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와 탤런트 박상아씨가 세인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전씨는 이를 위해 올 2월 본부인과 이혼했다. 그런데 전씨와 박씨는 검찰의 ‘전두환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5월 미국에서 법적 결혼을 했음이 밝혀졌다. 또 그 몇 개월 후에는 이 혼인을 무효(취소)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영화 ‘화려한 휴가’가 상영되기 일주일 전인 7월19일에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한 화랑에서 전씨의 둘째아들 전재용(43)씨와 탤런트 박상아(35)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는 2003년 ‘전두환 비자금’ 불법 증여(167억원) 관련 수사 때문에 언론에 알려졌다. 유부남이던 전씨는 이후 박씨와의 관계를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언론에서 ‘P씨’로 통하던 박씨는 전씨에 대한 수사가 자신과 가족에게까지 확대되자 2003년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후 세상과 소식을 끊고 살았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올 2월 전씨는 두 번째 부인이자 15년간 법적 부부였던 최모(38)씨와 이혼했다. 박씨도 전씨와 결혼하기 위해 올 5월8일 미국에서 돌아왔다.
“평범한 사람으로 모범적으로 살겠습니다. 우리를 잊어주십시오.”
전씨는 결혼 무렵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아버지 전두환씨가 1997년 2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선고된 추징금 2205억원 중 1670억원을 “가진 재산이라곤 29만원밖에 없다”며 지금껏 내지 않고 있는데다 자신도 박씨와 결혼하기 한 달 전인 6월15일 ‘전두환 비자금’ 증여사건과 관련, 71억여 원의 증여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포탈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8억원을 선고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하는 그의 행태가 고와 보일 리 없었다. 특히 전씨가 박씨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시가 30억원대 집에 신접살림을 차리자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전재용씨는 비자금과 관련해 지금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지난해 11월14일 재경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전씨가 한국증권금융에 30억원어치의 증권금융채권을 제시하고 이자를 합해 41억원을 찾은 후 이를 자신과 두 아들(14세, 11세)의 계좌에 입금시킨 사실을 발견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와 결혼의 관계
증권금융채권은 옛 현대투신의 지원자금 마련과 지하자금 양성화를 위해 1998년 10월31일 발행된 5년 만기 채권으로, 발행 당시 실세금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금리였지만 무려 2조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국세청의 자금출처 조사가 면제되고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명 ‘묻지마 채권’이었기 때문.
전씨는 만기가 지나도 이자가 붙지 않는 증금채를 무슨 영문인지 만기가 끝난 후 5년여 동안 묻어뒀다. 이를 수상히 여긴 금융정보분석원이 “금융채의 성격상 ‘전두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 그러나 검찰은 8개월이 지나도록 수사를 하지 않다가 지난 6월24일에야 전씨에 대한 계좌추적을 필두로 수사를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1부의 수사 담당 검사는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라 말을 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껏 언론에 나온 내용은 모두 사실일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전씨에 대해 계좌추적 영장을 청구한 시점은 그와 박씨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올 8월 안에 결혼 하겠다(실제는 7월19일에 결혼)”고 밝힌 때(6월22일)와 일치한다. 전씨측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확인된 100억원대 국민주택채권 중 일부를 팔아 증금채로 다시 사들인 것으로 새로운 비자금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이 돈이 또 다른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 자금이 아버지 전두환씨나 외할아버지 이규동씨에게서 증여받은(2000년 12월) 국민주택채권 중 일부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민사소송을 통해 강제 추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2001년 10월 당시의 전재용(오른쪽)씨와 박상아씨. 2002년부터 이들은 함께 여행을 다녔지만 언론에는 서로 ‘모르는 관계’라고 시치미를 뗐다
“라스베이거스 시청 홈페이지에 가보면 이 둘 이름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있어요. 5월12일 2003년도 날짜로 Certificate번호 D557889로요. 주소는 http://sandgate. co.clark.nv.us/ recMarriage/marrName.htm.”
