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4-03-29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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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은 스무 살 안팎의 어린 병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컴퓨터 전쟁게임처럼 재미있을까.
    • 그렇지 않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 상당수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힙합 음악을 즐겨듣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의 뿌리는 무엇인가.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너희들은 무기가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기도하는 전쟁목사(minister of war)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너희는 토해낸 오물(puke)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는 지금 인간이 아니다. 해병은 로봇을 바라지 않는다. 두려움 없는 킬러를 원한다.”

    영화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 1987)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채 긴장해 서 있는 신참 훈련병들에게 교관이 외치는 말이다. 반전 성향이 짙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 미국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의 무대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인 1960년대 후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패리스섬에 있는 해병대 훈련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왔다. 취침에 앞서 훈련병들은 1인용 침대에 누운 채 ‘받들어 총’ 자세로 일제히 기도문을 외친다. “총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이것은 나의 목숨이다. 내가 없으면 총은 쓸모가 없다. 총이 없으면 나도 쓸모가 없다. 나를 죽이려는 적을 내가 먼저 죽여야 한다. 나와 나의 총은 조국(미국)을 지킨다. 우리는 적을 지배하는 주인이다.”

    갓 입소한 뚱보 ‘파일’은 턱걸이 한 번을 제대로 못하는 ‘고문관’이다. 번번이 훈련교관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그 때문에 단체기합을 받게 돼 동료들의 눈총이 따갑다. 그러나 8주간의 훈련과정이 끝날 무렵, ‘파일’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눈빛부터 달라졌다. 훈련조교는 말한다. “파일은 다시 태어났다.” 무엇으로? ‘살인병기’로. 그러나 베트남으로 파병되기 직전 ‘파일’은 사고를 친다. 훈련교관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고문관’에서 새로 태어난 ‘살인병기’는 자신이 변한 것에 갈등을 느꼈고, 그렇게 만든 교관을 증오했을 것이다. ‘파일’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이라는 1960년대 혼돈의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자 부산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침공에 맞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위대한 모국(母國)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이렇듯 정치지도자들이나 군사령관들은 국가방위의 대의(大義)를 강조하면서 평범한 젊은이가 전선에서 ‘효과적인 살인병기’로 바뀌길 요구한다.



    전쟁심리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떻게 내가 사람을 죽이나’ 하는 감상주의자에서 ‘내가 죽지 않으려면 먼저 적을 죽여야 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이 군사훈련이다. 병사로 하여금 국가가 요구하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전선에 투입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다. 여기에 거부감을 갖는다면, 극단적으로는 영화 ‘풀 메탈 재킷’의 ‘파일’처럼 충동적이든 아니든 사고를 치게 된다.

    영국의 사학자 조안나 버크(런던대 교수)는 ‘살해의 친숙한 역사 : 20세기 전쟁의 얼굴을 맞댄 살해’(1999년판)에서 시민사회의 모범적인 신사가 전쟁에서는 열렬한 살인자(killer)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가학적이고 잔인한 남성, 증오와 유혈을 바라는 남성보다는, 사랑과 연민 같은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보통 남성이 오히려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킬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버크는 여러 보기를 들어가며 강조했다. 우리 인간은 감성을 지녔기에 눈앞의 적을 죽이는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감정을 아주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라크 파병 미군의 높은 자살률

    미 펜타곤(국방부)은 밝히기를 꺼리지만, 이라크 파병 미군의 자살률이 높고 많은 장병들이 심각한 정신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병사들의 자살이 줄을 잇자 펜타곤은 미군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특별조사단을 파견했을 정도다. 미 국방부 보건담당 차관보 윌리엄 윈켄워더에 따르면 2003년 말까지 집계된 이라크 파병 미군 중 자살자 숫자는 21명(육군은 18명), ‘정신질환’ 판정을 받고 후송된 병사는 596명이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은 이라크에서 미 노스 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 기지로 돌아온 뒤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다. 우울증으로 워싱턴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두 명의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일어났다.

