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골프는 연애다!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입력2007-08-07 1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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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나이에 바다에 남편을 빼앗기고 어린 딸과 남은 여인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자 선장이 됐다. 힘겨운 시절,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젊은 날 익힌 골프의 추억. 바위투성이 하이랜드 바닷가의 바람 부는 골프장에서 만난 여인은 흡사 예술처럼 정확한 아이언샷을 휘둘렀다.
    골프는 연애다!
    6월9일 오전 8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대한항공 KE1211편을 탔다. 요즘 서울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편을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더니만 말 그대로였다. 평상시라면 한 좌석은 쉽게 구할 수 있던 탑승권이 일주일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다가 겨우 이틀 전에야 좌석을 구했다. 그것도 일반석은 없어서 비즈니스석이었다.

    나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어로 된 골프 서적을 20여 권이나 읽고 있다.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아내를 따라 백화점에 들른 길에 우연히 서점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골프 책 다섯 권을 산 게 계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를 잠깐 배우기는 했지만 법률서적이 아닌 일반서적을 읽기에는 일본어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이 때문에 불요불급한 경우가 아니면 일본어 서적을 잘 접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모처럼 돈 주고 산 책을 그냥 둘 수 없어 사전을 찾아가면서 틈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오래전에 샀으나 일본어 실력 부족을 핑계로 제대로 안 읽은 책들도 읽게 됐다. 마이클 머피가 쓴 ‘Golf in the Kingdom’을 일본어로 번역한 ‘왕국의 골프(王國のゴルフ)’라는 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쓰모아(攝津茂和)가 쓴 ‘골프천야 하룻밤(ゴルフ千夜一夜)’도 다시 읽었고, 같은 작가의 ‘불멸의 골프 명언집(不滅の ゴルフ名言集)’도 읽었다.

    갖고 있던 일본어 골프 책을 모두 다 읽었을 무렵인 올해 초의 일이다. 재일교포인 제일CC의 서정일 사장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 나카무라 도라키치(中村虎吉)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자와(大澤啓藏)가 쓴 ‘골프의 거리를 간다(ゴルフの街を行く)’라는 책을 보면 나카무라 도라키치가 1957년 캐나다컵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일본에 골프붐이 일어 골프장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동네 꼬마 아이들조차 공터에서 그의 스윙을 흉내내게 됐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일본 골프사에 끼친 영향은 마치 박세리의 1998년 미국여자오픈 우승이 한국에 끼친 영향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서정일 사장이 내놓은 답변은 뜻밖이었다. 도라키치가 재일동포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왜 그런 사실이 우리나라 골프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냐”고 반문하며 그에 대한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뒤 나는 엄청난 양의 일본 골프서적을 선물로 받았다. 일본에서 돌아와 다시 만난 서 사장이 도라키치에 관한 책뿐 아니라 골프 설계가인 이노우에 쇼이치(井上誠一) 관련 서적 등 20여 권의 골프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지난 상반기 내내 일본어로 씌어진 골프서적을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가운데는 문고판으로 된 책이 10여 권 있어서 지하철을 탈 때에도 안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읽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실력에다가 나이 탓인지 사전에서 한번 찾았던 단어도 다시 찾지 않으면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책 한 권을 읽는 데도 보통은 보름, 길게는 한 달이나 씨름해야 했다.

    캐서린 헵번을 닮은 여인

    때마침 제주도에 가려고 비행기를 탔을 때도 내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는 나쓰사카켄(夏坂健)이 쓴 ‘골프를 통해 사람을 알아본다(ゴルフを以って人を觀ん)’라는 책이 들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스튜어디스가 양복 상의를 걸어주겠다고 말해 그 책을 꺼낸 다음 윗옷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내용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선장 질 워드의 골프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가 스코틀랜드를 드나든 지 벌써 4반세기다. 최근 들어서는 아예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특히 ‘하이랜드’라 일컫는 스코틀랜드의 북부에 매료된 지 오래여서 때로는 수개월 방랑하는 일도 있다. 그날도 인버네스로부터 서쪽으로 60마일, 그랜피아 항구 근처에 넓게 펼쳐져 있는 카렌골프클럽에 서서 혼자 바람을 쐬고 있었다. 1879년 설립된 18홀은 전장이 4610야드에 파62. 평일 요금이 8000원이라는 게 의외이기도 하지만 코스는 거칠기 이를 데 없다. 도중에 언덕을 돌아서면 갑자기 해상으로 튀어나온 그린으로 내려쳐야 하는 레이아웃은 스릴과 서스펜스의 연속. 토박이 싱글이라도 결코 파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코스다.

