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오세훈

“내가 출마한 건 ‘특혜’아닌 ‘희생’”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2006-04-27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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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반 동안 국가경쟁력 강화, 리더십 연구에 미쳐 있었다
    • 세일즈 포인트 문화 개발해 고급 서울 만든다
    • 나는 강북의 아들, 가난을 알고 자랐다
    • 진정한 ‘오세훈법’은 수도권대기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
    • 한나라당, 깨끗해졌지만 아직 갈 길 멀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오세훈
    “최대한 말똥말똥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할 테니까 사진촬영은 처음 3분 동안만 해주세요. 너무 피곤해서 몸이 자꾸 처지거든요.”

    4월14일 오후 6시. 여의도 선거사무실에서 만난 오세훈(吳世勳·45)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4월9일 뒤늦게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든 뒤로 강행군을 하고 있는 탓이다.

    -잠은 잘 잡니까.

    “열흘째 4시간씩 자면서 버티고 있어요.”

    -이런 강행군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요.



    “처음에 정치를 그만둘 때 정치의 비정함, 냉정함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들어오니까 다시 그런 생각이 나네요. 여자가 첫애 낳고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다시는 애 안 낳겠다고 했다가 다시 하나 더 낳아볼까 하는 심정 같은 거냐고 누가 그러던데, 비슷한 것 같아요.”

    -혹시 ‘잘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까, 솔직히?

    “선거 국면이라 말을 잘해야 하는데…. 솔직히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그는 전날 밤,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당내경선에서 맞붙게 될 홍준표 의원, 맹형규 전 의원과 처음으로 시장후보로서의 자질과 공약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는 홍 후보와 맹 후보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지만 강금실 전 장관을 내세운 열리우리당의 이미지 감성 정치에 편승한 것일 뿐 정책이나 자질 면에선 미흡하다”는 두 후보의 공세에 그는 “이미지가 좋다고 해서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감히 이미지도 좋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맞섰다.

    -경선 후보들과 첫 토론을 한 건데요.

    “각오하고 나갔지요. 홍 의원님 스타일이 워낙 공격적이니까요. 예상했던 만큼 심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공격을 예상했습니까.

    “최근 제 사생활과 관련해, 어떻게 보면 대꾸조차 하기 싫은 얘기를 공개적으로 많이 하셨잖아요. 그런데 (토론에선) 현명하게 자제하시더군요.”

    홍준표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다른 후보가 강남 헬스클럽에서 선탠을 하면서 이미지를 가꿀 때 홍준표는 밤새워 서울 시정을 연구했고 피눈물을 흘리며 대여(大輿)투쟁을 해왔다”며 “하루 빨리 국민을 현혹하는 ‘이미지 전쟁’의 광풍이 멎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오 후보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오 후보측은 직접적으로 응수하지 않았다. 오 후보가 강남의 헬스클럽 회원권을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인공선탠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홍 후보의 이 같은 발언 이후 그가 갖고 있는 헬스클럽 회원권 가격, 그와 부인이 소유하고 있는 고급 승용차가 네티즌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토론에서 할 말은 다 했습니까.

    “토론회라는 게 진득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진의의 반도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

    “결코 제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토론에서 한 시민 논객이 “뒤늦게 경선에 참여한 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한나라당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고 물었죠. 여기에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고만 짧게 대답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더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아요. ‘뒤늦게’ 경선에 뛰어든 이유가 정말 뭐죠.

    “다시 나오면서 덫에 걸린 것 같은 느낌, 이 순간에 나서지 않으면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승패에 생각이 미치더라고요. ‘그럼, 나가면 (당선) 되는 거냐.’ 사실 예측불허였어요. 여론조사에서 이렇게까지 지지율이 높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그러다 조금 지나니까 승패와 무관하게 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선 중심의 젊은 의원들이 ‘나가봐라’ ‘되든 안 되든 봉사하라’고 권유해 나를 필요로 하는 실체를 접하면서부터죠.

