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의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던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자 창조주로 믿는 한국인이 수백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유·불·도교에 이어 기독교라는 외래 종교의 홍수에 떠다니는 요즘, 종교적 신념의 유무를 떠나 민족종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일천하기만 하다. 이런 점에서 ‘토종’ 민족종교인 증산도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던진다. 과연 증산도는 어떤 종교이며 강증산은 누구인가.
최제우는 증산의 前史

증산도 창시자 강증산.
증산의 생애와 말씀을 수록한 증산도의 통일경전 ‘도전(道典)’은 강증산이 이 세상에 내려온 과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다분히 종교적 언어로 씌어졌지만, 그가 인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19세기 후반의 혼란한 상황에 대한 비판적 진단이 압축돼 있는 대목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서양문화의 야만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그 시기, 강증산은 ‘강세(降世·인간의 몸으로 태어남) 선언’을 했다.
미륵신앙과 증산도
눈여겨볼 점은 증산도의 경전 ‘도전’이 증산 탄생 이전의 전사(前史)로 서양 신부 마테오 리치(1552~1610)와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를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1582년에 중국 마카오에 도착한 마테오 리치는 대항해(大航海) 시대 이후 동서양의 본격적인 만남을 상징한다. 가톨릭을 전도하기 위해 중국에 온 그는 서양 지도인 ‘곤여만국전도’를 소개했는가 하면, 중국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했다. 증산은 도전에서 이마두와 서양에 대해 “물질과 사리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냈다”며 서구 모더니티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도전에는 진표율사도 등장한다.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當來)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金山寺)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증산도에서는 증산의 탄생 이전 역사, 즉 ‘증산 전사(前史)’의 뿌리를 미륵신앙에 둔다. 미륵신앙이야말로 삼국시대 민간신앙과 연계돼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했던 종교·사회적 이념이다. 부처는 열반하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말법시대(末法時代·불교에서 말하는 종말의 시대)에 미륵불이 오시면 그분의 도에 들어가라(미륵상생경)”고 했다. 미륵은 희망의 부처, 젊은 부처, 구원의 부처다. 미륵불이 중생을 향해 언제라도 떨쳐 일어날 것처럼 우뚝 선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도 호남권 정서의 기층을 형성하는 미륵신앙은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개창했다. 그 근거지는 전라북도 모악산 금산사.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의 미륵신앙이 유독 체제변혁의 신앙으로 자리 잡은 것도 진표의 영향이었음을 무시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