    어딘지 왕년의 명여배우 캐서린 헵번을 닮은 여성이 말을 걸어온 것은 분명 3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이르렀을 때였다. 검은 구름이 해면을 덮어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날씨에 혼자 라운드하는 것은 냉혹한 느낌마저 든다. 바로 그때 동반 경기자가 나타나니 흠칫 놀란 것이 사실이었다.

    “저는 질 워드라고 해요. 당신은 프로골퍼세요?”

    “왜 제가 프로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을 저기까지 날려 보내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눈을 가늘게 하고 그녀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파4의 퍼팅그린 바로 앞에 하얀 볼 한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쉽지만 저건 어디선가 날아들어온 것 같아요. 제 볼이 아니에요. 제가 친 볼은 왼쪽 러프에 들어가 있거든요.”

    “아아!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금방 10년지기라도 되는 양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다. 실로 묘한 만남 덕분에 햇볕에 그을린 남의 집 유부녀와 라운드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려고 계류장을 떠나기 전이었다. 옆 자리 꼬마아이가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마 탑승한 지 꽤 됐는데도 이륙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나보다. 체구는 자그마한데 울며 질러대는 목소리가 얼마나 높고 큰지, 아무리 모른 척하려 해도 너무 시끄러웠다. 책을 읽다 말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떼쓰는 아이를 강 건너 불 보듯 태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상식이 없군. 비싼 돈 내고 모처럼 비즈니스석을 탔는데 하필이면 우는 아이 옆에 탔으니 재수도 없지.’

    머릿속에 불만으로 가득 찬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끝내는 스튜어디스에게 좌석을 바꿔달라고 하려고 둘러봤지만, 기내에는 빈 좌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아이와 엄마를 번갈아 쏘아보다가 그냥 책을 읽기로 다짐하고 애써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빨갛게 칠한 배

    …그런데 그 여자가 티샷을 하는 것을 보니 그만 기가 꺾였다. 간결한 톱에서 전 체중이 왼쪽에 실린 커다란 팔로스로도 멋졌지만, 그 타구는 엄청나서 공중에서 두세 번 가속이 붙은 뒤에 그린까지 약 100야드 지점에 착지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거 임자 만났네….’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두 번째 샷을 지켜보노라니, 그 또한 훌륭한 아이언샷으로 볼은 멋지게 그린으로 올라갔다. 질은 손쉽게 파를 잡은 반면 필자는 간신히 보기를 했다. 보통내기가 아니었기에 호기심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근처에 사세요?”

    “저기 보이는 제방 근처에 집이 있어요. 시력이 어떻게 되세요?”

    “근시에 노안에 난시까지….”

    “항구에 계류 중인 배들이 보이세요? 그 중에 한 척, 빨갛게 칠한 배가 제 배랍니다.”

    “당신의 배라고요?”

    “이래봬도 스코틀랜드 역사 이래 최초의 여자 선장이에요, 믿기지 않겠지만.”


    책의 내용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옆 좌석의 아이는 다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이 소리에 놀란 스튜어디스 세 명이 몰려왔다. 주스를 받고 잠시 울음을 멈췄던 아이는 이내 다시 크게 울어댔다.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책에서 눈을 떼고 아이를 보니 여전히 몸을 비비 틀고 있었다. 약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너, 조용히 못해?”라고 윽박지르거나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좀 달래요!”하고 소리라도 칠 만큼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다고 점잖게 책을 읽고 있던 신사가, 영문도 모르고 어른들의 여행길에 끌려 나왔을 철부지의 응석을 탓하자니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거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억지 춘향 노릇을 하려고 노력했다. 문득 괜히 비행기에 타자마자 서둘러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 게 후회되기도 했다. 더구나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일본어로 된 책을 읽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비행기는 계류장을 떠나 활주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우는 소리를 그치고 목을 길게 빼어 창밖을 보려고 깨금발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앉은 좌석은 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데다가 빈 좌석도 없어 어른들의 어깨에 시선이 막힌 듯했다. 몇 차례 더 깨금발을 하며 목을 빼던 아이는 갑자기 자기 엄마 쪽으로 돌아서더니만 엄마의 가슴에 주먹질을 하면서 또다시 앙탈을 부렸다.