    (시민 논객이) 그런 과정을 다 이해하고 하신 질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나를 비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특혜를 받고 들어왔다고 생각하는구나.’ 정치를 아는 분이면 그런 질문은 안 하셨을 거예요. 당내 경선을 2주 남겨두고 뛰어들면서 당선될 거라고 확신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당 밖에서 아무리 지지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전 오히려 희생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특혜라고 말씀하시니 선뜻 와 닿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내 경선 방식이니 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을 잘 모르잖아요. 그런 상황에선 충분히 ‘특혜’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원, 대의원, 일반 시민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의 반영 비율이 복잡해요. 여론조사에서 제 지지도가 높게 나오고 있지만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닌 거죠. 당 밖의 일반 시민이 투표에 참여할 확률도 낮고요. 그때(지난해 서울시장 출마 포기 당시)나 지금이나 (경선 방식이) 결코 제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국가경쟁력 강화 연구

    -그때나 지금이나 불리한 건 마찬가진데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요.

    “앞에서 말한 그러한 경로를 거쳐 제가 갑자기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예요. 과거엔 제가 능동적으로 출마, 불출마를 결정했다면 이번엔 수동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죠.”

    -‘100분 토론’에서 홍준표 의원이 말한 것처럼 시장이 등 떠밀려서 나오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게 좀 심한 표현이라면, 의지가 있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누군가가 힘껏 밀어줘서 나왔다고 봐야 하나요?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시장을 안 한다고 생각하고, 한발 떨어져 시민의 처지에서 시정을 바라보는 느낌이 시장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시정(市政)을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어요. 리더의 역할이라는 건 큰 틀에서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고, 특히 행정조직에서 리더가 할 일은 우선순위의 부여라고 생각해요.

    한정된 예산을 갖고 어떤 정책에 더 주안점을 둘 것인가 하는 건 리더의 가치체계, 시장이라면 시정 철학, 구상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거든요. 그렇다고 볼 때 일찌감치 시장이 되려고 준비한 사람과,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정을 바라본 사람의 가치체계는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시정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봐요. 감히 그렇게 보고 싶은 거죠.”

    그는 “지난해 8월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는 책을 펴내기까지 1년 반 가량 국가경쟁력 강화와 리더십 연구에 미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방행정이 중앙행정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고,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시정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무런 의지도 없는데, 등 떠밀려 나온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2004년 1월, 한나라당의 인적 쇄신을 주장하며 솔선수범해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자 홀연히 정계를 떠났는데, 그때 이미 서울시장 자리를 마음에 뒀던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억측이다”고 일축했다.

    “그땐 서울시장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렇게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전략적으로 살지는 않아요.”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던 2004년 당시 부인 송현옥 교수(세종대 연극비평)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시장 선거 출마 계획을 부인했다.

    “그런 말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도 우리 부부끼리 얘기했지만 우리가 뭐가 아쉬운 게 있겠습니까. 시장이나 대통령도 몇년간 고생하다 결국 칭찬보다 욕을 더 많이 얻어먹는 자리 아닙니까. 남편이 사람들이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좋은 이미지 속에 물러났으니까 앞으로도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야기다.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 정치인의 표적이 될 공직에 나설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였다면 그로부터 2년 뒤 그가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부인은 반대했을 것이다.

    “반대했죠. 집사람이 반대하는 건 딱 한 가지 이유예요. 제가 정치를 하는 동안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은 걸 아는 사람이라 그걸 원치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그렇고.”

    그는 딸만 둘 뒀다. 스물넷, 남자치고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터라 두 딸 모두 대학생이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둘째딸은 그가 국회의원일 때, 홈페이지 모니터 역할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글로 남기기도 하며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이번엔 반대했다고 한다.

    -딸들도 내켜하지 않았다죠. 요즘은 어떤가요.

    “격려해주죠. 함께 분개하고, 함께 고민하고.”

    “절대 무리하지 않아요”

    오 후보가 시장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밝힌 대표적인 공약은 ‘강북도심 부활 프로젝트’와 ‘잃어버린 수명 3년 되돌리기’다. 강북도심 부활 프로젝트의 핵심은 청계천을 네 구역으로 나눠 문화·관광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 ▲남대문~경복궁 구역은 역사·문화 거리 ▲명동~인사동 구역은 관광·문화 거리 ▲세운상가 주변은 녹지 공간 ▲국립극장과 동대문 구간은 수변 공원을 포함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임기 중 구도심 상권의 매출을 2배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잃어버린 수명 3년 되돌리기’는 서울의 오염된 대기 환경을 일본 도쿄 수준으로 회복시켜 시민의 수명을 3년 더 연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후차량 조기 폐차, 천연가스 차량 교체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 후보는 이 같은 핵심 공약 외에도 이틀에 한 번씩 추가로 공약을 내놓았다. 지방정부의 투명성 제고와 반(反)부패 시스템 활성화 방안을 담은 ‘열린 서울 만들기’ 등이 그것이다.

