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9월29일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단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북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주한미군 사령관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분명한 월권이라는 것이다.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해서도 그간 벨 사령관이 강도 높게 주장해온 ‘유엔사의 위상 강화’와 맞물려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특히 국방부나 군으로부터 벨 사령관에게 관련 내용을 타진해보겠다거나 타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전혀 없다며 ‘플레이’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난처해진 것은 국방부다. 7월 이후 NLL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는 것으로 비친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힘을 빌려 NLL 의제화를 막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된 것. 8월 한 달간 이어진 ‘언론보도 사고’로 보안감사가 진행되던 형국이라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벨 사령관의 말은 한미연합사 내부의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잡담’ 수준의 이야기”라며 “국방부가 이를 정식으로 타진한 적도, 회신을 받은 적도 없다”고 진화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해지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청와대와 벨 사령관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다. ‘잡담 수준’이었다는 국방부 관계자들의 말이 맞다 해도, 벨 사령관이 NLL 문제의 정상회담 의제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를 큰 거리낌 없이 주변에 내색하고 있음은 사실이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벨 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적절치 않은 행동이나 발언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에 조심성 없이 언급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었으므로 주무부처인 국방부 장관 등을 통해 적절한 방식으로 견제해왔다. 그러나 그의 ‘사고’는 그치지 않았고, 불쾌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하는 일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로버트 리스카시 사령관이 평시 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던 시절 이후로 청와대와 주한미군사령관 사이의 관계가 이렇듯 껄끄러웠던 적이 없다.”
전직 청와대 안보부처 관계자의 이 같은 설명은 청와대와 벨 사령관 사이의 갈등이 심상치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공식적으로 보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벨 사령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하’에 해당한다. 국군의 날 행사장에는 주한미군사령관도 참석해 한국 대통령에게 경례를 한다. 이렇듯 ‘명쾌한 관계’에서 도대체 무슨 갈등이 어떻게 벌어졌다는 것이며, 이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지금부터 그 숨겨진 내역을 하나하나 따라가보기로 하자.
2006년 3월 상원 청문회
이야기는 벨 사령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3월7일 벨 사령관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현재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인) 유엔군사령부에 대해 미국 외 15개 참전국의 소임을 늘리고, 유엔사가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참여시킴으로써 유엔사를 진정한 다국적군 사령부로 만들겠다”고 발언한다. 이른바 ‘첫 번째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