    미 연방정부기구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자살률은 평균적으로 10만명당 10.5∼11명 수준. 2001년에는 10.7명, 2002년에는 10.9명이었다(참고로 한국은 10만명에 2명꼴). 윈켄워더 차관보가 밝힌 이라크 파병 미군의 자살률은 일반적인 미국인 자살률보다 20%포인트쯤 높은 10만명당 13.5명. 이 통계수치는 현재 조사중인 자살 사건들을 뺀 것으로, 따라서 실제 자살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 가지 눈여겨볼 현상은 미군이 나라 밖에서 군사개입을 했을 때 병사 자살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제1차 걸프전쟁이 벌어졌던 1991년 한 해 동안 미군 자살률은 10만명당 14.4명으로 미국인 평균 자살률보다 거의 40%포인트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102명 자살). 미군이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과 카리브해 지역의 아이티 정치위기에 개입했던 1993년의 경우는 10만명당 15.7명이란 기록적인 자살률을 보였다. 소말리아와 아이티 두 곳에 주력군으로 파병됐던 미 해병대의 자살률이 특히 높았던 탓이다(1993년도 해병대 자살률은 10만명당 20.9명으로 미군 평균 자살률의 곱절이었다. 참고로 2002년 미 해병대 자살률은 12.6명).

    이라크 파병 미군의 자살이 잇달아도 펜타곤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해 고민중이다. 윈켄워더 차관보는 “모든 자살사건을 조사해봤지만 우리가 (자살을 막는) 조치해야 할 것이 더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파병 장병들의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묘수가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아울러 그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장병이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집계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펜타곤은 이라크 주둔 미군 13만명을 미 본토로 불러들이고 11만명의 신규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과 제1차 걸프전쟁에서 귀환한 장병들의 자살률이 높았던 점을 떠올리면, 이라크에서 귀환한 장병들의 자살률은 현재 수치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많다. 윈켄워더 차관보가 “앞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 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개입명분 약하고 戰線도 없고

    한마디로 이번 제2차 걸프전쟁은 1991년 1차 걸프전쟁 때보다 훨씬 자살률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다. 1차 걸프전쟁은 파병과 군 작전 개시를 포함 해 약 한 달 정도 벌어졌고, 실제 지상전 단지 나흘 동안 치러졌다. 지상전이랄 것도 없이 전쟁이 빨리 마무리됐었다. 당시 현지에서 자살한 미군 병사는 단지 두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뒤 귀환 장병들 사이에서 자살이 잇달았다(10만명당 14.4명). 그에 비해 이번 2차 걸프전쟁은 훨씬 긴 전쟁이다. 상황도 나쁘다. 명분이 약하다는 논란 속에 치러졌던 바그다드 침공작전 뒤 1년 넘게 반미 게릴라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주민들, 특히 수니 삼각지대 안의 시아파 주민들이 미군을 바라보는 눈길도 차갑다.

    이라크전쟁은 미군이 지금까지 겪어온 것과는 다른 전쟁이다. 무엇보다 전선(front line)이 없다. 적은 앞에서든 뒤에서든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고, 도로에 매설된 폭탄도 목숨을 노린다. 거리에 버려진 물건이 부비트랩일 수도 있다. 이런 긴장감이 약한 전쟁 명분을 둘러싼 회의감과 맞물려 병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몰아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바그다드 미 육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맡았던 리키 맬론 대령은 환자들로부터 늘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나를 이라크에서 내보내줘요.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미군이 참전한 제1, 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은 다수 미국인들에게 ‘정의의 전쟁(justice war)’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은 제2의 ‘베트남전쟁 신드롬’을 낳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자살률이 높아가는 것은 베트남전쟁 때처럼 명분 없는 싸움에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침공군으로 끼여들게 된 미군 병사들의 심리적 갈등을 짐작케 해준다.

    일단 총을 들고 순찰을 돌거나 이라크 반미 게릴라들과 총격전을 벌일 때는 ‘살아야겠다’는 긴장감이 앞선다. 그러나 부대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병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맞는다. 왜 여기서 싸워야 하나…. 그러면서 낮에 민가를 뒤져 용의자들을 붙잡을 때 들었던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의 외마디가 귓가를 맴돈다. ‘나에게도 그런 가족이 있는데….’

