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이해찬 X파일’ 검증

아파트 인허가 전방위 로비 의혹 K회장, ‘이해찬 총리실’ 방문 기록, 이해찬 측 “온 적 없다” 부인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7-10-09 1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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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 아파트 시행 대행 K회장에 1223억 준다” 문건
    • KT·현대건설·K회장, 아파트 건축 위해 경찰 기마대 이전 시도
    • 경찰, ‘기마대 이전’ 불가→‘대체부지 이전’ OK
    • K회장, 경찰청 감사원 성동구청 상대 ‘인허가 활동’ 정황
    • “K회장, 2006년 2월 ‘업무차’ 총리실 방문” 기록…K회장은 함구
    • 이해찬 중동 방문 때 K회장 동행…“이해찬과 K회장은 오랜 지인”
    • K회장, 대통령경호실 직원을 감사로 채용…권양숙 여사와 같은 모임
    ‘이해찬 X파일’ 검증
    정치권과 친분이 있는 건설업자 K회장이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KT 소유 부지에 아파트 사업(부개 푸르지오 아파트)이 성사되도록 ‘시행을 대행’한 대가로 시행사인 KT 측으로부터 최대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K회장과 그의 회사 간부가 부개동 아파트 사업 인허가뿐 아니라 지난 3~4월 권력형 특혜의혹이 제기된 성수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인허가 과정에도 개입해 경찰 등 정부 여러 부처를 찾아다닌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 전망이다. 이 아파트 사업도 KT가 시행사였다.

    이 사업 인허가가 추진되던 시기 K회장은 당시 이해찬 총리실도 ‘업무차’ 방문한 기록이 확인됐다. K회장이 총리실에서 어떤 업무를 상의했는지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해찬 전 총리 측은 K회장의 총리실 방문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K회장은 답변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K회장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건설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관공서를 상대로 한 공사에서 수완을 발휘했으며 공직자, 정치인과 친분을 쌓아온 마당발로 알려졌다. 그는 2002년경 KT의 자회사이던 K사의 지분 34%를 KT 측으로부터 매입해 K사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KT는 K사 지분 19%를 보유하게 됐고, K사에 공사를 맡기기도 했다.

    2007년 5월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옛 KT 송신소 부지에서 2010년 입주 예정으로 ‘부개 푸르지오’ 아파트 1054가구가 분양됐다. 시행사는 KT, 시공사는 대우건설이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사업은 건축허가를 받을 때는 ‘특혜 시비’가 일었고, 분양할 때는 ‘고(高)분양가 논란’에 휩싸였다.



    인천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5년 12월 인천시는 KT에 대해 이 아파트 사업 승인을 해주면서 15층 이하 건축물만 지을 수 있는 2종 일반주거지역인 이 부지를 15층 이상 건축이 가능한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이 지역은 교통 혼잡이 극심한 곳인데 어떻게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역 주민들은 이 부지에 공원을 조성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묵살됐다”면서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인천시는 “아파트 부지 옆 초등학교 앞으로 폭 20m 도로를 개설하라고 했는데 KT 측이 우회도로를 만드는 것으로 대체해 사업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는 3.3m2당 분양가가 1099만원(25평형, 82.65m2)~1399만원(58평형, 191.7m2)으로 책정됐다. 이 때문에 고분양가 정책으로 인천 지역 부동산의 가격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분양 당시 인천연대 측은 “부개 푸르지오 분양가는 부평구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인천이 부동산 투기로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KT의 고가 분양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신동아’가 최근 입수한 K회장 소유 K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H회계법인)’에 따르면 KT측은 부개동 ‘부개 푸르지오’ 아파트 개발로 발생한 수익금 중 최대 1223억원을 ‘시행 대행’ 대가로 K사에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20쪽 ‘12-2 당기말 현재 진행 중인 주요 공사현장의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란 제목 아래 “K사가 ‘발주처 KT’로부터 받는 ‘부개동 시행 대행 수익’이 ‘계약금액’으로 1223억2600만원(계약기간 06.11-09.10)이며 ‘계약잔액’으로 1175억1858만8000원이다”고 밝혔다.

