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오래 쉬어서 주눅 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적응하고 있어요. 문영남 작가가 대본을 워낙 잘 쓰니까 저는 대본에 나온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돼요. 제가 이젠 나이도 먹었고, 어려움도 겪을 만큼 겪었잖아요. 드라마에서 요구하는 감정을 충분히 끄집어낼 자신이 있어요.”
10년 만에 하는 연기지만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그는 연예계를 떠난 후에도 TV에 또래 연기자가 나오면 그의 연기를 따라 해보며 ‘감’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한번 연기자는 죽을 때까지 연기를 버릴 수 없나 봐요. 그리고 지난 10년, 제가 살아온 것 자체가 연기였잖아요.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다 알아 보니 늘 긴장하면서 연기를 해야 했어요. 옛날엔 우는 연기를 잘 못했는데 이제는 누구보다도 잘 울 수 있어요.”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선언하고 홀로 서는 씩씩한 역할을 맡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씩씩한 편이냐고 묻자 “안 그래요. 우유부단하고 소심하죠. 귀가 얇아 남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고…. 겉으로는 활달해 보이지만 실은 사교성도 없어요” 하며 웃는다. 신이 나서 드라마며 연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자랑할 것 많은 다섯 살짜리 같다. 하긴 그에겐 올해 다섯 살배기 딸이 있다. 엄마는 아이랑 정신연령이 똑같다고 하지 않던가.
▼ 밝은 모습을 보니까 천생 연기자구나 싶네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진 않나요?
“제가 변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저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진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늘 똑같은 저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전혀 모른 채 ‘걔는 그럴 거야’ 하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가 그렇지 않은 제 모습을 보고 ‘쟤가 달라졌구나’ 생각하는 거죠. 사람들이 제게 ‘일을 하니까 밝아졌다’고 하는데, 만일 제가 복귀한 상황이 아니라면 똑같은 지금의 저를 보고 ‘표정은 좋아 보이지만 속으론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을 거예요. 아무튼 사람들이 저를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자체가 저로선 고마울 뿐이에요.”
▼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오현경씨의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닐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전에도 나를 모르면서 선입관을 가지고 거기로 나를 몰아간 거니까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느껴졌다. 그만큼 상처는 깊었으리라.
집단관음증의 희생자
오현경은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아픈 상처다. 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 불법적으로 유포, 공개되면서 여자로서 견뎌내기 힘든 수치와 고통을 겪었다. 집단관음증과 선정주의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우리 국민의 3분의 1이 그의 사생활을 엿본 ‘관음증 환자’였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그에게 “정숙하지 못하다”며 집단 이지메를 가했다. 피해자인 그가 되레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공개사과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