    이라크전쟁은 컴퓨터로 즐기던 모의전투(simulation)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젊은 미군 병사들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다시피 싸워야 하고, 죽어가면서 흘리는 붉은 피를 봐야 하고, 죽어가는 자의 고통스런 신음을 들어야 한다. 이라크는 아프간과 더불어 미국이 베트남전쟁 이래 가장 오랫동안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1815년 워털루전쟁은 단지 하루 동안의 전쟁이었다. 미 남북전쟁 당시 최대 격전으로 기록된 게티즈버그 전투도 사흘 동안 치러졌다. 더욱이 야간전투는 벌이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24시간 내내 전투가 벌어지고 그런 긴장상태가 1년 넘게 지속된 이라크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이 입는 정신적 상처는 그만큼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전쟁으로 인한 정신질환인 PTSD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하얀 전쟁.’

    전쟁은 기본적으로 병사들에겐 스트레스다. 미 아칸소주립대에서 군사학을 가르치는 데이브 그로스먼의 책 ‘살해론’(On Killing, 1995년판)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중 50만4000명의 미군이 정신질환으로 군복을 벗었다. 이는 50개 사단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규모였다. 당시 미군 징병검사소는 징집대상자 가운데 80만명을 정신질환을 앓는 ‘부적격자’로 판정, 1차로 걸러냈다. 그런데도 50만명의 현역병이 그뒤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다. 그 대부분은 전투중 얻은 정신질환 탓이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벌인 뒤 미군 당국은 전투기간과 병사의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60일 동안 계속 전투를 벌인 미군 생존자의 98%가 정신적 상처로 괴로워했으며 나머지 2%의 병사들은 ‘병적일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2%의 병사 유형은 글 앞머리에서 살펴본 영화 ‘풀 메탈 재킷’속의 미군 헬기 기총사수를 떠올린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커’는 미군 기관지인 ‘성조지’ 기자로서 사진기자와 함께 헬기를 얻어타고 후에(Hue)지역 취재를 떠난다. 가는 길에 헬기의 기총사수는 논에서 일하고 있던 베트남 농민들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기관총을 내리쏜 뒤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내 사격을 피해) 뛰는 놈은 베트콩이고, 가만히 있는 놈은 잘 훈련된 베트콩이야, 핫하하. 나는 지금껏 157명의 베트콩과 들소 50마리를 죽였어. (멀리 취재 갈 것 없이) 바로 나를 취재해야 되는 거야. 핫하하.”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2000년 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 당시 만났던 반군(혁명연합전선, RUF) 병사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낄낄 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제2의 베트남전쟁 신드롬’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병사는 전투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지만, 무엇보다 살아남고 싶다는 강한 희망을 품는다. 아울러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얼씬거린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병사들은 훈련과정에서 익힌 임무(이를테면 사수는 방아쇠를 당겨야 하고, 탄약수는 부지런히 탄약을 대야 한다는 역할 분담)를 잊고 어디론가 구석진 곳을 찾아 숨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떤 병사들은 소리내 울거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진다. 따라서 전장에서 병사가 느끼는 공포를 이용하려는 전술인 심리전은 적군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독일영화 ‘특전 유보트’(Das Boot, 볼프강 페터젠 감독, 1981)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은 전투의 박진감보다는 좁은 U-보트에 갇힌 병사들의 불안심리를 잘 그려낸 데서 나온다. 구축함에서 던지는 수중폭탄의 충격, 바다 밑 280m 지점에 가라앉은 U-보트의 심도계(深度計)를 쳐다보는 병사들의 절망적인 눈길, 수압에 못 이겨 튀어나오는 나사들, 흘러들어오는 바닷물, 갈수록 옅어지는 산소…. 8회 출항 경험을 지닌 노련한 기관사 요한마저 자제력을 잃는다. 요한은 잠수함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본능에 잠수함 출구쪽을 쳐다본다. 잠수함에서 나가봤자 깊은 바닷속인 데도…. 강철 신경을 지닌 함장은 요한에게 “네 자리로 돌아가라(근무위치를 지켜라)”고 명령하지만 그 말은 요한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한은 공포에 짓눌려 신경이 마비된 병사의 전형이다. 영화 ‘플래툰’에서도 묘사됐지만,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미군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약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전쟁공포로부터의 일시적 도피다.