    ‘이해찬 X파일’ 검증

    2000년 8월1일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주민 김준행씨가 KT의 아파트 사업 자리를 가리키며 “이곳은 공원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KT 측은 “1223억원이라는 액수는 K 사가 회계법인에 제출한 자체 문건에 기재된 것으로, KT와의 공식 계약서에는 그런 액수가 명시되지 않았다. 또한 1223억원을 일시에 지급한다는 것은 아니며, 아파트 사업이 당초 예상대로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KT가 K사에 지급할 수 있는 이익 배분액 중 최고액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근 토지 매입, 모델하우스 설치 등 사업에 들어간 각종 비용을 사후 실비 정산하는 개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T 측은 2007년 9월 현재까지 얼마가 어떤 방식으로 K사에 지급됐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다. 또한 KT 측은 시행 대행 수익 중 ‘계약금액’에서 ‘계약잔액’을 뺀 금액인 48억여 원이 K사로 이미 지급됐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확인해주지 않았다.

    1223억 지급 논란

    K회장이 KT로부터 받는다는 1223억원에 달하는 ‘시행 대행 대가’에 대해 일각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우선 ‘아파트 사업 시행 대행’ 자체가 법과 제도 내에 있는 행위 절차가 아니다. 한 인허가 담당 공무원은 “인허가 문제는 행위주체가 분명해야 한다. 인허가기관은 시행사만을 상대해야 한다. ‘시행 대행업자’는 인정될 수 없다. 시행 대행 자체가 이권(利權)사업 인허가의 ‘절차적 투명성’을 흐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KT가 K사에 지급하기로 한 ‘시행 대행 수익’에는 K회장 측이 관공서 등을 상대로 해 아파트 인허가를 받아준 대가도 상당부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KT 측도 “‘부개동 시행 대행 수익’에 설계비 등 그간의 제반경비 외에 아파트 인허가를 받는 데 소요된 활동에 대한 대금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KT 측은 K사의 시행 대행 수익 중 ‘인허가 활동의 대가’가 구체적으로 얼마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다.

    K회장 측이 부개동 아파트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인허가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돈이 사용됐는지, 그 활동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시행 대행 수익 중 인허가 활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하게 된 경위에는 의문이 없는지, 1223억원을 실제로 K사가 받게 되는지에 대해 KT와 K회장 등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변호사는 “지급 가능한 최대 액수라고는 하지만 ‘시행’도 아닌, ‘시행 대행’ 한 번으로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얻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K회장 회사에 지급하는 시행 대행 수익은 KT 측으로선 ‘사업비용’에 해당하므로 고스란히 아파트 분양가에 반영되어 고분양가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신동아’는 부개동 ‘부개 푸르지오’ 아파트 사업 시행 대행과 관련된 KT와 K사간 계약서 내용의 전면 공개를 KT에 요청했다. 그러나 KT 측은 공개를 거부했다. ‘신동아’는 K사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K회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하는 한편, 부개동 KT 시행 사업건, 성수동 KT 시행 사업건의 핵심 사안들에 대해 답변을 요청했으나 K사는 응하지 않았다.

    ‘권력형 특혜 의혹’

    지난해 11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선 ‘서울숲 힐스테이트’(445가구)가 분양됐다. 이 아파트는 최고 분양가가 3.3m2당 3250만원(평균 분양가 3.3m2당 2000만원 이상)의 높은 가격임에도 평균 75대 1, 최고 1144대 1의 청약률을 기록하며 ‘부동산 열풍’을 몰고왔다. 이에 따라 아파트 부지를 제공한 시행사 KT,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거두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 사업은 시행 초기엔 어려움이 컸다. 경찰이 기마대로 쓰고 있는 땅을 사업자에게 일부 떼줘야 허가가 나는데, 경찰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경찰이 땅을 내놓기로 해 사업이 성사됐다.

    지난 4월 국회와 일부 언론에서 이 아파트 사업에 대해 ‘권력형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이때는 석연치 않은 인허가 과정을 중심으로 의문이 일었다. 그런데 5개월여가 지난 9월 현재 K회장 측이 부개동 사업에 이어 이 사업에도 구체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K회장은 경찰청, 감사원, 성동구청을 상대로 ‘서울숲 힐스테이트’ 인허가 대행 활동을 했다고 한다(인천 부개동 아파트 건과는 달리 서울숲 힐스테이트의 경우 KT는 K회장에게 공식적으로 시행 대행을 맡기지 않았다).

