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막바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청림출판 사무실에서 고영수(58) 대표를 만났다. ‘출판 외길’을 대변하는 듯 소탈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신동아’ 12월호 부록에도 청림 책이 6권이나 포함됐다. 고 대표에게 경제·경영서를 주로 출간하는 이유를 물었다.
“청림출판이 경제·경영서만 내는 건 아닙니다. 청림출판을 비롯해 추수밭, 레드박스, 청림아이 등의 브랜드를 두고 인문·교양, 소설, 아동 등 모든 분야를 아우릅니다. 다만, 현대는 비즈니스 사회입니다. 남녀노소 모두 활발히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지금, 경제·경영서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지요.
일과 비전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때보다 큽니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경영서는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책을 통해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업무 능력과 함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지요. 경제·경영서를 즐겨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경제·경영서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자기계발서인데, 자기계발을 게을리하는 이와 부지런히 하는 이의 차이, 즉 삶의 태도에 대한 차이인 것입니다.”
청림출판은 1967년 문을 열었다. 법학자인 부친 고(故) 고일석 박사가 본인의 책을 내기 위해 설립했다. 처음에는 판례를 체계화한 ‘판례총람’과 ‘판례월보’ 같은 법학서적을 주로 펴냈다. 고영수 사장이 대표를 맡은 건 1979년. 어려운 시기도 많이 거쳤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푸른숲을 이루듯 청림의 책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모토로 직원 35명에 연매출 80억원의 내실 있는 회사로 키웠다.
요즘 세상은 빠르 게 변한다. 출판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대형 서점 가판대 가운데 한 달간 배치가 바뀌지 않는 곳은 베스트셀러 코너뿐이다. 새로운 생각을 담은 책이 매일 쏟아져 나오지만, 그중 경제·경영 분야는 특히 변화의 주기가 짧다. 고 대표는 “IMF 이후 10년간 경제·경영서 출판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IMF를 기점으로 출간이 활발해졌습니다. 책의 성격도 크게 바뀌었고요. IMF 이전에는 일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가 대부분이었지만, 이후에는 세계 경제 트렌드를 다룬 책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IMF를 거치면서 세계 경제를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거대 담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국내외가 모든 면에서 연결돼 있다는 글로벌리즘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요.
1999년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를 냈는데, 시장이 커지면서 크게 히트했습니다. 해외 석학들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번역서도 늘어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