    프로이트의 ‘이드’가 지배하는 순간

    앞서 소개한 조안나 버크의 ‘살해의 친숙한 역사’에 따르면, 20세기 전반 미군의 훈련과정은 심리학의 ‘본능이론(instinct theory)’에 바탕을 두었다. 그 교본은 1908년 영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맥두걸이 쓴 ‘사회심리학 개론’이다. 이 책에서 맥두걸은 “사회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행동은 인간의 초보적인 감정에 연결된 본능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도망치는 것은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었다. 미군 훈련교관들은 맥두걸의 본능이론에 바탕을 두고 병사들이 전쟁에서 느끼는 본능적 공포를 극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어왔다. 그 뒤 보다 정교한 이론들이 나왔지만, 맥두걸의 본능이론은 지금도 미 군사훈련의 기본방향으로 남아 있다.

    자의든 타의든 전쟁이란 살벌한 현장 속으로 뛰어들게 된 병사는 1차적으로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적군에게 총을 쏜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병사는 전투중의 끔찍한 기억들로 말미암아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정신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쟁터에 갓 배치된 젊은 병사는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제정신을 잃는다고 한다. 총알이 귓가를 스쳐가는 근접전에서 병사는 앞뇌(前腦, 이성적인 기능을 담당)의 활동이 멈춘 상태에서 가운데 뇌(中腦,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적 기능)의 지시에 따라 방아쇠를 당겨댄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원조라 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은 전투상황에 놓인 병사의 긴장된 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의 장치(또는 인격구조)를 이드(id, 원초적 본능)와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누었다. ‘이드’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힘 또는 타고난 충동, 본능적 에너지의 원천을 뜻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초자아’는 상위자아(上位自我)라고도 하며 ‘이드’의 본능적 충동을 누르는 양심과 죄악감의 영역을 뜻한다. 프로이트는 또한 인간의 의식을 ‘죽음에의 본능(Thanatos)’과 ‘삶의 본능(Eros)’으로 풀이했다. 그에 따르면 ‘죽음에의 본능’은 인간의 생명활동이 결국 원시적 상태(죽음)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뜻이고, ‘삶의 본능’은 인간의 성본능이 말하듯 생명과 개체의 보존을 뜻한다.

    마셜보고서, “15∼20%만 방아쇠 당겼다”

    데이브 그로스먼(미 아칸소주립대 교수)의 ‘살해론’(1995년판)은 “실제 전투에서 극도로 긴장한 병사들은 삶의 본능과 죽음에의 본능 사이에서 이드, 자아, 초자아가 혼란스럽게 뒤엉켜 갈등하게 된다”고 풀이한다. ‘이드’는 병사에게 원시인이 무기로 쓰던 몽둥이나 돌멩이로 경쟁자를 쳐죽이듯, 적군을 죽이라고 ‘자아’에게 명령한다. 한편으로 ‘초자아’는 병사가 훈련소에서 들은 대로 ‘적군을 죽이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자아’에게 일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병사의 ‘초자아’는 ‘만난 적도 없고 서로 다툰 적도 없는 상대편 젊은이를 죽여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프로이트의 이론대로라면, 1994년 르완다를 휩쓸었던 후투족의 투치족 인종청소(80만명 피살)나 1992∼95년 보스니아와 1998∼99년 코소보에서 벌어졌던 학살극은 ‘초자아’가 마비된 채 ‘이드’만이 ‘자아’를 지배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적을 죽여야 하는 살상행위다. 병사들은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총을 들고 적대세력과 싸울 권리를 지닌다. 전투병으로서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힐 권리다. 이는 범죄행위로서의 살인(murder)이 아니다. 군사작전의 필요에 따라서는 적의 재산을 파괴할 권리도 지닌다. 전시상황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같은 살상행위와 파괴행위가 전투원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았다면, 이는 당연히 범죄가 되고 형사처벌감이다. 전쟁상황에서 병사는 제네바협정을 비롯한 국제법을 어기지 않는 한 살상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적을 많이 죽였을 경우엔 국가에 의해 제도적 포상(훈장, 승진, 휴가)을 받는다. ‘영웅’으로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실제 전쟁에서 병사들은 심리적 갈등을 느낀다고 전쟁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총 쏘기를 망설인다. 전쟁의 공포도 공포려니와 인간의 본성은 살인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S.L.A. 마셜 육군 준장은 펜타곤의 지시를 받아 미군 병사들의 전투심리에 관한 광범한 조사를 벌였다. 미군 역사가인 마셜 준장이 이끄는 조사팀은 태평양전선과 유럽전선에서 전투중이던 400개가 넘는 보병중대 소속 병사 수천 명을 개별 면담했다.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나온 책이 마셜 준장의 ‘총 쏘길 거부하는 사람들’(Men Against Fire, 1946년판)이다.

