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前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선택’

“남북통일 위해선 나토를 유라시아로 넓히고 중국을 G-10에 넣어라”

  • 요약·정리: 박성희 재미언론인 nyaporia@yahoo.com

    입력2004-03-2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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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는 미국을 외로운 요새국가로 만들었다
    • 테러리즘의 정치적 동기에 접근해야 테러전쟁 끝난다
    • 악의 축 논리, 북핵 위기 해소에 도움 안 된다
    • 일본, 고도의 첨단장비 갖춘 제한적 재무장 바람직
    • 미국·일본·중국이 삼각 군사협의회 구성해야
    • 중국을 국제협력체계 안에 넣어야 남북통일 가능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前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선택’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 국제정치학계와 워싱턴 정가에서 헨리 키신저에 견줄 만한 비중을 지닌 인물이다.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주물렀던 브레진스키는 키신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칼럼을 써왔다.

    브레진스키는 올해 3월 ‘선택 :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이끌어갈 것인가(The Choice : Global Domination or Global Leadership, 242쪽 분량)’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지난날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1977∼81)을 지낸 거시적인 전략가 브레진스키다운 분석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일괄된 주제는 ‘패권국가인 미국이 부딪친 국제전략적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이다. 브레진스키는 ‘부시 독트린’으로 불리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슈퍼 파워 미국이 세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테러의 뿌리를 치유하지 못한 채 반미감정만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악의 축’이란 용어를 내세워선 결코 ‘테러와의 전쟁’에 이길 수 없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 자체도 개념이 모호하다. 그는 부시가 핵개발 야망을 지닌 국가들을 ‘테러와의 전쟁’과 결부시킴으로써 미국의 안보 위협 개념은 더욱 모호해졌다고 지적한다. 요점은 지금의 긴장 상황을 지역적 안보협력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키신저와 마찬가지로 강국들 사이의 세력균형을 중시해왔다. 온건한 관점에서 국제정치에 접근하는 다자주의 진영의 맹장으로서 브레진스키는 서유럽,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에 걸친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과 미국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관심을 보였다. 1998년에 펴낸 ‘거대한 장기판(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 eratives, 1998년)은 유라시아 대륙을 미국의 국가 이익이 시험받는 ‘거대한 장기판’에 견주었다. 이 책에서 브레진스키는 석유자원 확보, 시장개척, 군사적 긴장해소 등 미국의 이해관계를 유라시아에서 지켜나가려면 나토 회원국을 넓혀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친 안보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럼으로써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前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선택’
    ‘거대한 장기판’이 출판된 지 6년 만에 나온 ‘선택’은 그동안에 달라진 미국 정치지형과 국제정세를 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대한 장기판’과 맥을 같이한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은 이스라엘 편향정책을 지양하고 이란을 포용해야 하며, 중동과 카슈미르 분쟁해결에 진취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12억 이슬람 인구의 반미감정을 해소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의 이슬람 지역이자 분쟁 지역인 ‘글로벌 발칸(Global Balkans)’의 정치적 안정을 위한 미국의 대외정책 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테러전쟁’ 방식으로는 유라시아 지역의 평화는 물론, 미국의 안정도 가져올 수 없다고 본다.

    브레진스키는 이 책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촉발한 동북아 정세의 긴장과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높아지는 현실에 눈을 돌려 나름의 거시적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미·일·중 3국을 축으로 삼아 동북아 지역 안보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나토(NATO)를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는 아울러 G-8을 확대해 중국을 회원국으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통일의 열쇠를 중국이 쥐고 있다고 보는 브레진스키는 “정치경제와 군사안보 두 측면에서 중국을 국제협력체계에 끌어들여야 한반도 통일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보기에 따라서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 같지만, 다자주의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 주요내용을 정리해본다.

    세계 속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나의 기본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힘은 오늘날 지구촌 안정을 가져오는 궁극적인 바탕이다. 다른 한편으로, 컴퓨터 보급과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사회의 역동성은 전통적인 지구촌의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 미국의 힘과 사회적 역동성이 어우러진다면, 인류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글로벌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힘을 잘못 사용해 세계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면 미국은 따돌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초 미국의 힘은 막강하다. 군사력에서나, 경제의 활력에서나, 기술적 역동성의 혁신적 충격에서나, 그리고 할리우드 문화로 상징되는 다양하면서도 때로운 천박스러운 대중문화 측면에서나 미국의 영향력은 전에 없이 크다.

    이것들은 모두 맞설 상대가 없는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유럽은 미국과 경제 분야에서는 경쟁할지 모르나, 정치적으로 맞서기엔 부족하다. 한때 차세대 초강국 후보에 올랐던 일본은 이미 밀려난 모습이다. 중국은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음에도 앞으로 2세대 동안 상대적인 빈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이제 미국의 맞수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미국은 경쟁상대가 없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패권(hegemony)과 힘은 세계 안전보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현실적으로 대안은 없다.

