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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빈센트 반 고흐 - ‘꽃핀 아몬드나무’ ‘성경이 있는 정물’

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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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도 미워도 간절한 가족사랑

‘꽃핀 아몬드나무’

우리 인간이 갖는 감정 가운데 가장 복잡 미묘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나 일을 뜻합니다. 그 사람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부모가 될 수도 있고, 또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연인 간의 사랑과 가족 간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이 두 사랑은 사뭇 다릅니다. 연인 간 사랑이 격정적이라면, 가족 간 사랑은 은근합니다. 연인 간 사랑은 이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가족 간 사랑은 여간해선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랑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본질 중 하나가 애증 병존(ambivalence)인데, 연인 간 사랑이나 가족 간 사랑 모두 애착과 증오가 뒤엉킨 애증 병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이 사랑입니다. 화가들은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사랑을, 한없는 기쁨과 절망을 안겨주는 그 사랑의 마음을 화폭에 담으려 했습니다. 인간의 느낌과 생각은 언어로 전해지지만, 언어가 늘 최상의 수단은 아닙니다. 화가들은 언어 대신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전달합니다. 사랑이라는 느낌과 생각은, 그것이 말로 전달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림과 같은 미술을 통해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동생과의 깊은 우애

여기서 저는 화가의 가족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회화를 대표하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가족입니다. 고흐는 세잔, 고갱과 함께 후기인상파로 불립니다. 그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드가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파로부터 영향 받았지만, 인상파를 넘어서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엔 현대인이 갖는 불안과 그 불안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잘 표현돼 있습니다.

고흐가 어릴 때부터 화가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성직자와 화가 사이에서 고민하다 우여곡절 끝에 전업 화가가 됐습니다. 이런 선택에 가장 큰 힘을 준 이는 동생 테오입니다. 네 살 터울의 고흐와 테오는 속 깊은 우애를 나눴는데, 둘의 우애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 잘 담겨 있습니다. 고흐가 테오에게만 소식을 전한 게 아닙니다.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한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 이제 병원 밖의 세상에 익숙해지려 노력해야겠지요. 어쩌면 제가 다시 자유롭게 지내면서 일이 더 힘겨워질 수도 있겠지만,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흐가 정신착란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1890년 2월 15일,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동생 테오 부부는 아들을 낳자 그 아이에게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흐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 조카를 위해 그린 작품이 바로 ‘꽃핀 아몬드나무(Almond Blossom, 1890)’입니다. 막 태어난, 자신의 이름을 딴 조카의 침실에 걸 작품이니 고흐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습니다. 그의 순정한 마음과 세련된 기교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단아하면서도 화사한 이 작품에서 고흐가 일본 판화로부터 받은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꽃핀 아몬드나무는 정신착란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고흐의 간절한 의지를 담았습니다. 침대에 걸터앉아 어린 조카에게 꽃이 피는 생명의 순수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이야기해주는 삼촌의 정다운 음성이 들리는 듯도 합니다. 정신착란을 앓았던 화가가 그린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애증의 병존

고흐는 이 작품을 연작으로 그리려 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빨리 그리던 그의 습성을 생각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흐는 이 작품을 완성한 직후 정신착란을 다시 겪었습니다. 그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아몬드나무 꽃은 이미 다 져버렸습니다. 연작을 그리지 못한 아쉬움에 ‘난 참 운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테오는 이 작품을 아들 침대 위에 걸어뒀고, 조카가 이 그림에 매료되어 쳐다본다는 소식을 고흐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고흐는 남동생 테오와 어머니뿐 아니라 여동생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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