    필자는 뉴욕시립도서관에서 색이 바랜 이 책을 찾아냈다. 200쪽이 조금 넘는 이 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적과 맞닥뜨렸을 때 한 방이라도 제대로 적을 향해 총을 쏜 미군 병사는 단지 15∼20%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80∼85%는 일부러 총알을 다른 곳으로 쏘거나 아예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병사들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마셜 준장이 내린 결론은 “인간은 천성적으로 킬러가 아니다(Human beings are not, by nature, killers)”는 것이다.

    훈련프로그램 바꿔 사격률 높여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마셜의 조사결과에 비판적이었다. 이를테면 해럴드 레인보는 그의 책 ‘K중대의 사나이들’(1986년판)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사격률은 마셜 장군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연구 작업들, 이를테면 패디 그리피스의 미 남북전쟁 당시 사격률이 매우 낮았다는 연구(‘미 남북전쟁에서의 전술’ 1989년판), 미 연방수사국이 실시한 1950년대와 1960년대 총살형 집행관들의 발포율 조사자료, 이름난 전사(戰史) 연구자 존 키건의 여러 저작 등은 마셜 준장이 밝힌 통계수치와 결론을 재확인해주었다.

    마셜 준장의 보고서에 충격받은 미 육군 당국은 실전에서의 조준 사격률 90%를 목표로 삼고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이를테면, 사격 조준판을 동그라미 모양이 아닌 실제 사람처럼 만들어 급작스레 나타나도록 작동시키고 그것을 총알로 맞히면 넘어지게 바꿨다. 적군 병사를 ‘숨쉬는 인간, 사랑하는 가족이 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도록, 그래서 그를 향해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그런 사격훈련의 결과 그 뒤 여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조준사격률이 크게 높아졌다(한국전쟁 55%, 베트남전쟁 90∼95%).

    미국의 평화주의 반전론자들은 그런 훈련프로그램이 베트남전쟁에서 마구잡이로 양민을 학살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더러, 미국사회의 총기범죄율을 높인 한 원인이라 분석한다. 전쟁은 후방의 폭력범죄 증가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미 사회학자 다이엔 아처와 로즈메리 가트너는 1980년 매우 흥미로운 조사작업을 벌였다. 베트남전쟁에 미국이 개입했던 10년(1963∼73년) 동안 미국의 살인범죄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 무엇 때문인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연구과제였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남성에 의한 살인율이 101%, 여성에 의한 살인율이 59% 늘어났다.

    두 사회학자는 특히 그런 살인범죄 증가가 베트남전쟁에서 폭력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미국 사회로 복귀한 뒤 적응을 못해 저지르는 범죄 때문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조사작업을 진행하면서 두 사회학자는 미국사회가 전반적으로 베트남전쟁 개입기간에 폭력화됐음을 알아냈다. 이들의 연구결과인 ‘미국 전역의 폭력과 범죄’(1984년판)에 따르면, 베트남 참전세대가 아닌 45세 이상에서도 살인범죄율이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높아졌다. “폭력을 합법화하는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일반사회도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그런 폭력적 경향이 이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조사결론이다.

    한 가지 생각해볼 부분은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전쟁 속에서도 가능한 한 타인을 죽이는 것을 피하려 들지라도, 집단을 이루면 잔인해진다는 점이다. 르완다 학살이나 보스니아 학살도 결국은 집단에 의한 전쟁범죄였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답을 찾으려 했던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 1973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콘라트 로렌츠다.

    독일 군의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소련군에 잡혀 4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로렌츠는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지녔지만, 지성(intelligence)과 이성(reason)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63년에 펴낸 그의 ‘공격성향론’(On Aggression)은 “(전쟁에서는) 개인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살인을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젊은 병사 개개인을 놓고 보면 전쟁의 공포를 지닌 약한 존재이지만, 명령계통을 지닌 집단을 이루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논리다. 실제 보스니아나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을 저지른 전쟁범죄자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폭력의 도(度)를 높여갔었다.

