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계엄 실패 결정적 원인은 계엄군 헬기 지연 때문”

[정밀추적 | 12·3 계엄 전모] 예비역 장성 5인의 ‘계엄의 재구성’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1-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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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은 믿을 수 있는 집단’ 믿음 깨진 게 제일 아파

    • 구체적인 ‘단편 명령’ 없어 현장에서 혼란

    • 불명예 전역한 김용현, 尹 정부 때 화려하게 부활

    • 尹-김용현, 군(軍)에 큰 죄를 저질렀다

    • 계엄 대가 크다는 것 알게 처벌 확실히 해야

    • 군인이 국회·기자회견장에서 변명해서야…비굴해 보여

    • 보수 진보 가릴 거 없이 정권 바뀌면 ‘물갈이’ 해대니…

    • 명령은 정당하고 적법해야…지금 누가 보람 느끼겠나

    • 민(民)은 군(軍) 없이, 군은 민 없이 바로 설 수 없어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2024년 12월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2024년 12월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시각은 밤 10시 28분.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예하 특수작전항공단 602항공대대는 20분 뒤인 10시 48분, 계엄군을 실은 헬기를 서울 상공에 진입하게 해달라며 수도방위사령부에 요청했다. 승인이 난 것은 1시간이나 흐른 11시 43분.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특전사로부터 첫 비행 승인 요청을 받았던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의 대령은 지난해 12월 12일 한 언론과 익명을 전제로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헬기부터 드론에 이르기까지 서울 상공으로 들어오려면 사전에 수방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걸 모두 검토하는 게 나의 일이다. 그런데 특전사 헬기는 사전 요청도 없었거니와 진입 목적을 몇 번이나 물어도 말하지 않았다. 이후 세 차례나 계속 승인해 달라고 했지만 ‘목적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승인을 하냐’며 내가 오히려 하급자를 야단쳤다.”

    너무나 어설펐던 군사작전

    그는 “수방사를 통제하는 (최상급 부대인) 합동참모본부에도 문의했지만 합참도 ‘(우리와는) 관련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며 마지막에 계엄사령부의 승인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계엄군 헬기는 그날 밤 11시 43분 서울 상공에 진입해 5분 만에 국회에 도착하게 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복기하며 만난 5명의 군 퇴역 장성들은 ‘윤석열 계엄’이 실패한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헬기의 국회 진입이 늦어진 것을 꼽았다. 계엄군이 늦게 오는 바람에 시민들이 국회로 빠르게 모여들 수 있었고,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만약 계엄군을 실은 헬기가 더 빨리 국회로 진입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계엄군과 수방사 간 헬기 혼선은 왜 일어날 것일까. 예비역 A 씨의 말이다.

    “국가원수와 정부 기관이 모여 있는 수도는 대부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된다. 들어가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도 수방사 허락을 받는다. 서울 상공은 ‘비행금지구역(P73)’과 ‘비행제한구역(R75)’으로 나뉘는데, 용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한 금지구역은 남·서쪽으로는 한강,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경계로 원칙적으로 비행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반경이 넓은 제한구역은 금지구역을 침범하는 항공기를 사전에 식별하고 경고하기 위한 통제 공역이다. 금지구역에 들어오려면 비행 5일 전, 제한구역은 3일 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받았다 해도 수방사령관이 별도로 정해 통보하는 절차(보안점검, 경로·고도 변경 지시 및 운항 제한 등)를 따라야 한다.

    제한구역을 무단으로 침범하는 경우, 경고 방송과 조명탄 발사 등을 통해 퇴거 조치할 수 있으며 이를 무시할 경우 피격당할 수 있다. 민간 항공기에 한해서는 기상이나 통신 두절, 항법 착오, 비행통제장치 고장 등 불가피한 사유로 금지구역 안에 들어온 것이 확인되면 경고 사격은 받지 않는다.”


    이런 모든 사실을 계엄군은 몰랐을까. 예비역 B 씨의 말이다.


