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무대인 가가와현 아지초 마을 전경.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2004년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역시 그런 영화다. 결혼을 앞둔 주인공이 갑자기 고향집을 방문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법한 학창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는, 일본은 물론 한국과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관객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영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이번에 소개할 작은 마을, 가가와현(香川縣)의 아지초(庵治町)다.
주인공이 옛 연인이 준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걷던 방파제.
일본의 대표적인 정원이자 여러 영화의 무대가 된 다카마쓰의 리쓰린 정원.
마을 전체가 영화의 무대인 아지초에서 먼저 찾아갈 곳은 고등학생인 마쓰모토 사쿠타로(모리야마 미라이)와 히로세 아키(나가사와 마사이)가 병원에서 빠져나와 여권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찾았던 사진관이다. 세트로 만들어졌던 사진관은 철거되고 지금은 공터뿐이지만 주변에 늘어선 건물과 신작로는 영락없이 영화 속 광경 그대로 보존돼 있다. 고등학생 시절의 분장한 사쿠타로와 아키뿐 아니라 성인이 된 사쿠타로(오사와 다카오)와 결혼을 앞둔 리츠코(사바시키 고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사진관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체국을 지나 좌측으로 20여 m 이동하면, 영화 속에서 사쿠타로와 아키가 워크맨을 바라보며 라디오 프로그램 ‘미드나잇 웨이브’에 엽서를 보내 누가 먼저 뽑힐지 내기하기로 결정하는 아키야마(秋山) 상점이 나온다. 실제로는 옷가게로 지금도 ‘타니’라는 고유 상호로 옷을 팔고 있는데, 촬영장소를 물색하던 제작진이 일부 공간을 세트장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단숨에 허락해줬다는 게 인심 좋아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놀라며 가게 내부는 물론 사쿠타로와 아키의 사인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는 그녀의 표정이 자못 신나 보인다.
아키와 사쿠타로가 등하교하던 길. 전형적인 일본의 농촌 풍광이다.(좌) 아지초 마을 골목과 신작로에 있는 영화 촬영장 안내 사인보드.(오른쪽 위) 영화 서두의 교장선생님 장례식 장면을 촬영한 목조주택.(오른쪽 아래)
아키와 사쿠타로가 여권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전차를 탄 현청 앞 정류장.(좌) 원작소설에서 아키와 사쿠타로가 하굣길에 들른 우와지마성(城).(우)
아키가 책을 읽으며 사쿠타로를 기다리던 계단.(위 왼쪽)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사인과 기념사진이 타니 상점에 장식되어 있다.(위 오른쪽) 사쿠타로와 섬으로 놀러간던 아키가 쓰러지자 아키의 아버지가 그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아지초의 항구.(아래)
오누지 신사에서 200m 지점부터는 긴 방파제가 이어진다. 빨간 등대, 작은 목선이 정박해 있는 방파제에선 섬으로 여행을 갔던 아키가 백혈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던 장면과 스쿠터를 타고 방파제를 찾은 아키와 사쿠타로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 성인이 된 사쿠타로가 아키가 녹음해놓은 테이프를 들으며 걷던 장면 등이 촬영됐다. 족히 500m는 넘을 듯한 방파제는 한가로이 걸으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옛 추억을 되새기기에 좋다.
그밖에도 아지초 마을에는 많은 촬영 장소가 있다. 사쿠타로와 아키가 찾았던 꿈의 섬은 항구에서 보트를 이용해 10분이면 닿는 이나게지마라는 무인도이고, 아키가 앉아서 책을 보던 빨간 다리가 보이는 돌계단, 교복을 입은 사쿠타로와 아키가 스쿠터를 타고 질주하던 미야노시타바시 지역 등도 이 영화를 사랑하는 관광객이라면 잊을 수 없는 공간들이다.
인근 어촌과 섬 사이를 운행하는 여객선이 대기 중인 다카마쓰 항구 풍경.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에히메현에 있는 마쓰야마(松山)다. 병원에 입원한 아키를 찾아온 사쿠타로가 아키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 두 사람이 병원을 몰래 빠져나와 사진을 찍으러 가기 위해 전차를 기다리던 장면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병원과 공원으로 등장한 장소는 실제 병원이 아니라 에히메 현청으로, 정문을 지나 왼쪽으로 연결된 복도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실제의 일본 병원들은 분위기가 무척 밝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본 영화에 나오는 병원 장면은 어두운 느낌이 강한 관공서에서 촬영된 것이 많다. 오타루 시청에서 병원 장면을 찍은 영화 ‘러브레터’가 대표적이다.
사랑은 아프고, 그 아픔은 영원히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무대 아지초는 마치 이 아픔을 형상화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대한 세트장처럼 보인다. 그저 평범한 항구에 불과하지만, 아키가 고통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 것처럼 따뜻하고 섬세하게 방문객을 맞는다. 영화만큼이나 아름다운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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