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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 新주류 70년대생

굿바이 386, 우리는‘쿨’한 세상으로 간다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문화판 新주류 70년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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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 新주류 70년대생

왼쪽부터 류승완, 임필성, 최동훈 감독. 이들은 영화광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혜성처럼 나타나 ‘다찌마와Lee’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을 만든 류승완 감독은 70년대생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는 다른 또래 감독들에 비해 사회참여활동을 많이 하는 편. 2년 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때는 삭발을 하기도 했고 지난 총선 때는 민주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류 감독은 자신의 성향과 영화를 연계해서 보지는 말라고 잘라 말한다.

“류승완을 지우고 영화 봐달라”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부시가 싫고 어린 소녀를 죽이고도 진심 어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내빼버린 미국군인이 싫은 거지, 무조건 미국이 싫은 건 아닙니다. 전 미국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잘 먹으며 미국 냄새가 물씬 나는 히피스러운 옷을 입고 다녀요. 제 사회활동은 거대한 이즘(∼ism)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그냥 제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옳은 것을 따라가려는 것뿐이죠. 그런데 이런 제 활동과 영화를 연계해서 바라볼 때는 정말 어이가 없어요.”

1973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그는 시대적인 억압을 심각하게 느꼈던 기억이 없다. 온양이 관광도시라 유신의 잔재였던 ‘통행금지’를 경험하지 않았고, 청소년 시절 대학가 근처에서 통학하면서 최루탄 가스를 맡고 흘린 눈물의 의미도 앞 세대와는 전혀 달랐다. 그에게 80년대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동시상영관에서 보던 람보와 성룡의 시대였다. 특히 성룡의 액션영화는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90년대 성인으로 첫발을 내딛자 이른바 ‘공공의 적’이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그는 절대적인 악과 치열하게 싸워본 경험도,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다. 그래서일까. 류 감독의 영화를 보면 절대적인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다. 또 시대의식에 얽매여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가 만든 영화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번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후 아라한)’은 ‘신나게 즐겨보라’고 만든 오락영화입니다. 그런데 ‘재미는 있으나 류승완식의 뭔가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게 되더군요. 그냥 류승완이라는 인물을 지우고 영화를 즐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처럼 저의 관심사와 환경이 다 변하는데 어떻게 똑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어요?”

류승완 감독 역시 영화광 세대로 다양한 영화를 섭렵했다. 하지만 그는 일찍 ‘액션’이라는 ‘전공분야’를 택해 파고들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은 수십 번씩 반복해서 봤다. 주로 리얼한 액션 장면들이었다.

“‘아라한’ 중반 이후에 나오는 액션장면이 지나치게 길고 늘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꼭 그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했던 건 아닌데. 예전부터 액션장면에 탐닉했던 게 무의식중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죠. 사람들은 비판하지만 전 그 장면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영화를 DVD로 다시 본다면 액션장면만 자꾸 돌려서 볼 것 같은데요.”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그들

최동훈 감독은 범죄 스릴러, 임필성 감독은 호러와 서스펜스 스릴러, 류승완 감독은 액션. 같은 70년대생이지만 이들은 좋아하는 장르도, 표현하는 방식도, 살아온 경험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들 70년대생 감독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영화광’이다.

90년대 초반은 시네마테크 운동(기억해야 할 유수한 영화문화 유산들을 공유하고 보존하려는 운동)이 태동했던 시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비디오테크’였다. 90년대 들어 비디오가 보편화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문화학교 서울’ 등 대학내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전 명화들을 구해 비디오테이프로 ‘굽고’ 자막을 만든 후 돌리거나 모여서 보곤 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70년대 초반생들은 비디오테크 운동을 통해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고전명화들을 섭렵할 수 있었고, 이중 상당수가 ‘영화광’이 됐다.

90년대 중반 이후 복사 테이프가 아닌 영화필름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시네마테크 운동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02년 전국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구성했고 그해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한 후 지금까지 다양한 포럼 형식으로 고전명화들과 제3세계 명화를 상영하고 있다.

“시네마테크 운동은 70년대생 영화감독들이 영화광이 될 수 있었던 토양이었죠. 이들은 지금도 포럼 기획이나 영화 선정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거장 감독에 대한 강연도 합니다. 현재 시네마테크 운동의 주역 역시 70년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한편 70년대생 감독들은 대부분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임필성 감독은 “영화광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 작성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충무로의 속성상 시나리오를 직접 써야 빨리 쉽게 데뷔할 수 있는 점도 물론 크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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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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