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 해외의존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하루 평균 200만배럴이 넘는 원유를 수입하고 있으며, 지난해의 경우 이 가운데 80%를 중동지역 8개 산유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앞으로 원유의 중동지역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전세계 석유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기여도가 비OPEC 회원국들보다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OPEC 회원국 중에서도 원유매장량이 풍부한 중동지역의 회원국들, 즉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레이트, 쿠웨이트 등의 원유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미국의 에너지정보국(EIA)은 2020년이면 중동 원유의 생산점유율이 현재의 29%에서 35%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런 전망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에서 중동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과거 발생했던 석유 위기(Oil Crisis)는 의도적이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중동 산유국의 정치·외교적 문제가 그 원인이었다.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아랍국들은 이스라엘과 친분 있는 국가들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원유 수출을 금지해 제1차 석유위기가 발생했다. 제2차 석유위기는 1978년 이란혁명과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들 국가의 원유 생산과 수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바람에 일어났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1990년 걸프전쟁 또한 석유위기를 낳았다.
석유 중동의존도 갈수록 심화
중동의 정치·외교적 상황은 20세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중동은 여전히 세계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불안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상승한다면 우리나라의 석유 공급구조는 더욱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석유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강구하는 석유정책에는 무엇이 있을까. 크게 석유 비축과 유가완충 준비금 보유, 해외유전 개발투자, 원유도입선 다변화 지원 등 4가지를 살펴보자.
【석유비축】
석유비축은 민간비축과 정부비축으로 나눌 수 있다. 민간비축은 일시적인 원유조달 차질에도 불구하고 정유사들이 기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비축하는 석유를 말한다. 정부비축은 산유국의 석유공급 중단이나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질 때 경제가 유가변동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정부 차원에서 관리·운영하는 석유를 뜻한다. 민간비축이 경제적 목적이라면 정부비축은 전략적 목적이라고 하겠다.
1970년대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석유위기는 정부가 석유비축 정책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1980년부터 3차에 걸친 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석유비축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거제, 울산, 여수에 원유 비축기지가 건설되어 있으며, 구리, 용인, 곡성, 동해, 평택 등지에는 석유제품 비축기지가 건설되어 있다. 지금까지 건설된 비축시설의 총 용량은 9900만배럴이다. 3차 비축계획이 끝나는 2008년에는 전체 용량이 1만4600만배럴에 이르게 된다(현재 정부의 비축시설에 저장된 석유는 총 7700만배럴).
한편 정부는 1980년대 이후 국내 석유소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1990년 걸프전쟁으로 일시적인 공급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비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92년부터 민간부문에 대해서도 비축의무를 부과했다. 현재 정유사의 의무비축 일수는 연간 국내판매량의 40일분. 정부는 이중 28일분을 운영재고로, 나머지 12일분을 위기 상황에 대비한 전략적 비축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정부와 민간이 분담하여 비축하는 석유물량은 석유소비국들의 모임인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권고하는 물량인 순수입량의 90일분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유가완충 준비금】
유가완충 준비금은 국제 원유가가 일시적으로 급격하게 상승할 때 국내유가의 급등을 억제함으로써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원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제품 원가상승분을 전부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일정 정도 유보함으로써 석유제품 가격 급등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데, 이 용도로 정부가 보유하는 재원이 바로 유가완충 준비금이다.
실제로 정부는 걸프전쟁 당시 유가완충 준비금을 활용하여 국내유가를 안정시킨 적이 있다. 1990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정부는 유가완충 준비금을 활용해 석유관련 제품가 인상요인의 일부를 흡수하는 한편 원유의 관세율을 인하함으로써 국내 석유류 제품 가격을 걸프전쟁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현재 정부가 유가완충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준비금은 대략 5000억원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