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제조업으로 번 돈을 관광산업 적자로 까먹고 있다. 관광산업의 고질적인 적자를 해소하고 새로운 富를 창출하려면 컨벤션 산업을 대규모로 일으켜야 한다.
2007 서울모터쇼가 개막한 4월6일 일산 킨텍스전시장이 모터쇼를 찾은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관광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24년간 한국은, 한국인 출국자보다 외국인 입국자가 많은 관광 흑자국이었다. 그런데 1989년 1월 해외여행자유화 조치 이후 변화가 일어났다. 외국인 입국자(이하 입국자) 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한국인 출국자(이하 출국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995년 입국자 수를 추월한 것.
IMF 외환위기가 몰아친 1998년과 1999년 잠시 입국자 수가 출국자 수를 앞섰으나, 2000년 해외유학자유화 조치가 실시되면서 다시 출국자 수가 크게 앞서나갔다. 한국관광공사가 밝힌 통계치(잠정)에 따르면 2006년 입국자는 약 615만명인데 출국자는 그 2배에 육박하는 1160여만명이다.
출국자가 많으니 관광수지는 당연히 적자일 수밖에. 한국관광공사는 2006년의 관광수지 적자를 85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번 달러를 관광업으로 까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적자투성이인 관광산업을 구조조정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공학 계열의 그랑제콜을 마친 사업가 K씨는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은 프랑스에 밀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항공우주산업이나 원자력산업, 철도산업 등에서는 프랑스가 앞섰지만 전자와 조선·제철·자동차산업은 한국이 우세하므로 제조업 전체로 보면 한국은 프랑스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만5336달러로 1만8015달러인 한국의 2배에 달한다. K씨는 이 차이의 원인을 이렇게 추정한다.
“돈 장사와 관광산업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야 펀드를 조성해 해외에 투자하지만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해외에 자금을 투자해 그 이익을 챙겨왔다. 그리고 프랑스는 매년 7510만명 가량(2006)이 입국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이다. 프랑스 다음으로 입국자가 많은 나라가 스페인(약 5360만)-미국(약 4610만)-중국(약 4180만)-이탈리아(약 3710만) 순이다.
프랑스의 총 인구는 6200여 만명인데, 이 중 해외 영토(식민지) 거주자가 200만 가량이니, 본토 인구는 6000만을 살짝 넘는다. 프랑스 인구보다 많은 7500만명이 매년 프랑스를 찾아와 연간 400억유로를 쓰고 간다. 물론 프랑스인도 외국으로 많이 나간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2100여 만명의 프랑스인이 출국하는데 이들이 200억유로 정도를 쓰고 온다고 하니, 프랑스는 관광수지에서 200억유로의 흑자를 보는 것이다.
칸과 니스로 대표되는 지중해 연안의 남(南)프랑스 지역은 경제수준이 낮은 곳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의 지중해 쪽으로 관광객이 몰리는 것에 착안해 프랑스 정부는 의도적으로 남프랑스의 관광산업을 키웠다. 관광산업은 음성적인 것, 지하경제적인 것, 떳떳이 세금 내기 힘든 것이 많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남프랑스 지역의 관광 수입은 공개하지 않는데, 남프랑스의 관광수익을 합치면 프랑스의 관광수익은 200억유로가 넘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반도체나 자동차를 수출해 벌어들이는 순수익이 200억달러를 넘는가. 해외 투자라는 돈놀이로 벌고, 파리와 남프랑스를 앞세운 관광산업으로 벌어들이니, 제조업 분야에서는 한국과 비슷해도 프랑스가 한국보다 월등히 잘사는 것이다.”