    “수방사에 사전 통보도 못 할 정도로 계엄이 극소수 사람들만 알고 허술하고 급박하게 진행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다. 검찰 수사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극비 보안’을 한답시고 몇몇이 앉아 숨바꼭질하듯, 병정놀이하듯 계엄을 선언했던 것이다. 최대 피해자는 물론 국민이지만, 군(軍)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다. 국민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출세욕에 눈먼 군인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를 바꿔가며 정치권에 줄을 서는 ‘정치군인’들의 모습이 도마 위에 올랐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군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엄정한 군기와 전문적인 직무 수행이라는 업의 본질을 지키며 평생 헌신해 온 군인이 더 많을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사명감을 갖고 충실하게 일하는 군인들이 현재 한국군을 지탱하는 힘이라 믿는다. 필자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무래도 현직보다는 예비역들을 만나기가 수월했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군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마음이 힘들고 착잡하다”고 해서 만남을 꺼렸다. 그러나 왜 김 전 장관 같은 사람이 계엄을 실행했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설득했다.

    아래 기사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이들의 답변을 무작위로 정리하는 식으로 구성해 보았다. 우선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한 인물평부터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9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9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용현 전 장관은 어떤 사람이었나.

    “육사 38기로 동기생들 중 제일 잘나갔다. 준장, 소장, 중장 진급도 맨 먼저 했다. 그러다 박근혜 대통령 때 대장 진급에서 밀려 처음으로 ‘물을 먹었다’. 당시 김 전 장관은 충격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인사라는 게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김 전 장관은 ‘억울하다’며 주변에 인사권자들을 향해 험한 소리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오고 나서 대장 진급 후보군에 다시 올랐고, 가장 유력한 합동참모의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군 내에서는 그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도 관리한 것 아니냐는 말들을 했다. 어떻든 그가 대장 진급은 물론 함참의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뜻밖의 사건으로 옷을 벗게 된다.”

    무슨 일이었나.

    “김 전 장관이 17사단장을 하던 2011년 일이다. 한강에서 사격 진지 방해물을 없애는 청소 작업을 하던 소속 병사가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났다. 단순 익사 사고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김 전 사단장은 해당 병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다른 동료 병사를 구하다가 숨졌다고 보고했다.

    시간이 지나며 묻힌 일이었는데, 2017년 당시 사단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속 부하가 ‘김 전 사단장 지시로 당시 익사했던 병사의 죽음을 미담으로 조작했다’며 군인권센터에 의혹을 접수했다. 이후 김 전 장관은 두 달 만에 군복을 벗었고 대장 진급도, 합참의장직도 물거품이 됐다. 그렇게 전역 후 5년 만에 윤 정부 때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당시 민원을 제기했던 사람은 예비역 육군 대령 이상훈(학군 26기) 씨로, 그는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자기 대신 징계 받은 나를 무고죄로 감옥까지 보낸 김용현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부터 불안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예비역들의 말을 종합한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김 전 장관은 그야말로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 좋게 말하면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에너지를 쏟아 부하들을 힘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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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사람을 평가할 때 ‘가치’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이익’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김 전 장관은 이익을 따라가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경호처장이 돼 용산 이전을 강하게 밀어붙일 때부터 불안했다. 국방부 지역은 소위 밀리터리 컴파운드, 군사기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합참을 포함해서 6개인가 7개 부대 및 기관이 있다.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닐 텐데, 갑자기 대통령실을 옮기며 국방부 본청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연쇄적으로 다 밀리느라 난리가 났었다. 취임 초라서 아무도 ‘끽소리’ 못 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군인들 사이에서는 도무지 ‘무속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들이 많았다.”


    “최근 들어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지지, 특검 압박은 조여오지, 정권이 바뀌면 용산 이전 책임 문제 등 감옥 갈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법적 잣대를 들이대면 너무 책임질 것이 많지 않은가. 본인이 제일 잘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뭔가 판을 뒤집어야겠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북한을 이용해서 안보 불안 심리를 조성해 국내 정치 상황에서 여론을 결집하려 한다는 말은 지난해 여름부터 군 내부에서 돌아다녔다. 하지만 계엄까지 할 줄은 몰랐다.”


    “김 전 장관이 전역한 후에 ‘중앙일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칼럼을 썼는데, 군인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는 군의 정치화를 분개하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의 인사 개입과 자기편 줄 세우기로 군의 지휘체계가 와해하고 무능한 군대로 전락했다는 내용인데, 평소 정치군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사람이 참 뻔뻔하다는 말들이 많았다.”


