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김춘추-외교의 승부사’

현대에 홀대받는 삼국통일의 주역

  • 임기환 서울교육대 교수(사회교육) lkh303@korea.com

    입력2006-11-14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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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추-외교의 승부사’

    ‘김춘추-외교의 승부사’ 박순교 지음/푸른역사/508쪽/1만5000원

    동아시아사(史)에서 7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 진원은 수(隋), 당(唐)이라는 중원왕조와 고구려였지만, 신라와 백제·왜(倭) 등 동북아의 모든 국가와 민족이 그 소용돌이에서 결코 비켜 서 있을 수 없었다. 아니 신라는 스스로 그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고, 그 중심에 김춘추란 인물이 있었다. 그 결과 백제와 고구려는 600년 넘게 이어온 국운을 접어야 했지만, 신라는 살아남아 300년의 영화를 더 누리면서 천년왕국의 화려한 자취를 역사에 아로새겼다. 패배한 자와 살아남은 자의 명암이 뚜렷하게 교차되는 풍운의 7세기였다.

    이러한 때에는 시대와 운명을 같이했던 군웅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얼른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만 손꼽아도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연개소문, 안시성주 양만춘, 비운의 백제 의자왕과 계백, 그리고 신라 삼국통일의 두 주역인 김춘추와 김유신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역사 연구자라면 모름지기 이런 인물들의 면면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싶은 욕심을 갖게 마련이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특히 관심을 모으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은 끝내 왕조의 멸망을 막지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은 가장 약소한 나라를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왕조를 번영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은 결코 우연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는 오히려 반대인 듯하다. 연개소문 등은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존재로 조명되고 있지만, 김춘추와 김유신은 당과 손잡고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신랄한 추궁을 당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근대적 민족정서에 입각한 시각으로는 7세기라는 격동의 시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춘추에 대한 우리 시대의 망각과 홀대가 지나치다고 반성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의 생애를 오롯이 복원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딸의 죽음이 인생 전환점



    김춘추, 즉 태종 무열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져본 독자는 거의 없으리라. 이 책은 일종의 김춘추 전기인 셈이니, 그의 이력이 책 전체를 꿰고 있다. 602년에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25대 진지왕이고, 아버지는 이찬이란 최고위직을 지낸 용춘이다. 어머니는 진평왕의 둘째딸인 천명부인으로 선덕여왕의 동생이니, 어디 내놓아도 부러울 게 없는 출신을 자랑한다. 이런 화려한 혈통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쉽게 오르지 못한 데에는 심상치 않은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저자도 많은 부분을 할아버지 진지왕의 몰락과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김용춘의 고뇌에 찬 행적에 할애한다.

    정치적으로 적잖은 제약을 지닌 김춘추는 당시 신라 정계에서 소외되어 있던 가야계 출신 김유신 가문과 손을 잡았다. 그는 김유신이 군사적 능력을 키워가게끔 후원하는 한편, 뛰어난 용모와 언변을 바탕으로 외교적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김춘추의 발길을 따라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왜의 난파로, 당의 장안으로 동아시아를 누빈다. 아마도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하고자 했던 김춘추의 행적일 것이다. 이런 대목에서는 저자의 필치도 절정에 오른 듯하다. 연개소문과 마주 앉아 천하의 득실을 논하는 장면, 왜의 중대형을 설득하는 대목, 당태종과 당당히 협상을 이끌어가는 장면은 단연 이 책의 압권이다. 이 시대를 읽어내는 저자의 안목이 김춘추의 입을 통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결국 나당(羅唐) 군사동맹을 맺는 데 성공한 김춘추는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진덕여왕이 죽자 마침내 654년에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제29대 왕으로 즉위한다. ‘외교의 승부사’라는 책의 부제처럼 외교로 한 시대를 개척한 영웅적 풍모의 완성이었다. 게다가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킴으로써, 비로소 642년에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에서 딸 고타소를 잃은 뒤 20년 가까이 가슴에 묻어둔 회한을 풀게 된다. 그리고 마치 그동안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삶을 지탱해온 양, 이듬해 속절없이 눈을 감는다. 그래서 저자 또한 김춘추의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바로 딸의 죽음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이 전투로 책의 첫머리를 시작한다. 대야성 전투야말로 필연의 역사를 만들어간 우연의 시작인 셈이다.

