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만 한 가지 단서조항이 붙었다. 보병병과를 제외하고 항공, 기갑, 정보, 통신 같은 ‘미래전력’ 병과 위주로 정원을 늘린다는 것. 미래의 과학·기술군 건설을 위한 군 구조개편에 대비하자는 취지였다. 그런 명분도 없이 엄청난 숫자의 장교를 늘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해 10월, 육군은 새로운 장교 정원표를 가지고 진급심사에 임했다. 그러나 진급심사 결과를 받아 본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 김희상 준장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령 정원이 대통령 지침과 달리 전부 보병병과 위주로 증가됐기 때문이다. 격분한 김 장군은 대통령 지침을 위반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즉각 육군에 해명을 요청했다.
당시 육군은 이진삼 참모총장에서 김진영 참모총장으로 이어지던 이른바 ‘하나회 전성시대’였다. 역시 하나회에 소속돼 있던 인사참모부장 A장군이 김 국방비서관에게 이렇게 반격했다.
“그게 김희상 지침이지, 어떻게 대통령 지침인가?”
김 장군은 이전에도 ‘8·18 군제개편’ 문제로 육군과 심하게 충돌한 적이 있었다. ‘8·18 계획’은 평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면서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을 새롭게 모색하자’는 취지로 노태우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한 사안. 그러나 각군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애초 청와대가 목표했던 군제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1992년은 노태우 정권의 말기로 ‘물태우’라는 말이 학원가에까지 퍼져 있던 시점이었다. 군사 정부를 탄생시킨 실세들이 육군을 장악하고 있다 보니 더 이상의 개혁은 불가능했다. 결국 보병은 급격하게 팽창하고, 기갑은 약간 증가, 기타 병과는 정체된 형태로 1993년부터 한국군의 새로운 영관급 정원구조가 정착된다.
군 구조개편이란 흔히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따라 군의 싸우는 방법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군의 조직형태가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통상 다양한 군종, 즉 병과 간의 구성비를 새롭게 조화시키며 이에 따라 일련의 군 부대편성을 재편하는 것이다. 전쟁 양상이 보병전에서 고속기동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전쟁 양상이 변하므로 보병부대를 줄이고 기갑부대를 늘린다면 당연히 보병병과 장교는 남아돌고 기갑병과 장교는 모자라게 된다. 자연스레 보병병과 장교는 진급과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고 기갑병과 장교는 그 반대가 된다.
그러나 군은 일반 기업과 달리 그 인력운용이 매우 비탄력적이다. 보병장교가 남아돈다고 정리해고를 할 수도 없고, 기갑장교가 모자란다고 군 외부에서 충원할 수도 없다. 이른바 ‘폐쇄형 인력운용’ 구조다. 이러한 경직성 때문에 군 구조개편은 변화의 당위성이 있더라도 기존의 인력구조에 쉽게 변화를 줄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1993년 군은 보병 위주의 장교단을 팽창시킴으로써 그 이상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놓았다. 그 장애물은 아직도 건재하고, 현재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개혁2020’을 가로막고 있다. 인력구조라는 꼬리가 군 구조라는 몸통을 흔들어온 것이다.
아름다운 공식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은 창군 이래 아홉 번째로 진행되는 군 개혁 작업이다. 2005년 국방부가 공식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군 구조개편은 크게 3단계로 추진된다. 2010년까지 추진되는 1단계는 군 구조개편 착수 및 본격화 단계다. 군의 상부구조를 우선 개편하고 개혁기반을 구축하는데, 특히 합동참모본부 개편을 핵심으로 한다. 이후 5년간 추진되는 2단계는 개혁심화 단계로서 상부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구조개편에 따른 추가 전력을 확보한다. 이 시기에 한국군의 기동력, 타격력을 보강하고 작전사령부를 개편하는 등 가장 활발한 변화가 일어난다. 구조개혁의 마지막 단계는 2020년까지 군 구조와 전력구조를 완비하고 하부구조의 전력화 개편 완료를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