    데이브 그로스먼 교수의 ‘살해론’은 화제의 책이다. ‘전쟁과 사회에서 살인을 배우는 심리적 비용’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퓰리처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로스먼은 이 책에서, “인간은 살아 있는 목숨을 빼앗는 데 본능적으로 저항감을 갖지만, 군대가 개발한 여러 기술적 훈련을 통해 그런 혐오감을 덜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로스먼은 특히 베트남전쟁에 초점을 맞춰 어떻게 미국 병사들이 미 전투사에 등장하는 어느 전쟁보다 베트남전에서 훨씬 많이 살육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로스먼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장을 폈다. 첫째,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죽이길 본능적으로 망설인다. 둘째, 그러한 망설임은 보다 기술적인 군사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없앨 수 있다. 셋째,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근접전에서 사람을 죽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정상적인’ 병사의 반응은 마치 유명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 과정(“그럴 리 없다”며 자신이 치명적인 병에 걸린 것을 부인→“하필이면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렸나” 하는 분노→우울증→자신과의 타협→곧 다가올 죽음의 현실을 인정)과 같다.

    큐블러-로스의 5단계 이론을 이라크전쟁에 적용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미군 병사는 처음엔 “내가 왜 이런 위험한 곳에서 명분 약한 전투에 휘말렸나” 하는 분노와 현실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투를 거듭하면서 죽음이라는 냉정한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이때의 ‘죽음’은 미군 병사 자신의 죽음은 물론이고 미군의 강력한 화력에 숨지는 이라크 현지인들의 죽음도 포함된다. 처음엔 이라크인을 죽인 것을 찜찜해하다가 차츰 익숙해지는 그런 과정이다. 전투와 긴장이 거듭될수록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상처를 입는다.

    이 같은 분석은 이미 여러 전쟁연구자들로부터 올바른 것으로 검증받았다. 이를테면 베트남전쟁 참전자들 가운데 ‘심리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발병률이 여러 차례 미군 공습을 받았던 베트남 사람들의 PTSD 발병율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그러하다(베트남전쟁 참전 미군병사 가운데 30%가 PTSD 증상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전쟁연구자 존 키건이 쓴 여러 책들도 이런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참호전에 독가스전까지 벌인 제1차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 전례없는 장기간에 걸친 처참한 전쟁이라 많은 병사들이 PTSD 증상으로 괴로워했다. 처음 정신과 의사들은 이 같은 증세가 전투에서의 피로에서 비롯된 일시적 현상쯤으로 여겼을 뿐, 정신질환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PTSD였다. 전쟁연구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의 조준 사격률이 높아질수록 본능적으로 살인을 거부하는 병사의 정신적 갈등은 깊어지고 그로 인해, 일종의 정실질환인 PTSD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늘어났다고 본다. 밀림 속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끝난 뒤에도 병사는 한동안 자신이 전투상황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전투가 치열했을수록 그 여운은 오래 간다. 밤에는 쉽게 잠을 못 이루고 전투중 총상을 입고 죽어간 베트남 현지인과 전우들의 신음을 듣는 환청(幻聽)에 빠진다.

    “정신적 상처 기준 삼아 전쟁비용 계산해야”

