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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봉은 누구? 치과원장 접고 과학·수학책 3000권 독파

“꿈에서도 방정식과 놀았다”

양동봉은 누구? 치과원장 접고 과학·수학책 3000권 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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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만장의 수식 노트, 7개의 금고에 보관
  • 39세에 터져나온 단어 7개
  • ‘미친 듯’ ‘홀린 듯’…해변에서 책상 펴놓고 연구
  • “상대성이론 재해석하고 양자역학 보완했다”
  • 컴퓨터에 넣어놓은 숫자 9억개의 비밀
  • “과학의 역사는 ‘다르다’는 것을 ‘같다’고 증명하는 것”
양동봉은 누구? 치과원장  접고 과학·수학책  3000권  독파
실험기구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 그러나 눈에 띄는 게 있다. 사람 키 높이만한 육중한 금고다. 양동봉 원장에게 물어보니 연구원에 7개가 분산돼 있다고 한다.

금고 안에는 연구원의 핵심 자산이자 양 원장의 ‘혼(魂)’이 담긴 노트가 들어 있다. 8절지 크기의 그 노트엔 양 원장이 ‘뭐에 홀린 듯’ 써내려간 수학 공식이 빽빽하게 담겨 있다. 그는 “집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도 금고 안에 있는 노트는 소실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도의 전설적 수학자

하얀 종이에 새카맣게 적혀 있는 방정식은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린다. 베끼기만 해도 수년은 걸릴 이런 작업에 대해 보안업체 니츠의 부설연구소 유재연 소장(수학 박사)은 “전설적인 수학자로 알려진 인도의 라마누잔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라마누잔은 정규 수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수학 실력 덕분에 영국의 수학자 하디의 눈에 띄었다. 그의 도움으로 라마누잔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하디와 함께 정수학(整數學)의 발전에 공헌했다. 인도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라마누잔은 직관과 명상으로 수많은 수학 공식을 발표했고, 후대의 수학자들이 뒤늦게 그의 진가를 인정했다.



양 원장과 라마누잔이 직관으로 숱한 난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몰라도 삶의 궤적에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195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양 원장은 마산고등학교를 나와 조선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1992년 그가 불현듯 삶에 관한 영감을 얻기 직전까지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치과의사였다. 회사원 평균 월급이 40만~50만원이었을 때, 그의 월급은 6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39세 되던 해 그는 안락한 삶에서 ‘이탈’하고 만다. 1992년 가을 오전 진료를 끝낸 양 원장은 편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엔 흰 종이와 펜이 놓여 있었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종이에 뭔가를 적어 나갔다. 원형성, 원칙성, 동인성, 방향성, 보상성, 회귀성, 그리고 통일성. 각기 ‘성(性)’으로 끝나는 7개의 단어를 보자 그는 “마음이 편해지고, 삶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는 내가 써놓고도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뜻 같다. 모든 것은 다르지만(원형성)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원칙성). 그것을 움직이는 원인이 있고(동인성), 또 방향이 있다(방향성). 부족한 것을 보완하려는 속성(보상성),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속성(회귀성)이 있다.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그 자리는 예전의 자리가 아니다(통일성).”

총 21자, 7개의 단어를 발견한 양 원장은 그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도 그랬고, 복잡한 과학책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것도 그랬다. 그는 1992년 10월 대전에 미래과학연구소를 설립한 뒤 진료나 수술이 없는 날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과학 교과서를 탐독했다.

그냥 튀어나오는…

줄잡아 3000권의 책을 읽었다는 그의 독서법은 특이하다. 읽었다기보다는 베껴 썼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 내용을 베꼈고, 그러다 지치면 그 부분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베끼고, 사색하고, 베끼고, 사색하기를 거듭하면서 그는 수학과 물리학의 오묘한 세계에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이런 기이한 행동에 부인은 물론 아이들까지 어리둥절했음은 불문가지. 아들이 병원에 나가는 날보다 집에서 수학 공부하는 날이 많아지자 그의 어머니마저 견디지 못했다. 게다가 병원과 집을 대전에서 속초로 옮기고, 병원은 후배 의사에게 맡기자 주위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전에 있으면 여러 가지 약속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런 고리를 끊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 때, 그걸 꼭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속초에 가서도 이어졌다. 바닷가에 책상을 펴고 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개나 고양이, 돌고래 혹은 바이러스와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를 ‘엉뚱한 몽상가’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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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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