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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유럽기행

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별궁 상수시

‘哲人王’ 손길로 빚어낸 로코코 건축미의 극치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별궁 상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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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대제의 여름별궁 상수시

대왕은 뛰어난 플루트 연주자였다. 궁전 앞에선 대왕이 플루트 연주자였음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악사가 플루트를 연주한다.

상수시로 가기 위해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은 베를린은 몰라보게 깔끔해져 있었다. 파리나 런던만 보고 온 사람이라면 어수선하다고 하겠지만. 통일 직후인 1991년 여름, 두 번째로 이 도시를 찾았을 때만 해도 연방정부 건물들을 새로 짓느라 곳곳에 크레인이 서 있었고, 도로와 철길을 닦느라 여기저기 파헤쳐져 어지러웠는데 그런 광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래 전 분단 시절,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었던 베를린에서 최근 10여년 동안 가장 변화가 많았던 곳은 낡은 건물들을 헐고 새로운 건물이 대거 들어선 동베를린 지구다. ‘그곳에 가면 철학자 아니면 우울증 환자가 된다’던 말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그 중에서도 프로이센 제국이 온 정성을 다해 조성한 운터 덴 린덴(‘보리수 아래’란 뜻) 거리가 시작되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밤이 되자 조명을 받아 환히 빛나는 게 마치 ‘베를린의 봄’을 말해주는 듯했다. 다시 시작하는 베를린, 다시 하나된 독일을 확인시켜주는 그 광경이 ‘왜 우리는 아직도 저러지 못하는가’ 하는 아쉬움으로 다가와 분단국에서 온 여행자를 울적하게 만든다.

분단 전까지만 해도 변두리에 지나지 않던 서베를린은 여행자들이 머물기 좋은 지역으로 변했다. 값싼 호텔과 레스토랑이 대거 들어선 데다 교통이 편리해서다. 교통의 중심지는 줄로기셔가르텐(동물원) 주변. 독일 고속철도 ICE는 물론 지상철(S-Bahn)과 지하철(U-Bahn), 그리고 수많은 시내버스가 이곳을 기점으로 들고난다.

줄로기셔가르텐 역에서 열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포츠담은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찾는 사람은 무척 많았다. 주위에 상수시 궁전 등 볼 것이 많아서 그러할 것이다. 역에서 내린 사람들 대부분은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정류장에 줄을 섰다. 그렇게 20분을 더 달리면 상수시 궁전에 닿는다.

버스가 멈춘 곳은 상수시 궁전 앞. 맞은편에 체칠리엔호프 궁전이 있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수시행이었다. 체칠리엔호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전후 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의 스탈린 등 세 거두가 만나 일본에 항복을 요구하고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 ‘포츠담 선언’이 채택됐던 곳이라 우리로선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장소다.



우아한 로코코식 인테리어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를 뚫고 궁전 안으로 들어가 만난 건물은 검은 기와지붕과 그 아래의 연노랑 벽, 거기에 촘촘히 박힌 아래위로 길다란 유리창, 지붕 한가운데 볼록 솟아 있는 작은 녹색 돔 등이 화사하면서도 안온한 느낌을 줬다. 벽을 장식하려 아담을 비롯한 여러 인물상을 역동적으로 묘사해 다이내믹한 인상을 줬으나 위압적이진 않다. 건물이 높으면 위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낮은 대신 좌우로 아주 길었다. 무려 97m나 됐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궁전 안을 보고 정원 구경에 나서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먼저 내부 관람을 위한 입장권을 샀다(건물 밖은 무료 입장). 그런데 내부는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알고 보니 30분 단위로 20여명씩 입장하되 관람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건물의 손상이나 사진촬영을 막기 위해서인 듯했다.

가이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만 들려줄 뿐 질문이 없는 한 영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보다는 자국민과 이웃 프랑스인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보여줬다. 내가 찾았던 시간에도 동양인의 용모를 한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아직은 지명도가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포츠담은 옛 동독 땅이라 통일을 이룬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다.

가장 먼저 안내된 원형의 ‘대리석 홀’은 천장이 아주 높고, 바닥에는 기하학적 문양과 식물 문양이 잔잔하게 새겨져 있었다. 벽을 지탱하는 기둥 또한 머리 부분이 식물 형상인 코린트식이었다. 거기에 타원형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려진 샹들리에와 조각들이 어우러져 여행객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여성적인 우아함을 드러내는 로코코 스타일이 전체 인테리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로코코의 고향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실내장식이 대표적인 예다. 그것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로 퍼져나가 실내장식은 물론 건축과 조각에까지 응용됐던 것인데, 가볍고 정교하며 우아하고 고상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로코코란 용어 또한 인조동굴을 장식하는 데 쓰인 조가비를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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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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