    -공약이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발표된 건 전체 공약의 절반도 안 됩니다. 다른 후보들이 정책 없이 이미지만 내세운다고 하기에 그게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하나씩 발표하는 건데 이제 마무리하고, 경선 전에 종합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내놓아야죠.”

    -급조된 거 아닌가요.

    “절대 아니에요. 제 성격이 원래 절대로 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선거를 쭉 보면, 후보들이 튀는 공약으로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보여요. 그러나 기존의 정책을 살찌우고, 깊이 있게 해서 그것이 잘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아요. 무슨 일이든 밖에서 볼 땐 남보다 더 잘할 것 같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다 한계가 있거든요.

    물론 청계천 복원 같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도 가끔 나오죠. 하지만 지금 저한테서 그런 건 불가능해요. 고백하건대 지난해 8월에 책 내고, 그로부터 11월 중순 불출마 의견을 밝힐 때까지 서울시정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과 구상이 쌓여 있어요. 하지만 다시 한 4개월 공백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 열흘 만에 어떻게 세부적인 공약이 나오겠습니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기존의 정책이 확대 심화 발전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저의 한계와 능력으로서는 가장 바람직하죠. 그래서 급히 시정개발연구원의 자료들을 입수해서 그중 내 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책을 따져보고, 하나하나 발표하는 거죠. 공약을 날조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러지 않고 차근차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의원을 전혀 만나지 못했어요. 오로지 정책 구상만 하고 있습니다. 정책의 얼개를 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죠. 저 나름으로는 정도(正道)를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어떻게 하겠어요? 더 이상.”

    가장 큰 화두는 문화

    -기존의 정책을 이어간다고 해도 우선순위가 있을 텐데요. 오 후보가 생각하는 서울시정의 가장 큰 화두는 뭡니까.

    “전 문화입니다.”

    그가 바지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불빛이 반짝였다. 그가 전화를 받느라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높임말을 쓰지 않는 걸 보니 가까운 사이인가 보다. 그의 입에서 “만만치 않네, 진짜”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정말 만만치 않은가 보다.

    “어디까지 얘기했죠? 아, 문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많은데, 무슨 문화냐며 거부감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달라질 거예요.

    문화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가 문화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시민들이 즐기는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세일즈 포인트로서의 문화죠. 세일즈 포인트로서의 문화라는 건 쉽게 말해 할리우드 문화 같은 겁니다. 할리우드 문화에 젖은 저개발국가 사람들은 미국 것이라면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한류가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오세훈 전 의원. 그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시정을 펴고 싶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남아 사람들이 동대문 패션몰에 물건을 사러 오지만, 지금의 동대문운동장이나 사람이 북적대는 주변 거리의 풍물만으로는 물건을 비싸게 사고 싶은 생각이 안 들죠. 옷에서 예술성이 느껴지지도 않고요. 거기에 바로 브랜드 파워, 선진도시 서울의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한국 상품을 같은 재질의 다른 나라 상품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토대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세일즈 포인트로서의 문화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내야 해요.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감히 저는 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을 가진 후보가 저 말고 있을까요?”

    그는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문화 정책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할 대안도 제시했다.

    “‘서울시 문화도시 10개년 계획’이라는 게 있어요. 다 하드웨어 중심이에요. 어디에 도서관을 만들고, 오페라 하우스를 만들고 하는. 그러나 실제로 더 중요한 건 콘텐츠예요. 지금 서울문화재단이 예산의 많은 부분을 공연 예술 지원금으로 쓰고 있는데, 그 상당부분을 서울시민의 평균적인 문화 눈높이를 향상시키는 데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평균적인 안목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있어요. 한강변이건 안양천변이건 중랑천이건 언제 가더라도 그곳에서 크고 작은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마임을 하는 사람, 그 누구라도 늘 접하게 하는 거죠. 청계천에서 1인 아티스트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을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해서 어디서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거예요. 서울시민에게 문화 마인드를 심어주는 거죠.”

