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공약사항이자 핵심성과로 과시돼온 ‘국방개혁2020’. 2005년 청사진이 공개돼 현재 세부 내역이 추진되고 있는 이 ‘창군 이래 최대의 군 개혁’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현 정부 국방 분야에 깊숙이 관여해온 군사전문가 김종대씨가 강도 높은 비판의 글을 보내왔다.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비상기획위 혁신기획관,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씨는 현재의 개혁안이 여러 필수 검토과제를 빠뜨려 갖가지 난맥상을 낳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한 가지 단서조항이 붙었다. 보병병과를 제외하고 항공, 기갑, 정보, 통신 같은 ‘미래전력’ 병과 위주로 정원을 늘린다는 것. 미래의 과학·기술군 건설을 위한 군 구조개편에 대비하자는 취지였다. 그런 명분도 없이 엄청난 숫자의 장교를 늘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해 10월, 육군은 새로운 장교 정원표를 가지고 진급심사에 임했다. 그러나 진급심사 결과를 받아 본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 김희상 준장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령 정원이 대통령 지침과 달리 전부 보병병과 위주로 증가됐기 때문이다. 격분한 김 장군은 대통령 지침을 위반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즉각 육군에 해명을 요청했다.
당시 육군은 이진삼 참모총장에서 김진영 참모총장으로 이어지던 이른바 ‘하나회 전성시대’였다. 역시 하나회에 소속돼 있던 인사참모부장 A장군이 김 국방비서관에게 이렇게 반격했다.
“그게 김희상 지침이지, 어떻게 대통령 지침인가?”
김 장군은 이전에도 ‘8·18 군제개편’ 문제로 육군과 심하게 충돌한 적이 있었다. ‘8·18 계획’은 평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면서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을 새롭게 모색하자’는 취지로 노태우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한 사안. 그러나 각군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애초 청와대가 목표했던 군제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1992년은 노태우 정권의 말기로 ‘물태우’라는 말이 학원가에까지 퍼져 있던 시점이었다. 군사 정부를 탄생시킨 실세들이 육군을 장악하고 있다 보니 더 이상의 개혁은 불가능했다. 결국 보병은 급격하게 팽창하고, 기갑은 약간 증가, 기타 병과는 정체된 형태로 1993년부터 한국군의 새로운 영관급 정원구조가 정착된다.
군 구조개편이란 흔히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따라 군의 싸우는 방법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군의 조직형태가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통상 다양한 군종, 즉 병과 간의 구성비를 새롭게 조화시키며 이에 따라 일련의 군 부대편성을 재편하는 것이다. 전쟁 양상이 보병전에서 고속기동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전쟁 양상이 변하므로 보병부대를 줄이고 기갑부대를 늘린다면 당연히 보병병과 장교는 남아돌고 기갑병과 장교는 모자라게 된다. 자연스레 보병병과 장교는 진급과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고 기갑병과 장교는 그 반대가 된다.
그러나 군은 일반 기업과 달리 그 인력운용이 매우 비탄력적이다. 보병장교가 남아돈다고 정리해고를 할 수도 없고, 기갑장교가 모자란다고 군 외부에서 충원할 수도 없다. 이른바 ‘폐쇄형 인력운용’ 구조다. 이러한 경직성 때문에 군 구조개편은 변화의 당위성이 있더라도 기존의 인력구조에 쉽게 변화를 줄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1993년 군은 보병 위주의 장교단을 팽창시킴으로써 그 이상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놓았다. 그 장애물은 아직도 건재하고, 현재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개혁2020’을 가로막고 있다. 인력구조라는 꼬리가 군 구조라는 몸통을 흔들어온 것이다.