    이 사업은 KT가 2004년 자사 소유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2가 1동 331-1번지 소재 2만5824㎡를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게 됐다. 2004년 11월 KT는 지구단위개발제안서 등 필요한 서류를 성동구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제출, 아파트 사업 허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2005년 5월9일 KT 부지에 대해 지구단위결정승인을 고시했다. 단, ‘사업자 측이 아파트 예정지 옆 부지 일부를 기부체납하는’ 조건이었다.

    ‘이해찬 X파일’ 검증

    부개동 아파트 사업 시행대행 수익 1223억원을 표기한 K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 보고서.

    성동구와 서울시가 KT 측에 기부체납을 요구한 부지는 경찰청 소유 기마대로 이미 사용되고 있던 땅이다. 사업자 측은 아파트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선 경찰청으로부터 이 땅을 사들인 뒤 이를 성동구에 기부체납해야 했다. 고재득 당시 성동구청장은 “대형 할인점, 대단위 아파트 단지 조성 등으로 이 일대 교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수익자인 아파트 사업자에게 도로 확보의 책임을 지우는 차원에서 이런 조건을 걸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업자 측은 경찰청에 “기마대 땅을 팔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관할 서울경찰청은 2005년 7월15일 성동구청에 “기마대 땅 매각 불가”를 통보함으로써 아파트 개발사업은 난관에 부딪혔다.

    ‘사업 불가능’이 ‘가능’으로

    사업자 측은 감사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자 감사원은 민원접수 3일 만에 성동구청 등에 대해 현장 감사를 실시했다(금요일 민원접수, 월요일 감사 착수). 국회에선 “이때 감사원은 성동구에 10여 차례 전화통화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동구청은 7월20일 이 아파트 사업에 대한 건축심의를 서울시에 요청했고 7월29일 서울시는 건축심의를 통과시켰다. 9월8일 사업계획에 대한 승인(건축허가)이 떨어졌다. 사업자는 이때도 기부체납할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성동구는 “기마대 땅을 확보하겠다”는 사업자의 ‘인증서’를 근거로 허가를 내줬다.

    이 사업 초기에 성동구는 “기마대 대체부지 확보가 어려워 사업승인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는 검토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러나 사업자의 다각적인 노력, 감사원의 전격적인 현장 감사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초의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셈이다.

    사업자 처지에서 다음 단계는 경찰이었다. 경찰은 2005년 10월 “기마대 땅을 안 팔고 버텨도 문제없다”는 법률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 일각에서는 “경찰 기마대는 ‘국가 시설물’이다. 공공의 치안 확보 및 경찰권의 품위 유지와 관련된 공익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있어왔고 이전할 필요성도 없다. 일개 민간 아파트 개발의 편의를 위해 이리저리 옮기거나 땅을 떼어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사업자 측은 20여 곳의 기마대 대체부지를 경찰 측에 제안한 상태였다. 그러나 성동구청의 보고에 따르면 대체부지 인근 주민 중 상당수는 기마대의 이전을 결사반대한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2005년 11월7일 경찰은 사업자 측에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2006년 3월6일 경찰은 사업자 측이 제안한 서초구 방배동 부지를 대체부지로 수락했다. 그러나 5월25일 서초구청이 ‘형질변경 불가’를 통보했다. 그러자 9월20일 사업자 측과 경찰은 기마대 전체를 대체부지로 옮기는 대신 “기마대 부지에서 기부체납 도로를 개설할 땅을 일부 떼어 이를 사업자 측에 주는 대신 사업자 측은 남은 기마대 부지에 실내 마장 건물과 청사 건물을 지어주고 별도로 1448m2(438평)의 토지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체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처음엔 기마대 이전을 전제로 한 대체부지를 원했다. 그러나 대체부지를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자 이렇게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사업자에 준 땅은 기존 기마대 내의 핵심시설인 마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관계자는 “KT 등 사업자 측에 의해 제기된 기마대 이전 민원은 여러 차례 내부 절차와 회의를 거친 뒤 경찰 수뇌부에도 보고됐으며, 최종적으로 수뇌부가 여러 방안 중 하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성수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사업자와 경찰 간의 기마대 부지 문제 최종 합의가 이뤄진 2006년 9월 당시 경찰청장은 이택순 현 청장이었고,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한진호 현 국가정보원 2차장이었다. 한진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2006년 11월 국정원 2차장이 됐다.