    예술영화 즐기는 초저녁 문화

    그는 일부 마니아층 사이에 겨우 소비되고 마는 수준 있는 예술영화 필름을 서울시에서 구입해 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감상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고품격 필름이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그걸 구입해 동네 문화예술회관에서 시민들이 싼 값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저녁문화라는 게 술 먹고 노래방 가는 것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집 가까운 곳에서 수시로 상영되는 예술영화를 가족이 함께 나가서 보면 새로운 초저녁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죠. 방과 후 교실에 작은 스크린을 설치하면 어떻습니까. 동네 사람이 영화를 본 뒤에 가볍게 토론하고 헤어지는,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을 서울에도 뿌리내려보자는 거죠.

    저소득층에는 문화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해서 서울문화재단 예산으로 지원하는 공연을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공연예술에 대한 저소득층의 안목도 올라가겠죠.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시민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야 비로소 문화 서울, 문화 한국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브랜드 파워가 생기고, 품격 있는 문화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상업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거죠. 이게 피드백이 생기기 시작하면 무섭습니다.”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값비싼 물건을 구입하면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건 물건 자체가 주는 만족감보다 뉴욕과 파리라는 도시의 문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샀다는 느낌 때문이다. 오 후보는 서울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시민의 문화 수준을 높여 도시를 고급 브랜드로 만들고, 그것이 결국 도시민의 경제적인 소득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걸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면 할 수 있겠어요? 결국 즐기는 문화와 세일즈 포인트로서의 문화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시너지를 발휘하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처음에 발표하신 ‘강북도심 부활 프로젝트’와 연관이 되는 거죠.

    “처음부터 문화, 문화 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어서 일부러 시장 매출과 연결시키고, 강북도심 상권 부활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거죠. 그런데 홍준표 의원은 자꾸 청계천 중심의 프로젝트라는 것만 갖고 ‘내가 했던 구상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만들어놓은 것이다’라고 공격해요. 천만의 말씀이죠. 모르긴 몰라도 홍 의원 머릿속이나 가치관으론 이런 개념이 나오질 못해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이 앞으로 가꿔갈 서울의 미래상이라면,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서울의 문제점은 뭐라고 봅니까.

    “강남·북 불균형이죠. 강남·북 격차해소, 즉 주거·교육·문화 격차를 줄이는 게 이번 선거의 화두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갖고 있나요.

    “답답한 게, 결국은 예산 문제예요. 예산을 어디서 쥐어 짜내서 여기에 갖다 쓰는가 하는 문제죠.”

    -현재 강남에 사시죠.

    “자랄 땐 강북에 살았죠. 20대 초반부터 강남에 살았어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강남, 강남 하는 것 같나요?

    “교육 격차, 주거 환경 격차, 문화 격차 때문에 좋아하는 거 아니겠어요?”

    -대부분의 시장 후보가 ‘강북 살리기’를 내세우고 있는데,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요.

    “꾸준히 노력하면 되죠. 돈을 많이 투자하면요.”

    -이명박 시장은 ‘뉴타운 사업’을 그 해법으로 내놓았고, 오 후보는 그걸 이어받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어요.

    “광역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썼죠.”

    -그것이 강남·북 불균형 해소에 주효할 것이라고 보나요?

    “그렇죠. 강북 주거환경을 개선할 테니까요.”

    -환경단체에 몸담고, 오랫동안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셨으니 더 잘 아시겠지만,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뉴타운 사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또 뉴타운 사업을 시행하는 데는 환경 문제나 재산권 문제 때문에 갈등이 많이 빚어지고 있고요.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갈 건가요.

    “사실 뾰족한 해법이 없어요.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국민이 모여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죠. 더군다나 수도 서울에 전 인구의 4분의 1이 모여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건데, 어떻게 다 가질 수 있겠어요.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죠.”

    -그렇게 하면 더 공격을 받을 텐데요. 환경을 아는 사람이 그런다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을 거예요.”

    -포기할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인가요?

    “양보해야 할 부분은 양보해야 한다는 거죠. 양쪽이 다.”

    “전, 강북의 아들이에요”

    -강남 이미지가 강북에서 표를 얻는 데는 불리할 수도 있겠어요.

