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내 안에 게으름 있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입력2007-10-04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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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게으름 있다

    실속 없는 게으름과 이별하고 현명하게 게을러질 것을 권장하는 책들.

    지난해 초 다이어트 관련 책을 만들면서 마지막까지 제목 때문에 고민했다. 책의 요지는 헬스클럽 가서 운동할 생각 말고, 하루 중 5분 내지 10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움직이기만 해도 운동효과는 충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1주일에 3회, 30분 이상 연속해서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믿는데, 저자는 1회 30분 연속해서 하는 운동이나 1분씩 30회로 나누어 하는 운동이나 칼로리 소비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미국스포츠의학회에 발표된 논문에서도 입증된 결과다.

    하기 싫은 운동을 강박적으로 하지 말고, 평소 택시 잡아 탈 코스를 지하철을 이용하고, TV를 보면서 제자리 걷기를 하고, 기왕 노래방에 간 김에 열심히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을 뺄 수 있다.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게으른 건강법’이다.

    고민은 ‘게으른’이라는 표현에 있었다. 헬스클럽에 등록해놓고 새벽마다 ‘가? 말아?’ 고민하는 잠꾸러기족에게는 ‘덜 먹고 조금 더 움직여서’ 살을 빼는 방법이 ‘게으른 건강법’일 수 있다. 하지만 ‘게으른’이란 단어에서 한 알만 먹어도 체지방이 쫙 빠진다는 ‘해피 드러그(happy drug)’를 기대한 사람들에게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하면 사기가 된다. 논란 끝에 책 제목은 ‘게으른 건강법’이 됐으나 그 뒤로도 이 책을 볼 때마다 게으름의 본질이 뭔지 생각하게 된다.

    모호한 게으름의 정체

    올여름 ‘게으른 백만장자’(마크 피셔 지음, 밀리언하우스)가 자기계발서로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의 핵심인 게으른 백만장자와 부지런한 가난뱅이의 차이 몇 가지를 보자. 부지런한 가난뱅이는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게으른 백만장자는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벌고 싶은지를 분명히 한다. 부지런한 가난뱅이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하지만, 게으른 백만장자는 가장 중요한 일에 전력투구한다. 부지런한 가난뱅이는 마감 직전까지 일을 미루지만, 게으른 백만장자는 ‘나만의 마감일’을 정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한다.



    이 책에서는 게으름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루하루를 100m 달리기 하듯 숨차게 살며 쓸데없이 분주하기만 한 것에 반대되는,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많이 노는 것이 저자가 ‘권장’하는 게으름이다. 그렇게 하면 돈도 더 벌 수 있다니 게으름 예찬론자들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게으름의 정체는 점점 더 모호해진다.

    이런 혼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 책이 ‘굿바이, 게으름’(문요한 지음, 더난출판)이다. 게으름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삶의 에너지를 99% 쓰고 있는 사람이 1% 쓰지 않은 것을 두고 스스로 게으르다고 여길 수 있고, 반대로 99%를 쓰지 않고 1%만 쓰는 사람이 자신을 게으르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저자는 이처럼 게으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게으름을 예찬하는 책들이 속속 등장하는 바람에 혼란이 더해졌다고 말한다.

    게으름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이다. 그런데 ‘운동성’만 갖고 게으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는 안 하고 책상 정리하고 대청소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사람처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는 것은 게으름일까, 아닐까.

    저자는 이것을 ‘위장된 게으름(disguised laziness)’이라 칭한다.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부지런하려고 할 때 더 게을러지는 아이러니와 마주친다. 나는 이 부분에 밑줄을 쳤다. 결국 핵심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부지런한 가난뱅이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하지만, 게으른 백만장자는 가장 중요한 일에 전력투구한다는 ‘게으른 백만장자’의 교훈과도 일맥상통한다.

    실속 없이 바쁘다면 ‘선택장애’

    정신과의사인 저자 문요한은 게으름을 일종의 ‘선택장애’로 본다. 게으른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찾아서 도전하고 선택하는 일을 싫어한다. 선택하기 싫으니까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지 않고 늘 기약 없는 ‘다음’으로 미룬다. 그렇지 않으면 결정권을 남에게 넘겨버린다. 이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삶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들이 보이는 또 다른 양상은 선택의 가짓수를 무한정 늘려놓고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좁혀 쉬운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이처럼 게으름은 선택의 회피, 시작의 지연, 약속 어기기, 딴짓 하기, 꾸물거리기, 철퇴(은둔), 눈치 보기, 서두름, 즉각적 만족 추구와 중독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위장된 게으름’에 깜빡 속을 수도 있다. ‘아니, 서두름도 게으름이야?’라는 반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늦잠을 자서 출근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도 게으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부분이 있다. 게으름 예찬론이다. ‘느림의 미학’이나 ‘로하스족’으로 대표되는 게으름 예찬에 솔깃한 사람이 많다. “그래, 죽도록 돈 벌면 뭐해. 즐기며 살아야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우리가 굿바이 하고 싶은 게으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으름이라기보다 ‘느림’과 ‘여유’라 해야 정확하다.

    여유는 능동적 선택이고, 게으름은 선택의 회피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 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 하는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여유이고 후회만을 남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이 부분에도 밑줄을 쫙 긋는다. 여유와 게으름을 혼동하는 사람은 진짜 게으른 사람이다. 게으름 탈출법은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오전 7시면 사무실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까지의 2시간이 업무집중도가 가장 높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케줄 체크다. 회사 업무와 개인 일 가운데 오늘 꼭 해야 할 일과 피할 수 없는 일, 연락 등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체크한 다음,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매긴다. 그리고 한 뭉치 원고를 읽거나 고치거나, 글을 쓴다. 나만의 2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간다.

    게으른 ‘아침형 인간’?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서서히 업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하루 일정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예기치 않은 손님이 찾아오고, 전화가 걸려오고, 갑작스러운 회의가 소집되고, 앞의 일이 지연되고 뒤의 일이 밀린다. 한번 일정이 엉키면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이 마무리되질 않아 뒤죽박죽이 된다. 퇴근 무렵, 당초 처리하려 했던 일의 절반가량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일을 싸들고 집으로 간다.

    나는 내가 부지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굿바이, 게으름’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부지런한 게 아니라 분주할 뿐이고, 적절하게 취사선택할 줄 모르는 분주함은 오히려 게으름에 가깝다. 모든 일을 잘하려는 것은 환상이며 그런 환상은 우리를 ‘분주한 게으름’으로 몰고 간다.

    주변적인 일에 매달리며 정작 중요한 일은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서둘러 해치우고 있지 않은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혼자 끌어안고 있다 전전긍긍하며 귀가하는가?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친절한 당신’인가?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늘 미약한가? 게으름의 실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외연이 넓다.

    랍비 마빈 토카이어가 쓴 ‘탈무드2’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구약 ‘창세기’ 편에서 하루가 끝날 때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씌어 있는데, 유독 둘째 날만큼은 그런 말씀이 없는 이유를 놓고 랍비들끼리 논쟁을 벌였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둘째 날 하느님은 육지와 바다를 나누셨는데 그날 중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다음날로 넘겨서 “좋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슨 일이든 “다 끝나기 전에는 좋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고 있는 중이에요.” “거의 다 했어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당신도 게으름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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