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과 한국의 신문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심심치 않게 실린다. 라이스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마치 대화에 바탕을 둔 유연한 외교를 펴는 양 기사를 쓰고 있다. 기사 제목도 ‘외교가 작동하고 있다’든가 ‘라이스는 외교를 즐긴다’는 투다.
틀린 말은 아니다. 라이스는 ▲국무장관 취임 첫 나들이로 유럽을 방문, 우방국들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 3월엔 유럽 국가들의 이란 핵 협상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다자주의적 외교의 물꼬를 텄고 ▲지난 4월엔 고수하던 국제형사재판소(ICC) 거부 태도를 접고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ICC의 사법권을 승인하는 유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으며(기권) ▲지난 9월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유엔 개혁을 부르짖던 목소리를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뜨렸다.
미 언론들이 라이스를 긍정적으로 본 결정적 대목은 6자회담이다. 라이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보다 이란 핵 문제를 더 큰 위협으로 본다”면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 결과는 지난 9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에너지 지원과 안전보장 등을 약속하겠다”는 메시지로 나타났다. 이런 대북협상 자세는 “북한에겐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고, 주고받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며 평양 당국의 백기 투항을 기다리는 듯했던 1기 부시 행정부(2001∼04)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라이스의 외교방식에 대해 이미 몇 가지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변형외교’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외교다. 슈퍼 파워 미국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막을 내린 뒤 유일 초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옛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자비로운 패권(benevolent hegemony)’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이념을 퍼뜨리겠다며 사명을 천명하는 듯하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는 국무장관의 역할을 정원사에 비유했다. 날마다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걸림돌이 되는) 잡초를 뽑고 누군가가 과일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그러나 라이스는 단순한 정원사가 아니라 정원설계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모습이다. 다시 말해 현상유지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변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는 게 라이스 측근 인사들이 미 언론에 흘리는 말이다.
“변형외교로 세계를 바꾼다”
미 언론은 그런 라이스의 힘이 부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에서 비롯한다고 분석한다. 라이스는 부시의 최측근이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밀착관계는 1970년대 닉슨 대통령-키신저 국무장관 이래 처음이라고들 한다.
라이스는 1기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낼 때도 부시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미 언론으로부터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정책조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였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이끌며 21세기의 첫 전쟁이라 할 아프간 침공, 이라크 침공 등 주요 현안들을 다뤘지만, 행정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카리스마와 파워에 밀렸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객원연구원 데이비드 로스코프가 미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쓴 ‘세계를 움직이는 위원회(미 국가안보회의)의 내부’라는 글을 보면, 체니 부통령은 ‘다른 어느 NSC 위원보다 힘이 센 800파운드짜리 고릴라’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NSC 참석자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일을 밀어붙이는 막무가내형 인물’로 묘사된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노선을 대표하는 체니-럼스펠드 라인은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걷는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라인과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라이스 안보보좌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1기 부시 행정부의 강온파 힘겨루기에서 라이스 보좌관은 중립 지대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뒤집어 말하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 적극적인 역할을 맡기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라이스는 파월과 달리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도 아니다. 결국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기 부시 행정부에서 라이스는 조정자가 아닌 외교정책 결정 당사자로 거듭난 것 같다. 한편으로 라이스는 2008년의 차기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대통령후보 또는 부통령후보로서 말이다. 그의 맞수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꼽힌다. 지난 10월엔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가 쓴 ‘콘디 대(對) 힐러리 : 다음 대선 경주’라는 책도 출간됐다(‘콘디’는 라이스의 애칭). 그러나 라이스 본인은 인터뷰에서 대선후보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손을 내젓는다.
꼭 1년 전인 2004년 11월16일 라이스는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 라이스가 앉았던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는 그의 직속 부하이던 스테판 헤이들리가 맡았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차관 후임엔 미 무역대표부 출신으로 중국통인 로버트 죌리크 국무차관이 임명됐다. 그러나 2005년 1월 라이스 국무장관의 의회 인준은 매끄럽지 못했다. 미 상원 외교위에서 찬성 16, 반대 2(민주당 대통령후보이던 존 케리, 그리고 바버라 박서)로 통과했으나, 바로 뒤이은 상원 인준에서는 반대가 13표나 나왔다(찬성 85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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