구조조정 필요한 한국 관광산업
지난해 한국관광공사는 한국 관광 브랜드로 ‘Korea, Sparkling(역동적인 한국)’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브랜드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을 찾는 입국자 수가 인구나 제조업 규모 면에서 얼추 비슷한 프랑스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이 브랜드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외국을 자주 다녀본 사람들은 한국은 관광으로 돈을 벌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관광에는 역사 유적을 보여주는 것과 자연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한국의 역사 유적은 독특하지도 강렬하지도 않다. 파리와 로마, 아테네를 구경한 한국인은 유럽 어디를 가더라도 역사 유적을 보고 더 이상 감탄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리와 로마, 아테네에 유럽 문화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유적을 본 외국인은 한국의 역사 유적에서 새로운 느낌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2005년 4월 KINTEX에서 열린 ‘서울 모터쇼’를 둘러보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 컨벤션산업은 한국의 신성장 동력이다.
설악산과 한라산으로 대표되는 자연 경관도 중국의 장자졔(張家界), 일본의 후지(富士)산보다 낫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한국에는 나이애가라나 빅토리아·이과수 같은 초대형 폭포도 없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동굴도 없다. 강원도의 설경보다는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나 니카타(新) 지방, 중국 하얼빈의 겨울이 더 푸짐하다는 말도 부인하기 힘들다.
골프나 수영을 하면서 느긋하게 즐기려는 관광객을 유치해 돈을 벌어들이는 리조트산업에서도 한국은 경쟁력이 약하다. 리조트산업은 대개 연간 쾌청일수가 200일 이상이고 연평균 기온이 26℃ 내외인 곳에서 이뤄진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푸켓 파타야 몰디브 사이판 하와이 등지다. 제주도는 연간 쾌청일수가 120일 정도이고 연평균 기온이 16℃인지라, 국내용 리조트 지역은 될 수 있어도 세계적인 리조트는 되기 어렵다.
“비교우위로 활로 찾아야”
이런 사정이므로 한국은 고급 관광객을 맞이하기 어렵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일본 등 인근 국가에서 찾아오는 수학여행단과 깃발 관광객인데, 단체 여행객은 개별 여행자보다 지출 규모가 적다. 절대우위 요소가 없는 만큼 한국은 비교우위 분야 위주로 관광산업을 개선해야 한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한 사업가는 한국이 비교우위에 선 관광상품으로 가을 단풍과 전통가옥을 꼽았다.
그는 “유럽과 미국, 남미에선 단풍을 보기 힘들다. 단풍은 오직 캐나다에서만 볼 수 있는데, 한국의 단풍 숲은 캐나다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단풍에 한국의 전통가옥을 묶어 내놓는다면 차별화된 관광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비교우위는 무엇인가
그는 또 한국만이 내놓을 수 있는 독특한 관광상품은 판문점이라고 지적했다. 판문점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대치하는 카슈미르와 달리 안전하면서도 일촉즉발의 긴장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장소다. 한국이 확보한 또 하나의 비교우위는 쇼핑과 동남아에서 일고 있는 한류(韓流)다. 그는 Korea를 Sparkling시키려면(한국을 왕성하게 보이게 하려면) 이러한 비교우위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영화 ‘남과 여’를 촬영한 북프랑스의 도빌은 이 영화가 성공한 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도빌은 지중해에 비해 날씨가 좋지 않은 대서양에 연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수욕을 즐기기엔 부적절한 갯벌 지대다. 그러나 도빌 주민들은 해안에 마루를 깔아 길을 내 갯벌 해안의 어설픔을 극복하고, 작지만 환상적인 명품 상점을 대거 유치해 독특한 관광공간을 만들었다. 이로써 도빌은 ‘남과 여’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들어도 여전히 주목받는 관광지로 남게 됐다. 이제 도빌은 리조트와 고급 쇼핑 상점을 주식으로, ‘남과 여’ 이야기를 부식으로 삼아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에서 도빌과 견줘볼 만한 곳이 북한강의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일약 ‘한국의 도빌’이 될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남이섬과 인근의 춘천은 도빌처럼 지속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지역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겨울연가’ 환상을 이어줄 새로운 관광 상품 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연경관과 역사 유적에서 취약한 한국은 한류 등 비교우위에 선 쪽을 근거로 관광산업을 펼쳐야 한다. 한류뿐만이 아니다. 관광은 편하고 안전해야 하는데 한국은 이 분야에서 강력한 비교우위에 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고 빠르고 쾌적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천공항이 있다. 인천공항은 승객뿐만 아니라 항공사에도 이러한 장점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일본 도쿄의 나리타(成田)공항이나 중국 베이징의 ‘서우두(首都)공항’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르다. 초대형 여객기가 내릴 수 있는 4000m 활주로 두 곳을 갖춘 인천공항은 같은 규모의 활주로를 두 곳이나 더 짓고 있어 조만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허브 공항이 될 수 있다.
