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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⑥

취미는 어떻게 교양이 됐나

고상하고 우아한 것, 저급하고 속된 것의 갈등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취미는 어떻게 교양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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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의 취미 개념은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는 약간 다르다. 그에게 취미는 의식주 같은 삶의 필수 부분으로부터 시작하고, 나아가 음악이나 사교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뜻있는 삶(살림)을 위해 작동해야 할 미적인 취향 전반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처럼 1920년대 취미라는 말은 지금보다 좀더 복잡한 함의를 갖고 있었다. ‘현대부인으로는 경제에 취미를 두라’(1930년 12월19일 동아일보)처럼 ‘관심’ 또는 ‘흥미’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취미 진진한 유희’(1921년 10월4일자, 또는 1928년 1월27일자 동아일보)처럼 ‘흥미’ 또는 재미(자미)와 동의어로 사용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취미는 자체로 ‘오락’ 혹은 ‘오락물’과 동의어였고 교양과 오락, 또는 오락과 실용 사이에 있는 어떤 상태나 가치를 의미하기도 했다. 1925년 10월6일자 동아일보는 “현재의 활동사진(영화)은 악영향을 준다, 사진 전부가 오락과 취미뿐 예술에 관한 것은 하나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경우 취미(오락)는 고급 혹은 본격 예술의 대립항이다.

다취미는 일등 신부감의 요건

그런가 하면 동아일보는 1926년 11월16일 출판계 동향을 보도하면서 “족보·문집이 최고 수위”이고 “소설·전기 등 취미가 기차(其次), 정치와 과학 방면은 효두(曉頭)의 잔성(殘星)”이라 썼다. 가장 많이 출판되는 책은 족보나 개인문집류이고 그 다음이 소설과 전기이며 정치나 과학서적은 드물다는 것인데, 여기서 소설과 전기류를 취미로 분류했다. 이때 취미는 교양과 오락 사이의 어떤 것이다.

1920∼30년대에는 ‘취미 독물’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됐다. 일본에서 건너온 독물(讀物), 즉 요미모노(よみもの) 자체가 가벼운 읽을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취미 잡지’는 일본의 ‘강담구락부’나 1927년 국내에서 창간된 ‘별건곤’ 같은 대중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때론 취미가 교양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1929년 10월9일 동아일보 가정란에는 ‘내가 사위 자부를 고른다면’이란 제목의 독자투고가 실렸다. ‘서울 PZ생’이라는 이니셜의 투고자는 며느리감의 요건 중 세 번째와 네 번째를 다음과 같이 썼다.

[“3. 학식은 여고보 졸업생이라야 장차 모성이 되어 자녀교육의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4. 독서열이 있는 여자. 다취미한 여자. 현대 여성은 사치만 할 줄 알지 도무지 집에 들어가면 신문 한 장 들여다보지 아니하여 사회가 어떻게 되는 줄을 전혀 모르는 고로.”]

여기서 취미는 학식과 구별해 책을 읽고자 하는 열의, 즉 ‘독서열(讀書熱)’을 뜻한다. 즉 ‘여고보 졸업’이라는 학벌과 별도로 필요한 자질이자 소양이 취미인 것이다. 그것은 ‘신문쯤은 보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정도의 교양인데, 이를 ‘다취미’로 규정했다. 현대의 국어사전에서도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은 취미라는 표제어의 한 뜻이라고 정의한다. 이 힘이란 교양과 다르지 않다.

어쨌든 며느리의 조건으로 여고보 졸업, 독서열, 다취미를 꼽은 것을 보면 투고자는 당시 어른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편이라고 짐작된다. 여성이 여고 졸업의 학력을 갖기도 어려웠지만, 그보다는 아예 여자는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학생’이라는 존재가 여급, 기생, 여배우와 동렬에 놓이던 시대였다. 개중에는 여성이 책을 읽는 것 자체를 백안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여성의 문맹률이 90%나 되던 시대에도 하여간 책 읽기는 결혼 조건에 오를 만큼 꽤나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처럼 1920∼30년대에는 ‘취미가 있다’ ‘취미가 없다’ 혹은 ‘취미가 많다’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이는 ‘교양이 있다’ ‘교양이 없다’와 같은 의미였다. 이때 취미는 교양의 한 영역이거나 유사한 덕목으로 개발되고 보급됐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힘

그렇게 1920년대 사람들에게 인간개조의 한 요건일 수 있었던 취미는 자본주의적 근대와 긴밀히 결부된 가치다. 그리고 취미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적 가치다. 그래서 취미는 두 가지 차원의 실현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개인이 새롭게 소속될 근대적 핵가족이며, 또 하나는 극히 사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내면의 공간이다.

1924년 안석주가 쓴 글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공일마다 ‘자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산보를 같이 가는 일, 경제 사정이 허락하면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과 활동사진을 보는 일” 그리고 “개인으로는 책을 읽거나 악기 같은 것을 사랑하여 고적한 때와 피곤한 때의 한 위안을 얻는” 일이 취미다.

안석주의 글은 근대적 핵가족의 남성가장을 대상으로 씌어졌다. 시간이 날 때 아이와 부인을 데리고 공원이나 극장에 갈 수 있는 가장은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 시민이거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다. 그들은 일주일 단위로 쪼개진 생활세계를 살아가는 샐러리맨과 중간계층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농촌에 사는 농민이나 선비는 가족을 데리고 일요일에 극장이나 공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엿새를 근무하고 하루를 ‘공일’로 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와 달리 하루 몇 시간, 일주일에 몇 시간씩 일하기로 정해놓자 비로소 ‘여가’가 생겨났다.

취미는 이러한 여가를 즐기는 여러 활동을 일컫는다. 또 이 글의 대상이 되는 가족은 조부모, 삼촌, 사촌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 아니다. 한 쌍의 부부를 중심으로 둘, 셋 정도의 자녀가 있는 근대적(부르주아) ‘정상가족’만이 가족단위 여가활동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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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eutekom@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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