    “제가 지금까지는 이런 얘기를 굳이 안했는데, 다른 후보 같으면 아마 브랜드화 하겠지만. 전 사실, 강북의 아들이에요. 우리 세대가 다 강북에서 살았죠, 철들 때까지는. 강남이 이후에 생겼으니까. 제가 굉장히 어렵게 자랐어요. 사람들은 제 얼굴에 그늘이 없다고 해요. 그래서 유복하게 자랐을 거라고 보는데, 저 가난을 잘 알고 자랐어요. 아버님이 건설회사에 근무하셨는데, 월급이 몇 달씩 안 나오는 건 다반사였어요. 그럼 식구들이 내리 굶는 거예요. 라면을 끓여 먹거나. 제가 살았던 곳이 삼양동이에요. 지금은 재개발 재건축으로 밀집 주거공간이 됐지만, 제가 자랄 땐 무허가 판자촌이었어요. 거기서 호롱불 켜고 살았다면 믿겠어요? 산동네에서.”

    -거기서 언제까지 살았죠?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까지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올라와서 살았어요. 저, 가난에 대해서 잘 알아요.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어 먹고 살았어요. 저랑 같은 학교 다니던 아이들은 저희 집 아래 좋은 집에서 살았어요. 전기도 들어오는. 그 상대적 박탈감이 어떤 건지도 잘 알아요. 견디다 못한 어머님이 제가 중학생 때부터 부업(수예점)을 시작하셔서 그나마 형편이 조금 폈죠. 그런 성장기의 배경이 여러 정책을 구상하는 데 녹아들 겁니다.”

    -경선 출마 선언 후 이명박 시장을 만났죠. 어떤 얘기를 나누었나요?

    “열심히 하라고 하시죠.”

    오 후보는 2002년 지방선거 때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그는 경선 출마 선언 이튿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을 차례로 접견했다. 일부 언론에서 박 대표는 그에게 냉담했던 반면, 이 시장은 호의적으로 덕담을 건넸다는 보도가 있는데, 그는 정작 말을 아꼈다.

    -이 시장으로선 좀 남다른 감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염려도 되고.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죠. 왜 걱정이 안 되시겠습니까.”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 하시는군요. 이명박 시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전형적인 일꾼이죠.”

    -시장으로서의 업적을 평가한다면.

    “숨 가쁘게 일해오셨잖아요. 제 평가가 중요한가요? 저도 남들이 보는 것 정도의 감밖엔 없어요.”

    -그래도 시장이 되면 이명박 시장이 마련해놓은 정책 중에서 이어받을 건 이어받고, 아니다 싶은 건 재검토해야 할 텐데요.

    “저의 시정 철학 자체가 큰 틀에서 변화를 주겠다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모든 일에 그래요. 큰 틀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주는 건 아주 특수한 경우죠. 서울시는 매우 우수한 공무원 조직이에요. 서울시정개발연구원도 썩 괜찮은 연구조직이고요. 그러한 연구조직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시청 공무원들이 현장에 접목을 시켜보고 피드백을 보내면서 진행되어 온 서울시 정책을 시장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뜯어고치려고 하는 건 오만한 자세인 것 같아요. 만일 제가 시장이 되면, 한 1년은 묵묵히 시정을 파악할 겁니다. 정치권에 들어가서 그랬듯이. 제가 국회의원일 때 처음 1, 2년은 열심히 봤어요. 그런 다음에 시동을 걸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이끌어냈던 거예요.”

    구김살 없는 건 어머니 교육열 덕분

    -부모님 중 누굴 더 닮았습니까.

    “전 아버지하고 똑같아요.”

    -최근 동생분도 화제가 됐죠.

    “네.”

    그는 1남1녀 중 맏이다. 최근 동부그룹 역사 37년 만에 처음 배출된 여성임원 오세현 상무가 그의 여동생이다. 오 상무는 한성여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1999년 말 귀국, LG CNS 컨설팅사업본부, 종합보안업체 ㈜인젠 등에서 활약했다.

    -부모님 교육열이 대단하셨던 모양이에요.

    “남달라요.”

    -좀 구체적으로 얘기하면요.