둘째,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낸 만큼 서울에는 다양한 호텔이 있다. 어떠한 행사, 어떠한 손님도 치러낼 수 있는 숙박시설을 갖춘 것이다.
셋째, KTX가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유럽인은 TGV(KTX를 공급한 프랑스에서의 이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교통 인프라가 신칸센(新幹線)을 가진 일본에 못지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넷째, 세계 최고 수준의 IT를 바탕으로 형성된 통신망은 인천공항과 숙박시설 이상 가는 한국의 장점이다. 싱가포르와 홍콩만큼은 아니지만 영어가 비교적 잘 통하는 문화도 한국이 가진 강점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화’가 기회
2006년 10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배우 송승헌 제대 기념 콘서트를 찾은 일본의 중년 여성들. 한류와 컨벤션 산업을 연결하면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
‘글로벌화’라는 이름으로 세계는 점점 하나가 돼 물품과 사람이 국경을 넘는 일이 잦다. 자국에서 생산한 물품과 서비스를 타국에서 판매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 세계화의 한 현상이다. 이를 위해 무역전시회(박람회)가 보편화했다.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최초의 만국 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러한 박람회를 국가 발전 동력으로 적극 활용한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대혁명(1789) 발생 100주년인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랜드마크로 ‘에펠탑’을 완공했다. 에펠탑은 건설 도중은 물론이고 완공 후에도 흉물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도쿄타워를 비롯한 ‘유사품’이 세계 도처에 들어섰음에도, 에펠탑은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파리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됐다. 만국박람회라고 하는 컨벤션이 파리에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또 하나의 관광자원을 낳은 것이다.
전시회나 회의를 위해 방문한 사람은 순수 관광객보다 고급 호텔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커피숍 등에서 미팅을 자주 해야 하므로 이들이 지출하는 돈은 순수 관광객보다 2.5~3.7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따라서 볼거리가 부족한 나라는 관광산업을 일으키느라 애쓸 것이 아니라, 편리성을 기반으로 컨벤션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놀이마당도 함께 제공해야
관광산업이 볼거리와 쉴 곳을 만들어 외국인을 불러들이는 것이라면, 컨벤션 산업은 재능을 자랑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 무대는 유서 깊은 유적이나 거대한 폭포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 여기에 테마파크 같은 놀이공간을 같이 제공하면 사람들은 자석에 쇳가루가 붙듯이 몰려든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이 2005년 마카오에 개장한 ‘베네치안 마카오’ 호텔이다. 이 호텔은 카지노 재벌인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이 ‘샌즈 마카오’ 호텔에 이어 마카오에 두 번째로 건설한 카지노 호텔이다. 이 호텔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동명(同名)의 호텔을 복제해서 지었다고 하여 건설할 때부터 입방아에 올랐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에 입국하기가 빡빡해졌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가려면 10시간 이상 비행해야 하는데 이는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놀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것이다. 언어 장벽도 예상외로 큰 데다 덩치 큰 미국인들 사이에서 도박을 하는 것은 왠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마카오는 한때 아시아의 카지노 센터였으나 중국에 반환된 뒤로는 활력을 잃었다.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은 이 점에 주목해 마카오에 카지노 호텔을 지은 것인데 이것이 히트를 했다. 아시아의 도박 욕구가 베네치안 마카오 호텔로 집중되면서 마카오의 기존 카지노 업체들이 비명을 지르게 된 것이다.