    성동구청은 이 KT-경찰 협약서를 근거로 2006년 11월8일 사업자 측에 아파트 분양을 승인했고, 사업자 측은 즉시 ‘서울숲 힐스테이트’ 분양에 나서 ‘고분양가-청약경쟁’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무리했다. 사업자는 아파트 준공 2개월 전까지 경찰과의 협약 내용을 이행하면 된다.

    ‘이해찬 X파일’ 검증

    2006년 11월 서울 성수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분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결국 기마대 부지가 전체 면적에서 축소된 것 아니냐. 사업자의 편에 서서 아파트 사업이 잘 되도록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민원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법적으로도 아파트 사업자 측 주장이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실내 마장 및 청사 신축으로 기마대 운영의 효율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경찰로서도 이익을 본 것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숲 힐스테이트’ 인허가가 이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에 K회장과 그의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나왔다. 고재득 당시 성동구청장은 “힐스테이트 아파트 사업 초기 K회장이 구청장실로 찾아와 ‘사업이 원만하게 성사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K회장은 ‘건축허가를 내야 되는데 구청에서 잘 협조해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아파트 지을 땅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부자냐’고 되묻기도 했다. K회장은 호남 사투리를 많이 썼다. 그래서 ‘시골 사람이 출세해서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성동구에서 이 아파트 분양허가를 내준 것은 내가 구청장직에서 퇴임한 이후다. 내 재임 기간에는 이 아파트 인허가 문제는 원칙대로 처리됐다고 본다.”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

    K회장은 지난 3월 국회에서 ‘서울숲 힐스테이트’ 의혹이 제기되자 국회로 찾아가 해당 국회의원 무마에도 나섰다. K회장은 3월23일 국회 의원회관의 김태환 의원실을 예고 없이 방문해 “이 아파트 사업은 나와 관계되는 문제다. 나는 깨끗하게 살아왔다”며 적극 해명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 측이 K회장과의 이날 면담 내용을 정리한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K회장은 아파트 인허가를 받기 위해 감사원과 경찰청을 상대로 본인이 직접 뛰어다녔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K회장은 “감사원과 경찰청에 민원을 누가 넣었느냐”는 질문에 “넣으라고 해서 넣었다”고 답변했다. 그는 “감사원에 전화는 누가 했느냐”는 질문에는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라고 했다.

    그는 “성동구청 간부 이모씨를 3~4차례 만났다.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 현대건설 소장 등과 항의하러 갔다”고도 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경찰청, 감사원, 성동구청 등 관계기관을 상대로 이 아파트 사업 인허가 문제에 전방위로 개입한 셈이다.

    K회장의 이 같은 말은 다른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K회장이 오너인) K사의 간부 A씨가 아파트 시행사인 KT를 대신해 경찰을 상대로 기마대 이전 문제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경찰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내용 중 일부다.

    ▼ K사 A씨가 ‘아파트 인허가 따내는 전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나.

    “(‘서울숲 힐스테이트’ 시공사인) 현대건설 간부 B씨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

    ▼ K사 A씨가 아파트 시행사인 KT를 대신해 경찰에 KT의 공문을 제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A씨가 KT와는 무관한 K사 소속인지 몰랐나.

    “나는 직인 찍힌 공문만 보고 일한다. 공문을 들고 온 사람이 어느 회사 소속인지는 알지 못한다.”

    ▼ 공식적으로는 전혀 이 사업과 관계없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일했나.

    “KT의 공문을 갖고 있으니까….”