댓글을 단 네티즌이 알려준 사이트로 들어가봤다. 사이트는 라스베이거스 시청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클라크카운티 홈페이지 내의 결혼기록 확인 코너였다. 이름으로 찾는 결혼기록 창에 ‘CHUN JAE YONG ’이란 이름을 치고 확인 버튼을 누르니 결혼 상대의 이름(Spouse Name)에 ‘PARK SANG AH’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들의 결혼 날짜는 2003년 5월12일, 결혼 인증번호는 ‘D557889’였다. 박상아라는 이름을 검색어로 넣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결혼 상대방이 전재용으로 나오고 같은 결혼 인증번호가 나왔다. 네티즌과 제보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혹시 이 사이트가 클라크카운티 공식 사이트가 아닌 사설 사이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클라크카운티 홈페이지(www.co.clark.nv.us)를 통해 거꾸로 확인해봤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 콘텐츠 중 ‘공식 기록(Public Record)’으로 들어가 ‘기록문서(Record Documents)’ 코너를 클릭하니 ‘결혼 확인 시스템(Marriage Inquiry System)’ 검색창이 나왔다. 이 화면의 ‘이름 검색’ 코너에 들어가 ‘전재용’과 ‘박상아’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제보자와 네티즌이 가르쳐준 사이트와 동일한 검색 결과가 나왔다.
너무나 간편한 결혼절차
과연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미국에서 결혼하고 부부로서의 법적 지위를 얻을 수 있을까. 취재 결과, 네바다주는 미국에서 결혼 절차가 가장 간소한 곳이며 특히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결혼과 결혼에 따른 법적 지위가 보장되는 곳으로 밝혀졌다. 이곳에선 외국인이라도 여권과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 증명서(marriage certificate)를 받을 수 있다.
클라크카운티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공증된 결혼증명서 사본은 사회보장과 보험, 이민과 운전 등 다른 모든 부분에 이용된다”고 씌어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한인회 관계자는 “결혼허가증을 받고 카운티가 정한 절차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면 법적 부부가 된다. 미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클라크카운티에서 공증 결혼증명서를 뗀 다음 한국의 구청에 가서 제출하면 혼인신고가 되며, 호적에도 부부로 등재된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은 클라크카운티 홈페이지에도 설명되어 있다.
결국 전-박 커플은 전씨에 대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내사가 진행되던 2003년 당시 적어도 미국에선 ‘불륜관계’가 아닌 법적 부부였던 셈이다. 클라크카운티의 결혼 기록이 사실이 되려면 전-박 커플은 그 시점에 미국에 있었어야 한다. 클라크카운티에서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고 결혼증명서를 받기 위해선 결혼 전 반드시 신부와 신랑이 직접 카운티 결혼국 사무소를 방문해 결혼허가증(marriage license)을 작성하고, 허가증이 발급되면 결혼국의 관리와 카운티 당국의 인증을 받은 주례가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
결혼식이 끝나면 주례와 관리는 자신이 서명한 결혼허가 내용을 카운티 법원과 기록보관소에 10일 안에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식과 관련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클라크카운티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하루에 끝나며 공증된 결혼증명서도 3~7일 후에 받을 수 있다.
대검의 수사 기록을 보면 전-박 커플은 2003년 5월 실제로 미국에 있었다.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수면으로 떠오른 시점은 대검 중수부가 2003년 11월 재용씨에 대한 비자금 수사 결과 일부를 언론에 흘리기 시작한 직후부터. 중수부는 출입국 기록에서 이들이 2002년 3월 싱가포르, 6월 홍콩, 10월 일본을 함께 들러 2003년 3월과 4월 각각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찾아냈다.
중수부는 이를 단서로 전씨의 비자금 일부가 박씨의 어머니 윤모씨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2004년 초까지 ‘P씨’로 일컬어지던 박씨는 그해 6월12일 검찰의 공식 확인 이후 실명이 공개됐다. 미국에서 머물던 전씨는 2004년 2월2일 귀국해 2월12일 증여세 포탈혐의로 구속됐고, 박씨는 계속 미국에 머물렀다.
결혼의 천국, 라스베이거스
클라크카운티 홈페이지 결혼기록 확인 코너의 전재용-박상아 커플 검색결과.
