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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화가의 삶 결심하게 만든 ‘영원한 선배’

“예술은 자신과의 싸움, 흔들리지 말고 자기 길 가라”

  • 임옥상화가, 임옥상미술연구소장 oksanglim@korea.com

화가의 삶 결심하게 만든 ‘영원한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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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삶 결심하게 만든 ‘영원한 선배’

임옥상 화백은 “강태성 선생에게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예술가의 자세를 배웠다”고 말한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한동안 점묘화식 수채화를 그렸다.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그리고 그 근본은 인격에 있다고 늘 강조하셨다. 선생님은 어미닭이었고 우리는 병아리들이었다.

계절감각을 익힌 것도 미술반 활동 덕분이었다. 화폭에 담기는 계절은 훨씬 더 명확했다. 비 갠 후 화사한 봄빛을 받으며 만개한 벚꽃, 살구꽃을 그리던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야, 오늘은 모두 100점이다. 구도도 좋고 색깔도 살아 있고.”

체구는 작았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 호방한 성격이어서 늘 웃으시고 즐거워하셨다. 2학년을 마치고 집이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나는 선생님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때의 슬픔은 너무 컸다.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그 어디에서 다시 얻을 수 있겠는가.



영등포중학교로 전학을 온 나는 역시 미술반에 들어갔다. 영등포중학교 미술반의 분위기는 부여중학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거기는 미술선생님이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선배들이 중심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김정수 선배를 만났다. 나는 다시 한 번 넓은 세계가 있음을 실감했다. 그는 황홀한 천재였다. 시골에서 올라온 내게 그는 예술의 혼과 정열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나는 윤완호 선생님의 가르침에 김정수 형의 지도 덕으로 홍익대 주최 전국 미술실기대회에서 특선을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후 용산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미술반 활동을 포기했다. 화가의 길을 걷는 게 꿈이었지만, 연로하신 아버지(이미 회갑을 넘기신 연세에 피혁공장에서 말만 공장장이지, 거의 막노동을 하고 계셨다)와 단칸 셋방을 전전하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그것은 너무도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긴 것이다.

공부냐, 그림이냐

아마추어 화가로 남겠다고 결심하고 대학 입시에 대비한 학과공부에 전념했다. 성적이 좋아 서울대 상과대학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선 학비가 저렴하니까 꼭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내 미술실기대회가 5월에 열렸다. 나는 평소 실력대로 그림을 그렸다. 다음날 복도에서 고3 선배들이 나를 찾는다고 교실이 술렁거렸다. 나는 하얗게 질려 선배들 앞에 섰다.

“네가 임옥상이구나. 너 미술반에 들어와라. 이번 미술대회에서 네가 일등을 했더라.”

김응래 선배는 상냥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대해주셨다. 나는 즉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마음은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굳은 결심을 그렇게 금세 접는다는 게 스스로 부끄러워 선배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한동안 버텼다. 나는 1학년 때만 한시적으로 활동하기로 하고 미술반에 들었다. 미술반을 찾은 나를 강태성 선생님은 덤덤히 맞으셨다.

“그래, 잘해봐라.”

싱거운 대면이었다. 물론 실기대회 심사는 선생님께서 도맡아 하셨다. 선생님께서 뽑은 일등이 왔는데도 전혀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조각 전공인 선생님이 그림을 얼마나 잘 본다고 날 이렇게 무시하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내 그림은 탁월한 작품이 아니라 그저 상대적으로 괜찮은 정도여서 뽑아주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깡마른 체구에 뾰족한 턱, 약간 나온 입술로 평소 표정도 밝은 편이 아니었다. 조금 숙은 허리, 고개를 들고 딱히 초점도 없이 허공에 시선을 던진 그런 자세로 걸으셨다. 늘 꿈을 꾸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잠을 더 자야 할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미술시간에 특별히 열성적으로 가르치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몹시 화를 내시곤 했는데, 스스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남에게 대신 시켜 그려냈다거나 준비를 몇 번씩 안 해오는 아이들은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잔소리로 들릴 정도로 오랫동안 꾸짖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전형적인 ‘꼰대’라며 무시했다. 사실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에서 미술선생님은 미술반원을 빼놓고는 존경을 받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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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화가, 임옥상미술연구소장 oksangli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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