아름다운 공식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은 창군 이래 아홉 번째로 진행되는 군 개혁 작업이다. 2005년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군 구조개편은 크게 3단계로 추진된다. 2010년까지 추진되는 1단계는 군 구조개편 착수 및 본격화 단계다. 군의 상부구조를 우선 개편하고 개혁기반을 구축하는데, 특히 합동참모본부 개편을 핵심으로 한다. 이후 5년간 추진되는 2단계는 개혁심화 단계로서 상부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구조개편에 따른 추가 전력을 확보한다. 이 시기에 한국군의 기동력, 타격력을 보강하고 작전사령부를 개편하는 등 가장 활발한 변화가 일어난다. 구조개혁의 마지막 단계는 2020년까지 군 구조와 전력구조를 완비하고 하부구조의 전력화 개편 완료를 목표로 한다.
2005년 9월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이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국방개혁2020’과 ‘군구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의 기본 프레임을 읽다 보면 흡사 수학 교사가 칠판에 아름다운 공식들을 쭉 써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공식들만 달달 외우면 어떤 문제라도 다 풀릴 것 같다. 지금까지 국방부가 국민에게 제시해온 개혁안은 바로 그런 수준에서 설명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인사적체’ 해결 난망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이 앞서 말한 인력구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공개된 ‘국방개혁2020’안을 아무리 뒤적여봐도 인력구조나 인사구조 개선안은 없다. 특히 국방개혁기 군의 주축을 이룰 현재의 대령 이하 장교 인력구조는 여전히 노태우 정권 이래의 난맥상을 풀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해법이 누락된 대표적인 문제다.
재앙의 시작은 1989년 군 인사법 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통해 장교의 정년연령을 연장한 결과 진급적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사법은 1993년에도 한번 더 개정된다. 그 결과 소령은 43세에서 45세로, 중령은 47세에서 53세로, 대령은 50세에서 56세로 정년이 대폭 연장됐다. 이러한 정년 연장은 애초에는 육군사관학교 임관인원이 전임 기수보다 현저하게 많았던 31기가 대령으로 진급하던 무렵 30기 이하 기수들을 구제한다는 논리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정 당시 53세이던 23기부터 25기가 혜택을 입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이어졌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정년 연장은 지금까지 인력운용 난맥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 육사 28기는 대상자의 79.9%, 29기는 75.4%, 30기는 77.4%가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1968년 1·21사태로 임관인원이 80명 증가한 31기는 그 비율이 69.5%로 뚝 떨어졌고, 이후 32기 67.4%, 33기 66.5%, 34기 63.6%, 35기 60.7%로 꾸준히 저하됐다. 38기에 오면 대령 진급률은 56%로 떨어지고, 이후 기수는 50~60%에서 진급비율을 유지하는 것으로 육군은 인사관리를 하고 있다.
장군 진급의 경우는 기수별 편차가 더욱 확연하다. 임관인원 대비 준장 진급 비율을 보자. 한창 ‘물이 좋았던’ 육사 20기는 25%, 22기 29%, 23기 28%, 25기 26%로, 육사를 졸업한 장교의 최소 4분의 1은 장군이 됐다. 그러나 이 비율은 29기 16%, 31기 14%, 32기 14%, 33기 13%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이 분야 사정에 밝은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장군 진급 대상이 되는 38기 이후는 13~15% 수준으로 진급률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히 진급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진급을 하더라도 언제 하느냐가 문제다. 육사 22기의 경우 41~42세면 장군이 됐다. 현재 국방장관, 합참의장, 각군 총장 기수인 27기부터 29기까지는 44~46세에, 30기의 경우는 47~48세에 장군이 됐다. 올해 준장 진급 대상이 되는 38기는 49~50세에 진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의 인력구조에서 고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상위계급 위주로 적체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인사 병목현상이 방치될 경우 현재의 군 인력구조는 ‘창군 이래 최악의 인사적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엉망이 된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5월 조영길 국방장관은 계룡대를 순시하면서 “국방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인사개혁”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2005년 국방개혁에 대한 대통령 보고 때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 추진으로 인해 군 간부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국방개혁2020’에 따르면 엄청난 부대 수 조정으로 자리 감소가 불가피한데, 간부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 부족한 병과나 남아도는 병과의 인원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년을 채우기 위해 눌러앉아 후배들의 진출기회를 막아버린, 육군 대령의 최소 30%에 달하는 인원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국방개혁2020’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을 뿐 아니라, 군 인력구조 개선안에서도 뚜렷한 대안이 발견되지 않는다. 인력구조 개선이 없는 부대구조 재편이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한국군의 대혼란이 불 보듯하다.