    PTSD 증세가 나타난 병사는 군복을 벗더라도 시민사회로 돌아가 적응하기 어렵다. 그런 제대군인들은 자살률과 이혼율이 높고, 알콜에 중독돼 제대로 직업을 갖지 못한다.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안정효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하얀 전쟁’(정지영 감독, 1992)도 PTSD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소대원들 가운데 단지 7명만이 살아남는다. 생존자들은 저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상처를 지닌 채 귀국한다(실제로 여러 임상적 연구에 따르면, 아무리 훈련을 잘 받은 정예군이라도 소대든 분대든 한 부대 구성원이 50∼60%쯤 전사할 경우 살아남은 병사들은 커다란 뇌상을 입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전우들 사이에 응집력이 강했던 부대단위일수록 그 정신적 상처는 크다). 그 뒤 10년 만에 만난 생존자 변진수와 한기주, ‘변진수’는 전우이자 상사인 ‘한기주’에게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조른다. ‘한기주’는 그가 안고 있는 고통을 덜어주려 총을 겨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고대 부족들간 전쟁에서 한바탕 살육극을 벌이고 돌아온 전사들에게 ‘죄의식’(사람을 죽였다는 원죄의식)을 씻어주는 의식을 벌였다고 말한다. “전투에서 적의 피를 흘리도록 한 것은 정당했다”는 생각을 전사들에게 심어주는 집단적 의식으로 고대 부족들은 물 속에 몸을 담갔다.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면서 죄의식마저 씻어내는 의식이었다. 그와 같은 의식은 오늘날 귀환장병들을 위한 대대적인 환영식과 군사 퍼레이드, 승전 기념비 건립 등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참전 병사들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 환영받지 못했다. 높은 반전여론으로 말미암아 “내가 베트남에서 베트콩을 죽여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숨겨야 할 정도였다. 이라크전 참전 미군병사들의 높은 자살률도 그런 심리구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로 파병되는 한국 자이툰 부대 병사들은 어떨까. 자이툰 부대원들은 근본적으로 침공군이자 점령군인 미군과는 처지가 다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평화유지군’의 성격이고, 무엇보다 평균 15.9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지원자들로 이뤄진 병력이다. 따라서 미군처럼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받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이 대목에선 영화 ‘하얀 전쟁’에서 그려진 베트남 파병 한국군과도 상황이 다를 듯하다. 그러나 한치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 과도기의 이라크 상황이다.

    ‘얼굴 없는 전투’의 극단은 공습

    미 군사(軍史) 전문가인 리처드 가브리엘(다니엘 웹스터대 교수)은 인터넷 웹사이트에 실은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전쟁을 치르면서 돈이 얼마나 들었고, 사상자가 몇 명 생겼는가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병사 개개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을 기준으로 전쟁비용을 계산한다면,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흔이 가장 비싼 비용이라는 것이 가브리엘 교수의 주장이다. 적의 포화에 팔다리가 부러진 부상병보다 눈에 안 보이는 정신적 부상병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라크 파병 미군이 받는 스트레스는 전선 없는 전장에서 적과 얼굴을 맞대다시피 싸워야 한다는 데서도 비롯된다. 미군은 특히 1990년대 들어 ‘얼굴 없는 전쟁’에 익숙해 있다. 첨단 전자장비를 이용해 쏘아대는 미사일과 공습이 대표적인 예다. 제1차 걸프전쟁(1991년)을 그렇게 치렀고, 코소보전쟁(1999년) 때도 그랬다. 중세전쟁이나 19세기 초의 나폴레옹전쟁 때만 해도 병사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다시피 하며 싸웠다.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이집트의 사막에서 사격훈련중인 미국 병사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에게 제대로 총을 쏜 미군 병사는 15~20%에 불과했다.

    영국의 전쟁연구사가 존 키건은 저서 ‘전투의 얼굴’(1977년판)에서 고전적인 전쟁과 현대전쟁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1815년 워털루전쟁에서 일진일퇴하면서 양쪽 군대는 지난번에 싸웠던 적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러나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솜전투는 산업화시대의 전쟁이었다. 대포를 비롯한 장거리 파괴도구를 작동하는 병사들 손에 상대편 병사들이 죽어갔다. 양쪽 병사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상대를 죽이는 전투를 벌였다.”

    키건이 말하는 ‘얼굴 없는(faceless)’ 전투의 극단적 사례는 미군 공습일 것이다. 전폭기 조종사는 아득히 높은 곳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그다지 큰 괴로움 없이 기지로 돌아온다. 자신이 숱한 시민들을 불더미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은 탓이다. 미군 특수부대에서 정신훈련 교관을 지낸 리처드 헤클러는 저서 ‘전사(戰士) 정신을 찾아서’(2002년판)에서 공격거리가 멀수록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의식을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이렇게 풀이했다.