    픽션과 논픽션 넘나드는 구성

    이 책의 저자는 ‘김춘추의 집권과정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연구자이다. 이 책은 저자의 학문적 성과를 재구성한 것으로, 김춘추 개인은 물론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 어느 구석에도 무미건조하기 십상인 학술적 냄새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일반 독자를 부담 없이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어가는 뛰어난 필치가 돋보인다.

    이 책은 독특한 서술 구성을 갖추고 있다. 즉 적절하게 픽션을 섞어가면서 당시의 역사상을 생동감 넘치게 복원했다. 하지만 이는 이 책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사료(史料)에 근거한 복원이며 어디까지가 저자의 상상력에 의존한 픽션인지 그 경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단점도 단지 역사 연구자가 느끼는 아쉬움일 뿐, 일반 독자에게는 오히려 기운 자국이 없는 매끈한 서술과 구성이 반가울 수도 있다.

    또한 이 책이 단지 김춘추의 평전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책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은 책의 곳곳에서 7세기 신라의 사회상을 종횡으로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김춘추가 살던 시대가 격변의 시기인 만큼, 당시 많은 인물의 자취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의 주인공 중 상당수가 이 시기의 인물이다. 저자는 설씨녀 설화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민중의 고난에도 살가운 눈길을 주고, 귀산과 추항·죽지랑 같은 화랑과 낭도를 등장시켜 신라사회의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원광과 자장 같은 승려를 통해 당시 불교계의 속내도 짚어낸다.

    이런 설화적인 사료들에서 건조한 역사상을 추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부담 없이 설화를 재단하며 득의의 독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데에는 픽션적 성격을 갖고 있는 책의 구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중간 중간에 제시된 관련 원사료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사료 해석 방식을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김춘추에 대한 지나친 애정

    저자는 김춘추를 자신의 운명과 치열하게 맞서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 한 인간으로 애써 그려내고 있다. 나아가 김춘추와 그의 가족들이 보여준 값진 희생을 부조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곧 김춘추 가문의 정신적 승리로 보는 평가는 아마도 오늘 우리에게 주는 저자의 최종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김춘추에게 지나치게 매료됐다는 인상이 짙게 묻어나기도 한다.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다보니, 오직 그만이 두드러질 뿐 나머지 신라인들은 반대로 왜소해졌다. 진평왕에서 선덕왕·진덕왕으로 이어지는 신라왕에 대한 성격 묘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김유신마저 김춘추가 없으면 한낱 졸장부에 불과했으리라고 보는 듯하다. 탐욕과 무능과 나약함으로 가득한 이들은 김춘추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한 인물에 대해 인간적 성격을 부여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간혹 저자의 부주의도 눈에 띈다. 주로 픽션으로 구성한 문장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예컨대 김춘추가 어릴 적 읽었다는 ‘통전’이란 책은 801년에 출간된 책이니 시대가 맞지 않다. 신라 유학생이 ‘당태종’ 운운하는 대목도 태종이 묘호(廟號)임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표현이며, 또 고구려는 당시 ‘고려’로 불렸음을 염두에 둬야 했다. 픽션적 구성을 위해서는 현실성을 높여줄 이러한 장치들에 좀더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요즘 고구려가 뜨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물론 연개소문이나 고구려의 계승자 대조영이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잊힌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그러나 멸망한 왕조를 동경하면서도 정작 삼국통합을 이룬 신라에 대한 홀대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 책은 역사의 승리자였던 김춘추가 역사 서술에서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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