육근 군 구조개편 내용(2010~2020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의 인수위는 군의 너덜너덜한 각종 기능을 과감하게 아웃소싱하고 각 기능의 통합성을 증진하는 데 군 구조개편의 핵심을 뒀다. 이 기조로 국방기본정책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7월경 갑자기 국방부 개혁위원회에 육군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하는 안이 제출됐다. 이 구조개편안은 육군 교육사령부에서 연구한 것이었는데, 명백히 미군과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유사시 군사령부 이상은 연합사령관이 지휘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육군 교육사의 연구안은, 김관진 육군 전략기획처장(현 합참의장)이 국방부에 설치된 국방개혁위원회에 제출한 것이다. 천용택 당시 국방장관은 지금의 ‘국방개혁2020’과 유사한 ‘1·3군 통합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2군의 후방작전사령부 개편’ 방안을 국방개혁안으로 정식 채택한다. 계속해서 앞서의 예비역 대령의 말이다.
“이러한 군 구조개편안이 미군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이유는 미군의 지휘통제 체계인 전구 지휘통제 시스템(GCCS·Global Command Control System)과 한국군의 지휘통제 체계인 C4I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한국군의 지휘통제 시스템을 믿지 않았고, 두 군사령부를 통합해 지상작전사령부 하나로 작전지휘할 수 있다는 우리 국방부의 주장에 강한 불신을 표시했다.”
시스템 통합, 그 머나먼 길
이와 함께 미군의 정보 라인인 지휘소자동화 시스템(CPAS·Command Post Automation System)과 한국군 C4I의 연동 문제도 미군 측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던 사안이다. 결국 이러한 미군 측의 문제 제기로 한국군의 구조개편안은 채택되자마자 없던 일이 되고 만다.
그런데 ‘국방개혁2020’에는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초기와 같은 안이 다시 등장했다. 물론 합참은 김대중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군단급 C4I와 군사정보운영 시스템(MIMS·Military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을 발주하고 작전무기의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한국형 합동전술 데이터링크, 전구작전지휘통제시설 개선 등을 발빠르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대부분 2011년경 전력화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지휘통제 체계는 개발에서 적용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한국군의 신경과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정보 및 지휘통제가 통합된 구조(Enterprise Architecture)를 구축하는 것, 모든 정보가 융합되고 동맹국과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는 기반 위에서만이 작전사령부의 통합은 가능하다. 이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환되는 것에 비견되는 비약적 혁신에 해당한다. 그간 금강·백두사업, C4I, CALS사업, 육군 SPIDER사업 등 파행으로 얼룩진 정보화사업의 목록들을 고려해보면, 여러 사업을 발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럼스펠드 vs 신세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병력감축의 타당성이다. 사실 이 부분은 정치논리와 군사논리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우선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에릭 신세키 육군참모총장을 전격 해임한다. 신세키 총장은 “전쟁과 전쟁 이후 이라크를 안정시키는 데 50만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현대전을 모르는 소리”라며 이를 비판했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라크에서 미국의 안정화 작전은 계속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이미 2004년부터 미 국방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전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또 실수를 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2006년 11월, 럼스펠드 장관은 전격 경질됐다. 비슷한 시기 미 의회 청문회에서 존 아비자이드 미 중부지역사령관은 “개전 후 수십만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한 에릭 신세키 육군총장의 견해가 옳았다”고 증언해 파문을 일으킨다. 야전사령관과 예비역 장성 등 대규모 병력을 통한 ‘위용 과시’에 집착하는 전통적 군사사상가들이 정치논리로 추진된 미국의 군사혁신 자체를 무모하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란은 한국군 병력감축 문제로 불똥이 튀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3월7일 미 의회 하원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한국군의 ‘국방개혁2020’에 따른 병력감축과 병사들의 복무기간 단축 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벨 사령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한국군은 현재 현역과 예비군을 포함해 370만명 수준의 병력을 오는 2020년까지 200만명 수준으로 감축할 계획”이라며 “북한군이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 