따라서 한국에선 유부남, 유부녀라 해도 클라크카운티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다. 결혼허가증을 받는 데 한국 호적을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가지고 클라크카운티 결혼국을 방문해 신상명세를 써넣은 다음 ‘결혼에 동의한다’는 서류(결혼허가용 진술서)에 사인만 하면 결혼허가증이 발급된다.
이중혼, 간통 고소 가능
2003년 5월 당시 전씨는 호적상 최모(38)씨와 혼인 상태에 있었다. 전씨는 1988년 2월22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딸 박모씨와 결혼한 후 1990년 7월6일 이혼하고, 1992년 5월20일 최씨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9일 이혼했다. 전씨는 한국이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주 제1심 법원에 이혼소송을 내 결국 판결을 받아냈다. 15년간의 결혼생활동안 전씨와 최씨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이혼 후 이들의 친권자는 전씨. 하지만 아이들은 최씨가 키우고 있다.
지난 7월19일 박상아씨와 세 번째 결혼을 한 전씨는 같은 달 31일 혼인신고를 했다. 2006년 3월에 박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도 이때 함께 전씨의 호적으로 들어왔다. 여기까지가 전씨의 호적에 나타난 그의 결혼사.
결국 전씨는 박씨와 2003년 미국에서 한 번, 올 7월 한국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법적 결혼을 한 셈이다. 그리고 2월 최씨와 이혼하기 전까지 한국에선 최씨와, 미국에선 박씨와 동시에 - 최소 몇 달간일지 몰라도 - 법적 부부였다. 비록 일부 기간이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봤을때 사실상의 중혼(重婚) 상태였던 것이다. 전처인 최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알아도 내게 무슨 힘이 있었겠나. 아이들을 생각해 아무것(기사)도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씨의 이런 이중혼은 법적으로 어떤 제재를 받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라스베이거스 시에서 활동하는 윤일영 변호사는 “미국 법으로만 보면 분명 중혼으로 처벌을 받는다. 형사, 민사에서 모두 법적으로 처벌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씨가 미국인이 아니므로 실질적으로 처벌하기는 곤란한 상황.
한국에서의 상황은 좀 다르다. 대명합동법률사무소 김정균 변호사는 “상황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일단 간통으로 고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법상 중혼 자체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이 없다. 민법에 중혼 규정과 혼인무효 조항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간통으로 고소는 할 수는 있어도 처벌 대상이 될지 의문이다. 사실상의 중혼이지만 한국 호적에 혼인신고가 이중으로 되어 있지 않으므로 법적인 중혼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베트남 참전 한국인 중 이런 국제적 중혼 사례가 아주 많았지만 처벌 대상이 되지 않았다. 윤리적,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처벌은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물론 이는 중혼 상태에서의 이야기다. 그리고 현재는 전처와 이혼한 상태이므로 다시 논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전처인 최씨도 이에대한 법적 대응의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믿기 힘든 해명
우리 민법 제 810조는 “배우자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한다”고 해 중혼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호적 담당 공무원이 착오로 혼인신고를 두 배우자에게서 받는 경우, 배우자의 실종으로 재혼을 했는데 얼마 후 배우자가 나타나는 경우 등 아주 특수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지 호적상에 두 명의 배우자가 등재된 경우 먼저의 배우자와 그 친족, 검사가 후의 혼인을 취소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옛 형법에는 중혼죄 처벌 규정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거의 없어 폐지됐고, 이후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로 사실상의 중혼을 처벌하고 있다. 간통죄의 경우도 위헌제청이 잇따르면서 혼외 성관계를 직접 증명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전-박 커플이 2003년 5월12일 결혼 당시 제출한 결혼 허가용 진술서.
