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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의 이 사람

서강대 떠난 철학자 최진석

“짜릿하다. 앞으로 펼쳐질 삶이 기대된다”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서강대 떠난 철학자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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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세계에서 이야기의 세계로

건명원은 어떤 곳인가.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 건명원이라는 이름엔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建明苑·건명원)’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명(明)’이라는 한자를 보면 대립된 해(日)와 달(月)이 공존한다. 해를 해로 보고 달을 달로 보는 것은 지(知)의 영역이다. 명(明)은 그런 구획되고 구분된 차원을 넘어 두 개의 대립 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려면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게 오 이사장의 뜻이다. 거기 공감하는 교수들이 모여 소수의 학생에게 인문 예술 과학 등을 가르친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건명원과 대학 둘 다에서 강의할 수는 없나. 

“그래도 된다. 나 자신이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그러기 싫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이 ‘이야기의 세계’라면 ‘논문의 세계’는 떠나야 한다고 봤다. 그것이 나에게 진실한 행동 아니겠나.” 

20년간 지켜온 교단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교수를 그만둔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다. 다만 서강대를 떠나는 데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내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1998년 교수가 된 뒤부터는 월급을 받아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 준 곳이다. 2월 3일 아침 마지막으로 연구실에 들렀는데 그 안에서 지내온 여러 순간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가더라. 짐을 다 빼 텅 빈 공간에 대고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어떻게 먹고살려고 저러나 하는 시선이 가장 많은 것 같다(웃음). 그런데 사실 내가 안정적인 공간을 박차고 나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 서강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에 간 일이 있다. 한중수교 전의 일이다. 그때는 중국에서 뭘 공부하겠다거나 나중에 뭐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당시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이다. 중국에 간 뒤 2년 정도를 대책 없이 떠돌았다.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처절히 고민했다. 그렇게 지내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다시 철학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이후 헤이룽장대, 베이징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교수가 된 것이다. 이번에 내가 사표 썼다는 소식을 듣고 후배 중 한 명이 ‘중국으로 표표히 떠나던 때의 뒷모습이 오버랩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더라. 나도 요즘 종종 그때 생각을 한다.” 

1990년 당시 스스로에게 그토록 불만을 느낀 이유가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그 속에 학문적 진보가 없고 인격적으로도 엉망진창인, 아무것도 아닌 한 인간이 서 있더라. 그게 나라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삶을 일단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미 결혼하고 아이도 있던 때 아닌가. 

“그래서 더 절박했을 거다. 그 모습 그대로 산다면 자식 앞에서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아비가 되겠나. 아내에게는 또 어떻겠는가. 물론 내가 중국으로 떠나면 우리 가족이 배를 곯게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버티기보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 내가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성장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그게 우리 가족을 진정 책임지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당시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오직 한 사람, 우리 아내만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이번에도 마찬가진가. 

“이번에는…(웃음). 우리가 31년을 같이 살았다. 그사이 집사람이 내 결정에 대해 ‘잘했어요’라고 하지 않은 게 이번이 처음이다(웃음). 학교에 사표를 냈다고 하니 처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더라. 대학에서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무급휴직을 줬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했던 때가 30대 초반 중국으로 무작정 떠났을 때다. 거기서 학문과 인생에 대한 눈을 떴다. 내가 전보다 조금은 넓고 깊은 사람이 된 것도 그 시간 덕분이다. 그 뒤로 나는 사람이 자기 자신한테 정말 진실하게 행동하면 우주 대자연이 주는 선물이 있다고 믿는다. 인생 방향은 다수결로 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 욕망에 진실한 것이 중요하다. 허투루 흘려보내기엔 삶이 너무 짧지 않나.” 

뭔가 절박하게 들린다. 

“장자 지북유 편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은, 천리마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려 지나치는 순간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 나는 살아가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린다. 돌아보면 정말 그렇다. 정신 안 차리면 10년, 20년이 훅훅 지나간다. 이처럼 인생이 홀연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늘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다. 어영부영 지내다가는 한순간도 별처럼 살지 못한 채, 남이 별처럼 사는 것을 평가하고 박수만 치다 가버리게 된다.” 

별처럼 살고 싶은가. 

“물론이다.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별처럼 살기를 바란다. 인간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꿈꾸고, 위험한 곳으로 기꺼이 간다. 생각해보면 참 신비한 일이다. 인류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흔적으로 이뤄져 있다. 그들을 움직인 힘이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있다. ‘우리’가 아니라 각자 자기 안에 자기를 빛나게 할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소중한 ‘자기’를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두는 건 큰 잘못이다. 결국은 천형을 받는 것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 

사표를 쓴 이유를 묻는 한 지인에게 “호랑이가 우리 안에 갇혀 죽을 수는 없지”라고 했다던데. 

“그랬다(웃음). 말이 멋있지 않나. 내가 친구들 앞에서 좀 폼을 잡는 게 있다. 결국은 같은 얘기다. 한 번뿐인 인생, 오직 나를 생각하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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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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