베네치안 마카오 호텔은 카지노가 아니라 컨벤션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호텔에서 컨벤션을 한다고 하면, 바쁘거나 귀찮아서 행사 참가를 꺼리던 사람도 호기심에 참여하게 된다. 행사 참가자들은 행사가 끝나는 즉시 ‘관광객’이 된다. 이러한 ‘돌발 관광객’은 일에 지친 만큼 화끈한 놀잇감, 진한 볼거리를 원하는데 베네치안 마카오는 이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다. 한국의 관광산업은 베네치안 마카오 호텔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유럽을 주무대로 하던 컨벤션산업은 요즘 신흥경제 강국이 속속 생겨나는 아시아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전시회를 복제해 아시아에서 열려고 하는 것이다. 세계 주요 전시회의 50% 정도는 ‘메세 프랑크푸르트(Messe Frankfurt)’ 등 독일의 컨벤션 기업이 주최하는데, 이들은 유럽 이외 지역을 무대로 한 사업의 절반을 아시아에서 펼치고자 한다.
박람회나 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컨벤션산업은 거대한 전시장과 고급 음식, 호텔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거대한 자본과 섬세한 솜씨를 유기적으로 엮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꿈도 꿔보지 못하는 서비스산업이 바로 컨벤션산업이다. 공항과 교통 통신 시설도 완벽하고 치안도 좋아야 하니 선진국에서만 할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컨벤션산업은 강력한 내수 기반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보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는데, 한국의 인구 규모와 소득 수준은 이를 소화해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컨벤션산업을 할 만한 도시는 서울과 도쿄 베이징 상하이(上海) 홍콩 싱가포르 정도인데 이 중 서울은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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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벤션은 대규모 투자 산업
홍콩과 싱가포르는 컨벤션산업이 발달했으나 배후 지역이 없어 더는 성장하기 어렵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잠재력은 있지만 교통과 통신 등 인프라가 뒤처진다. 도쿄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으나 도시 밀집도가 높아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컨벤션산업을 발전시킬 지역으로 부적절하다. 컨벤션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프랑스를 예로 살펴보자.
프랑스는 전시회를 크게 두 군데로 나눠 개최한다. 파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렀고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라 관광 인프라가 탄탄하다. 프레타 포르테(고급 기성복 패션쇼)나 파리 모터쇼 등 고전적이고 오래된 전시회는 파리 15구에 있는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다. 반면 해외 참가자가 많고 관람객이 많은 대중적인 행사는 드골 공항 인근의 전시장에서 한다.
유럽 최대의 허브로 꼽는 드골 공항 주변엔 컨벤션센터와 각종 호텔, 전시회를 지원하는 회사가 밀집해 있다. 드골 공항이 완성되기 전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국제공항은 ‘브르제’였는데 브르제 공항에서는 2년마다 파리 에어쇼를 연다.
드골 공항과 브르제 공항은 파리 외곽에 있고 그곳까지는 공항고속도로와 지하철이 이어져 있으므로, 그곳에서 열리는 대형 행사는 파리 시내 교통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때문에 파리 사람들은 크고 작은 행사와 공존하면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상당수의 파리지앵은 이러한 행사에 직간접으로 연결되거나 파생되는 산업으로 생계를 잇는다.
