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규제완화는 대전에 직격탄…기업 이전, 투자 백지화 가능성
- “행정도시 유치, 소리만 요란했지 오히려 역차별 받았다”
-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모든 면에서 대전이 적격…“만들어달라”
- 기막힌 타이밍 제60회 IAC(국제우주대회) 유치, 정부 각별 지원 있어야
- 정부 현대사박물관 서울 건립 발표…대통령 약속 헌신짝처럼 버린 것
대전에서 나고 자란 박 시장은 1979년 대전시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후 단 한 번도 대전시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정통 지방관료 출신. 두 차례의 경제국장(4년6개월) 근무경험과 역대 최장수 기획관리실장(4년5개월) 이력이 말해주듯, 경제·기획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대덕연구단지를 ‘대덕밸리’로 처음 명명하기도 했다. 이후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민선 4기 대전시장에 선출됐다. 11월5일 오후 대전시장실에서 만난 그는 작심한 듯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조처를 비판했다.
“저는 이번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포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제기를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 수차례 했죠. 또 수도권 규제가 완화된다고 해서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돌파할 것이라 확신할 수도 없어요. 수도권 규제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약화된 게 아니라 내재된 수도권의 비효율성이 더 큰 문제인 거죠.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인구와 돈, 권력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미 내재적 한계에 봉착한거죠. 장남인 ‘수도민국’만 지원하고, 그래서 동생인 지방이 어려워지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 대전은 수도권과 인접해 있는데요. 이번 조치로 얻을 반사이익은 혹시 없습니까.
“충청권은 얻을 게 전혀 없어요. 그나마 영·호남은 사정이 나은 편이죠. 오히려 대전은 행복도시 건설 계획과 대덕특구 지정이다 해서 소리만 요란했지 지금껏 역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정부의 조치로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외국기업과 어렵게 맺은 MOU(양해각서)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어요.”
대전은 당장 내년 1월부터 공급되는 대덕특구 1단계 부지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 결과 모두 170개 업체가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면적의 390%를 초과한 수치. 이 가운데 수도권과 타 지역에서 이전을 원하는 기업이 22개나 됐다. 박 시장은 “이번 수도권 규제완화로 대상기업들이 이전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근심에 잠겨 있었다.
“내년 12월이면 1단계 면적의 3배가 넘는 특구 2단계 부지가 공급되고 신탄진에 첨단무공해산업단지도 함께 분양할 계획인데 인구 150만의 대도시인 대전도 먹고살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수도권부터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우리로선 더 큰 소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첨단의료복합단지 만들어달라”
▼ 이야기하신 대전특구 즉, 대덕 R&D특구 자체가 수도권 규제완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면 기업들은 그곳으로 다시 가게 되어 있어요. 조속히 정부가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대덕단지의 R&D 성과를 사업화로 연계하는 선순환구조가 구축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단코 없다고 확신합니다. 고부가가치형으로 산업구조를 진화시키지 않으면 싸구려 중국산 제품에 우리 제품이 밀리게 돼 있어요. 대전지역은 금강을 끼고 연기와 청원에 논 1000만평이 있습니다. 충북에도 오송·오창단지를 비롯해 활용할 땅이 많죠. 대덕특구를 본부기지로 해 선도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대통령의 대(對) 충청권 공약이잖아요. 공항과 항만을 끼고 있는 인천과 경기도는 그만하면 이미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죠. 정부가 충청권 선도산업으로 선정한 의약·바이오와 ‘New IT’를 중심으로 충청권이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어야만 합니다.”
▼ 대전시가 역차별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뜻입니까.
“중앙에선 행정도시가 인근에 건설되고 대덕특구가 있으니 대전은 가져갈 걸 다 가져갔다고 인식하는 게 사실인데요. 그래서 대전이 얻은 게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군요. 대전에는 오히려 이 같은 논리가 성장의 장애가 되었습니다. 행정도시가 대전 인근에 건설된다는 이유로 참여정부는 대전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지정 때 철저히 배제됐죠.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덕특구도 마찬가지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덕밸리비전을 선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덕밸리를 R&D특구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비전만 제시했지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준다는 예산도 주지 않았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권 과학비즈니스 벨트 구축을 약속한 걸로 아는데요.
“다행히도 그렇죠. 정부의 광역경제권 개발 구상에도 충청권을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저는 그걸 대덕밸리의 연구개발성과를 비즈니스로 연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특히 선도산업으로 의약·바이오를 선정한 데 대해서도 기대가 큽니다. 그래서 정부가 추진 중인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과학벨트란 큰 틀에 첨복단지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새롭게 단지를 건설하고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 소비할 시간이 있습니까. 대덕특구는 35년간 30조원이 투자된 곳입니다. 최소의 사업비로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죠.”
▼ 첨단의료산업 단지를 대덕 특구에 연계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덕특구에는 IT와 BT, NT는 물론 원자력, 한의학 등 첨단의료에 관한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죠. 첨단의료산업의 핵심은 이들 기술을 융합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기초역량이 갖춰진 곳에 핵심역량만 추가하면 정부가 구상하는 첨단의료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책사업이 이른바 ‘정치적’으로 좌우되는 걸 많이 봐왔잖아요. 적어도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면 정파를 떠나, 지역 간 경쟁을 떠나 소신 있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정부가 능동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정도의 원칙과 철학은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의 각종 규제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규제가 수도권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죠. 개발제한구역 문제만 해도 도 단위보다는 광역시가 훨씬 심각합니다. 대전시만 하더라도 대덕특구의 절반이 개발제한구역입니다. R&D 성과를 사업화해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지 산업단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요. 특구위원회에서 개발사업계획을 승인한 뒤 해제절차를 또다시 거쳐야 하는 유사절차 중복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시계획 승인 때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의제 처리토록 행정절차를 간소화해줄 것을 건의했던 거죠. 첨단기술기업 지정기준도 지나치게 엄격합니다. 외국인 투자 관련 규제도 인천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특별자치도 수준으로 완화해야 합니다.”
