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포커스

北의 욕심, 南의 조심… NLL은 불안하다

일촉즉발, 다시 찾아온 서해 꽃게잡이 철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北의 욕심, 南의 조심… NLL은 불안하다

2/9
北의 욕심, 南의 조심… NLL은 불안하다

‘지도1’ ‘한국방위수역’, 일명 ‘클라크라인’.

1952년 유엔군이 클라크라인을 설정한 것은 유엔군이 동·서해 양쪽에서 제해권을 장악해 공산군을 압박했음을 뜻한다. 유엔군은 ‘해면(海面)’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바다뿐만 아니라 동·서해상의 여러 섬까지 장악해 공산군을 압도했다.

동해는 섬이 적은 탓에 원산 앞의 여도에 한국군 해병대가 들어가 있었다. 섬이 많은 서해에서는, 유엔군 사령부 역할을 한 미 극동군 사령부 정보참모부(G-2)의 통제를 받는 한국인 첩보조직 KLO(Korea Liaison Office) 부대 중 하나인 해상 고트 부대가 청천강 앞에 있는 대화도와 대동강 앞에 있는 초도까지 장악해 활동했다.

해상 고트 부대장은 이연길(李淵吉)씨였는데, 그는 1997년 2월 북한 노동당 황장엽 비서를 망명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 당시 백령도는 해상 고트 부대와 김종벽씨의 지휘 아래 황해도 구월산에서 활동하는 유격대를 지원하는 후방 기지 노릇을 했다.

“한국군 해상 북진을 차단하라”

정전협정 제2조 13항 ㄴ호에는 ‘협정이 효력을 발휘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상대방 후방과 연해 도서, 그리고 해면에서 모든 군사역량·보급물자 및 장비를 철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정전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은 경기도와 황해도의 분계선인 한강 하구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동해의 여도와 황해도의 구월산, 서해의 대화도와 초도 그리고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공산군의 후방이나 연해 도서에 해당했다. 정전협정대로라면 유엔군은 병력과 장비를 빼내 이 곳을 공산군측에 반환해야 했다.



그런데 정전협정 문구엔 ‘연해 도서라는 용어는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할 때에 비록 일방이 점유하고 있더라도 1950년 6월24일에 상대방이 통제하고 있던 도서를 말하는 것이다’는 단서가 있었다. 또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및 우도의 도서군(群)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는 단서도 있었다. 이 단서를 앞 내용에 연결해 요즘 말로 풀면 이렇다.

‘바다에 있는 섬에 대한 영유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상황으로 되돌린다. 즉 38선 이북의 섬은 북한이, 이남의 섬은 한국이 영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38선 이북에 있는 대화도와 초도, 여도의 영유권은 공산군에 돌아가지만, 38선 이남에 있는 백령도 등 서해 5도의 영유권은 유엔군이 갖는다.

서해 5도는 38선 이남에 있기 때문에 6·25전쟁 전에도 한국이 영유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도 유엔군측이 영유하고 있었으니, 설사 이 섬이 북한측 해안에 가깝다 하더라도 유엔군이 영유권을 갖는다. 그러나 이 5개 섬 외에 북한 연안에 있는 작은 섬은 38선 이남에 있다고 할지라도 북한이 영유한다.’

이러한 해석에 근거해 서해 5도는 한국의 섬이 될 수 있었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와 섬이라는 ‘땅’에 대해서는 영유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영유권을 누가 갖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맹점이 있었다.

그런데 정전협정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이 분노했다. 이들은 특히 ‘상대방의 후면에 있는 모든 군사역량을 철거한다’는 문구에 흥분했다. 상대방 후면에 있는 군사역량이란 상대 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아군 부대를 말한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하던 유엔군은 1950년 초겨울 중국군의 참전으로 기세가 꺾이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미처 남한 땅에서 퇴각하지 못해 지리산에 숨어든 공산군이 활동에 들어갔다. 이에 북한군은 이현상을 사령관으로 한 지휘부를 보내 ‘남부군’이라는 빨치산 부대를 만들었다.

1951년 1·4 후퇴가 일어나자 남부군의 위세가 매우 강해져 지리산 일대에 또 하나의 전선(제2 전선)이 구축됐다. 위기를 느낀 한국군은 창설된 지 얼마 안 되는 11사단(화랑부대)을 파견했는데, 2월10일 이 부대는 거창 양민학살사건을 일으켜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해 11월16일 후방 상황이 악화되자 유엔군은 한국군 최정예 지휘관으로 인정받아온 백선엽 소장을 사령관으로 하고 정예 부대인 수도사단과 8사단, 그리고 후방부대인 서남지구전투사 등 3개 사단과 4개 전투경찰 연대로 구성된 ‘백 야전사(Task Force Paik)’를 만들어, 그 유명한 ‘쥐잡기 작전(Operation Rat Killer)’을 펼치게 했다.

전투경험이 많은 백 사령관과 정예 사단은 효과적인 토벌 작전을 구사했다. 계절은 빨치산에게 더없이 불리한 겨울로 접어들었으므로 쥐잡기 작전이라는 완전 포위전을 펼치자, 빨치산은 식량을 구할 수 없어 맥없이 무너지고 이현상도 사살됐다(1990년 개봉돼 화제를 모은 영화 ‘남부군’은 백 야전사의 쥐잡기 작전에 몰려 섬멸돼 가던 지리산 빨치산을 그린 작품이다).

2/9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목록 닫기

北의 욕심, 南의 조심… NLL은 불안하다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