“전재용씨는 실질적인 이혼 상태에서 오랜 기간 별거생활을 해오다 한국에서 이혼 및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아 2003년 초에 미국으로 가기 전에 전 부인과 이혼신고 등을 미국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같은 해 5월경에 라스베이거스(혼인신고 절차가 가장 신속 간단하기 때문)에서 혼인신고를 하였으나 아이들 양육 등에 관한 합의내용에 이견이 생겨 이혼이 연기되는 바람에 같은 해 8월경에 당시 전재용씨가 살고 있던 조지아주 가정법원에 혼인무효소송(Annulment)을 통해 네바다주에서의 혼인을 무효화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클라크카운티 기록보관소 온라인 시스템에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클라크 카운티 홈페이지 내 결혼확인 시스템(Marriage Inquiry Sys- tem)에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데이터는 컴퓨터에 담긴 내용일 뿐이다. 클라크카운티 기록보관소는 사이트 자체에서 가공되거나 공표된 데이터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즉, 사이트 내에 있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으면 직접 방문해 결혼증명서를 받아가라는 이야기였다.
‘신동아’는 지난 9월5일 전-박 커플에 대한 결혼증명서 원본의 공증 사본을 미국의 법률회사를 통해 입수했다. 이들의 결혼을 실질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즉 ‘결혼 허가용 진술서(Affidavit of Application for Marriage License)’였다. 이 진술서는 예비 신랑 신부가 클라크카운티 당국에 직접 가서 자신의 신상과 결혼 사유 등을 밝혀놓은 서류. 이 서류를 받아야 결혼허가증이 발부되고 결혼허가증을 가지고 공인된 주례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법원에 결혼 사실이 등록돼야 결혼증명서가 발급된다.
이 서류에서 전-박 커플은 “우리 신랑과 신부는 앞에 서술된 정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믿고 있는 바에 비추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각각 진술하며, 이 결혼 자체나 이 사실을 공증하는 증명서의 발급에 대해 아무런 법적인 이견이 없습니다”라고 밝힌 후 각자 사인을 해놓았다.
거짓으로 꾸민 결혼 서류
결혼 날짜는 2003년 5월12일, 서류상에 나타난 신랑의 아버지는 ‘전두환’, 어머니는 ‘이순자’였고 생년월일도 전씨의 것이 맞았다. 신부 박상아씨도 호적상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 써 있었고 생년월일도 일치했다. 전씨는 이번 결혼이 몇 번째냐는 항목에 ‘3’이라고 썼고, 미혼 기혼 이혼을 밝히는 ‘결혼상황’란에 ‘이혼’이라고 써놓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이혼한 상태가 아니었다. 한국에선 법적 부인인 최씨가 전씨의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눈여겨 볼점은 전씨가 이 서류에 ‘이혼 날짜’를 1990년 5월20일이라고 썼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1990년은 그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해이고, 5월20일은 1992년 두 번째 부인이자 당시 실제 부인이던 최씨와 결혼한 날이었다. 하지도 않은 이혼 사실을 만들어 써넣으려다 보니 이런 ‘숫자 조합’이 만들어진 것. 어쨌든 전씨는 2003년 박씨와 법적 결혼을 위해 미국 정부에 거짓말을 하고 허위로 서류를 작성한 셈이다. 이 서류에 나타난 이들의 주소지는 조지아주 알파레타로 같았다.
전처인 최씨와 미국에서 이혼 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혼인신고를 했다는 지인의 해명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합의가 됐건 안 됐건 현재 배우자와의 법적 이혼이 이뤄지고 난 뒤 결혼하는 것은 상식이다. 전처 최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전-박 커플이 2003년 5월 결혼 후 주소지였던 조지아주 풀톤카운티 가정법원에 혼인무효 확인요청을 하자 법원측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언제 답을 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씨 지인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전씨는 한국의 처가 있는 상태에서 박씨와 법적 부부로 지낸 게 확인됨으로써-적어도 박씨와의 혼인무효가 확정된 시점까지는-사실상의 이중혼을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상황이다.
미국에서 결혼 강행한 까닭은?
혼인무효(취소)란 ‘합의 없이 또는 사기, 강박 내지는 이에 준하는 특별한 사정 아래서 혼인이 이루어진 경우 서로 다투어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는 법 절차’. 과연 전씨는 미국 법원에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하면서 어떤 특별한 사유를 대고 호소했을까. 박씨와 결혼할 당시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한국에 법적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중혼은 혼인 취소 사유이지 무효의 사유가 될 수 없다. 어쨌든 전-박 커플은 미국에서 법적으로 결혼도 하고, 다시 헤어진 뒤 한국에 들어와서는 전혀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올해 7월 또다시 결혼식을 치렀다.