    한편 예비역들은 “계엄의 발상은 당연히 대통령이 했을 것이다. 김 전 장관이 먼저 하자는 소리는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뜻이 강했을 터이니 어떻게든 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노력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방부 고위직을 지낸 한 예비역 장성의 말이다.


    “계엄은 미국 개념이다. 전쟁이 나면 군이 전장에서 싸우지만 국가에는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전시가 되면 군이 통치하는 계엄이 된다. 통치가 민간에서 군으로 넘어간다는 개념이다. 전시나 사변,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되면 자동으로 통치권자가 군이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른바 ‘H아워(공격개시 시간)’가 돼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게 돼 있다. 그때에는 정상적인 입법 사법 행정,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한다. 이어 계엄에 따른 포고령이 선포된다.

    지금 같은 평시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여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의는 없다. 윤 대통령은 그걸 확대 적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다만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 하더라도 국무회의를 거치게 돼 있다. 김 전 장관도 계엄의 절차, 계엄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모르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 의지가 워낙 강하고 그 의중이 신념이 동질화가 돼 있었을 것이다.

    처음 계엄이 터졌을 때 오래전부터 이야기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밑에서는 ‘과연?’이라고 했다가 점점 대통령 의중에 따라 북한을 빌미 삼아 군 간부들을 대기 상태로 만들어놓고. 단계별로 ‘액션 플래닝’을 짰을 것이다. 두 가지 딜레마가 있었을 것이다. 보안성과 실효성.

    그 시간에 그 포지션에 가 있던 사람들, 즉 실제 병력을 움직일 특전, 수방, (기동력) 방첩, 정보사(기밀과 정보 소스, 선관위 문제)는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사전에 언질은 받았지만 실제로 할까 긴가민가하는 상황이었을 거다. 정확한 H아워가 안 나온 시점에서 ‘반대한다, 안 한다’고 못 했을 것이다. 실행된 게 아니니까. 양심선언을 하기도 그렇고.

    하지만 임무는 주니까 예하 지휘관들한테 대기는 하라고 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 선포 시간은 정확하게 안 알려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매우 엉성한, 있을 수 없는 군사작전이 됐다.

    정말 할 생각이었다면 국회의사당 ‘파워’부터 끄고 본관 회의장만 봉쇄하면 군인 50명 갖고도 충분하다. 하지만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봉쇄하고 정치인들 체포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 것 같다.”


    한편 김 전 장관과 계엄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정보병과 출신인데 북한에 관한 정세 분석을 잘한다든지 해외 군사 안보와 관련한 정보 분석이 아니라 주로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공작 회유하는 게 주 업무였다.

    김 전 장관이 2007년부터 박흥렬 전 육참총장의 육군본부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 비서실 산하 과장급으로 근무하면서 거의 수족처럼 일했다. 노 전 사령관은 육사를 수석 입학했다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들 하던데 나는 국영수 암기를 잘하는 머리로 느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맥과 라인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지연(地緣) 의식도 강해서 자신의 모교인 대전고는 각별히 챙겼다. 어떤 도리나 정도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김 전 장관도 그런 스타일이어서 걱정들을 했는데 너무 큰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12·3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024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 호송차로 이송되던 중 “NLL 북한 공격은 어떻게 유발하려고 했나?”라고 물은 취재진을 노려보고 있다. [동아일보 박형기 기자]

    12·3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024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 호송차로 이송되던 중 “NLL 북한 공격은 어떻게 유발하려고 했나?”라고 물은 취재진을 노려보고 있다. [동아일보 박형기 기자]

    부당 명령은 따르지 않는 게 복무기본법

    한편 기자를 비롯해 많은 국민은 이번 사태를 보며 현장에서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던 MZ세대 군인들에게 국민 대다수는 박수를 보냈다. 반면 앞으로 군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군 내부에서는 과도한 걱정이라는 게 다수 여론이었다.


