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김용기의 살맛나는 경제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저속기어’ 하는 삶을 향해

  • 입력2018-04-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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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부터 단계적 적용…수만 개 일자리 순증 ‘기대’

    • 연간 200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 멕시코, 코스타리카, 그리스, 그리고 한국

    • 1993년 EU, “48시간 이상 노동, 안전과 건강 해친다”

    • 노동시간 단축, 인간과 노동의 관계에 관한 근본적 성찰이 전제돼야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지난 2월 28일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52시간으로 규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동시간에 관한 한 한국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후진국’이다. 과장하지 않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긴 것은 물론이고, 근로기준법상 정해진 근로시간도 지키지 않는다. 

    ‘OECD 고용전망’ 최근 보고서(2017)에 따르면 독일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1363시간으로 가장 짧고, 한국(2069시간)은 멕시코(2255시간), 코스타리카(2212시간)에 이어 조사 대상 38개국 중 세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독일 외에 덴마크(1410시간), 노르웨이(1421시간), 네덜란드(1430시간), 프랑스(1472시간), 스위스(1590시간), 스웨덴(1621시간), 핀란드(1653시간) 등이 노동시간이 짧은 편이다. 과로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본(1713시간)과 미국(1783시간)이 다소 긴 편이지만 한국보다는 연 300시간이나 짧다.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00시간이 넘는 나라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한국, 그리고 그리스(2035시간) 등 4개국이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한국은 독일인이 일하는 시간의 150% 이상을 일한다. 연간 703시간을 더 일하고 있으니, 주당 40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연간 4개월(17.6주)을 더 일하는 셈이다. OECD 평균은 1763시간이다. 

    근로기준법은 한국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법정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규정한 게 14년 전인 2004년의 일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주당 40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노사 합의하에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했기 때문에 주당 노동시간은 당시 이미 최장 52시간이었다.

    ‘법 정신’ 재확인에 14년 걸려

    2017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과로사OUT공동대책위’ 주최로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시스]

    2017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과로사OUT공동대책위’ 주최로 장시간 노동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시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1주는 월~금요일이라는 기이한 행정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토요일, 일요일 각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초과근무가 허용됐다. 결국 주당 최장 노동시간이 68시간인 것처럼 편법 운영돼왔다. 이 점에서 최근 근로기준법 개정은 잘못된 행정 해석을 바로잡고 2004년의 근로기준법 정신을 재확인한 것이다. 법의 정신을 재확인하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07년 보고서 ‘세계 각국의 노동시간(Working Time Around the World)’은 한국을 ‘법정 근로시간이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았다. 보통은 소득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 준수 정도가 높아지는데, 한국은 예외라는 것이다.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정해놓았지만, 주당 49~59시간 노동자가 25%에 조금 못 미치고, 60시간 이상 노동자는 25%를 웃돌았다. 2004년 기준의 통계였다. 

    국제적으로는 주당 48시간 이상 노동할 경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본다. 유럽연합(EU)이 1993년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48시간으로 제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여기에는 물론 연장근로도 포함돼 있다. EU의 각 회원국은 이보다 짧은 개별적 기준을 국가별로 정하고 있는데, 독일은 1995년부터, 프랑스는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은 이중성을 갖는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일을 통해 경제적 이득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긍정적 경험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일은 부정적인 측면도 갖는다. 과도한 업무를 부과받고 종종 회사로부터 착취당하며, 직장 상사의 경멸과 굴욕을 감내한다. 일터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요아힘 바우어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일을 통해 여러 세계와 만난다. 그는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번아웃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2013)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 번째 세계는 외부 환경이다. 때 묻지 않았던 곳이지만 지난 1만2000년간 인간의 문명과 만나면서 이 세계는 우리 삶의 터전으로 바뀌어왔다. 둘째로 만나는 세계는 우리 자신이다. 일이 정한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는 각자의 몸과 마음과 마주한다. 여기서 가능성과 한계를 경험한다. 우리 안에 자라는 경쟁심을 맛보고,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도 확립한다. 세 번째 세계는 타인과 주변 사회다. 이들에게 인정받고 소속감을 느끼며 사회의 일원임을 경험한다. 