그렇다면 이들이 짧은 기간이나마 남의 눈을 속이고 미국에서 법적 결혼을 강행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법적으로 결혼을 하면 재산이 공동소유가 되므로 미국에서 전씨가 박씨의 명의로 집을 사고 회사를 만들어도 재산분쟁에 있어 법적 안전장치가 만들어진다. 특히 재산변동 사항과 관련해 검찰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전씨의 결혼 사실을 한국 검찰이 알 수가 없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박씨에게 재산이나 예금을 옮겨놓을 수 있는 것이다.
박씨는 클라크카운티에서 전씨와 결혼한 지 사흘 후인 2003년 5월15일 조지아주 풀톤카운티 알파레타에 있는 주택을 미국인 A씨로부터 36만5000달러(당시 기준으로 약 4억2000만원)에 매입한 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그해 11월7일 한국인 박모씨에게 넘겼다. 재용씨는 이 과정에서 박상아씨의 신원보증을 섰다.
세액사정국의 기록상 매매를 하면서 세금을 전혀 내지 않은 것으로 봐 금전거래가 있는 매매가 아니라 단순한 소유권 이전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당시는 검찰이 박씨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녀와 그 가족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던 시기였다. 박씨가 집을 판 지 5일 후인 11월12일 대검은 “전재용씨의 100억대 자금운영 과정에서 미모의 여성 탤런트 A씨가 관련된 단서를 포착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발표했다. ‘A씨’는 언론이 P씨로 표현한 박상아씨였다.
이런 부동산 거래 기록 때문인지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이들이 미국에 와서 부동산 사업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전씨는 박씨와 미국에서 결혼하기 한 달 전인 2003년 4월 자신 소유의 소프트웨어 회사 ORS의 미주법인을 조지아주 애틀랜타 교외 노스오스라는 곳에 세웠다. 이 회사의 자본금은 100만달러. 이 회사는 전씨가 2004년 2월 구속되면서 문을 닫았다.
세 여자와 네 번 결혼
전씨가 박씨와의 결혼에 대해 혼인무효 소송을 냈다고 주장하는 그해 8월, 전씨와 박씨는 당시 미국 민주당의 존 케리 대통령 후보에게 각각 2000달러씩을 기부하기도 했다. ORS 미주법인 설립을 자문했던 한국계 미국인 릭 이씨를 통해서였다. 릭 이씨는 클린턴 정부 때 백악관 비서관을 지내고 존 케리 후보 진영의 한인 정치후원금 모집을 담당하고 있었다. 존 케리 후보측은 전씨가 2004년 2월 구속되고 비자금 수사에 대한 내용이 알려지자 “전씨와 박씨가 기부금을 낼 자격이 있는지 확인 불가능하다”며 기부금을 반환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전씨가 2003년 5월 한국에서의 혼인관계가 유지된 상태에서 박상아씨와 미국에서 법적 결혼을 해 사실상의 중혼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그 결혼이 수개월이 지난 후 무효가 됐다 하더라도 미국에서의 결혼 당시 그는 한국의 부인을 속인 셈이 되며, 올 7월 박씨와 한국에서 다시 결혼할 때 이런 사실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음으로써 도의를 저버렸다.
만일 전씨 지인의 주장이 옳다면 결국 전씨는 세 여자와 네 번 결혼하고 세 여자와 이혼(혼인취소 포함)했으며 한 번의 결혼은 사실상의 중혼이었다. 전씨는 한 방송국과의 짧은 인터뷰에서 “(내가) 소주 안줏거리가 되고 아주머니들의 미장원 잡담거리가 됐다”며 “빨리 묻혀졌으며 좋겠다”고 했다. 또 그는 “이제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틈날 때마다 했다. 그가 진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다시는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오르내리지 않거나, 모든 것에 솔직하면 된다. 거짓말은 그 속성상 거짓말만으로 그 비밀이 유지된다. ‘거짓말이 꼬리를 문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