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랄프 깁슨(Ralph Gibson·1939∼ )은 비근한 대상을 전혀 생각지 못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과감한 구도, 독특한 앵글로 포착한 이미지는 피사체로부터 환기되는 무언가와 작가의 내면성을 결합해 하나의 은유적인 이야기를 표현한다.
깁슨이 널리 알려진 건 ‘흑의 3부작’으로 불리는 ‘몽유병자’ ‘데자뷰’ ‘바다에서 보낸 나날’을 통해서다. 초기 작품에서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드러내던 그는 이때부터 화면의 선택적 단순화로 주제를 부각시켰다. 강한 흑백 대비와 예기치 못한 앵글로 포착한 대상은 간결하고 대담하며 신비감이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