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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축구를 축구로만 본다

  • 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바보는 축구를 축구로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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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자는 WBC 4강이라는 결과 이전에 이미 지난해 김 감독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5년 김 감독은 어깨부상으로 두 번이나 은퇴했던 지연규, 기아에서 방출된 김인철, 풍운아 조성민을 차례로 부활시켜 ‘재활의 신’으로 칭송받았다. 이 책의 목적은 재활의 신에게서 인생을 경영하는 지혜를 얻고자 한 것이지 4강 신화의 주역에게 승리의 비법을 배우는 데 있지 않다. 이쯤 되면 야구가 더는 야구가 아니다.

한국 축구, 무엇이 달라졌나

‘김인식 리더십’은 2002년 히딩크 리더십 배우기 열풍을 연상케 한다. ‘CEO히딩크-게임의 지배’의 저자인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는 히딩크를 “나를 따르라”의 모세형 지도자라고 했다. 히딩크는 주입식 교육과 훈련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에게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물어보라”고 가르쳐 한국팀을 단숨에 세계 4강으로 끌어올렸다.

그로부터 4년, 한국 축구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런 궁금증이 필자를 엉뚱하게도 축구 책 기획자로 만들었다. ‘CEO히딩크’의 저자에게 또 한 권의 축구 책을 주문했다.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동아일보사)가 그것이다. 저자는 먼저 한국 축구의 현실을 이렇게 지적했다.

“히딩크는 한국 축구 팬들의 허영을 ‘월드컵 4강’으로 채워줬지만 그가 가고 나자 한국 축구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허탈감 속에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 감독이 다시 우리에게 구세주처럼 다가왔다. 그는 과연 한국 축구에 무엇을 가르쳐줄 것인가. 전투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인가. 아니면 꿈을 심어줄 것인가. 이제 한국 축구는 달라져야 한다. 신나는 축구, 신들린 축구, 흥겨운 축구를 해야 한다. 힘과 깡이 아닌 머리를 쓰는 축구를 해야 한다. 이영표나 박지성은 어쩌다 한 명씩 나오는 예외에 속한다. 박주영은 한국 축구의 미래다.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다. 그는 공을 둥글게 찰 줄 안다. 박주영의 축구에는 살기가 없다. 하지만 그런 박주영도 이대로 두면 다시 한국 축구의 ‘꼴통 구조’에 함몰된다.”



아쉽게도 요즘 잔뜩 힘이 들어간 박주영의 축구를 보면 저자의 이런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박주영이 진정한 축구 천재인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러나 박주영은 아직 젊다. 시간은 그의 편이다. 다만 강호의 쓴맛을 봐야 진정한 고수가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한국 축구도 박주영만큼이나 젊다.

장기형 축구 vs 바둑형 축구

장기형 축구와 바둑형 축구의 차이를 아는가.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는 어떤 축구 관련 책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글로 채워져 있다. 그중 한 꼭지가 ‘장기, 바둑 그리고 축구’다. 장기짝은 하나하나 역할이 있다. 축구선수들도 저마다 역할이 있다. 질풍처럼 달리는 차두리나 정경호는 장기판의 차(車),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미사일을 쏘는 설기현은 코끼리(象), 안정환과 이동국은 말(馬), 그리고 감독은 왕(宮)이다. 왕은 선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각자에게 포지션과 임무를 맡긴다. 2002년 히딩크 축구는 장기판 축구로 4강에 올랐다. 유로2004에서 그리스 또한 장기판 전략으로 철저한 수비축구를 펼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승을 했다.

그러나 장기판 축구는 자칫 잘못하면 팀의 활기를 빼앗아간다. 이럴 땐 바둑알 축구가 필요하다. 바둑알에는 역할이 없지만 끊어지지 않고 연대해야 살아남는다. 바둑판에는 싸움터가 따로 없다. 바둑알이 놓이는 곳이 곧 싸움터다. 토털 축구가 바로 바둑을 닮았다. 진짜 강한 팀은 필요에 따라 선수들이 장기짝처럼 차(車)도 되고 말(馬)도 되고 포(包)도 됐다가 어느 순간 바둑알이 되는 장기+바둑의 축구를 한다. 박지성, 박주영만으로 가능할까?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는 스타플레이어의 자서전도 아니고 월드컵 가이드북도 아니다. 다만 축구 생각만 하면 웃음이 터지고, 둥근 것만 보면 뻥 내지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축구 에세이다. 다 읽고 나면 백기완 선생이 “축구는 한(恨)을 내지른 것”이라고 한 말을 이해하게 된다.

지난 겨우내 이 축구 책과 씨름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바보는 축구 속의 인생을 못 보고, 축구를 축구로만 보는구나!

신동아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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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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