    바우어 교수는 또한 우리가 일을 통해 이 세 가지 세계를 파괴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만남은 자연 파괴, 두 번째 만남은 일 중독·번아웃·우울증이다. 세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인정받고 보다 높은 위계에 도달하기 위해 폭력적 다툼을 벌인다. 

    존 드 그라프는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영화로 만드는 영화제작자이자 작가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직접 활동가로 나서기도 하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중 하나는 ‘시간이 없어(running out of time)’. 미 공영방송 PBS를 통해 1994년 방영된 이 다큐에서 그는 현대인의 ‘시간 기근’ 현상과 과로를 조명한다. 

    그라프는 ‘우리가 점점 더 많은 노동을 절약할 수 있는 도구(기술과 생산성 포함)를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자유로운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현대인의 삶이 지닌 패러독스로 지적했다. 부모는 아이들과,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와, 성인들은 그들의 노년 부모와 함께 보낼 시간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노동시간을 비교하며 시간 압박의 해결책으로 일자리 나누기, 소박한 삶, 그리고 시간을 얻기 위해 돈을 희생하는 ‘저속 기어’형 삶을 제시했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선 ‘21시간 노동’ 주장도

    런던 소재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수석연구위원 안나 쿠테는 ‘주당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10가지 이유’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과 노동생산성 향상 등 알려진 이유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남녀 간 평등을 도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많은 시간을 무급 가사노동 등에 쏟고 있는데, 주당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일을 둘러싼 성별 역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남성의 유급 노동이 줄고, 여성의 그것은 늘려 사회 전체적으로 유급 대비 무급 노동의 비중이 같아지면,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간주돼온 무급 노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종일 탁아의 경우 부모가 분담해 아이를 돌보면 비용 부담이 줄고, 은퇴 후 갑작스러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정년 때까지 장기 노동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은퇴해 할 일도, 그에 따른 보수도 잃어버릴 경우 심각한 충격이 올 수 있고, 그것이 종종 병과 조기 사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신경제재단은 현재 40시간 기준의 주당 노동시간을 21시간으로 축소하자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로, 실업, 과소비, 환경오염, 낮은 복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 배려와 삶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1시간은 현재 영국의 유급 노동시간 전부를 노동가능인구(신경제재단은 남성의 경우 15~64세, 여성은 15~59세 인구 전부로 규정)로 나눈 숫자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유급 노동시간/전체 취업자 수)은 1676시간으로 취업자 1인당 연평균 주당 32.23시간을 일한다. 취업자 수에 실업자를 더한 게 경제활동인구이며, 여기에 비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를 제외한 나머지 15세 이상 인구)를 더하면 노동가능인구가 된다. 영국의 전체 유급 노동을 노동가능인구로 나누면 21시간에 근접한다. 영국의 주당 평균 무급 노동(대표적인 게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 시간도 21시간 언저리에 있다. 

    되도록이면 21시간 언저리에 유급 노동시간을 맞춤으로써, 현재 40시간 이상 노동하는 남성 근로자의 경우 유급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시간을 육아나 요리 등 무급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현재 40시간 이상 무급 노동을 하는 가정주부의 무급 노동을 줄이고 21시간 정도의 유급 노동에 나서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노동에 대한 성별 역할이 차별적이지 않게 되고, 무급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전체 유급 노동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남녀 간, 장기근로자와 단기근로자(실업자 포함)의 유급 노동시간을 잘 나누기만 해도 사회는 확실히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공황 시절, 켈로그의 ‘앞선’ 실험

    미국 시리얼 회사 켈로그의 소유주 W.K.켈로그는 1930년대 말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주당 6시간 노동 실험에 나서 크게 성공했다. [Wikimedia commous]