프랑스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만으로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켄벤션으로도 사람을 불러들인다. 컨벤션 참가자와 순수 관광객은 구별되지도 않고 또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전문가들은 관광자원이 빈약한 한국이 컨벤션산업을 일으켜 외국인을 불러 모으고 이들에게 단풍과 판문점, 한류, 전통가옥 등을 즐기는 기회를 줌으로써 관광 한국을 진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나 카지노 등 위락시설을 덤으로 제공한다면 주목받는 관광국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컨벤션으로 관광산업을 키운다고 할 때 문제는 컨벤션 단지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다. 국제 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한 사업가는 가장 적은 투자로 한국이 건설할 수 있었던 컨벤션 센터는 인천공항 개항으로 국제선 업무를 넘긴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라고 지적한다.
김포공항을 컨벤션센터 만들었어야
김포공항은 4000m급 활주로가 두 곳 있어 초대형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다. 또 인천공항 못지않게 시설이 훌륭해 야간은 물론이고 악천후에도 항공기의 안전한 착륙이 가능하다. 기업체 중에는 전세기나 자가용 항공기를 이용해 물건을 수송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포공항은 이러한 항공기를 얼마든지 착륙시킬 수 있는 것이다.
김포공항 청사는 천장이 매우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 대형물 전시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또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충분하고 주차장도 완벽하다. 주위에 이미 도시가 형성돼 있어 호텔 등 부대시설만 보충하면 훌륭한 컨벤션 단지가 될 수 있었다. 김포공항은 가장 큰 행사인 에어쇼도 거뜬히 치를 수 있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김포공항 청사에 대형할인점과 병원을 유치할 것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컨벤션센터로 만들었어야 한다며 아쉬워한다.
김포공항 청사를 놓친 상태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인천의 송도 신도시다. 송도 신도시는 인천대교를 통해 인천공항과 바로 연결된다. 2009년 예정대로 인천대교가 완성되고 그 시기 송도 신도시에 컨벤션센터가 들어서면, 인천이라는 큰 배후 도시를 가진 송도는 드골 공항 주변의 컨벤션 단지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송도는 외국인 상주를 전제로 하는 국제도시로 육성되는데 이러한 조건도 컨벤션산업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제도시에는 상주 외국인을 위한 국제학교가 있어야 한다. 상주 외국인의 존재는 국제적인 컨벤션산업을 유치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중국인이 중심이 된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동남아의 허브가 된 데도 학교와 관청을 비롯한 모든 기관에서 영어를 쓰게 한 ‘내부(In Bound)의 국제화’와 국제학교를 적극 유치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송도를 앞세운 인천이 미래의 컨벤션 중심지라면 서울과 그 주변은 하루빨리 컨벤션의 중심지로 성장시켜야 할 지역이다. 서울엔 COEX와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이 있고 외곽인 경기 고양에는 KINTEX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대형 쇼핑몰을 갖춘 서울 강남의 COEX이다. 그러나 COEX는 도심에 위치해 있어 대형물 전시에 제약을 받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KINTEX는 후발 주자이지만 대도시 외곽에 위치해 교통 문제를 유발하는 부담이 작다. 따라서 KINTEX는 대형물 위주의 전시를 하고 COEX와 SETEC은 그보다 작은 물체 위주로 전시회를 연다면 교통과 통신 호텔 치안 쇼핑 등의 인프라가 좋은 서울은 동북아의 허브로 떠오를 수 있다.
주목받는 송도 국제도시
홍콩은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는데도 연간 2100만명 이상이 입국하는 관광 대국이다. 홍콩의 관광산업은 국제 거래와 컨벤션으로 인해 활성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쇼핑이 추가되면서 홍콩은 동아시아의 허브가 됐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다. 한국의 무역고는 세계 무역고의 2.8%를 차지한다. 그러나 컨벤션 분야에서는 세계 12위이고 세계 전시회 점유율은 0.8%에 불과하다. COEX와 SETEC, KINTEX 등 국내의 10개 전시장 전시 면적을 전부 합쳐도(17만㎡) 독일의 하노버 전시장 면적(49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제 한국은 컨벤션으로 관광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컨벤션산업의 부흥은 Sparkling Korea를 만드는 지름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