    “제가 구김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건 사실 엄마 덕분이에요. 어머님이 저희를 참 어렵게 키우셨어요. 아버님이 썩 그렇게 활달하거나 융통성이 좋은 분이 아니시거든요. 저하고 좀 비슷하세요. 내성적이죠. 월급 안 나오면 식구들이 그냥 굶어야 했어요. 어디서 변통해오거나 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어머니로선 속 터지는 일이죠. 그렇게 어렵게 자라면서도 저희 남매에게 가난 때문에 생긴 콤플렉스가 없는 건 어머니 덕분이에요. 정말 구김살 없이 키우려고 노력하셨어요. 저희와 관련한 것, 특히 학교에서 하는 것은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다 해주고야 마셨어요. 그게 결국은 교육열이죠.”

    -법대에 들어간 건 본인의 뜻이었나요? 사법고시도?

    “아버님이 법대를 나오셨어요. 사법고시는 안 보셨지만. 그런 점에서 한이 있으셨겠죠. 그게 자연스럽게 제게 투영된 것 같아요.”

    그는 1984년 고려대 법대 대학원 시절 사법고시(26회)에 합격했다. 사법고시 26회면 사법연수원은 16기여야 맞는데, 그의 경력을 보면 17기 수료로 되어 있다. 사법연수원 16기로 입소했으나 콩비지를 먹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람에 시험 한 과목을 못 봐서 결국 동기들이 실무수습을 받을 때 연수원에 다시 들어갔다. 이후로 그는 콩비지를 먹지 않는다.

    36개월간 군법무관으로 지낸 뒤 1991년,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그가 유명세를 탄 건 1994년 인천의 한 아파트 일조권 문제로 대기업과 맞서 13억여 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낸 뒤부터다. 국내에서 아파트 일조권이 인정된 첫 판결이었던 만큼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환경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첫 해에 부평 산곡동 주민들과 인연이 닿았어요. 워낙 큰 사건이라 저한테는 상담만 받고, 직접 소송을 맡기는 건 연륜 있고 유명한 분에게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분들이 저를 감동시켰어요. 그 아주머니들 말씀이 연륜 있는, 이른바 비싼 변호사들에게 갔더니 의지가 없어 보였대요. 그런데 전 ‘될 것 같습니다’ ‘판례는 없지만 한번 싸워볼게요’라고 하니 제 열정에 맡겨보기로 한 거죠. 2년3개월간 소송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환경단체에 도움을 받으러 갔고, 그러다 자원봉사도 하게 됐죠.”

    한나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오세훈

    “시민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야 비로소 문화 서울, 문화 한국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브랜드 파워가 생기고, 품격 있는 문화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상업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거죠.”

    사건과 소송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가 ‘스타 변호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2000년 정계에 입문하게 된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렵게 느꼈던 국회의 벽을 직접 뚫고 들어가 환경 법률을 정비하자는 것이었다.

    -국회에 들어가 환경노동위원으로 활동하긴 했습니다만 오히려 두각을 나타낸 건 정치개혁입법 쪽인 것 같아요.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선거법·정치자금법도 그렇고.

    “뉴스에 나온 게 그쪽이 많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환경노동위원회 관련 법안을 더 많이 냈어요. 대표적인 게 수도권대기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이죠. 이번에 내놓은 ‘잃어버린 수명 3년 되돌리기’ 공약은 그 법과 관련이 있어요. 서울시 대기 상태가 워낙 안 좋으니까 도쿄 수준으로만 개선해도 수명을 3년 연장할 수 있다는 건데, 전 사실 이 법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진정한 ‘오세훈법’은 오히려 그게 아닌가 싶어요.”

    -수도권대기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이 올해부터 시행되죠?

    “신임시장이 취임하는 게 7월쯤일 텐데, 마침 법이 그때부터 시행됩니다. 사실 그 유혹이 컸어요. 제가 만든 법이니까 제가 직접 시행해보고 싶더라고요. 저작권자로서의 욕구죠.”

    아내는 고2 때 만난 첫사랑

    -결혼을 빨리 한 편이에요.

    “연애 기간이 길었으니까요. 아내로선 대학원까지 마치고 한 거니까 사실 빠른 건 아니었어요.”

    -부인을 고등학교 때 과외하다 만났다죠.

    “고등학교 2학년 때 과외란 걸 처음 했는데, 그때 만났어요.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까 고급 과외는 못하고, 여러 명이 모여서 그룹 과외를 했거든요. 영어 수학.”