    “옛날의 전사들은 적의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전쟁을 치렀다. 그는 자신의 칼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지면서 죽는 적의 처참한 눈길을 기억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사들은 아침에 2만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내리퍼붓고는 수백마일 떨어진 기지로 돌아와 태연히 햄버거를 먹는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MIT대 교수)와 더불어 반전 이론가로 이름난 하워드 진은 2차대전 때 공군조종사로서 독일군과 시민을 겨냥해 폭격에 나섰던 전력을 지녔다. 그는 얼마 전 미 공영방송 PBS의 한 대담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만일 당신이 공중폭격에 나선다면, 9000m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 당신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지르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사지가 어떻게 잘려나가는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별다른 거리낌없이 다음날 또 폭격에 나선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죽어간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도 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나는 독일 드레스덴에 대한 영미 공군기의 무차별 공습으로 죽은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1945년 2월, 독일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뤄졌던 드레스덴 폭격은 2차대전 중 연합군이 저지른 만행으로 일컬어진다. 당시 13만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전폭기 조종사가 자신이 떨어뜨린 폭탄으로 말미암아 민간인들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후회하는 사례는 많다. 영국의 역사가 폴 푸셀은 그의 책 ‘전시’(Wartime, 1990년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폭기를 몰고 베를린을 폭격했던 조종사가 20년쯤 뒤 다시 베를린을 찾았을 때 이렇게 한탄했음을 전한다. “전쟁 당시 내가 (베를린에) 떨어뜨린 폭탄들이 얼마나 많은 끔찍한 죽음을 가져왔는지를 나는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아무런 사적 원한이 없는 생사람을 죽였다는 꺼림칙한 생각은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라크 주둔 지상군은 바로 코앞의 적과 맞닥뜨려 싸워야 하는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삶과 죽음 엇갈리는 초긴장 극한상황

    미군은 전산화된 첨단무기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군대다. 21세기 전쟁에서 미군은 전쟁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치른다. 실제로 전쟁은 하고 있지만, 전장에 나가서 적군의 얼굴을 바라보며 치르는 전쟁이 아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이그나티프는 그의 책 ‘가상의 전쟁’(2000년판)에서 그 같은 미국의 전쟁을 책 제목대로 ‘가상의 전쟁(virtual war)’이라 이름지었다. 공습으로 불바다를 이룬 코소보나 세르비아 지역 사람들은 전쟁을 실감하지만, 그러한 장면을 전하는 CNN 뉴스를 안방 TV로 보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전쟁’이다.

    이그나티프는 그 책에서 ‘가상의 전쟁’을 통해 쉽게 적국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국이 21세기에 오로지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밀어붙이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 같은 걱정은 이미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21세기 가상의 전쟁에 나설 예비전사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첨단문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모의전투(simulation)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는 미국 청소년들로 하여금 전쟁과 폭력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효과적 수단이다.

    미 국방부는 2002년 ‘미국의 군대(America’s Army)’라는 이름의 컴퓨터게임 프로그램을 일반에 공개했다. 인터넷으로 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은 청소년들은 마치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것 같은 기분으로 사격술을 비롯한 훈련과정을 거쳐 가상의 적과 총격전을 벌인다. 지금까지 100만명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에 접속, 게임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로봇 병사의 거친 숨소리가 실제상황인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올해 7월쯤 선보일 ‘전방위 전사(Full Spectrum Warrior)’라는 전쟁게임 프로그램은 두 그룹의 미 경보병 부대가 중동지역의 한 도시에서 적과 시가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미국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그런 게임을 즐김으로써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걱정한다.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재빨리 움직이면서 적군을 향해 총을 쏴대는 10대 청소년들은 어느덧 ‘람보’가 된다. 그리고 21세기 패권국가 미국의 위대한 전사가 되는 꿈을 꾼다. 이것이 바로 펜타곤이 노리는 효과다. 미 육군은 올 가을에 ‘지구(Earth)’라는 이름의 보다 정교한 전쟁게임 프로그램 제2판을 내놓을 참이다. 여기엔 총격전뿐 아니라 정보수집활동과 순찰, 그리고 현지민과의 합동작전 등이 들어 있다. 게임의 무대는 쿠웨이트의 한 도시다. 이런 가상공간을 통해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 중동지역의 한 도시를 점령하고 순찰하는 군인이 된다.

    가상공간엔 스트레스가 없다. 따라서 베트남전쟁이나 지금의 이라크전쟁 참전 병사들을 괴롭히는 ‘심리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도 없다. 미국 청소년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상의 전투에서 벗어나, 실제 병사로서 이슬람권 분쟁지역에 갔을 때 ‘람보’가 심어준 환상은 깨지고 PTSD 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상황에서 전쟁은 결코 컴퓨터게임처럼 ‘오락’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초긴장 극한상황이 바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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