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구역에서 서쪽을 향해 쭉 내달려 달서구 신당동 계명대 성서캠퍼스에 도착했다. 쭉쭉 뻗은 기둥의 고딕양식 정문을 지나니 아, 정말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울창한 녹음 속 곳곳에 숨은 파란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들. 빗줄기 속에서 쌉싸래한 젖은 흙 냄새와 섞여 달착지근한 향기를 뿜어내는 벚나무들…. 기대했던 햇빛 짱짱한 캠퍼스는 아니었지만 빗방울 끝마다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잠시 유럽 어느 나라의 대학도시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학생수 3만여 명, 교직원 2400명, 연면적은 대명캠퍼스 3만5000평, 성서캠퍼스 55만평. 1954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이 설립한 계명대는 50년 만에 국내 10위권 안에 드는 규모의 대학으로 성장했다. 1978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했고, 1980년대에 성서캠퍼스를 조성한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렇듯 외형을 키운 계명대는 개교 50주년을 맞은 2004년부터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제2의 도약을 위해 분주히 달려왔다. 그해 제8대 총장에 취임한 이진우(李鎭雨·50) 총장이 그 선봉에 섰다. 계명대 사상 최연소 총장인 그는 ‘계명-업 프로젝트(Keimyung-Up Project)’를 내걸고 탄탄한 내실 다지기에 진력해왔다.
‘계명-업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20개 학문 분야에서 한국 톱10, 10개 학문 분야에서 아시아 톱10에 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의 내실화, 행정의 합리화, 특성화, 국제화라는 4대 세부전략을 마련했다. 변화의 바람을 타고 생기 넘치는 에너지로 꿈틀대는 계명대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
쉬는 시간이 되니 조용하던 캠퍼스가 부산해졌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했다. 우산 사이로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삐져나왔다. 몇몇 여학생이 줄지어 향하는 곳을 따라갔더니 갑작스레 조선시대 풍경이 떡 하니 펼쳐졌다. 단아한 전통가옥이 오롯이 서 있고, 작은 폭포길 옆 텃밭에는 할미꽃 몇 송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신비한 공간은 계명한학촌(啓明韓學村). “누구 계세요?” 하며 손님 행세를 했더니 개량한복을 입은 이가 점잖은 선비마냥 뒷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허윤도 과장이다. “근무환경이 이태백 부럽지 않겠다”고 부러움 섞인 소리를 했더니, “내가 1954년 5월20일생인데, 계명대와 생일이 같아 이런 복을 얻은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를 따라 한학촌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 한학촌에서 일하기 전부터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한옥 구석구석을 살뜰히 보살피고 있었다. 헛간에 전시된 홀태, 망태기 등도 직접 만들었다니, 개교일에 태어난 인연만으로 이곳에 부임한 게 아님은 분명했다.
계명한학촌은 2004년 5월 개교 50주년을 맞아 대구시민과 전세계인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교육하고자 설립됐다. 강학당인 계명서당(啓明書堂)과 양반 민가 한옥인 계정헌(溪亭軒), 그리고 정원으로 구성됐다. 연면적 259평에 전통 건물의 멋스러움을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