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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⑤

YS, 노태우에 “대통령 하야운동 하겠다” 위협해 후계자 낙점

  • 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YS, 노태우에 “대통령 하야운동 하겠다” 위협해 후계자 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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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김대중씨 사건보다도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경우가 더 극적이었지요.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된 후의 일인데, 정동년 박노정 배용주 등 사형을 선고받은 세 사람 중 두 사람을 1981년 4월4일 아침에 사형 집행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올라와서 김수환 추기경 방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군부의 일원이던 유학성씨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을 땐데 마침 유학성씨가 가톨릭 신자여서 그 사람과 연결이 됐어요. 몇 차례 전화를 해봤지만 답이 영 신통찮아요. 그래서 “4월3일 이후에는 만날 필요가 없다. 3일 이전에 5분만 만나게 해달라. 이것은 국가의 존망과 관계되는 문제라고 말씀드려라”고 했더니 3일 오후 3시에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전두환씨는 제가 들어가자마자 노기띤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도대체 국가 존망과 관계되는 문제라는 게 뭡니까!” 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제가 “광주 사람을 하나라도 죽이면 이 나라는 망합니다”고 했더니 “뭐요?” 하며 눈을 부라리더군요. 여기에서 밀리면 안 된다 싶어 마구 들이댔습니다.

“광주 사태 때문에 지금 나라 꼴이 어떻게 됐습니까. 유럽에선 한국에 대해 경제봉쇄를 하려 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노조가 한국 물자를 싣지도 내리지도 못하게 하고 있잖아요. 전세계가 이렇게 나오는 마당에 또 사람들을 죽여보시오. 대한민국은 끝장이 납니다. 대통령, 셰익스피어 작품 좀 읽어보세요. 리처드 3세가 조카들을 죽인 후 그 유령들이 자꾸 나타나서 싸움도 못하게 괴롭히지 않습디까.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의 유령이 두렵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더 죽이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그러니까 전두환씨가 “그 얘기는 그만합시다”면서 딱 자르더군요. 그러고는 “기왕 만났으니 다른 얘기도 좀 합시다” 그러는 거예요. “약속한 5분이 지났습니다”고 했더니 “괜찮습니다” 하면서 30분쯤 더 대화를 나눴어요. 지난호에서 얘기한 돈 문제 같은 것을 화제로 해서요. 그래서 아, 이제 광주 사람들은 살았구나 했죠.

전두환씨는 저와 헤어지고 나서 오후 5시에 국무회의를 열어 사형 집행을 취소했다더군요. 저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있었어요. 청와대에서 나올 때 전 대통령이 “그 건은 비밀로 하시고 저한테 맡기세요”라고 했거든. 그러고 나와서 누군가와 저녁을 먹고 귀가하니 식구들이 들떠 있더라고요. 조금 전까지 광주 사람들이 집에 몰려와서 기다리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떠났다는 거예요. 그 분들이 김수환 추기경 방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데 유학성씨가 김 추기경한테 전화를 해서 “오늘 강 목사가 다녀간 후 국무회의를 열어 사형집행을 취소했다”고 했대요(1981년 4월4일자 신문들은 ‘5공화국 출범 이후 국민화합 차원에서 감형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박 : 역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씨도 그렇게 감형됐습니까.

강 : 상황이 비슷했죠. 다만 그 건은 제가 먼저 나선 게 아니라 미국이 주도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사관의 정보 책임자로 있던 케네디 퍼거슨이 저를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당신이 꼭 해야 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요. 허화평과 연결해줄 테니 전두환을 만나 김대중 석방 요청을 하라는 겁니다. 자기들도 애는 쓰고 있지만 미국인의 말이라 그런지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저더러 좀 나서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최규하 대통령 때부터 저더러 개신교를 대표해서 국정자문위원이 돼 달라고 사람을 보내왔지만 제가 거절했거든요. 퍼거슨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나중에 “강 목사가 자문위원을 수락하지 않았다고 무척 화가 나 있는 것 같으니 일단은 그걸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고민 고민하다가 사람 목숨 살리는 일을 놓고 내 명예만 고집할 수 있겠냐 싶어서 국정자문회의 김옥진 사무국장을 불러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어요. 첫째 전 대통령이 나와 한 시간 이상 독대하게 해달라, 둘째 언론에는 일절 보도되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무국장은 “매스컴은 우리가 다 컨트롤하니까 비보도를 약속할 수 있고, 독대는 들어가서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전 대통령을 만나 김대중씨 얘기를 하게 됐죠. 그랬더니 “목사로서 생명의 존엄을 지키려 하는 건 당연하다. 목사님이 두 사람(김대중·이희호)을 중매하고 결혼식 주례를 선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정에 사로잡혀 국가적 문제를 처리해선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정색을 하고 말을 받았죠.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두 사람을 중매한 일도 없거니와, 주례는 조향록 목사가 섰다. 그저 나와 친한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아니다. 광주 사태 때 외신기자들을 못 들어오게 했으면 몰라도 다 들어오게 해서 전세계 매스컴에 보도됐다. 그렇게 해놓고 이제 와서 김대중씨를 죽이면 어떻게 되겠냐”고. 그랬더니 화가 단단히 난 표정입디다. 그런데 뜻밖에도 “목사님 뜻을 잘 알겠다. 내가 생각을 좀 해볼 테니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대통령의 뜻이 궁금하다. 비밀을 꼭 지킬 테니 지금 얘기 좀 해달라”고 했더니 “(김대중을)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하는 거예요. “밖에 나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그렇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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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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