    세계 질서냐, 미국의 이익이냐

    그러나 미국은 매우 독특한 역설(paradox)에 부딪혀 있다. 맞설 상대가 없는 유일한 초강국인 동시에, 여러 적대적인 세력의 위협이 갈수록 커가는 그런 역설이다. 미국의 맞수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질투와 분노를 불러와 미국은 강한 적개심을 가진 여러 세력의 과녁이 됐다. 반미풍조는 프랑스와 같은 미국의 전통적 라이벌에 의해 부추겨지기도 한다. 전통적인 라이벌 국가들이 비록 미국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문제는 미국이 과연 올바르고 효과적인 대외정책을 펴느냐에 놓여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부딪치는 대외정책 안건의 핵심은 ‘무엇을 위한 패권인가(hegemony for the sake of what)’로 모아진다. 미국은 지구촌 구성원 다수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을 하느냐, 아니면 미국만의 이익을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느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은 사항을 따져봐야 한다.

    첫째, 무엇이 미국을 위협하는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감안하더라도 과연 미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안전한가. 반미 성향의 약소국들로부터 오는 치명적인 위협을 미국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이슬람권 12억 인구 중 다수가 미국을 적대 국가로 여기는 상황에서 미국은 장기적으로 이슬람권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가.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는가.

    둘째,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에 자리잡은 ‘글로벌 발칸(Global Balkans)’의 정치적 불안을 가라앉히려면 미국은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가(일반적으로 ‘발칸’은 분쟁지역 또는 세계의 화약고를 뜻한다. 브레진스키의 ‘글로벌 발칸’은 지리적으로 발칸반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중동과 카슈미르지역을 비롯해, 유라시아 대륙의 이슬람권 분쟁지역들을 뜻한다-역자 주).

    셋째, 미국은 유럽과 참된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가. 이제 미국의 맞수가 되지 않는 러시아를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속에 편입시킬 수 있는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지만 이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일본, 조용히 군사력을 키우는 중국, 그리고 북한 핵개발 위협으로 위기를 맞은 한반도 등 극동지역에서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보안 딜레마, 미사일이냐 테러냐】

    세계화 시대에 완벽한 국가안보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보다 휠씬 더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불안정(insecurity)의 정도가 얼마만큼인가에 달려 있다.

    많은 나라들은 여러 세기 동안 정치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겪어왔다. 미국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 부딪친 안보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미국에 가해지는 위협들은 딱히 드러나 있지 않고 은밀하게 다가오고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前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선택’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 다자주의 진영의 맹장으로 불리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그는 미국이 세계 안보를 위해 ‘공정한 경찰’이 될 것을 주문한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기 전, 미 국가안보 문제의 초점은 북한이나 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가(rouge states)’에 의한 미사일 위협 가능성에 맞춰졌다. 2000년 하반기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미 대륙을 겨냥해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시나리오가 2005년이면 현실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는 미사일 방어망(MD) 구축 전 단계인 레이더기지 건설계획을 발표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더욱 강화된 MD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MD계획에 앞서 미국의 허술한 안보장치들, 이를테면 공항안전장치나 핵발전소 보호장치 등을 보완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MD에 1달러를 쓴다면, 다른 보안장치 마련에 1달러를 쓰지 못하는 셈이다. MD가 공격무기와 방어무기 사이에 시너지(synergy)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MD 개발과 실전배치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의 기본적인 주장은, MD계획은 다른 보안장치들을 신중히 검토한 뒤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9·11테러에서 보았듯 불량국가의 미사일보다 미국을 더욱 심각하게 위협하는 무기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부딪친 보안 딜레마다. 이와 관련, 미국이 국가안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재정적·정치적 비용을 치러야 하며, 우방국들과는 어떠한 형식의 전략적 유대를 맺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이다.

    9·11테러는 국제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9·11이 세계를 바꾼 것이 아니라, 미국이 9·11테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세계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전통적인 집단 안보장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민주주의 우방국들과의 안보협력을 새로운 반(反)이슬람 전선으로 대체함으로써 미국의 장기적인 이해관계가 보장될 것으로 여긴다면 잘못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민의 관심은 테러리즘과 오사마 빈 라덴에 쏠렸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의 긴장상황을 ‘선과 악(good and evil)’의 대결로 보고 있다. 부시는 레닌의 말을 빌려 “우리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흑백논리적 세계관은 중립지대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부시의 일방주의적 대외 강공책은 미국을 외로운 성채 안에 갇힌 국가(fortress state), 또는 테러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요새국가(garrison state)로 만들어가고 있다. 최강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리더십을 보이려면 미국은 보다 공정한 경찰(fair policeman)로 거듭나야 한다.