    볼 한쪽에 남은 상처

    순간 아이가 우는 것은 창밖에 펼쳐질 신기한 광경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도 저만한 나이였을 때는 옆 좌석의 나이 든 아저씨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조용하고 점잖게 앉아 있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그때까지와는 달리 아침잠까지 설치며 놀러가는 어른들에게 끌려 나온 아이가 가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창밖을 궁금해하는 아이에 대해 어른들이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는 아이를 탓할 게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어른들을 탓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책 읽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이를 흘겨보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모른 체하고 읽던 책이나 마저 읽기로 마음을 고쳐 먹은 나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스코틀랜드는 세계에서 남존여비사상이 가장 강한 곳이다. 바다 일도 조개 줍는 것을 빼고는 모두 남자 몫이다. 특히 여성이 배를 타는 일은 절대 없다고 들었다.

    “저는 특별한 케이스예요. 1962년에 남편이 해난사고로 죽은 뒤에 법원에 신청해 정식으로 선주 후계자로 지명됐죠. 그 후에 고기잡이가 제 직업이 됐어요. 그 다음 중요한 게 골프라고 할 수 있어요.”

    어느새 골프는 제쳐놓은 채, 필자는 질이 말하는 인생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있었다. 1930년 인버네스 인근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이 열일곱 살 되던 해에 하이랜드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오빠 둘이 모두 아마추어 선수였어요. 매일같이 골프에 묻혀 살았죠. 1949년부터 세 차례나 스코틀랜드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했고, 핸디캡도 6이 됐어요. 스무 살 되던 해에는 잉글랜드여자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습니다. 그때가 저의 골프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1953년 결혼해 딸을 얻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불행은 마치 겨냥하고 있었던 듯 엄습했다. 남편이 탄 배가 돌풍을 만나 선체가 두 쪽이 나 산산이 부서졌다. 그뿐이었겠는가. 개벽 이래 최초로 여선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선상에서 불이 났고, 그녀는 얼굴에서부터 어깨까지 화상을 입었다. 그 상처는 지금도 볼 한쪽에 남아 있다.

    “딸을 키우며 혼자 사는 건 매일 전쟁이나 다름없었죠. 파도가 거칠어 한 달이나 출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돈이 떨어져 곤혹스러웠던 일도 헤아릴 수 없어요. 골프도 인생도 온통 문제투성이였어요.”


    책을 보고 있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혹시 지나다니는 스튜어디스에게 들킬까봐 책에서 눈을 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문득 어릴 때 고종사촌 동생인 병섭이 놀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가진 여러 별명 중 하나가 ‘울보’였다. 병섭의 말에 따르자면 어릴 적의 나는 큰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거릴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영화나 연극, 텔레비전의 연속극을 잘 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다 보면 눈물을 자주 흘리는데 남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이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도 눈물을 자주 흘린다. 그래도 책을 읽을 때는 그런 모습을 숨길 수 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서는 방앗간에 갔다가 피대에 걸려서 왼팔이 잘려 나간 둘째형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들며 싸우는 나를 보고 “바늘로 이마를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냉혈한”이라고 나무라신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는 물론이요 어른이 된 지금도 ‘내 눈물은 참으로 모순되고 이상야릇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눈을 감고 이런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니 눈에 고였던 눈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눈에서 눈물이 다 말랐다는 느낌이 들자 가만히 눈을 뜨고 아이가 앉아 있는 좌석을 보았다. 아이는 엄마의 허벅지에 두 팔을 걸치고 다리를 앞 좌석 밑으로 뻗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떼를 쓰고 응석을 부려도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리라는 걸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때마침 배꼽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필자가 아이의 배꼽을 오른손 검지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찌르면서 말을 걸어보았다.

