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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골프는 연애다!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골프는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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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하려고 계류장을 떠나기 전이었다. 옆 자리 꼬마아이가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마 탑승한 지 꽤 됐는데도 이륙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나보다. 체구는 자그마한데 울며 질러대는 목소리가 얼마나 높고 큰지, 아무리 모른 척하려 해도 너무 시끄러웠다. 책을 읽다 말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떼쓰는 아이를 강 건너 불 보듯 태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상식이 없군. 비싼 돈 내고 모처럼 비즈니스석을 탔는데 하필이면 우는 아이 옆에 탔으니 재수도 없지.’

머릿속에 불만으로 가득 찬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끝내는 스튜어디스에게 좌석을 바꿔달라고 하려고 둘러봤지만, 기내에는 빈 좌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아이와 엄마를 번갈아 쏘아보다가 그냥 책을 읽기로 다짐하고 애써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빨갛게 칠한 배

…그런데 그 여자가 티샷을 하는 것을 보니 그만 기가 꺾였다. 간결한 톱에서 전 체중이 왼쪽에 실린 커다란 팔로스로도 멋졌지만, 그 타구는 엄청나서 공중에서 두세 번 가속이 붙은 뒤에 그린까지 약 100야드 지점에 착지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거 임자 만났네….’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두 번째 샷을 지켜보노라니, 그 또한 훌륭한 아이언샷으로 볼은 멋지게 그린으로 올라갔다. 질은 손쉽게 파를 잡은 반면 필자는 간신히 보기를 했다. 보통내기가 아니었기에 호기심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근처에 사세요?”

“저기 보이는 제방 근처에 집이 있어요. 시력이 어떻게 되세요?”

“근시에 노안에 난시까지….”

“항구에 계류 중인 배들이 보이세요? 그 중에 한 척, 빨갛게 칠한 배가 제 배랍니다.”

“당신의 배라고요?”

“이래봬도 스코틀랜드 역사 이래 최초의 여자 선장이에요, 믿기지 않겠지만.”


책의 내용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옆 좌석의 아이는 다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이 소리에 놀란 스튜어디스 세 명이 몰려왔다. 주스를 받고 잠시 울음을 멈췄던 아이는 이내 다시 크게 울어댔다.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책에서 눈을 떼고 아이를 보니 여전히 몸을 비비 틀고 있었다. 약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너, 조용히 못해?”라고 윽박지르거나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좀 달래요!”하고 소리라도 칠 만큼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다고 점잖게 책을 읽고 있던 신사가, 영문도 모르고 어른들의 여행길에 끌려 나왔을 철부지의 응석을 탓하자니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거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억지 춘향 노릇을 하려고 노력했다. 문득 괜히 비행기에 타자마자 서둘러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 게 후회되기도 했다. 더구나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일본어로 된 책을 읽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비행기는 계류장을 떠나 활주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우는 소리를 그치고 목을 길게 빼어 창밖을 보려고 깨금발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앉은 좌석은 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데다가 빈 좌석도 없어 어른들의 어깨에 시선이 막힌 듯했다. 몇 차례 더 깨금발을 하며 목을 빼던 아이는 갑자기 자기 엄마 쪽으로 돌아서더니만 엄마의 가슴에 주먹질을 하면서 또다시 앙탈을 부렸다.

볼 한쪽에 남은 상처

순간 아이가 우는 것은 창밖에 펼쳐질 신기한 광경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도 저만한 나이였을 때는 옆 좌석의 나이 든 아저씨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조용하고 점잖게 앉아 있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그때까지와는 달리 아침잠까지 설치며 놀러가는 어른들에게 끌려 나온 아이가 가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창밖을 궁금해하는 아이에 대해 어른들이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는 아이를 탓할 게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어른들을 탓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책 읽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이를 흘겨보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모른 체하고 읽던 책이나 마저 읽기로 마음을 고쳐 먹은 나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스코틀랜드는 세계에서 남존여비사상이 가장 강한 곳이다. 바다 일도 조개 줍는 것을 빼고는 모두 남자 몫이다. 특히 여성이 배를 타는 일은 절대 없다고 들었다.

“저는 특별한 케이스예요. 1962년에 남편이 해난사고로 죽은 뒤에 법원에 신청해 정식으로 선주 후계자로 지명됐죠. 그 후에 고기잡이가 제 직업이 됐어요. 그 다음 중요한 게 골프라고 할 수 있어요.”

어느새 골프는 제쳐놓은 채, 필자는 질이 말하는 인생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있었다. 1930년 인버네스 인근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이 열일곱 살 되던 해에 하이랜드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오빠 둘이 모두 아마추어 선수였어요. 매일같이 골프에 묻혀 살았죠. 1949년부터 세 차례나 스코틀랜드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했고, 핸디캡도 6이 됐어요. 스무 살 되던 해에는 잉글랜드여자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습니다. 그때가 저의 골프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1953년 결혼해 딸을 얻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불행은 마치 겨냥하고 있었던 듯 엄습했다. 남편이 탄 배가 돌풍을 만나 선체가 두 쪽이 나 산산이 부서졌다. 그뿐이었겠는가. 개벽 이래 최초로 여선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선상에서 불이 났고, 그녀는 얼굴에서부터 어깨까지 화상을 입었다. 그 상처는 지금도 볼 한쪽에 남아 있다.

“딸을 키우며 혼자 사는 건 매일 전쟁이나 다름없었죠. 파도가 거칠어 한 달이나 출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돈이 떨어져 곤혹스러웠던 일도 헤아릴 수 없어요. 골프도 인생도 온통 문제투성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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