    “국인복무기본법이란 법률이 있다. 거기에 의하면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에 있던 군인들은 법에 따른 것이다. 물론 급박한 순간에 정당한 명령인지 아닌지 판단이 어려울 때는 복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엄을 선포했다는 걸 모르는 상황에서 국회 와서 보니까 아무래도 이상하다, 북한 무장 공비가 침투한 것도 아니고, 체포해야 할 사람들이 국회의원이고 시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런 부당한 명령은 당연히 따라서는 안 된다.

    현장 지휘관들이 조치를 잘했다. 무조건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아찔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계엄 요건에 해당되지 않고, 특정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라는 걸 직접적으로 알았거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던 고급 지휘관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무조건 처벌도 부당하지만 위헌적 행위에 적어도 가담하거나 최소한 방조를 한 것이다. 인지 여부와 가담 정도에 따라 엄벌해야 한다.”


    “이번 같은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다. 군은 국지도발이나 다양한 형태의 작전계획을 바탕으로 훈련을 하는데 명령이 부당할 수 있는 개연성이 많지 않다. 그리고 이미 상황이 벌어지면 언론보도를 통해 정보가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게 정당한 명령인지 아닌지 금방 안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중견 간부 이상 고급 지휘관급은 개개인의 행위가 부당명령에 대해 법적으로 맞는지 공부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본인도 살고 부하도 살린다. 미군들은 군 관련 모든 회의에 법무관이 첨삭해 법적 조언을 다한다.”

    “이번 일은 명백하게 개인적 이익 추구가 주 모티프가 돼서 공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거기에 가담한 고급 지휘관들은 사전에 가담 모의를 했고. 이들의 밑바닥은 애국심이 아니라 진급을 매개로 한 출세욕이 바탕이 됐을 거다. 이미 언론에 드러났듯이, 대령이나 준장급 일부는 노골적으로 진급이 당근으로 제시됐다. 아무리 진급이 가문의 영광이라지만 그게 군인의 핵심 사명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3성 장군들도 계엄만 성공하면 진급시켜 준다는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흔쾌하지는 않았어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면 진급을 기대했기 때문일 거다.”


    “계엄에 가담한 고급 지휘관들은 모두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라 안타깝다.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역이라고 했지만, 계엄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처벌)해야 한다. 모든 걸 잃는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머리에 뿌리박히게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직권남용으로 형 몇 년 살고 사면받아 나오면 이런 일은 반드시 반복된다. 대통령도 장관도 그렇다.”


    “현장 지휘관들이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한 측면도 있지만 명령 자체가 너무 허술했다. ‘그냥 국회를 점거하라’ 아니었나. 군이 움직이려면 임무와 지휘통신, 군수 지원이 다 들어가는 명령 양식이 있어야 한다. 실(實)병력을 움직이라면 작전명령 중 ‘국회의원들의 표결 활동을 방해하라’든지 구체적인 명령, 즉 ‘단편 명령’을 내렸어야 하는데 그런 명령을 받지 않은 거다. 대통령이 전화해서 ‘왜 끌어내지 않느냐’고 했다는 거 아닌가. 지시가 애매모호하니 현장에서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군에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

    계엄 이야기가 몇 달 전부터 나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노(No)”라고 말한 장군들은 왜 없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군의 정치화’를 꼬집은 말들이 많았다.


    “전시가 아닌 평시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군인들이 전장의 감각과 정신으로 무장돼 있기보다 행정적 군대, 관료적 군대로 변했다. 심지어는 행정관료를 넘어서서 정치군인화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인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저 사람은 국민의힘 사람, 저 사람은 민주당 사람’ 이런 식으로 물갈이를 너무 많이 했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다 그랬다.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진보 정권에서 청와대 파견했던 군인들은 다 좌천시키는 식 아니었나. 진보 정권이 되면 또 마찬가지 인사를 했고. 군인들의 시선은 전쟁터, 적장을 향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상관만 쳐다보고 심지어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만 쳐다보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대통령 이후 군인 정치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쿠데타 편에 섰던 군인들은 성공하고 아니면 모두 좌천되거나 옷을 벗고. 전두환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고, 하나회부터 충암파에 이르기까지 딱히 어느 정권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면서 군에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고 했다.


