가 차출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안 비서관은 경북 경산이 고향이지만 대구 달성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그는 1990년대 달성에 지역구를 둔 김석원 당시 의원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그러다 1998년 김 의원이 사퇴하고 보궐선거가 실시돼 박근혜 후보가 출마하자 박 후보의 수행비서로 합류한다.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계기다. 박 대통령에게서 달성 지역구를 물려받은 이종진 의원은 ‘유승민 파동’ 때 어중간한 자세를 취했다가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진다.
새누리당의 친박계 중진 의원은 “안 비서관이 오래전부터 달성 선거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박 대통령도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해 온 안 비서관에게 달성을 맡길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비서관과 함께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안 비서관은 현장정치를 할 스타일이 아니다. 청와대 안에서 ‘순장(殉葬)조’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 인사는 “어쨌든 안 비서관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거취를 정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