같은 대규모 병력 감축은 신중하게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이 진정으로 우려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2001년 이후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침공을 격퇴한 후 북한 지역에 150만명 이상의 병력이 상시 주둔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통치가 가능하다”고 예측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이후로 미국은 여전히 이 수치에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병력을 감축하고자 하는 국방부와 충분한 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군부의 의견차이는 향후 한반도 전쟁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방개혁에 간여했던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한 것은 병력수에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라크전쟁 자체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가 이라크에서와 같이 북한을 침공한다면 병력이 적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전쟁은 상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전문가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동서독이 통합할 당시 서독의 병력이 14만 정도였는데 동독은 거의 30만이었다. 동독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아 군사통합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동독군의 대위 이하 군인들을 전원 강제 전역시켰다. 그로 인한 사회 불안도 만만치 않았다. 향후 통일 국면에서 북한군과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일방적인 병력감축은 곤란하다.”
이러한 의견을 고려할 때 병력수는 단순히 군의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판단될 문제가 아니다. 거시적으로 한반도전쟁에 대한 이해, 어떠한 통일관을 견지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즉 국가 대전략 차원의 비전과 방향제시를 전제로 한 국방력 건설의 원칙과 방향이 정립돼야 함에도, 현재의 부대구조 개편과 병력감축안은 전략적 중심이 무엇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여러 자료를 통해 추정해보건대 국방부의 병력감축 논리는 보병부대의 감축과 기계화부대의 창설로 이어지는 것인 듯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국군의 대표적인 ‘거품’과 ‘군살’로 지적되는 각군 총장 산하의 행정부대, 지원부대를 통폐합하고 아웃소싱한다는 내용은 군 구조개편안에서 강조되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부 초기의 국방개혁안과 비교해도 후퇴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군살과 거품은 놔두고
최근까지 국방부와 합참이 세부적인 부대구조 개편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러한 의문에 명확히 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투병력 구조조정을 통해 병력감축을 도모하되 후방 지원부대의 병력수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 군은 전투를 하는 군이 아니라 행정과 관리를 하는 군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 예로 군은 골프장, 호텔 및 콘도, 복지회관 등 2000여 개 복지시설에 총 5000명의 현역병을 투입하고 있다. 취사병만 해도 6000명이 넘는다. 일선 부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 외에도 정비창, 보급창, 인쇄창, 경리단, 병원, 학교기관, 군종병 등 각종 명목의 비전투병은 전투기능이 떨어진다. 이 외에도 연간 2만~3만명의 입실환자, 연간 6000건에 이르는 범죄자 등 각종 명목으로 전투임무에서 제외되는 인력을 모두 제하면, 실제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부대 병력수는 상당히 줄어든다. 명목상으로는 68만명의 대군이라지만 일선부대는 언제나 병력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국방개혁2020’의 군 구조개편은 병력감축에 따라 전투병의 비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현 추세대로라면 이 비율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1990년의 국군조직법 개정, 즉 8·18군제개편은 ‘1인 장기집권을 영구히 방지한다’는 1987년 9차 개정헌법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시 평화민주당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무소불위의 권한이 집중된 유니폼을 입은 군 지휘권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합의가 문민통제를 확립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뤄졌다. 더불어 헌법은 병정(兵政)일치의 원칙, 즉 군인이 아닌 민간인 국방장관을 통해 군정과 군령을 일원적으로 행사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이로 인해 현재의 합참은 군령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 아니라 단지 장관의 군령행사를 보좌하는 기관으로 그 위상이 제한되어 있다. 