    ▼ A씨와 사업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

    “A씨는 ‘사업이 어떻게 진척되어 가느냐’는 등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KT 관계자는 “아파트 인허가를 받는 시행업무와 관련해 K회장 측이 현대건설 과 함께 일을 한 것으로 안다. 현대건설이 인허가 등 시행업무까지 거의 전적으로 다 맡아서 했다. 우리가 성수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인허가 건과 관련해 K회장에게 대가를 주기로 한 것은 일절 없다. K회장이 현대건설과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K회장은 성수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사업이 성사되어 우리가 공사를 수주하면 본인도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해 인허가 과정에서 우호적으로 협력했다. 그분은 성동구청에서 인허가 받을 때 조언도 했고 경찰청, 감사원도 같이 다녔다. 문제로 남았던 게 기마대 건이었는데 나름대로 그분도 노력했다”고 했다.

    “기마대, 그분도 노력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도 성수동 힐스테이트 아파트 사업의 시행사는 KT다. 우리는 시공사로서 시행사에 일부 도움을 준 것뿐이며 시행관련 업무는 KT가 주도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가 K회장에게 대가를 주기로 한 것은 없다”고 했다.

    성수동 힐스테이트 사업의 두 주체인 ‘시행사 KT’와 ‘시공사 현대건설’에 따르면 K회장이 경찰 기마대 문제 해결 등 이 사업 인허가에 적극 뛰어든 정황이 한번 더 확인된다. 하지만 두 회사는 아파트 사업 시행과 K회장 관련 부분을 서로 상대에게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K회장이 지난해 2월 이해찬 전 총리 재임 당시 총리실을 출입했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왔다. K회장은 이해찬 전 총리와 수년 전부터 친분을 나눠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K회장은 프로골프대회를 후원하기도 한 ‘골프 애호가’다. 2005년 11월 이해찬 당시 총리의 중동 5개국 순방 때 K회장은 유준규 해외건설업협회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대표이사, 박세흠 대우건설 대표이사, 손관호 SK건설 대표이사 등 주요 기업인들과 함께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9월28일 대통령경호실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회장은 대통령경호실 2급 직원 정모씨를 K사의 감사로 채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권양숙 여사는 K회장이 회원으로 있는 한 후원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도 이 모임 회원 중에는 ‘서울숲 힐스테이트’ 인허가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던 현대건설 대표, S사(기마대 대체 부지 확보 때 관여한 기업)의 대표도 소속돼 있었다.

    ‘신동아’는 총리실 방문 부분에 대해 K회장 측에 “사실 확인을 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K회장 측은 “말할 내용이 없다” “질문을 K회장에게 전하겠다”고 한 뒤 응답하지 않았다.

    “기업하는 사람 거의 안 온다”

    이해찬 전 총리의 측근으로 지난해 2월 당시 총리실 공보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한 이강진씨는 이 무렵 K회장이 총리실을 방문했다는 점을 전면 부인했다. 다음은 이강진 전 총리 공보수석비서관과의 대화내용이다.

    ▼ K회장을 잘 아는가.

    “나는 잘 모른다.”

    ▼ K회장이 이 전 총리와 자주 만났나.

    “자주 보는 관계는 아닐 것이다.”

    ▼ K회장이 총리실에 찾아온 적이 있나.

    “없다. 총리실에 기업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서울숲 힐스테이트 인허가 건과 관련해 K회장이 이 전 수석이나 이 전 총리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지.

    “전혀 없다.”

    ▼ 이 전 수석은 K회장을 만난 적 있나.

    “총리님을 수행해 중동에 갈 때 본 적이 있다.”

    ▼ 총리실에서 K회장을 만난 적이 있나.

    “총리실에서…,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나? 사무실엔 거의 안 왔던 것 같은데.”

    ▼ 총리실에서 감사원이나 경찰청에 힐스테이트 건과 관련해 전화를 한 적은.

    “전혀 없다. 힐스테이트 건과는 전혀 무관하다.”

    ▼ K회장이 총리 중동 순방에 동행한 경위는.

    “국무조정실에서 상공회의소 쪽과 해외건설협회 등 몇 개 단체에 쿼터를 줬을 것이다.”

    ▼ 그쪽에서 순방에 동행할 기업인들을 선발한 것인가.

    “그렇다. 황당한 일도 다 있었지 않나. 부산에서 온 기업인이 골프공으로 사고 치고….”

    ▼ 봉황 그려진 골프공?

    “그렇다.”