    미국 시리얼 회사 켈로그의 소유주 W.K.켈로그는 1930년대 말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주당 6시간 노동 실험에 나서 크게 성공했다. [Wikimedia commous]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신의 짧은 글 ‘우리 손자시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현재의 생산성 향상을 감안할 때 향후 100년이 지나면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은 주당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 또한 1932년 저작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임금소득자가 하루 4시간을 일하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고, 실업 또한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노동법이 19세기 중반에 최초로 마련됐을 때 그 주요한 목적은 유아 노동을 줄이는 것이었다. 1919년 ILO는 첫 번째 협약에서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으로 제한했다. 노르웨이는 이미 이때 주당 법정 최장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규정했다. 당시 ILO 협약은 제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ILO는 1930년 30호 협약에 이르러서 48시간 노동의 원칙을 상업과 사무직 노동자에게까지 확대했다. 그리고 1935년 47호 협약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의 40시간 기준 원칙을 천명했다. 

    노동생산성 증가로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주의를 꼽는다. 더글라스 맥그레거는 ‘Y 이론’을 통해 욕구가 무한정하다는 가설하에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더욱 많은 일을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내부에서도 소비를 위해 소득을 늘리려 하고, 이에 따라 여가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유럽보다는 특히 미국에서 그러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노동시간이 긴 나라지만, 미국에서도 일부 혁신적인 기업가에 의해 하루 6시간 노동 원칙이 천명되고 유지된 적이 있다. 시리얼을 만드는 회사 켈로그에서의 일이다. 대공황이 시작되던 1930년 말, 미국 켈로그의 소유주 W. K. 켈로그는 당시 켈로그 사장 루이스 J 브라운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리얼 공장의 근무 형태를 기존 3교대 8시간에서 4교대 6시간으로 바꿨다. 교대 조 하나가 통째로 새로 만들어지자 지역의 해고 노동자와 실업자에게 새 일자리가 주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어려움은 노사가 분담했다. 노동자들은 주급이 다소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였고, 경영진은 총비용의 증가를 감수했다. 시간당 임금을 인상하고 고용자 수를 늘린 결과 경영진은 비용의 증가를 피할 수 없었다. 경영진은 하루 6시간 노동 시행과 동시에 시간당 임금을 12.5% 인상했고, 다음 해에 다시 12.5%를 올렸다. 

    켈로그의 6시간 실험이 성공했을까?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실험 5년 후 켈로그 생산 라인의 취업자 수는 39% 증가했고, 공장 내 재해도 41% 줄었다. 결근율은 51%나 감소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5년 후 단위당 노동비용이 오히려 10%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켈로그의 이윤은? 이전보다 2배 증가했다. 

    켈로그의 실험은 이후 소유주 켈로그가 회사 경영권을 시카고 은행가 출신 W.H. 밴더플뢰그(Vanderploeg)로 넘기면서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켈로그 노동자들은 일부 생산 라인에서나마 6시간 노동제를 1985년까지 유지했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지난해 말 ‘주 35시간 근무제’를 선언했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주당 최장 노동시간 52시간보다 17시간 적다. [권기범 동아일보 기자]

    신세계와 이마트는 지난해 말 ‘주 35시간 근무제’를 선언했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주당 최장 노동시간 52시간보다 17시간 적다. [권기범 동아일보 기자]

    노동시간의 단축은 무엇보다 노동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판단돼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에 관한 교서를 통해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당 최장 노동시간의 단축은 최저임금의 16.4% 인상과 함께 문재인 정부 2년차의 대표적 노동개혁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행히도 주당 52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에 비해 사회적 충격이 훨씬 덜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 인상보단 충격 덜할 듯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그 부담을 짊어짐에 따라 사회적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올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대기업의 기업주와 근로자 모두 1인당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총비용의 상승과 임금 축소를 감내할 역량이 있다. 이에 따른 일자리 증가도 기대할 만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전에 ‘52시간 근로시간 체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15.7만~27.2만 명의 추가 고용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종이 남아 있고, 근로시간 단축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당장 그만큼의 일자리 증가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적어도 수만 개의 일자리 순증 효과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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