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수능방송에 대해 설명하는 고석만 사장(왼쪽)과 2004년 수능 복수정답 파동.
그리고 2월17일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발표됐다. 안 부총리가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룸에서 “학교교육의 경쟁력을 높여 사교육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겠다”며 10대 핵심추진과제를 설명할 때, 뒷줄에는 직업능력개발원장을 뺀 4명의 기관장이 모두 배석했다. 비록 방송위원회(EBS), 국무조정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한국교육개발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 교육부(한국교육학술정보원)로 소속은 달랐지만,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교육 패밀리’의 결속을 보여준 자리였다.
그러나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EBS 수능방송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EBS의 위상만 높여놓았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또 이를 계기로 교육 관련 연구기관들의 역할과 위상의 재조정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먼저 수능 인터넷 서비스(VOD)의 주도권을 놓고 한국교육학술정보원과 EBS가 벌인 신경전은 EBS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EBS가 위성과 인터넷 콘텐츠를 모두 주관하게 된 것이다.
애초 교육부의 구상은 EBS가 지상파를 맡고, 에듀넷(www.edunet4u.net)을 통해 인터넷 교육을 해온 교육학술정보원이 인터넷 서비스를 맡는다는 이원화 전략이었으나, EBS가 자체 서버구축을 고집해 일단 4월1일까지 10만명이 동시 접속할 수 있도록 서버를 확충하고, 교육학술정보원은 1만8000명 규모의 서버를 지원하기로 했다.
‘2·17 사교육 경감대책’에 따라 EBS는 인터넷 강의를 위한 서버구축과 방송제작비를 포함해 2004년 230억원,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170억원을 지원받는다.
사실 2·17대책이 내세운 10대 추진과제 중 핵심이라 할 e-러닝(learning) 체제는, 기존 EBS플러스1 위성채널을 수능전문채널로 특화해 인터넷 서비스까지 확대하는 것 외에, 사이버 가정학습 지원체제 구축이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사이버 가정학습은 교육학술정보원이 지난해 여름 사이버학습특임실까지 구성해 주력해온 사업.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1989년 교육개발원 내에서 학습보조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업무로 출발해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 및 학생생활기록부 전산화를 주도했고, 전국 초·중등학교 정보 인프라 구축과 교육 업무를 맡아왔다. 에듀넷 서비스를 통해 지난 10여년 동안 학교의 정보활용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수능방송 총력지원체제
교육학술정보원 경영기획실 정성무 실장은 “사이버 가정학습에는 세 종류가 있다. 1단계는 에듀넷처럼 교육 콘텐츠를 컴퓨터를 통해 학습하는 것, 2단계는 사이버 교사를 도입해 질의응답식 시스템을 갖추는 것, 3단계는 사이버 학급을 편성해 담임교사가 방과후 과제를 내주는 등 학습관리를 해주는 것이다. 교육 콘텐츠, 사이버 교사, 학습관리와 지도가 동시에 가능한 시스템으로 금년 초 가동을 목표로 테스팅까지 마친 상태”라고 했다.
교육부도 2·17대책에 사이버 학급을 시범운영하고 연차적으로 확대 실시한다는 계획을 마련했으나 수능방송 총력체제가 되면서 이 안은 ‘잠수’해버렸다. 교육학술정보원은 EBS 수능방송이 시작되면 단지 서버만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평가’ 등의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 전략을 마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수능방송 인터넷 서비스와 관련해 EBS와 교육학술정보원 사이의 경쟁은 ‘교육정보화’라는 대세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현상이다. 다매체, 다채널이라는 매체환경에서 EBS는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고, 더욱이 TV라는 아날로그 매체와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디지털 매체의 융합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도 EBS에는 위협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에듀넷 52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교육학술정보원 외에도 각 시도교육청이 자체 교육방송 체계를 갖춰 EBS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