    【‘악의 축’ ‘테러와의 전쟁’ 용어 잘못됐다】

    부시의 ‘악의 축(axis of evil)’은 잘못된 용어다. 미국민에게 ‘악의 축’은 9·11테러 이후 실감하게 된 테러의 위협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테러와의 전쟁’이란 전세계적 지지를 요구하는 전쟁인데, ‘악의 축’이란 부시의 용어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국가가 없다는 점이다. 둘째 ‘악의 축’이 21세기 지구촌의 긴장상황을 제대로 진단한 용어인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는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하는 데 도움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도 모호하다. 테러리스트란 부시가 도매금으로 매도하듯 말하는 ‘악한(惡漢, evildoer)’으로만 보기 어렵다. 부시는 테러리스트를 악마(satan)라고 비난하지만, 테러리스트는 나름의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다. 모든 테러행위 뒤에는 정치적 목적이 스며 있다. 테러리스트는 테러행위의 정치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반 시민이나 상징성이 강한 인물 혹은 목표물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국가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그들에게 테러는 일종의 전쟁 수단(means of warfare)이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단지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눈을 돌리고 테러행위 뒤에 깔려 있는 정치적 욕구(impulse)를 가라앉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테러와의 전쟁은 끝낼 수가 없다.

    이를테면 하마스를 없앤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들의 테러행위가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랍인의 반미 감정은 미국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에서 싹텄다. 또 이라크,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팔레스타인 등 이슬람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미국을 겨냥한 테러를 야기했다. 이는 영국정부가 북아일랜드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자 북아일랜드공화군(IRA)이 런던 중심가를 테러 목표지점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WMD)가 결합하는 것은 참으로 위협적인 구도다. 미국이 홀로 ‘악(evil)’이라는 추상적인 공식을 내세워서는 이 같은 결합을 막아낼 수 없다. 미국은 우방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영국, 프랑스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 비밀리에 도와준 바 있다. 미국은 또 이스라엘에도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눈짓을 했다(아마도 ‘눈짓’ 이상이었겠지만).

    공중납치당한 美 대외정책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비판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숨겨진 동기를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 문제에 대해선 딴전을 펴다가 이라크와 이란이 핵개발에 나선다며 떠드는 진짜 이유는 바로 중동지역에서 라이벌 국가인 이란과 이라크가 무장해제되길 바라는 이스라엘의 이해관계에 있다고 의심한다.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북한을 ‘악의 축’ 국가에 포함시킨 것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과 중동지역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지나친 집착을 가리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부시 행정부는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하려는 국가들을 ‘테러와의 전쟁’과 결부시킴으로서 미국의 안보위협 개념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대외정책은 ‘테러와의 전쟁’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정책이 외국 세력들에게 정치적으로 ‘공중납치(hijacking)’당하도록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비판적인 미국 내 반전론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 등 부시 행정부내 유대인 신보수주의자들에게 미 대외정책이 ‘공중납치’됐다고 비판한다. 미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반사이익을 주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역자 주).

    한편 이스라엘 샤론 수상, 러시아 푸틴 대통령, 중국 장쩌민 전 국가주석 등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를 자국의 필요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 팔레스타인, 체첸, 위구르 지역의 저항운동가들을 간단하게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었다.

    【‘악의 축’ 논리, 북핵 위기에 도움 안 돼】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의 결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먼저 부시 행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주장하듯 국제적 이슈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이슈들과 깊이 관련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적 테러리즘’이라 일컫는 문제는 엄밀히 보면 특정 지역의 문제에서 불거진 증오에서 비롯됐다. 마찬가지로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나 국가 테러리즘도 지역적인 사안이다.

    같은 논리로 북한 핵무기 문제도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 중국, 일본이 개별 또는 집단적으로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악의 축’ 접근방식은 북한 핵 위기를 푸는 데 도움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이 뒤늦게나마 북한을 다자주의적 대화인 6자 회담의 틀 안에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동북아시아의 평화에는 일본의 변화가 중요하다. 미국의 안보 보호령(security protectorate)인 일본이 아니라, 이웃나라 중국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군사력 앞에서 허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만큼의 군사력을 지닌 일본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미국은 매우 조심스럽게 일본에 군사력 증강을 권해야 한다. 여기서 ‘군사력 증강’이란 대규모 군사작전이 가능할 정도로 일본 육군을 키우자는 것이 아니다. 첨단 군사기술로 미국과 방어체계를 공유하면서 공군력과 해군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일본에 특수작전에 투입될 정예 기동타격군(elite strike force)을 양성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일본은 지구촌 평화를 위해 해외 파병을 결정할 경우, 이 기동타격군을 파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 군사력 증강은 자위(self-defense)로 군사적 역할을 좁혀놓은 일본 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미국, 일본, 중국의 국방교류를 강화하고 공식적인 삼각 군사협의회(triangular military consultation)를 정기적으로 소집해야 한다. 상대국의 국방전략에 대해 물어보고 안보와 관련한 서로의 걱정을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미·일·중 3개국은 상호신뢰를 쌓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3국은 보다 광범위한 동북아 지역 안보 이슈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이 군사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남한과 북한의 군 당국자들도 이 회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북한 핵 개발 문제는 결국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국가간 다각적인 협력을 통해서만이 평화적으로 풀 수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前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선택’

    북핵문제는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논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지난 2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차 6자회담의 참가자들.