▼ 최근 박 시장의 1만원권 지폐 도시마케팅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아시다시피 대전에 돈을 찍어내는 한국조폐공사가 있습니다. 대전에 있는 공기업에서 생산되니 지역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1만원권 지폐는 창조도시 대전이 지향하는 목표를 도안으로 하고 있지요. 앞면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그 배경으로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고요. 또 뒷면에는 우주과학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죠. 천문 관측용 혼천의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것이죠. 지폐의 앞면이 문화예술을, 뒷면이 과학기술을 각각 상징하듯 우리 대전은 문화와 과학이 조화를 이루는 창조도시를 지향합니다. 이런 설명과 함께 투자 유치나 국제행사 때 외국 손님에게 1만원권 지폐를 지역특산품으로 선물하고 있죠.”
시장실 응접실에 걸린 액자 앞에 선 박성효 대전시장.
▼ 내년 10월에 대전에서 우주분야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60회 국제우주대회, 즉 IAC가 열립니다. 서로 매치되는군요. 어떻습니까.
“그렇죠. 지난 10월 초 제59회 IAC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에 다녀왔는데요. NASA 등 항공우주 관련연구소, 기업, 대학 등 60개국 3000명의 우주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는 IAC가 유일합니다. 그곳에서 1만원권 지폐를 아주 유용하게 썼습니다. 세종대왕과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등을 설명하며 ‘최고 고액권에 우주과학에 대한 전통을 담은 도안을 넣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라고 설명하자, ‘원더풀’이라는 반응이 나왔죠. 올해 우리는 첫 우주인을 배출했고 내년 상반기면 전남 고흥에서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하는 나라가 됩니다. 곧이어 국제우주대회가 대전에서 열리는 거죠. 더구나 내년은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고, 유엔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입니다. 타이밍이 좋습니다. 세계가 우주에 관심을 집중하는 해에, 그것도 우리나라가 우주시대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세계적 이벤트가 열리는 것 아닙니까. 정부 차원의 각별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년은 대전이 시가 된 지 60년, 광역시가 된 지 꼭 20년이 되는 해. 최근 대전에선 도시 산업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간 대전은 도매업에서 제조업으로 산업구조가 변화, 발전했지만 경제구조는 대도시답지 않게 취약하다. 박 시장이 취임 후 산업용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덕의 과학기술과 스킨십이 필요한 기업들이 이전을 검토했다가도 땅이 없어 되돌아가는 일이 빈번했지요. 새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대덕특구 내 330만㎡(100만평) 규모의 산업용지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1년 걸리는 그린벨트 해제 절차도 5개월로 단축했죠. 1단계 부지가 내년 1월부터 분양에 들어가고 2단계 부지도 내년 연말이면 공급이 시작됩니다. 신탄진에도 무공해 첨단산업단지가 조성되는데요, 8.7㎢이던 산업단지가 2015년이면 14.1㎢가 됩니다. 시 출범 60년,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거라고 전 자신합니다.”
▼ 얼마 전 대전의 첫 백화점인 중앙데파트가 34년 만에 철거됐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는데 아쉽지 않나요.
“아쉽기는 하지만 대전이 녹색성장 도시로 가는 신호탄입니다. 중앙데파트의 철거로 복개물이 뜯긴 곳에 명품 친수(親水)공간이 다시 태어날 겁니다. 하천 복개로 사라진 목척교도 복구될 것이고요. 목척교 주변이 대전역부터 충남도청으로 이어지는 중앙로 르네상스의 관문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3대 하천 만들기는 3000만그루 나무심기, 자전거타기 좋은 도시와 함께 대전의 역점시책 중 하나입니다. 유성 시민의 숲도 조성되고 있죠.”
▼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충남도청 이전부지에 국립근현대사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최근 정부는 서울 경복궁 인근에 현대사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또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립근현대사박물관의 일부 기능이 그쪽으로 빠져나가게 된 것이라는데요. 우리는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선 대통령의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는 인식이 팽배한 실정입니다. 국립박물관 건립은 대통령께서 대전시민과 충남도민에게 약속한 사항이죠. 공약이 일언반구 해명 없이 파기되거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경제 살리기도 요원해질 수 있죠. 이런 점은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쯤 시장실을 둘러보다 응접실 벽에 걸린 액자에 ‘조국, 또 다른 우리의 이름입니다. 호국,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보훈, 미래를 위한 우리의 도리입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글귀를 쓴 사람이 박 시장으로 되어 있었다. 그의 투철한 국가관을 읽을 수 있었다.
“따뜻한 행정가이고 싶다”
▼ 혹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받진 않습니까.
“지난 1월 현충원을 참배하면서 방명록에 남긴 글인데 정무부시장이 ‘정말 좋다’며 서예가인 일강 전병택 선생에게 의뢰해 액자로 걸어두게 됐습니다. 한 기자가 기사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됐죠. 그리고 전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성장과 분배를 아우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빈곤동네 재생프로젝트인 무지개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은 3단계로까지 확대시켰습니다. 건물과 사람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정주(定住)환경을 조성하고, 주민들의 자활능력을 키워주는 게 핵심이죠.”
마지막으로 박 시장에게 “살아가는 데 꿈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정통 관료 출신답지 않게 인간미 넘치는 답변을 들려줬다.
“각박한 세상에 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듯 세대를 연결하고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행정가이고 싶습니다.”