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전지로 쓰이는 리튬 이온 배터리.
그런데 이 굴욕 사태엔 공통점이 있다. 리콜 조치한 배터리가 모두 ‘리튬 이온 배터리’라는 점이다. 갑자기 나온 화학 용어에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지금 휴대전화 뒷면을 열어 배터리 제원을 보라. 10대 중 9대는 리튬 이온 배터리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에서부터 MP3플레이어, 노트북까지 두루 쓰이는 배터리는 건전지처럼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재충전이 가능한 것이다. 충전해 여러 번 쓰는 전지를 2차 전지라고 하는데, 일본 기업들을 톡톡히 망신시킨 리튬 이온 배터리는 2차 전지 가운데에서도 ‘황태자 중 황태자’로 꼽힌다. 사용 시간이 길면서도 충전시간이 비교적 짧고 무게는 가볍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가 혁명적인 속도로 경량화, 소형화, 고성능화한 것도 리튬 이온 배터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한때 2차 전지로 명성을 날린 니켈, 카드뮴 배터리와 달리 중금속 성분이 적어 친환경 배터리로도 입소문이 났다.
그렇지만 세상에 ‘무결점’은 없나 보다. 리튬 이온 배터리가 제조 공정상 결함이 있거나, 과열·과전압·충격이 가해질 경우 수분과 격렬하게 반응해 폭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소니의 리튬 이온 배터리를 내장한 델 노트북이 회의 도중 화재를 일으킨 사건이 일어났다. 화재 사진이 언론사에 제보되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면서 델은 세계 PC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는 후폭풍에 시달렸다. 노키아도 배터리 불만 사례가 100건 접수되자 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납품업체를 압박해 전량 리콜 조치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리튬 이온 배터리의 민감한 성질을 알고도 일본 업체들이 제조 공정을 간소화하거나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대량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이번 일로 전세계 2차 전지 시장의 60~70%를 점유한 배터리 강국 일본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리튬 이온 배터리의 대량 리콜 이후 후발주자인 삼성SDI, LG화학 등 국내 기업들에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