    “너무 참담하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증언하는 지휘부들도 당당하지 못했다. 증언하는 군 지휘부를 보며 저렇게 가볍나, 실망을 재확인할 때가 많았다. 군 출신으로서 자괴감이 느껴졌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 수사 과정에서 밝히겠다고 하면 될 것을 말이다.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고 변명하는 모습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요즘엔 육사 나왔다고 내놓고 말하기 힘들다. 평생을 퇴근도 못 하고 살다시피 헌신했는데 명예가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군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장교들이 힘이 나겠나. 그렇지 않아도 사기가 떨어졌었는데. 그마나 버틴 건 ‘당신들 덕분에 우리가 산다’는 국민적 응원이었는데 군통수권자가 군에 씻을 수 없는 가해를 한 것이다.”

    “군의 명예와 사기가 떨어지면 그 손해는 결국 국민이 본다. 군에 내리는 명령은 항상 정당하고 적법해야 한다.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은 정의로워야 하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부하들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어떻게 희생 없이 전쟁을 이기나. 그게 다 무너졌다. 진급을 위해 부하들을 희생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 누가 그 직업에 보람을 느끼겠나.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군에 너무 큰 죄를 저질렀다.”


    “이번 사태로 군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국가안보의 기둥으로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집단이라는 군인적 믿음, 국민적 믿음이 깨졌다. 그래서 좌파들에게 선동당할 빌미를 제공했다. 군은 믿을 수 있는 집단이라는. 어떤 경우에도 군대는 적을 향해서 총부리를 대지 국민을 향해서 대는 건 아니라는 그 믿음이 깨진 게 제일 아프다.”


    “예비역들 중에는 태극기 부대도 많고 ‘반(反)이재명’도 많다. 그래서 대통령을 이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군이 정치로부터 초연한 본연의 자세로 간다는 각오를 국민에게 보내야 할 때다.

    전두환 대통령 말기에도 강경론자들이 계엄하자는 얘기를 했지만 뜻있는 군인들이 막았다. 그게 선배들의 자랑이었다. 그때 전국주요지휘관회의나 이런 걸 통해서 군의 중립을 선언하는 대국민 메시지를 보냈어야 되는데 그걸 못 한 것이 아쉽다. 이참에 군이 바로 서는 뭔가를 보여주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군은 믿을 수 있는 집단’ 믿음 깨진 게 아프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하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까.

    “군을 바로 세우려면 인사를 똑바로 하면 된다. 군대는 굉장히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저 사람은 철저히 군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야. 정치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야.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야’라는 공감대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군대만큼 그게 영향을 길게 미치는 곳이 없다고 본다. 현장에서 누가 리더냐에 따라 똑같은 부대가 굉장히 전투력이 높은 부대가 되기도 하고 엉망이 되기도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군은 정치적 인사를 하면 안 된다. 평판 인사를 해야 된다. 위아래 다면평가를 하면 정답이 나온다. 아, 저 사람은 어디에 줄 선 놈이다 이런 거 밑에 애들이 더 잘 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 인사를 잘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정말 평판 인사를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하고 중동과 유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철두철미하게 약육강식 힘의 대결로 전개되는 지금 안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강한 국가는 승리하고, 약한 국가의 국민은 비참해진다.

    북핵과 미사일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는데 안보 핵심부가 엄중한 사명감을 망각하고 내란 주도 세력 내지는 동조 세력화돼 버린 작금의 상황은 끔찍하다 못해 참담하다.

    하루빨리 정치가 안정되고 군이 군답게 바로 설 수 있도록 제2의 창군 수준의 대개혁이 진행돼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국민은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이들의 말을 들으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지만 지금 우리 군을 지탱하는 것은 대다수 헌식적인 군인들 덕분일 것이다. 끝으로 6·25전쟁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의 말을 인용해 본다.

    “군사의 병기가 적(敵)이 다가서는 바깥을 향하지 않고 우리 내부의 누군가를 겨눈다면 반드시 폭력과 희생을 부르고 만다. 군을 떠난 민(民)이 있을 수 없고 민(民)을 떠나 군(軍)이 바로 설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국가의 간성인 군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도 민이다.

    그러나 민간의 일각에서도 문제는 늘 벌어지게 마련이다. 군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 군이 지닌 무기는 살상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군이 병력을 움직일 때는 태산(泰山)과 같은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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