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그 부동의 지지율이 최근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1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임 이후 최초로 지지율이 30% 밑으로 내려앉았다.다수의 전문가가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집권 초기부터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청와대 인사들마저 대통령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무회의나 각종 행사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대통령과 ‘말씀’을 받아 적는 관료들의 모습이 구설에 올랐다. 이러한 광경은 권위주의를 거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실용주의를 강조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국민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구시대적 리더십을 지녔다는 인상을 줬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를 찍은 국민은 이런 형태의 리더십을 지지하지 않았으나 ‘원칙’을 지키고 ‘신중함’을 유지하면서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려면 불가피하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동안 이해해준 것 같다. 국민이 정부와 공무원, 정치인을 워낙 신뢰하지 않는 터라 선거 때의 약속과 원칙을 지키려면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심한 추종자’를 원하는가
그런데 국민의 이해와 인내심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주변에서 갖가지 스캔들이 난무하고, 대통령의 눈과 입이 몇몇 측근에게 장악됐다는 느낌이 들면서 국민은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국민이 측근 몇 명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경질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문체부 국장과 과장 인사를 직접 챙겼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 일간지 칼럼에는 대통령 명의로 보내는 조화에 대한 얘기가 실렸다. 정부 고위인사가 상을 당했는데, 조화를 보낼지 말지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국민에겐 대통령이 아주 사소한 일까지 직접 결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근무 시간이 끝난 저녁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관저에서 보고서만 읽는다는 소문을 떠올려보면, 조화까지 직접 챙기는 게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열심히 일하는’ ‘항상 진지한’ 그래서 ‘모든 것을 챙기는’ 리더는 게으르고 근시안적인 부하직원을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약 일국의 대통령이 이 같은 성향의 리더라면 정치인과 공무원, 더 나아가 국민은 다들 ‘한심한 추종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강연 비싸게 듣기
착각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책이 2012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후 필자의 이름이 세상에 조금 알려졌다. 학교, 기업, 공공기관에서 강연할 기회가 많아졌고, 강연료도 학자 중에선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강연 청탁을 자주 받다보니 출강을 요청한 기업이나 기관의 성격을 파악하는 노하우를 익히게 됐다.
강연을 요청하는 직원이 결정권을 가졌는지 살펴보면 된다.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이 직접 강연을 요청하는 때는 예외로 하자. 과장급이나 평사원이 연락해오는 경우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졌는지, 아닌지에 따라 행동이 확연히 다르다. 어떤 직원은 특정 날짜에 강의가 가능한지, 강연료가 얼마인지만 묻고 통화를 끝낸다. 다수의 학자에게 전화를 걸어 강연 가능 여부와 강연료만 알아낸 뒤 보고하면 상사가 그중 한 명을 낙점하는 것이다. 이처럼 결정권이 없는 직원들은 내게 강연해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하지 않으며, 일정이 맞지 않으면 조정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강연료를 깎아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직원들의 전화는 건성으로 받는다. 요청한 날짜에 선약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약속을 잡기도 한다. 강연료를 일부러 비싸게 부른 적도 있다. 왜 그랬을까.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 중에서 낙점을 받아야 상황은 누구에게나 유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