    -대학시절엔 유명한 커플이었다던데요.

    “그렇죠. 고대에 여학생이 별로 없었을 때니까요. 4년 내내 붙어 다니고, 대학원까지 다녔으니.”

    -첫사랑인가요?

    “네.”

    -두 분 다?

    “집사람은 중학교 때 누굴 좋아했대요.”

    -부인이 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요즘도 부인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드나요?

    “네.”

    -딸들보다요?

    “네.”

    -경제권은 누가 쥐고 있습니까.

    “집도 공동명의로 되어 있어요. 둘 다 버니까 둘 다 경제권이 있다고 봐야겠죠.”

    -수입을 각자 관리하세요?

    “각자 관리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제가 매달 생활비를 주죠.”

    -국회의원 임기 마치고, 변호사로 복귀한 후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국회의원 경력이 변호사 수입에도 도움이 된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파트너가 4명이에요. 그분들이 일감을 갖고 들어온 거예요.”

    -전문직 종사자의 소득 허위 신고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허점이 없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공직 후보자들이 검증 단계를 거칠 때 당사자로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터져나오기도 하잖아요.

    “세금 문제는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세금말고 달리 문제될 만한 건….

    “글쎄요. 그렇게 물으니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

    -강금실 전 장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와 비슷한 점이 많은 분 같아요. 그런데 현재 얘기되는 그분의 이미지가 상당부분 선거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죠?

    “아니 뭐 색깔을 선택한다든가 하는 게 상당히 작위적이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좀 차별화가 된다는 생각을 하죠.”

    -강 후보는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행정 경험이 있잖아요.

    “피장파장이죠. 전 서울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으로서 국정 경험을 했잖아요. 제가 갖지 못한 것을 그분이 가진 게 있는가 하면 그분이 갖지 못한 걸 제가 갖고 있기도 하죠.

    -시장이 된 자신을 상상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요즘 좀 상상해보려고 해요.”

    -어떤 모습인가요.

    “글쎄요. 현장에 많이 나타날 겁니다. 시민들과 자주 어울릴 거예요.”

    “경선? 예측불갑니다”

    그를 인터뷰한 기사들을 보면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 실려 있는 시인데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솔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하는 내용이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니 그냥 웃는다.

    “그 시가 좋아요. 외울 줄 아는 유일한 시예요. 서정적인 시보다 잠언 시를 좋아하죠. 삶에 대한 철학과도 연결되고요.”

    -선거사무실을 드나드는 분들 외에 객관적인 이야기를 해줄 만한 솔직한 비평가가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없는 것 같네요. 두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경선, 어떻게 전망합니까.

    “예측불갑니다. 제도가 그래요.”

    -경선에서 지더라도 오 후보가 손해 볼 건 없다고들 합니다. 정계 복귀에 연착륙했고, 경선 흥행의 일등공신이니 당 지도부 입성도 무난할 거라고 전망하더군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분명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을 거예요. 잃는 걸 우선시하는 사람은 잃었다고 볼 거고, 얻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사람은 얻었다고 보겠죠.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요.”

    -오 후보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경선에서 안 되면 잃는 게 더 많죠.”

    -이번 경선 출마를 정계 복귀로 봐도 되는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끝나고 나서의 행방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할 당시, 정계를 ‘온건주의자들이 발붙이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표현했는데, 다시 발붙일 자신은 있습니까.

    “하게 되면 독하게 해요. 고민을 많이 하지만.”

    -2년여 만에 다시 돌아온 한나라당은 좀 달라졌던가요?

    “그럼요. 1년이 멀다 하고 달라져요.”

    -긍정적으로요?

    “긍정적인 측면도 있죠. 근데 제가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서 아직 신인의 느낌이에요.”

    -최근 지방선거 공천 관련 금품 수수 의혹이 터져서 한나라당 분위기가 어수선한데요.

    “깨끗해지긴 했지만 갈 길이 머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당 지도부의 반응이 좀 애매했죠?

    “떨떠름했죠.”

    -지금은요.

    “지금도 떨떠름하죠.”

    -섭섭한 부분이 있겠어요.

    “서운하죠. 시간이 많으면 그 배경을 좀 설명할 텐데 시간이 도저히 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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