    “야, 네 이름이 뭐야?”

    아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손가락 끝을 그의 왼쪽겨드랑이 쪽으로 가져가서 간지럼을 태우며 물었다.

    “야, 너 몇 살이야?”

    그러자 아이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가 대답하는 대신에 아이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지준이에요라고 대답해야지!”

    그러면서 아이가 이제 1년2개월 됐다고 소개했다. 아마도 너무 일찍 깨워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떠들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아이의 겨드랑이를 쿡쿡 찌르기도 하고 긁기도 하면서 간지럼을 태웠다. 마침내 아이는 큰 소리를 지르며 웃기 시작하더니 엄마를 떠나 통로 쪽으로 도망갔다. 그러자 우리들 사이에는 긴장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비행기는 이륙을 마쳤고, 어느덧 스튜어디스들은 식음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준이게도 또다시 주스 잔을 건넸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생 제2의 반려자

    …1975년, 딸이 던디로 시집가서 신변이 갑자기 쓸쓸해졌다. 그때까지는 골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있었다. 오로지 살아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링크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도 인생의 제2의 반려자가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20년 만에 만진 클럽에서는 그리움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느껴졌어요. 볼이 맞기는 할까, 한 시간 넘게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생각했죠. ‘옛날은 옛날이고, 20년의 공백은 비기너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세월이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새로운 클럽을 사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창고 안에서 연습 스윙을 시작했다. 긴 겨울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윽고 봄이 되어 코스에 나가자 깜짝 놀라는 주위 사람들에 둘러싸여 볼을 쳐보았다.

    “마음먹은 대로 휘둘러지지도 않았고 거리도 나지 않았어요. 감도 돌아오지 않았고요. 세월은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자들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비거리는 찾을 길이 없고, 다만 할망구 하나가 또박또박 볼을 치고 있는 거예요. 울어버리고 싶었죠.

    그래도 클럽에 무게를 두고 매일같이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시간만 나면 퍼트 연습장에도 나갔어요. 1981년에는 잉글랜드시니어레이디스선수권대회에 도전했지만 순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예선에서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듬해에는 84타 81타로 15위, 그 다음해에는 80타 82타로 12위, 겨우 골프를 한다고 말할 정도가 됐던 것 같아요.”

    “겨우라뇨? 굉장한데요. 아까부터 존경스러워 감탄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굳건한 신념을 가진 아마추어 선수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풍향을 재빨리 읽고 전혀 망설임 없이 자세를 갖추고 연습 스윙도 하지 않은 채 클럽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볼은 낮은 탄도로 정확하게 날아가서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 틀림없이 멈춰섰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게임 방식이자 골프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 갑자기 지준이가 다시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책장을 덮고 잠시 기내 분위기를 살폈다. 비행기는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기압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이면 나이 어린 지준이는 귀에 통증을 느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우는 지준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뻗어 간지럼을 태웠다. 아이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감촉이 몹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준이가 평온함을 찾는 것을 지켜보고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연애 같지 않나요?”

    “여쭤봐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저 혼자서는 답이 보일 듯 말 듯한 어려운 질문인데요, 이토록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골프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일까요?”“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즐기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인생 최고의 교과서이자, 산소처럼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요. 혹은 신이 마련해놓은 사람과 자연의 멋진 접점,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 다음 1홀, 질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 곁으로 와서는 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연애 같지 않나요?”또 그 다음 1홀, 이번에는 필자가 입을 다물었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그렇네요. 골프는 연애입니다. 여태까지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당신을 만나고 나니 새로운 답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골퍼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골프가 연애라니? 나는 속으로 반문하면서 책에서 눈을 뗐다. 그 사이에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어느새 스튜어디스가 갖다놓은 양복 상의를 입고 서둘러 책을 안주머니에 쑤셔넣은 다음 나는 지준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야, 재미있게 잘 놀다 가거라!”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골프는 연애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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