    ▼ 이 전 총리가 1990년대 서울부시장일 때부터 K회장이 이 전 총리와 알게 되어 친분을 유지해왔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때는 몰랐을 건데…. 그때 K회장이 뭘 하고 있었는지…. 내가 듣기로는 ‘그 양반이 굉장히 마당발이다’, 그렇게 알고 있다. 총리와는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 K회장 고향인 보성에 이 전 총리가 한번 가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보성에? 그 양반 집이 보성인가. 간 적은…모른다. 여행 가다 들렀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리시절은 아닐 것이고, 의원시절엔 구체적으로 일정을 짜드린 게 아니니까.”

    무슨 ‘업무’였을까?

    ▼ 이 전 총리가 K회장과 골프를 친 적 있나.

    “모르겠다. 의원시절엔 ‘이번에 누구와 골프 친다’고 우리(당시 의원 보좌관)에게 말씀하시지 않으니까. 하여간 교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총리님이 평민당 시절부터 정치했는데…그래서 윤상림도 아시고 그런 것이다. 호남 출신 기업인들 중에 총리님과 친한 분이 많으니까. (K회장과) 학연이나 지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신동아’가 확인한 ‘정부중앙청사 출입기록’에 따르면, K회장은 지난해 2월2일 오전 9시46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중앙안내데스크1’을 통해 청사 안으로 들어와 ‘491번 방문증’을 부여받은 뒤 ‘국무총리 비서실’ 및 ‘국무총리 공보수석비서관실’을 방문한 것으로 돼 있다. 일반인의 정무중앙청사 내 사무실 방문은 엄격히 통제되며 해당 사무실 측의 방문 승인이 있을 때만 허용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당시 국무총리는 이해찬 전 총리였고, 총리 공보수석비서관은 이강진씨였다. 기록에 따르면 K회장은 국무총리 비서실을 거쳐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를 만났거나, 총리 공보수석비서관실에서 그 방의 주인인 이강진 당시 수석을 만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날 K회장의 방문목적은 ‘업무차’로 표기돼 있었다. 기록상으로 K회장은 단순한 ‘안부 인사차’ 방문한 것이 아니며 ‘총리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업무’를 총리실과 상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 된다.

    현대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2월은 K회장이 서초구 방배동 대체 부지를 물색하는 등 기마대 문제 해결에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실제로 3월6일 경찰은 K회장의 제의에 동의했고 9월 최종합의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2006년 2월 K회장에게 있어 중요한 ‘대관(對官) 업무’ 중 하나는 기마대 문제와 관련해 경찰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전 총리 측은 만남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K회장은 함구하고 있어 이때 이 전 총리 측과 K회장이 실제 만났는지, 만나서 어떤 업무를 논의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이 전 총리는 지난 6월19일 대선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에 대해 “도덕성이 검증된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치안 시설물인 경찰 기마대의 이전이나 아파트 사업 인허가는 공공의 이익과 국민 알권리에 직결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유력 공직자와 관련해 일부 의문이 제기되더라도 국정감시나 대선주자 검증 차원에서 폭넓게 수용될 만한 사안이다.

    ▲인천 부개동, 서울 성수동 아파트 사업 인허가에 적극 개입한 정황이 있는 K회장이 사업 성사를 좌우하는 민감한 시기에 총리실을 업무차 방문한 정황이 있는 점 ▲K회장과 이해찬 당시 총리가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라는 점 ▲이후 K회장이 총리실 방문 목적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는 점 ▲총리실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방문기록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K회장의 총리실 방문 문제는 좀더 명쾌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

    범여권 내부에서도 “대선주자로 출마한 정치인은 작은 의문에 대해서도 공개검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필승을 위한 담금질”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다. 그러므로 국민은 당연히 대통령후보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대통령후보에 대한 검증은 피해서도 안 되고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를 포함한 범여권 후보들은 모두 존경받는 분들이다. 하지만 대통령후보로서의 검증은 별개다. 대선후보 검증은 네거티브도 아니고 포지티브도 아니다. 대선후보 검증은 대선 필승을 위한 필수적인 담금질 과정이다.” (2007년 6월28일 ‘친노(親盧)’ 진영 김두관 전 장관 명의 ‘보도자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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