오랜 군사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문민의 우위’, 즉 ‘문민통제’의 제도적 장치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한국군은 노태우 정부 이래 17년째 합동군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합동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특히 현재의 합참은 그러한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국방부에서 대미관계 관련 정책직위를 역임한 한 고위인사는 “현재의 합참은 작전만 하는 기구가 아니라 전력증강 업무를 비롯해 시험평가, 인사군수 등 잡다한 영역까지 업무가 확대되어 있는 행정기구라 작전사령부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합참 예하에 작전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어 각군의 전투부대를 지휘하도록 하면 합동성이 크게 증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논리와 군사논리
합동성 문제에 정통한 또 다른 전문가 역시 “현재의 합참은 군령 보좌기구이므로 합참의장은 작전지휘권한이 없다. 말 그대로 의장(Chairman)이지 지휘자(Commander)가 아니다. 이러한 행정기구에 현재 한미연합사령부가 맡고 있는 작전지휘 기능까지 포함된다면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불어 그는 “이제까지 한국군에는 사령부가 없었다. 작전을 전담하는 기구를 창설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한국군은 사령부가 없는 군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이제껏 통합사령부는 한국군 합참이 아니라 연합사였으므로, 전작권 전환으로 연합사가 해체된다면 이를 대신할 조직이 필수적이다”라며 ‘합동사령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면 ‘국방개혁2020’은 2010년까지 합참조직의 확대·개편을 제시하고 있지만, 합동사령부 창설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과연 그 배경은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분야 고위직을 역임한 인사의 견해를 들어보면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군 합참이 작전사령부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은 “한국적 국방 현실을 외면한 착오와 오해에 불과”하다는 반박이다.
“미국의 합참은 전구(theater) 차원의 작전을 지휘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통합사령부의 몫이다. 반면 한국군 합참은 전투부대를 충분히 작전통제하며 전투부대의 교육과 훈련까지 세세하게 간섭한다. 즉 한국 합참은 이미 미군의 지역통합사령부가 하고 있는 기능의 일부를 충분히 하고 있으므로 합동사령부라는 별도의 기구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미국 합참의 경우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면서 이 인사는 만일 합동사령부가 창설되면 “또 하나의 지휘계통이 추가되는 것으로 지휘체계에 옥상옥이 생겨 혼란이 더 가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리하자면, 한국군의 상부구조를 설계함에 있어 문민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정치적 관점’과 자주국방 시대의 단독 작전지휘를 원활하게 하자는 ‘군사적 관점’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합참의 미래상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것. 앞으로도 정치영역과 군사영역의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한 이유다. 이는 노태우 정부의 8·18계획을 둘러싸고 정부와 국회가 벌인 격렬한 논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국방 문민화’와 ‘자주국방’의 규범이 상호 통합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와 국방이라는 두 영역은 다른 나라에서도 항상 협력과 갈등을 오가며 끊임없이 긴장을 조성해왔다.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보니 현 정부가 2010년 합참의 미래상을 이미 결정해놓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군의 상부구조 개혁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고립된 개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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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군 구조개편은 단순한 수학공식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전쟁 양상이나 통일 이후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국가의 종합계획으로 추진돼야 한다. 당연히 소수 군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대전략의 요구를 반영해 국민적인 합의와 참여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국방개혁위원장은 보통 전직 총리나 전직 대통령이 역임하며 정부 각 부처가 다 같이 참여하고 법제화를 통해 국방개혁이 완성된다. 국방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국방조직이 사회의 제도와 문화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기본 경로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국방개혁2020’은 역대 정부의 군 개혁이 정권만 바뀌면 용두사미가 되었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정치적 공감대와 국민적 후원을 받지 못하는 ‘고립된 개혁’이 되려는 조짐이 곳곳에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