    이 같은 지역 군사협의체가 없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인정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안보 우산에서 뛰쳐나와 핵개발을 비롯해 자국의 국방력을 키우기 위해 서두를 것이다. 그 둘,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사 행동에 나선다면, 드디어 한반도전쟁이 터져 동북아 전체가 위기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한편으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세차게 불기 시작한 민족주의 바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민족주의는 남북으로 갈려 대치하는 현실 탓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남한 민족주의자들은 친미적 용어로 민족주의를 설명해야 했고, ‘민족주의’는 반일 감정을 뜻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1950년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신세대가 한국의 정체성(identity)을 찾기에 나섰다. 다수 한국인에게 미국은 보호자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상황에서 이득을 챙기는 세력으로 비쳐지고 있다. 아직 남한에서 반미감정을 가진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미감정이 치솟는 현실은 미군의 남한 주둔이 논쟁적인 이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남한에서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북한 핵개발은 미국이 동북아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맺는 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재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실패한다면 북한은 물론 일본 등 주변국까지 핵무기가 확산되어 이 지역 긴장을 높일 것이다. 이럴 경우 사태는 심각해진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중·일·러가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선례를 남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차원의 안보협력 체제로 발전시키는 디딤돌을 놓게 될 수도 있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 열쇠 쥐었다】

    만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안보협력이 이뤄진다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발전적으로 개편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다(OSCE는 1973년 CSCE, 즉 유럽안보협력회의로 발족해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사이의 대화 창구를 맡았었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자 1994년 이름을 OSCE로 바꾸고, 나토 비회원국 지역의 안보협력을 맡아왔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뒤, 1999년 코소보전쟁 뒤에 치러진 일련의 선거들을 주관하는 등 유럽의 안보협력과 분쟁조정 역할을 맡아온 국제기구다-역자 주). 비록 주어진 역할에 한계가 있지만, OSCE의 지역적 범위를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넓히는 것은 국제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측면에서 시도할만한 작업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겠지만, OSCE를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대 개편해 유럽 안보체계를 넓힐 수도 있다. 나토 회원국을 늘려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한다면, 다음 단계로 나토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유라시아 전체의 집단안보 체제로 확대 개편할 수 있다.

    이렇게 조직될 새로운 안보체계는 나토 수준의 응집력을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유라시아 전체의 평화를 증진하는 중심기구로 자리잡아 회원국이 점차 늘어 인도 또한 가입하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동북아 안정을 위해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양해가 따라야함은 물론이다.

    국제적 협력관계 넓혀야

    정치·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주요 8개국 정상회담(G-8)’도 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받아들여 범위를 유라시아 전체로 넓혀가야 한다(현재 일본을 뺀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서방국가이다). 원래 G-7이었던 이 회담은 러시아를 받아들여 G-8이 됐다. 그런데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경제강국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인도를 제외할 이유가 없다. G-8이 두 국가를 받아들여 G-10으로 확대된다면, 세계 정치경제 현안을 유리시아 대륙 차원에서 다루는 기구가 출범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국제적 협력관계의 범위를 넓히고 제도화한다면, 한반도나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개선될 개연성이 더 높아진다. 대만의 경우 중국이 공산체제를 청산할 때 중국에 흡수통일될 수 있다. 그렇지만 ▲중국 본토와 대만을 잇는 경제협력 관계가 빠른 속도로 깊어지고 ▲중국 내부에서 정치적 개혁과 변화가 일어나고 ▲중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안보체계에 참여하게 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중국통일 타개책(formula)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처방도 대만·중국의 경우와 거의 비슷하다. 무엇보다 중국이 “남북통일은 중국에 이롭다”고 판단할 때, 아울러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잠재적 위협 세력이 아니다”고 판단할 때 한반도 통일은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앞서 살펴보았듯이 OSCE와 나토, G-10 등의 발전적 확대와 개편 과정을 통해 정치경제와 군사안보 측면에서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국제 협력체제를 구축해나간다면, 그리하여 중국을 그 협력체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한반도 긴장을 비롯한 동아시아 안보문제는 제대로 풀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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